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듯 확장되었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다. 대공의 손에 들린 은회색 비늘 조각은 마치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꿰뚫어 보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세레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고, 그 짧은 찰나의 침묵은 레오니스에게 수많은 정보를 전달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물론, 평온했던 표정은 마치 가면이 벗겨진 듯 일그러졌다.
레오니스는 그녀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은 감각이 없었지만, 시각과 청각, 그리고 주변의 기류 변화까지 예민하게 포착하는 그의 뇌는 그 모든 데이터를 냉철하게 분석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확장되는 속도, 입술이 떨리는 진폭, 그리고 그녀의 심장에서 울리는 듯한 미세한 불안감까지, 레오니스는 그 모든 것을 명확한 지표로 받아들였다. 유혹적인 성녀의 가면 뒤에 숨겨진 공포. 그것은 레오니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실된 감정이었다.
"이 비늘 조각이… 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요?" 세레나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맑고 고운 음색과는 달리,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마치 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로운 음성이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이미 들통난 패를 감추려는 듯 어색하게 손을 거두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손은 허공에서 주춤거렸고, 대공의 뺨을 어루만지려던 의도는 완전히 좌절된 채 어색하게 옆구리로 돌아왔다.
레오니스는 그녀의 동요를 관찰하며 내면으로 중얼거렸다. ‘이 여자, 비늘 조각을 보자마자 완전히 무너졌군. 출처를 묻는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아는 척하지 않고 오히려 회피하려 드는군.’ 그는 세레나가 비늘 조각의 출처를 묻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척하지 않고, 오히려 시선을 피하며 주제를 바꾸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레오니스의 강렬한 적안을 피하며 허공을 헤맸고, 입술은 무언가 다른 말을 꺼내려 애썼지만, 쉽사리 단어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대공님의 저주는… 사실… 단순히 외부의 힘뿐만 아니라, 대공가 내부의 갈등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제가 대공님 곁에서…." 세레나는 얼버무렸다. 그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맥락 없이 튀어나왔다. 필사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그녀의 거짓말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낼 뿐이었다. 레오니스는 그녀의 필사적인 회피에서 확신을 얻었다. 이 성녀는 단순한 하렘 여인이 아니었다. 대공가의 저주와 어젯밤 침입 사건, 그리고 이 비늘 조각에 대해 분명 무언가 알고 있거나, 심지어 직접 연루되어 있었다.
레오니스는 더 이상 그녀의 거짓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감각 없는 몸은 어떠한 감정적인 동요도 허락하지 않았고, 오직 이성적인 판단만이 그의 뇌를 지배했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가 집무실의 정적을 갈랐다.
"물러나라. 성녀 세레나. 그대의 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레오니스의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얼음으로 깎아낸 듯한 차가운 명령이었다. 세레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푸른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헤매었다. 그녀는 무언가 더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레오니스의 시선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시선은 "더 이상 변명은 듣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세레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렸고, 서둘러 대공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들어올 때의 우아함과는 달리, 도망치듯 불안정했다. 닫히는 문 소리가 쿵, 하고 울리며 집무실의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세레나가 사라지자마자, 레오니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미르나 시녀장을 불렀다.
"미르나 시녀장. 지난 5년간의 모든 재정 장부를 가져오라. 단 하나도 빠짐없이."
미르나는 이미 대공의 변화에 익숙해진 듯,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녀는 레오니스의 단호한 명령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예, 대공님. 즉시 그리하겠습니다."
미르나는 서둘러 집무실을 나섰고, 잠시 후 백발의 늙은 재정 관리인 알브레히트 남작과 함께 돌아왔다. 알브레히트 남작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레에 실린 거대한 장부들을 이끌고 왔다. 수십 권에 달하는 두꺼운 장부들이 대공의 널찍한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낡은 가죽 표지와 누렇게 변색된 종이 냄새가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그 양은 압도적이었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광경만으로도 한숨부터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니스는 한숨을 쉬는 대신 오히려 차분하게 첫 번째 장부를 펼쳤다. 그의 시선은 장부 속의 빼곡한 숫자들을 훑어보았다. 잉크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는 그의 코에 닿았지만, 그에게는 그저 '냄새'라는 정보일 뿐, 어떠한 감상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데이터 처리 장치처럼 작동했다.
