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무엇이냐.”
마천도는 눈앞에 놓인 모니터 화면을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눈을 어지럽히는 수천, 수만 개의 네모난 칸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김고통 대리가 퀭한 눈을 부비며 다가와 한숨을 쉬었다.
“엑셀입니다. 박 부장님이 던져주신 3분기 실적 원본 데이터고요. 이걸 다 정리해서 내일 아침 보고용 PPT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천도는 조심스럽게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것을 쥐었다. 평생을 검과 장(掌)만 쥐어왔던 손이었다. 뭉툭하고 거친 그의 손가락이 조막만 한 플라스틱 조각들을 다루는 모습은 영 어색했다.
타닥. 타닥.
모니터 속 격자들을 바라보던 마천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놀랍군. 가로와 세로의 치밀한 교차. 이것은 마치 적을 가두고 모든 퇴로를 차단하는 천라지망(天羅地網) 진법이 아닌가.’
이 엑셀이라는 것은 분명 인간의 정신을 격자 속에 가두고 갉아먹는 사악한 진법임이 틀림없었다.
“자, 인턴님. 잘 보세요. 데이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때는 일일이 찾지 말고 이렇게 함수를 쓰면 됩니다. 는, 브이룩업, 괄호 열고…”
‘=VLOOKUP(A2, B2:C100, 2, FALSE)’
모니터에 기괴한 영문과 기호가 입력되자, 흩어져 있던 숫자 일백 개가 단숨에 일렬종대로 도열했다.
“……!”
마천도는 그 광경을 보고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 한 줄의 진언(眞言)으로 수백의 병사를 일거에 정렬시키다니! 이 주문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마천도는 김 대리가 가르쳐주는 함수들을 무공 비급의 심법(心法)을 전수받듯 진지하게 경청했다. VLOOKUP은 은신한 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십리안(十里眼)의 술법이었고, SUMIF는 특정 조건을 가진 마기(魔氣)만을 응집시키는 흡성대법(吸星大法)과 같았다.
비록 독수리 타법으로 글자를 치는 속도는 삼류 무사보다 느렸으나, 수백 년간 깨달음을 얻어온 절대자의 두뇌는 엑셀의 원리를 단숨에 흡수해버렸다.
“어… 인턴님? 타자는 엄청 느리신데, 수식 짜는 논리 구조는 왜 이렇게 완벽하죠? 이거 어제까지 엑셀 처음 보신다는 분 맞아요?”
“만상의 이치는 결국 하나로 통하는 법이다. 껍데기만 다를 뿐, 흐름을 읽으면 진법의 핵(核)이 보이는 법이지.”
“네? 진법이요?”
김 대리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마천도는 이미 화면 속 수치들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밤 10시.
사무실에는 오직 마천도와, 그를 차마 버리고 가지 못한 김 대리만이 남아있었다. 박 부장은 저녁 6시가 되자마자 “나는 오늘 저녁 선약이 있어서 이만. 신입, 내일 아침 기대할게?”라는 헛소리를 남기고 칼같이 도망간 후였다.
데이터 정리가 끝나고, 마천도는 박 부장이 예전에 썼다던 PPT 템플릿 파일이라는 것을 열었다.
그리고 십 분 뒤, 그는 책상을 내리치며 격노했다.
쾅!
“아오 깜짝이야! 왜, 왜 그러세요!”
“김 대리. 이딴 조잡하고 흉물스러운 껍데기를 대체 왜 만드는 것이냐!”
마천도가 손가락질한 모니터 화면에는 원색의 화려한 색감, 이상한 글씨체(굴림체), 그리고 번쩍거리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덕지덕지 발라진 PPT 슬라이드가 띄워져 있었다.
“아… 부장님이 글씨는 무조건 크고 굵은 굴림체를 좋아하시고, 중요한 건 무조건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강조하라고 하셔서요. 애니메이션 효과 안 넣으면 성의 없다고 혼나십니다.”
“미친놈이군.”
마천도가 이를 갈았다.
보고서의 본질은 사실의 전달과 전략의 수립이다. 내용만 완벽하다면 전서구(傳書鳩) 다리에 묶는 갱지 한 장, 단 세 줄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했다. 마교의 보고 체계는 철저하게 실용적이었다.
그런데 이 ‘PPT’라는 것은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상대방의 눈을 멀게 하고 현혹하기 위한 미사여구와 색칠 놀이에 불과했다. 무공으로 치면 내공은 쥐뿔도 없는 놈이 겉보기에만 화려한 삼류 검무(劍舞)를 추는 꼴이었다.
‘마교였다면 이딴 쓰레기를 보고서라고 올린 놈은 당장 혀를 뽑아 성문에 매달았을 것이다.’
의미 없는 폰트 크기 조절과 색깔 변경에 새벽 2시까지 시간을 허비하자, 마천도는 마교 시절의 효율성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과 시간을 갉아먹기 위해 만든 현대의 사술(邪術)이었다.
하지만 분노도 잠시.
마지막 요약 슬라이드에 들어갈 분기별 지출 내역 합산표를 검토하던 마천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상하군.’
그는 다시 엑셀 원본 파일(천라지망)을 띄웠다.
“김 대리. 이 ‘영업판촉비’ 항목 말이다. B 협력사에 지급된 내역과 최종 정산 내역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네? 그럴 리가요. 제가 함수 다 걸어놔서 틀릴 리가 없… 어?”
김 대리가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합산 함수가 미묘하게 꼬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B 협력사에 정기적으로 나간 특정 금액들만 합산에서 교묘하게 누락되도록 로우 데이터의 서식이 조작되어 있었다.
평생 수천 개의 문파와 상단을 짓밟으며 숱한 비리 장부들을 압수해 보았던 마천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숫자를 빼돌린 것이다.
“부, 부장님이 넘겨주신 데이터인데… 설마.”
“김 대리. 이 회사에서 횡령을 저지르면 어떤 처벌을 받느냐.”
“네?! 횡, 횡령이라니요! 그건 당장 경찰 조사를 받고 쇠고랑을 차는 중범죄입니다!”
마천도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호를 그리며 찢어졌다.
나약한 이 세계에서 적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비기(秘技)를 발견한 참이었다.
“훌륭하군.”
기싸움을 걸려다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쥐여준 멍청한 간신배.
마천도는 내일 아침 출근할 박멸종 부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무림 제패를 위해 수많은 피를 묻혔던, 피도 눈물도 없는 마왕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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