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9시. (주)한미래솔루션 대회의실.
평소라면 조용해야 할 회의실이 오늘은 아침부터 임원들의 핏대 선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최종수 회장이 상석에 앉아 미간을 구기고 있었고, 그 앞에는 마천도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회장님! 아무리 특명 TF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었습니다! 어제 재무팀을 무단으로 털어간 것도 모자라, 회사 핵심 기밀 데이터를 인턴 따위가 무단 열람하다니요!”
최달호 상무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치며 열변을 토했다.
그의 옆에 앉은 인사팀장 역시 거들었다.
“맞습니다, 회장님. 사규 제14조 2항, 보안 규정 위반에 해당하는 중대한 해사(害社) 행위입니다. 따라서 인사위원회는 마천도 인턴에 대해 즉각적인 징계 해고를 건의하는 바입니다.”
인사팀장이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마천도의 발밑에 툭 던졌다. 징계 해고 통지서였다.
영업본부장과 개발본부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최 상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임원진 카르텔이 똘똘 뭉쳐 인턴 하나를 압살하기 위한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한 것이다.
최 상무의 입가에 승리자의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네깟 놈이 회장님 빽을 믿고 깝쳐봤자, 우리 임원진 전체가 들고일어나면 회장님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주제 파악이나 해라, 이 애송아.’
최종수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마천도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천마를 사냥개로 쓸 생각이었지, 임원진 전체를 적으로 돌리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마천도. 변명할 말이 있나? 임원들이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내가 널 계속 감싸주긴 힘들 것 같은데.”
최 회장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꼬리 자르기’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마천도는 발밑에 떨어진 해고 통지서를 주워 들더니, 보란 듯이 좍좍 찢어 허공에 흩뿌렸다.
종잇조각들이 마치 눈송이처럼 회의실 바닥에 흩내렸다.
“변명이라. 쥐새끼들이 모여서 작당 모의를 하기에 잠시 지켜봐 주었더니, 혀가 아주 길어졌군.”
“뭐, 뭐? 쥐새끼?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진짜 돌았나!”
최 상무가 삿대질하며 발악했다.
마천도는 턱을 치켜들고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최달호. 네놈이 어젯밤 영업본부장, 개발본부장과 모여서 내 모가지를 치기로 모의한 것은 잘 들었다.”
“…!”
순간, 핏대를 세우던 최 상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영업본부장과 개발본부장 역시 흠칫 놀라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어젯밤 사내 메신저 비밀 채널에서 나눈 대화가 어떻게 저놈 귀에 들어간 거지?
하지만 그들의 당혹감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천도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USB 하나를 꺼내어 회의실 데스크톱에 꽂았다.
“김 호법. 아니, 김 대리. 화면을 띄워라.”
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김고통 대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순식간에 대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에 거대한 엑셀 표 하나가 출력되었다.
“이게 뭔가 싶겠지? 네놈들이 보안이랍시고 걸어놓은 허접한 암호를 푸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더군.”
화면에 띄워진 것은 미래C&C를 비롯한 5개의 페이퍼 컴퍼니 리스트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해당 회사들에서 세탁된 자금이 흘러 들어간 ‘최종 목적지’의 계좌 번호와 예금주 명단이 적나라하게 붉은색으로 하이라이트되어 있었다.
[최달호 (재무상무) - 12억 원]
[오태경 (영업본부장) - 8억 원]
[김성철 (개발본부장) - 5억 원]
“……!!!”
회의실에 폭탄이 떨어진 듯한 끔찍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최종수 회장의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놈들이 뒤로 푼돈을 챙기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이렇게 조직적으로 수십억 원대의 비자금을 빼돌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이건 모함입니다, 회장님! 저 미친놈이 데이터를 조작한 겁니다!”
영업본부장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듯 일어나며 소리쳤다.
“모함? 그럼 저기 적힌 계좌 번호가 네놈들 처남과 동서의 이름으로 된 차명 계좌라는 사실도 조작이란 말이냐?”
마천도가 서늘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너희들이 빼돌린 자금의 흐름은 마치 기가 막힌 혈맥처럼 이어져 있더군. 꼬리를 자르려 발악해봤자, 이미 몸통까지 모조리 포위되었다.”
마천도의 일갈에 임원들의 다리가 풀려버렸다.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증거.
그 순간, 살기 위해 이성을 잃은 최 상무가 영업본부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회장님! 전 억울합니다! 오 본부장이 시킨 일입니다! 페이퍼 컴퍼니 설립도 전부 오 본부장이 기획한 겁니다!”
“뭐야?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워! 네가 먼저 수수료 챙겨준다고 꼬드겼잖아!”
방금 전까지 연합하여 천마를 몰아내려던 임원 카르텔이, 살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개싸움도 이런 개싸움이 없었다.
마천도는 팔짱을 낀 채 그 처참한 촌극을 관망했다.
힘(자본)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들의 밑바닥.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간신배들의 최후는 이토록 추잡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다 입 닥쳐라!!!”
최종수 회장의 사자후가 대회의실을 뒤흔들었다. 회장의 얼굴은 모멸감과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감사팀! 법무팀! 지금 당장 다 들어와!! 저 새끼들 싹 다 경찰에 넘겨버려! 계좌 추적해서 한 푼도 남김없이 다 환수해!!”
회의실 문이 박살 날 듯 열리고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쳐 임원진을 무자비하게 끌어내기 시작했다. 절규와 핑계가 뒤섞인 소음이 멀어져갔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대회의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최종수 회장의 시선이 마천도를 향했다.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회사의 핵심 임원진 절반을 날려버린 20대의 인턴.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나 성취감 따위는 없었다. 오직, 이 촌극을 기획하고 연출한 절대자의 나른한 비웃음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최 회장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놈은… 사냥개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재앙.
최 회장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 미친개를 당장 쳐내지 않으면, 다음 목이 잘리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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