미르나 시녀장은 그의 옆에서 조용히 대공의 변화를 지켜보며, 내심 경탄했다. 과거의 방탕했던 카이젠 대공이었다면, 저 방대한 장부들을 보자마자 짜증을 내거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공은 마치 중요한 전략 문서라도 읽는 듯 진지하고 집중된 모습이었다. 그의 차분한 눈빛과 흔들림 없는 태도는 미르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레오니스는 첫 장부에서부터 의심스러운 거래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밀라 상단'이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눈에 띄었다. 대공가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알 수 없는 명목의 대출금들이 모두 이 상단을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숫자들이 말해주는 진실을 추적하며, 대공가의 재정이 어떻게 파탄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첫 단서를 잡았다. 대공가의 주요 채권자이자 하렘 여인 중 한 명인 카밀라와 그녀의 상단이 대공가의 재정을 어떻게 잠식해왔는지에 대한 그림이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감각 상실 저주 덕분에 그는 이 엄청난 규모의 사기극 앞에서 어떠한 감정적인 동요도 느끼지 않았다. 분노나 절망, 혹은 좌절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은 그의 뇌를 흐리게 할 수 없었다. 오직 숫자들이 말해주는 진실만을 좇아, 그는 차갑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미르나 시녀장. 이 모든 장부에서 '카밀라 상단'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모든 거래 내역과 대공가와의 계약 서류들을 별도로 분류하고 정리하라. 그리고 그들이 대공가에 제공한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정확히 계산하여 보고하라."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장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본격적인 재정 조사에 착수하며, 대공가 재건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대공가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적인 정보들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대공의 집무실 창밖으로는 검은 하늘에 별들이 차갑게 박혀 있었지만, 실내의 열기는 숫자의 행렬만큼이나 뜨거웠다. 레오니스의 앞에는 미르나 시녀장이 분류하고 정리한 수많은 재정 장부와 계약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낡은 종이의 쿰쿰한 냄새와 잉크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지만, 그는 그저 정보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감각 없는 몸은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하여, 그의 집중력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의 흑안은 마치 정교한 기계처럼 숫자의 행렬 위를 미끄러졌다. 쉼 없이 페이지를 넘기고, 특정 숫자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이의 질감도, 잉크의 색깔도, 심지어 손끝에 닿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조차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직 데이터. 오직 사실. 그의 뇌는 순수한 정보 처리 장치처럼 작동했다.
“미르나 시녀장. 이 광산 개발 투자 실패 건의 원본 계약서를 가져오시오.”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새벽 공기처럼 차분하고 명료했다. 미르나는 그의 옆에서 밤샘 작업을 함께하며 이미 지쳐 있었지만, 대공의 명령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그녀는 두꺼운 서류 뭉치 속에서 레오니스가 지목한 계약서를 찾아 그의 앞에 놓았다.
레오니스는 계약서를 받아 들고는 눈으로 빠르게 스캔했다. ‘카밀라 상단’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광산 개발에 투자된 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부풀려져 있었고, 그 이득은 고스란히 카밀라 상단으로 흘러들어 간 정황이 명백했다. 실제 투입된 자본과 보고된 자본 사이의 괴리는 누가 봐도 의도적인 사기였다.
“이것은… 분명한 배임입니다.”
미르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과 분노, 그리고 깊은 허탈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과거 대공가의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체계적이고 대담하게 대공가가 착취당하고 있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레오니스는 미르나의 감정적인 동요를 감지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내면은 고요한 호수와 같았다. 분노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절망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오직 차가운 이성만이 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는 다음 서류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대공가 영지의 특산물 유통 계약서였다. 역시나 ‘카밀라 상단’이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유통 가격은 시장가보다 현저히 낮았고, 그 차액은 고스란히 카밀라 일가의 주머니로 흘러들어 간 것이 분명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듯한 이 관행은 대공가의 수입을 지속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다.
이 모든 불법적인 거래와 부당한 계약서에는 전 대공, 카이젠의 서명이 버젓이 찍혀 있었다. 그의 필체는 한결같이 흐트러져 있었고,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서명한 듯한 무책임함이 글자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레오니스는 그 서명들을 보며 전 대공의 무능함과 방탕함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원흉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는 전 대공에게 어떠한 감정적인 유대도 없었기에, 오히려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의 실책을 분석할 수 있었다.
“대공 전하…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카밀라 상단은 물론이고 다른 하렘 여인들의 가문들도 대공가를 좀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뿌리가 깊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대공가에 엄청난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미르나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녀의 손은 주름진 장부의 모서리를 불안하게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수십 년간 대공가를 지켜온 그녀에게 이 상황은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닌, 대공가의 존망이 걸린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레오니스는 미르나의 우려를 들었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장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내면에서는 오직 논리적인 사고만이 이어졌다.
