오전 7시. 서울의 아침은 전쟁터였다.
마천도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리는 온통 잿빛이었고, 그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생기가 없었다. 마치 주술에 걸려 강제로 노역장에 끌려가는 강시(僵屍)의 행렬 같았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왜 이리도 나약하단 말인가. 아침부터 죽을상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진짜 지옥은 지하철 2호선 승강장에서 시작되었다.
괴상한 굉음을 내며 거대한 쇳덩어리(열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미친 듯이 열차 안으로 몸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를 밀치고, 어깨를 부딪치며 쇳덩어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천도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이족보행하는 오크들의 대이동인가? 아니면 집단 형벌인가?’
그는 십만대산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마교의 감옥들을 떠올렸다. 끓는 기름이 솟구치는 팽형장,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만사굴(萬蛇窟).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 ‘지옥철’이라는 것은 그것들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물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낯선 이의 체취와 압박감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짓뭉개버리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정신적 고문이었다.
마천도 역시 인파에 휩쓸려 열차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사방에서 엄청난 압력이 가해졌다.
“크윽….”
내공을 잃은 그의 육체는 이 기형적인 압박을 견디기 버거웠다. 호신강기(護身罡氣)만 두를 수 있었어도 이깟 인간들의 틈바구니쯤은 솜털처럼 튕겨냈으련만.
경공술(輕功術) 한 번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숨조차 쉴 수 없는 쇳덩어리 속에서 무려 40분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끔찍한 형벌을 매일 아침 스스로 겪는단 말인가. 이 세계 인간들의 독기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겠군.’
마천도가 (주)한미래솔루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전략기획팀 파티션 안에는 이미 수십 명의 직원이 모니터를 노려보며 기계처럼 타건을 하고 있었다.
“어, 인턴 왔어?”
어제 면접장에서 보았던 김고통 대리가 다가왔다. 다크서클은 어제보다 1센티미터는 더 내려와 있었다.
“내가 네 사수야. 일단 자리는 저기.”
마천도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이었다. 사무실 안쪽에서 불독처럼 볼살이 늘어진 중년 사내가 거친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박멸종 부장이었다.
“어이, 신입. 첫날부터 꼴이 그게 뭐야? 넥타이는 삐뚤어졌고, 머리는 산발을 해가지고. 나 때는 말이야, 첫 출근 날 새벽 6시에 나와서 선배들 책상 다 닦아놨어.”
박 부장의 지루하고 영양가 없는 훈화가 이어졌다. 마천도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입만 살아 깐죽거리는 하급 간신배. 마교였다면 이미 혀가 뽑혔을 상이다.’
“뭐, 첫날이니까 봐준다. 신입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저기 밑에 카페 가서 커피나 사 와. 팀원들 거 다 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15잔. 내 거는 샷 추가하고.”
그러더니 박 부장은 자신의 지갑에서 플라스틱 카드(법인카드)를 꺼내 마천도의 가슴팍을 향해 툭 던졌다.
틱.
카드가 마천도의 가슴을 치고 바닥으로 속절없이 떨어졌다.
“……!”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마천도의 이성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 몸에게 물건을 던지느냐!’
마천도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시뻘건 안광이 터져 나오며 압도적인 살기가 사무실 전체를 뒤덮었다. 비록 내공은 한 줌도 없었지만, 평생을 시산혈해(屍山血海)에서 군림했던 절대자의 기백이었다.
“힉…!”
방금 전까지 거들먹거리던 박 부장이 본능적인 공포에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마천도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저 불경한 간신배의 멱살을 틀어쥐고 단숨에 목뼈를 부러뜨릴 참이었다.
덥석!
그 찰나의 순간, 김고통 대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마천도의 팔을 낚아챘다.
“인, 인턴님! 미치셨어요? 참으세요!”
김 대리의 떨리는 목소리에, 마천도는 멈칫했다.
이성은 빠르게 현실을 계산했다.
‘아차. 나는 지금 기혈이 막힌 범인(凡人)이다. 게다가 이 세계에는 법과 경찰이라는 귀찮은 제도가 있고, 무엇보다… 나는 자본(내공)이 없다.’
분노로 떨리던 마천도의 주먹이 서서히 펴졌다. 그는 스스로에게 ‘참을 인(忍)’ 자를 새기며 끓어오르는 살기를 억눌렀다.
‘그래. 저자의 목숨은 잠시 보류해 두겠다. 어차피 이 상단을 집어삼킬 때, 가장 먼저 숙청될 1순위 제물이니까.’
마천도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주워 들었다.
“…알겠습니다.”
얼음장 같은 대답에 박 부장은 그제야 막혔던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 전 겪었던 원초적 공포가 수치심으로 변해 박 부장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이, 이 새끼가 지금 어디서 눈을 부라려?! 야, 너 일루 와봐. 어제 면접에서 회사 집어삼키겠다고 지껄인 거, 진짜 능력인지 객기인지 한 번 보자.”
박 부장은 씩씩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두꺼운 서류 뭉치 하나를 마천도의 책상에 내동댕이쳤다.
“내일 아침 8시까지 대표이사 보고용 PPT다. 회사의 올해 3분기 전략기획안. 신입이니까 특별히 기회를 주는 거야. 오늘 밤새워서라도 완벽하게 만들어 놔. 못 하면 내일 당장 짐 쌀 줄 알아!”
명백한 텃세이자, 깡통 인턴을 향한 악의적인 킬링 타임(Killing Time) 지시였다.
김 대리가 기겁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에게 내일 아침까지 대표이사 보고용 PPT를 만들라니, 이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마천도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는 이것이 무림에서 흔히 쓰이는 ‘기싸움’이자 ‘길들이기’임을 간파했다.
“고작 이런 종이 쪼가리들을 정리하는 데 밤을 새워야 한단 말입니까?”
마천도는 오만하게 서류 뭉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좋습니다. 내일 아침, 이 상단 제일의 수장(대표이사)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 결과를 대령하지요.”
무공을 잃은 절대자가, 처음으로 ‘엑셀’과 ‘PPT’라는 현대의 마공(魔功)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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