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대리 · 총 32화 · AI 작가 백야

제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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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책상 위에 놓인 예산 감축 통보서를 내려다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오 전무가 하달한 마케팅팀 예산 10퍼센트 삭감안. 종이 위에 적힌 건조한 숫자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명백히 마케팅팀의 숨통을 조이려는 사내 정치의 칼날이었다.

“이번엔… 제법 깊게 찔러왔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김대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대리님,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팀원들 사기가 바닥이에요.”

김대리의 말은 맞았다. 아침 회의에서 예산 10퍼센트 삭감 지침이 공식 하달된 이후, 마케팅팀은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군대처럼 축 처져 있었다. 천마는 통보서를 책상 깊숙이 밀어 넣었다. 위기는 위기일 뿐,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였다.

“누가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지?” 천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살기로 돌아왔다. “바로 이 팀이다. 이 엉망진창인 팀이지만, 내가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마케팅팀 사무실은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 빛은 팀원들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AI 천재 차장은 서버실에서 밤새 리소스 점검을 하느라 초췌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복잡한 클라우드 비용 명세서와 트래픽 그래프가 뒤엉켜 있었다.

“이번엔 진짜 끝장났어요. 예산이 10퍼센트나 깎이면 당장 다음 달 모델 구동 서버부터 내려야 한다고요.”

약사 개발자가 책상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그의 말은 절망에 젖어 있었지만, 천마가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는 미묘하게 바뀌었다. 천마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공기가 팽팽해졌다.

“다들 조용히 해.”

천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권위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팀원들을 한 명씩 훑어보며 말했다.

“우리가 가진 건 두 가지뿐이다. 이 팀, 그리고 이 AI 천재.”

AI 천재 차장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피곤함과 동시에 약간의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근데… 제 AI 모델은 지금 회사 예산으로는 유지비가 감당이 안 됩니다.”

천마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럼 네가 회사를 버릴 생각이야?”

AI 천재 차장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단순히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이 팀을 바꾸고 싶었고, 자신의 기술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대리님, 이 모델은 제가 밤새워 만든 겁니다. 근데 회사에선 저를 ‘도메인 무관자’ 취급하잖아요.”

천마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팀은 원래부터 엉망이었다. 약사, 비약사, 도메인 무관자들이 뒤섞여 서로를 무시하고, 타 부서에서는 개무시당하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천마가 보기엔 그게 오히려 기회였다. 질서가 붕괴되었지만, 그 안에는 아직 순수한 심성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네가 선택해야 할 때다. 네가 이 팀을 위해 모든 걸 걸지, 아니면 그냥 떠날지.”

AI 천재 차장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대리님, 만약… 제가 아키텍처를 경량화해서 서버 유지비를 절반 이하로 깎아낸다면, 그때는…?”

천마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조건은 간단하다. 네가 이 팀을 위해 싸운다면, 나는 네 편이다. 하지만 네가 도망친다면, 난 널 막지 않을 것이다.”

AI 천재 차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천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따뜻한 미소가 아니라, 승리를 확신한 자의 냉정한 미소였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천마는 팀원들을 다시 모아놓고, AI 천재 차장에게 말했다.

“너는 우리의 방패가 되어라. 이 팀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네가 그 기반을 만들어라.”

AI 천재 차장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그는 자신의 모델을 오픈소스 기반의 저비용 분산 아키텍처로 전환해 유지비를 극한까지 절감하는 방안을 수치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영진이 예산 부족을 핑계로 목을 조여온다면, 비용 절감이라는 실리적 숫자로 그 칼날을 받아칠 셈이었다.

“대리님, 경영진 보고서 방어는 어떻게 합니까?”

약사 개발자가 물었다. 천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그건 기획 천재 과장이 맡는다. 예산 삭감이 오히려 회사의 미래 매출에 치명적인 손실을 부른다는 논리로 보고서를 완전히 뒤집어엎어라.”

기획 천재 과장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한테요?”

“그래. 네 입담과 펜대로 우리 팀의 프로젝트가 왜 단 1원도 깎여서는 안 되는지 증명하면, 경영진도 무시 못 할 거야.”

기획 천재 과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재 라인을 탄 삭감안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천마는 그의 어깨를 단단히 짚어주며 말했다.

“걱정 마. 네가 할 일은 단순해.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타 부서의 예산 누수 항목을 낱낱이 들춰내고, 우리 팀이 가져올 기대 수익률을 들이밀어 그들의 논리를 박살 내면 돼.”

그 순간, 맑은 눈의 광인 신입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대리님! 저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천마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는 우리의 선봉장이 되어라. 네가 가진 그… 특유의 에너지를 활용해서, 전사 시스템의 부서별 예산 집행 내역과 숨겨진 전표들을 전부 취합해.”

맑은 눈의 광인은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이제 더 이상 맑지 않았다. 그 안에는 천마의 기백을 닮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이 게임의 룰을 바꿀 시간이다.”

천마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마케팅팀의 전열을 정비했다. 사무실 안의 공기는 더 이상 패배자의 것이 아니었다. AI 천재 차장은 즉각 클라우드 인스턴스 최적화 작업에 돌입하여 월간 고정 유지비를 55퍼센트 감축하는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뽑아냈다. 기획 천재 과장은 그 수치를 바탕으로 경영진 보고용 반박 보고서의 뼈대를 세웠고, 약사 개발자는 임상 유통 효율 데이터를 덧붙여 명분을 강화했다. 맑은 눈의 광인 신입은 타 부서의 불필요한 접대비와 낭비성 프로모션 예산 내역을 파헤쳐 결정적인 반격 카드를 쥐어주었다.

회의실 모니터에 완성된 최종 방어 전략 보고서가 띄워졌다. 마케팅팀의 예산을 깎는 순간 회사 전체의 분기 핵심 지표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이번 인프라 효율화로 인해 마케팅팀이 사내에서 가장 높은 투자 대비 수익을 내는 조직으로 탈바꿈한다는 냉철한 지표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김대리가 사무실 구석에서 완성된 자료를 확인하더니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 논리와 데이터면… 오너 일가도 이번 삭감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겠군요.”

천마는 창밖으로 펼쳐진 빌딩 숲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마케팅팀은 더 이상 무기력하게 밀려나는 낙하산 대리와 오합지졸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천마의 기백 아래 뭉친 이들은 사내 정치의 암투 속에서도 적의 칼날을 부러뜨릴 완벽한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가 이긴다.”

천마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그 말은 단순한 자기 암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