‘뿌리가 깊다고 해서 방치하면 결국 대공가는 고사할 것이다. 망해가는 배에서 감정을 논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확한 분석과 단호한 결단이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뿌리가 깊으면 뽑아내면 될 일. 어차피 이대로 두면 대공가는 완전히 말라 죽을 것이다. 감정적인 동요는 사치다. 오직 사실과 숫자에 기반한 해결책만이 필요할 뿐.”
레오니스의 말은 미르나의 불안감을 꿰뚫는 칼날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가운 이성은 그녀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었다. 과거의 카이젠 대공이었다면 벌써 분노하거나 절망에 빠져 현실을 외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공은 달랐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미르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떨림은 점차 가라앉았고, 대공의 차가운 눈빛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레오니스는 단순히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뇌는 이미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공가와 카밀라 상단 간의 모든 계약서를 다시 검토하며 법적 허점이나 불법적인 조항을 찾아냈다. 그의 손가락이 낡은 종이 위를 미끄러졌다. 그의 시선은 글자 하나하나, 숫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분석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흑안이 한 오래된 대출 계약서에 멈춰 섰다. 서류는 다른 것들보다 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글씨는 희미했지만 내용은 선명하게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카밀라 상단이 대공가에 제공한 거액의 자금. 그 출처가 불분명했다. 명확한 증빙 서류 없이 ‘상단의 내부 자금’이라는 모호한 설명만 있을 뿐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자율이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이자율은 제국 법률이 정한 최고 이자율을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당시의 대공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런 불법적인 계약에 서명했을까. 레오니스는 혀를 찼다. 물론, 그의 혀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이성은 이 상황을 명확하게 비난했다.
‘이것은 명백한 고리대금업이다. 제국 법률 위반이며, 이 계약의 무효화를 주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레오니스의 심장은 뛰지 않았지만, 그의 내면은 전율했다. 그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고 판단했다. 이 증거는 카밀라 상단을 역으로 압박할 수 있는, 대공가의 재건을 위한 첫 번째 전면전의 핵심이 될 것이었다.
그는 계약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미르나 시녀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흑안은 밤샘 작업으로 인한 피로의 흔적 없이 맑고 단호했다.
“미르나 시녀장. 이 모든 증거들을 철저히 정리하고, 법무관을 소집할 준비를 하시오. 특히 이 대출 계약서의 불법적인 조항과 자금 출처 불분명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것입니다.”
미르나는 대공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없었다. 오직 결연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대공의 차가운 이성 속에서 대공가의 새로운 미래를 보았다.
“예, 대공님. 명심하겠습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대공가의 재건을 위한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레오니스는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미 새로운 아침의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집무실을 감쌌지만, 촛불의 희미한 흔들림은 밤샘 작업의 열기를 완전히 식히지 못한 듯했다. 낡은 양피지와 잉크 냄새가 섞여 독특한 향을 풍겼고, 탁자 위에는 마시다 만 차와 커피잔,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미르나가 밤새도록 정리한 장부들과 증거 자료들은 이제 깔끔하게 분류되어 레오니스의 손이 닿는 곳에 놓여 있었지만, 그 주변은 여전히 격렬한 사고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창밖은 아직 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으나, 저 멀리 동쪽 하늘에는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밤의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레오니스의 얼굴에는 밤샘 작업으로 인한 피로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흑안은 밤을 새워도 흐트러짐 없이 맑았고, 오히려 그 안에는 더욱 날카롭고 냉철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감각 상실 저주 덕분일까, 육체적인 피로는 그의 정신을 흐리게 하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르나가 정리한 카밀라 상단과의 불법적인 거래 증거들과 법률 위반 사항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이 서류 위를 미끄러지며, 특정 조항과 숫자에 멈춰 섰다.
‘이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제국 상법 제14조, 고리대금업 금지 조항 위반. 그리고 제27조, 불법 자금 출처 은닉 및 세금 회피 의혹. 이 모든 증거들은 카밀라 상단이 대공가의 재정을 계획적으로 유린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법률 조항과 상단의 회계 장부가 마치 거대한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지난밤, 미르나가 찾아낸 고리대금 계약서 외에도, 상단이 대공가에 납품한 물품들의 가격이 시세보다 현저히 부풀려져 있었고, 존재하지 않는 용역에 대한 대금 청구서도 여러 장 발견되었다. 심지어 대공가의 명의를 도용하여 외부 자금을 유치하고 그 이득을 상단이 취한 정황까지 포착되었다. 대공가의 재정을 갉아먹은 주범이 카밀라 상단이며, 그 뒤에 카밀라 본인이 있었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레오니스는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심장은 뛰지 않았지만, 그의 이성은 차갑게 타올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미르나 시녀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대공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순간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희미한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미르나 시녀장.”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새벽의 정적을 가르는 칼날처럼 단호하고 명료했다. 듣는 이의 심장을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가웠지만, 동시에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지금 즉시 법무관을 소집하고, 카밀라 상단의 특정 자산에 대한 동결 명령과 함께 모든 불법적인 계약의 무효화를 요청하는 소장을 작성하게 하라. 그리고 이 모든 증거들을 첨부하여 황실 법원에 제출할 준비를 갖춰라.”
