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퀴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규칙적으로 덜덜거리는 정체 모를 소음이 코와 귀를 찔렀다.
“…….”
천마(天魔)가 번쩍 눈을 떴다.
수십만 마교도를 발밑에 꿇리던 십만대산의 화려한 교주전(敎主殿)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비좁은 사각의 방. 벽지는 낡아 누렇게 떴고, 천장의 작은 유리창 너머로는 쇳덩어리들(자동차)이 괴상한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이곳은 어디냐.”
몸을 일으킨 천마는 이내 더 큰 이질감에 휩싸였다.
‘단전(丹田)이… 비어 있다.’
수백 년간 쌓아 올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르게 했던 무공. 천마신공(天魔神功)의 압도적인 내공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기혈 자체가 완전히 꽉 막힌 평범한 인간의 나약한 육신이었다.
“말도 안 돼… 내 힘이…!”
천하를 발밑에 두기 직전이었다. 정파 연합의 위선자들을 모두 도륙하고 중원을 통일하기 직전, 알 수 없는 빛에 휩쓸려 이곳으로 떨어졌다.
분노에 찬 천마가 주먹을 쥐고 벽을 내리쳤다.
쾅!
“…크윽.”
벽은 금조차 가지 않았고, 오히려 벗겨진 그의 너클 부위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내공을 실은 파천지격(破天之擊)은커녕, 삼류 무사보다도 못한 나약한 일격이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어이, 304호! 월세 밀린 지가 언젠데 계속 죽은 척이야! 오늘까지 안 내면 당장 방 빼!”
거칠고 천박한 목소리가 얇은 합판 문을 부서져라 두드렸다.
월세? 방을 빼?
감히 천마인 이 몸에게 재물을 요구하고 거처를 빼앗겠다 협박을 하다니. 십만대산이었다면 당장 저 혀를 뽑아 개먹이로 던져주었을 것이다.
“어떤 놈이 감히…!”
천마가 맹수처럼 문을 벅차고 나갔다. 복도에는 구멍 난 러닝셔츠를 입고 불룩한 배를 내민 중년 사내가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사내가 다시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려는 찰나, 천마는 멈칫했다.
‘힘이 없다. 이 육신으로는 저자의 목을 단숨에 꺾을 수 없어. 게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유리 탑과 도로. 이곳은 중원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다른 법칙으로 굴러가는 이계(異界).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살생을 저지르는 것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었다.
천마는 서서히 끓어오르던 살기를 거두고,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며칠만 기다려라. 반드시 그 ‘월세’라는 것을 지불하겠다.”
“뭐, 뭣….”
고시원 총무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함에 흠칫 놀랐다. 평소 고개만 푹 숙이고 다니던 304호 청년의 눈빛이 아니었다. 사람을 수십 명은 죽여본 듯한 형형한 눈빛에 압도된 총무는,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쯧, 내일까지야! 내일!”
총무가 황급히 엉덩이를 빼며 사라지자, 천마는 방으로 돌아와 책상 서랍을 뒤졌다.
[주민등록증. 마천도. 950115-XXXXXXX]
사진 속 사내는 자신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마천도… 이름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이후 며칠 동안 천마는 방구석의 낡은 사각 상자(컴퓨터)를 통해 이 세계의 지식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문자의 형태는 달랐으나 다행히 읽을 수는 있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무공이 아니다. ‘자본(돈)’이다.
단전의 크기가 곧 통장의 크기였고, 문파의 힘이 곧 ‘기업’이라는 집단의 힘이었다.
‘결국 세계 정복을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이 세계의 방식대로 기득권의 자리에 올라, 모든 것을 내 발밑에 두겠다.’
그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의 수많은 구인 광고 중 한 곳에 멈췄다.
[(주)한미래솔루션 전략기획팀 인턴 모집. 학력 무관.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지원 가능.]
전략기획(戰略企劃).
전쟁의 판을 짜고 천하를 도모하는 부서라. 마교를 이끌던 그에게 이보다 완벽하게 어울리는 직제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