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
전략기획팀 사무실 문이 열렸다.
타닥거리던 키보드 소리가 일제히 멈추고, 수십 명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다. 아침 임원 회의에서 박멸종 부장의 목을 날려버리고 회장실로 불려 갔던 마천도 인턴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저 미친 인턴, 안 잘렸어?’
‘회장님이 직접 호출하셨는데 사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다니… 대체 정체가 뭐야?’
팀원들이 숨을 죽이고 눈치만 보는 가운데, 마천도는 특유의 오만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자신의 구석진 인턴 자리가 아니었다.
털썩.
마천도는 주인이 감사팀에 끌려가 텅 비어있는 ‘부장석’의 무거운 가죽 의자에 보란 듯이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헉…!”
여기저기서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턴 나부랭이가 부장의 옥좌에 앉다니,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었다.
사수인 김고통 대리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마, 마 인턴님! 미치셨습니까! 당장 내려오세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누가 본다는 것이냐.”
“네? 아니, 그 자리는 박 부장님의….”
“그 간신배 새끼의 모가지는 방금 내 손으로 쳤다. 빈자리에 주인이 앉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이냐.”
마천도가 턱을 괴고 나른하게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띠링-! 띠링-!
사무실 내 모든 직원의 모니터에 전사 긴급 공문 알림창이 동시에 떠올랐다.
**[인사 발령 및 특별 TF 신설의 건]**
- 대상: 전략기획팀 인턴 마천도
- 내용: 경영진단 특별 TF 신설. 마천도 인턴을 동 TF의 팀장(임원급 전결권 부여)으로 임명함. 회장 직속 권한으로 사내 모든 부서의 감사 및 기획 권한을 위임함.
- 발신: 대표이사 최종수
“……!!!”
사무실에 쥐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김 대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입사 3일 차, 프린트하는 법도 몰라서 헤매던 깡통 인턴이… 하루아침에 부장급, 아니 임원급 권력을 쥔 회장 직속 특임 팀장이 되었다고?
이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공포였다.
저 미친놈의 뒤에 회장님이 버티고 있었다니!
침묵을 깬 것은 마천도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탕, 탕 두 번 내리쳤다.
“모두 주목.”
내공은 없었지만 전장을 호령하던 기백이 서려 있는 목소리. 팀원들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이 시각부로, 이 부서의 모든 낡은 껍데기와 악습을 폐기한다. 나는 비효율을 혐오하고, 능력이 없는 자가 연공서열을 핑계로 자리만 차지하는 것을 극도로 경멸한다. 따라서 새로운 세 가지 율법을 선포하겠다.”
마천도가 손가락을 하나 펼쳤다.
“첫째. 앞으로 보고서에 ‘PPT’라는 사악한 주술을 사용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손모가지를… 아니, 시말서를 징구하겠다. 모든 보고는 텍스트 3줄 이내로, 흑백 문서로만 올린다. 중요한 것은 색깔 놀이가 아니라 숫자의 본질이다.”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일 밤 애니메이션 효과와 굴림체 폰트에 시달리며 영혼을 갈아 넣던 지옥의 PPT 작업이 금지되었다고?
“둘째.”
마천도가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야근을 금지한다. 정해진 시각(오후 6시)이 되면 무조건 각자의 동굴(집)로 돌아가 휴식하고 내공을 보충해라. 퇴근 시간 이후에 업무를 지시하는 상급자가 있다면 내게 고발해라. 내가 직접 그자의 단전을 부숴주마.”
여기저기서 헉,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블랙기업 (주)한미래솔루션에서 야근 금지라니. 이건 모세의 기적보다 더 비현실적인 선언이었다.
“셋째. 공을 가로채지 않는다. 쥐새끼처럼 부하의 실적을 훔치는 자는 그 즉시 이 상단에서 추방한다. 오직 철저한 실력과 성과주의. 내가 세운 사냥감의 목을 물어오는 자에게는 합당한 재물(보너스)을 보장하겠다.”
마천도의 연설이 끝나자, 사무실은 묘한 흥분감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저 미친놈이 선포한 율법은 현대 직장인들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궁극의 유토피아’ 그 자체였다. 워라밸 보장, 실용주의, 그리고 철저한 보상.
블랙기업에 찌들어 생기를 잃었던 직원들의 눈빛에, 이전에 없던 기묘한 광신(狂信)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마교의 교리가 하급 마졸들을 홀리듯, 천마의 율법이 현대의 직장인들을 세뇌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천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서 있는 김고통 대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꺼낸 박카스(현대의 영약) 한 병을 그에게 건넸다.
“김 대리. 아니, 이제부터 너를 이 특별 TF의 제1호법(護法)으로 임명하겠다.”
“호, 호법이요…?”
김 대리가 얼떨떨하게 박카스를 받아 들었다.
“그래. 내 수족이 되어 가장 먼저 썩은 피를 뒤집어쓸 영광스러운 자리지.”
마천도는 살벌하게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가장 먼저, 사내에서 박멸종 간신배 놈과 결탁했던 재무팀 상무 놈의 3년 치 장부를 내 앞으로 대령해라. 오늘 밤, 그놈의 숨통을 끊어버릴 테니.”
김 대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미친 인턴 때문에 회사 생활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묘하게 가슴이 뛰고 있었다.
매일 부장에게 욕을 먹으며 영혼을 갉아 먹히던 톱니바퀴의 삶.
하지만 저 오만하고 압도적인 남자의 뒤를 따른다면… 적어도 이 지옥 같은 회사에서 진짜 ‘재미있는 사냥’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마 팀장님. 아니, 주, 주군.”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무협 드라마 같은 호칭.
김 대리의 눈에도 서서히 마교도의 독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21세기 서울 한복판에, 새로운 마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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