미르나는 그의 과감한 결정에 잠시 숨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고,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는 단순히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제국의 유력 상단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밀라 상단은 제국의 수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상단이었고, 그들의 뒤에는 여러 귀족 가문들이 얽혀 있었다. 그녀는 대공의 안전과 이로 인해 발생할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공가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대공 전하… 이 정도로 대담한 결정을 내리시다니… 너무 위험하지 않으십니까? 상단과의 전면전은… 대공가를 더욱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미르나의 내면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그녀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레오니스의 강렬한 적안은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망설임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오직 목표를 향한 맹렬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레오니스는 미르나의 미세한 망설임을 감지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뿌리가 깊다고 해서 방치하면 대공가는 결국 고사할 것이다. 망해가는 배에서 감정을 논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확한 분석과 단호한 결단이다.”
그의 말이 지난밤의 대화와 겹쳐 들리는 듯했다. 미르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불안감은 점차 가라앉았고, 대공의 차가운 눈빛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과거의 나약하고 방탕했던 대공은 사라지고, 냉철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대공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또한, 대공령 경비대장을 불러 카밀라 상단이 소유한 특정 창고와 유통 경로를 즉시 봉쇄하고, 관련 장부들을 압수하도록 지시하라.”
레오니스의 명령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신속했다. 그는 단순히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숨통을 조이는 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젯밤 서재에 침입했던 자들이 남긴 흔적과 이 비늘 조각이 이 모든 재정 비리와도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어젯밤 서재에서 발견된 은회색 비늘 조각이 쥐여 있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비늘의 감촉은 그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했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그의 이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비늘 조각은 섬뜩한 푸른빛을 희미하게 반사하며, 마치 거대한 그림자의 일부처럼 보였다. 침입자의 정체, 그리고 그들이 노린 것이 무엇이었는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대공가의 재정 비리와 깊이 연관된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았다. 레오니스는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음모의 실타래처럼 얽혀 있음을 직감했다.
미르나는 대공의 지시를 받아 적으며, 이 순간부터 대공가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펜 끝은 종이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그녀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떠올랐다. 그녀는 과거의 나약한 대공이 아닌, 냉철하고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레오니스에게서 보았다. 그의 명령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대공가의 권위를 재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선포와 같았다.
마지막으로 레오니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한층 더 날카로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카밀라에게 즉시 대공성으로 소환장을 보내라. 대공가의 재정 비리 전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응하지 않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다면, 제국의 법과 대공의 권위로 응징할 것임을 분명히 전달하라.”
이것은 단순한 소환이 아니었다. 카밀라 상단의 수장인 카밀라 본인을 대공성으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은, 대공이 직접 그녀를 심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녀가 대공가의 재정을 유린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정면 돌파의 선전포고였다.
미르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대공에게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고, 단단하고 결연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대공성 전체가 레오니스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도에서는 경비대원들이 무장하고 출동 준비를 마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 무기를 점검하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뜨렸다. 법무관들은 갑작스러운 소집 명령에도 불구하고 밤샘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급히 집무실로 향했고,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함께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소환장을 든 전령이 카밀라의 저택으로 향하는 말발굽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말발굽 소리는 멀리 사라져갔지만, 그 여운은 대공성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남겼다. 대공가의 재건을 위한 첫 번째 포효가 울려 퍼진 것이다.
레오니스는 창밖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붉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며 세상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은회색 비늘 조각이 쥐여 있었다. 비늘 조각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섬뜩하게 반짝였다. 이 비늘 조각이 단순한 침입자의 흔적이 아니라, 대공가를 파멸로 이끈 거대한 음모의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의 눈빛은 아침 해처럼 강렬했지만, 그 안에는 예측할 수 없는 심연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싸움의 서막을 열었을 뿐이며, 앞으로 마주할 파장이 얼마나 거대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었다. 대공가의 재건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대한 적과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차가운 이성은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