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8시. (주)한미래솔루션 대회의실.
무겁고 삼엄한 공기가 짓누르는 가운데, 긴 타원형 테이블의 상석에는 최종수 회장이 팔짱을 낀 채 매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양옆으로는 각 부서의 본부장과 임원들이 도열하듯 앉아 숨을 죽였다.
마치 정파 연합의 수장들이 모인 무림맹(武林盟)의 대전(大殿)과도 같은 풍경.
방구석 파티션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이 회의실을 감돌고 있었다.
“자, 그럼 전략기획팀. 3분기 실적 및 4분기 기획안 발표 시작하세요.”
최종수 회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떨어지자,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 있던 박멸종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매단 채 회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회장님. 오늘 발표는 특별히 저희 팀에 어제 새로 들어온 마천도 인턴에게 맡겨볼까 합니다. 어제 면접에서 본인의 입으로 ‘회사를 집어삼킬 인재’라고 포부를 밝혔기에, 그 패기를 회장님 앞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자 합니다.”
임원진의 미간이 일제히 찌푸려졌다.
중요한 임원 회의에 핏덩이 인턴을 세우다니. 하지만 박 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저 새끼가 엉터리로 조작된 데이터를 발표하는 순간, 회장님은 극대노할 테고… 나는 신입의 열정을 믿었다가 뒤통수 맞은 불쌍한 상사 코스프레를 하면 그만이다. 횡령 건은 완벽하게 저 깡통 새끼의 실수가 되는 거지.’
“마 인턴. 나와서 발표하지.”
박 부장이 여유롭게 턱짓을 했다. 구석에서 노트북을 세팅하던 김고통 대리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저 악마 같은 꼬리 자르기.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마천도는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타박. 타박.
단상으로 걸어 나가는 그의 발걸음에는 신입의 초조함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만 군단을 사열하는 황제의 걸음걸이였다.
단상에 선 마천도는 마이크를 쥐는 대신, 뒷짐을 진 채 날카로운 안광으로 임원진을 훑어보았다.
“……!”
순간, 최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감히 인턴 따위가 임원들을 내려다본단 말인가. 하지만 불쾌함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원초적인 위압감이었다. 숨이 막힐 듯한 기세.
마천도가 입을 열었다. 마이크 없이도 그의 목소리는 대회의실의 벽을 쩌렁쩌렁 울렸다.
“본좌가… 아니, 본 인턴이 어젯밤 3분기 장부를 검토해 본 결과, 이 상단의 실태는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뭐, 뭐…?”
“저 새끼가 미쳤나!”
임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박 부장은 쾌재를 불렀다.
‘좋아! 계속 그렇게 건방지게 굴어! 회장님이 빡치게!’
“특히 영업판촉비 내역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아니 쥐새끼들의 놀이터와 다름없더군요.”
마천도가 프레젠터의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며, 어제 박 부장이 지시했던 현란하고 요란한 템플릿 대신, 흑백으로 이루어진 건조하고 직관적인 표 하나가 거대한 스크린에 띄워졌다.
**[B협력사 분기별 리베이트 및 고의 누락 내역서]**
“…이게 뭐야?”
최종수 회장의 눈이 확 커졌다.
화면에는 지난 1년간 B협력사에 지급된 내역 중, 교묘하게 수식이 조작되어 장부 합산에서 빠져나간 금액들이 붉은색 글씨로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이, 이, 이… 인턴 새끼야! 지금 무슨 화면을 띄우는 거야!”
사색이 된 박 부장이 비명을 지르며 단상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마천도의 시선이 그를 향해 꽂히자, 박 부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박멸종 부장.”
마천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회의실에 내려앉았다.
“너는 이 사악한 사술(PPT)로 눈을 가리고, 천라지망(엑셀)의 진법을 교묘하게 비틀면 본좌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무, 무슨 개소리야! 저 새끼가 미쳐서 장부를 조작한 겁니다, 회장님! 저건 다 가짜 데이터입니다!”
박 부장이 핏대를 세우며 변명했다.
하지만 마천도는 코웃음을 쳤다.
“가짜? 김 대리. 회장님 앞으로 원본 데이터와 B협력사 세금계산서 대조본을 전송해라.”
구석에 있던 김 대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엔터키를 쳤다.
띠링-.
임원들과 회장의 태블릿에 동시에 파일이 전송되었다. 그것은 어젯밤 천마의 통찰력으로 구멍을 찾아낸 뒤, 김 대리가 사색이 되어 밤새도록 증빙자료를 긁어모은 ‘완벽한 횡령의 증거’였다.
서류를 확인한 최종수 회장의 얼굴이 호랑이처럼 험악해졌다.
“박멸종.”
“회, 회장님! 오해십니다! 저 인턴 새끼가…!”
“닥쳐라!!”
최 회장의 일갈에 박 부장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디서 감히 내 돈을 빼돌리고, 그걸 신입한테 덮어씌우려 들어? 감사팀! 당장 이 새끼 끌어내고 법무팀에 고발 조치해!”
회의실 뒷문이 열리고 건장한 감사팀 직원들이 들어와 혼이 나간 박 부장의 양팔을 붙잡았다.
“마, 마천도오오! 이 악마 같은 새끼! 네놈이 나를…!”
질질 끌려나가는 박 부장의 절규가 복도 너머로 멀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폭풍 같은 숙청. 대회의실에는 쥐죽은 듯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무림의 절대자였던 천마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타인의 힘(감사팀)을 빌려 정적을 제거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병법을 완벽하게 현대에 구현해 낸 것이다.
천마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최 회장을 내려다보았다.
“쥐새끼는 청소했으니, 이제 진짜 ‘전략 기획’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만. 들어보시겠습니까?”
입사 이틀 차 인턴.
그는 이 상단을 지배하기 위한 첫 번째 제물을, 아주 훌륭하게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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