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한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한빛대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며칠 밤을 설레 잠 못 들게 했던 이 순간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봄 햇살은 눈부셨고, 갓 피어난 벚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막 상경한 그녀에게, 한빛대학교 캠퍼스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로맨스 소설 속 배경과 같았다.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늘어선 푸른 잔디밭, 그 위를 거니는 선남선녀들, 활기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캠퍼스 카페,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한별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발걸음마다 새내기의 풋풋한 설렘이 반짝였다.
특히 그녀의 가슴을 뛰게 한 건, 캠퍼스에서 만날 운명적인 첫사랑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 몽상가인 한별은, 대학 생활의 가장 큰 로망이 바로 영화처럼 우연히 마주칠 멋진 선배와의 로맨스라고 생각했다. 첫 만남은 어떨까? 쨍한 햇살 아래,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운명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런 만남일까?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오리엔테이션은 예상보다 길고 지루했다. 총장님의 환영사와 학과 소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한별의 머릿속은 온통 앞으로 펼쳐질 캠퍼스 라이프와, 혹시라도 마주칠지 모를 ‘그’ 선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학생회관을 나서는 순간, 한별은 자유를 만끽하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와, 진짜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그녀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한별의 시선은 저절로 멈췄다. 햇살이 쏟아지는 잔디밭 벤치. 그곳에 홀로 앉아 두꺼운 전공 서적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가 있었다. 훤칠한 키, 단정하게 차려입은 흰 셔츠, 그리고 지적인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콧날. 무심한 듯 보이는 옆모습마저 완벽하게 그녀의 ‘로맨스 소설 속 첫사랑’ 이미지와 겹쳐졌다.
숨이 멎는 듯했다. 한별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은 남자를 한참 바라봤다. 주변의 왁자지껄한 소음도, 흩날리는 벚꽃잎도, 그 모든 것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멈춘 듯했다. 오직 그녀의 시선은 그 남자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도현. 컴퓨터공학과 3학년 선배이자, 한빛대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괴짜 동아리, ‘빅데이터 로맨스 연구회’의 회장이었다. 물론 한별은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첫눈에 반한 ‘이상형 선배’일 뿐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이건 심장이 아니라 발소리였다. 한별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래, 바로 저 사람이야. 내 캠퍼스 로맨스의 시작은 저 선배일 거야. 이도현 선배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정확히 한별이 서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고드는 듯한 그의 깊은 눈빛에 한별은 순간 얼어붙었다. 설마, 나를 보고 있었던 걸까? 맙소사, 이건 너무 빠르잖아!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그가 말을 걸어올 참이었다. 어떤 로맨틱한 대사가 이어질까? 혹시 길을 묻는 척하며 번호를 물어보는 건 아닐까? 한별의 머릿속은 이미 수십 가지의 로맨스 시나리오로 가득 찼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단발머리가 살랑이며 그녀의 설렘을 대변하는 듯했다.
“저기, 혹시 신입생이신가요?”
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낮고 차분했다. 한별은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떨렸다.
“네, 네! 맞아요. 24학번 한별이라고 합니다!”
아, 너무 오버했나? 한별은 순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도현 선배는 그녀의 과도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이 적임자겠군요.”
적임자? 한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소리일까. 로맨스 소설에서는 이쯤 되면 ‘같이 밥 먹을까요?’ 같은 대사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녀의 머릿속 시나리오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도현 선배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전공 서적 대신,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가 빼곡히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의 맨 위에는 큼지막하게 ‘첫사랑 알고리즘 연구 계획서’라고 적혀 있었다.
한별은 눈을 크게 뜨고 그 종이를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과 알 수 없는 통계 그래프들이 그녀의 눈앞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한별 씨, 당신을 저의 ‘첫사랑 알고리즘’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모든 연애 감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예정입니다.”
그의 말은 한별의 로맨스 소설 속 상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첫눈에 반한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랑해’도, ‘같이 밥 먹을까요?’도 아닌, ‘데이터 수집’이라니. 한별은 눈을 깜빡이며 손에 들린 종이와 이도현 선배를 번갈아 봤다. 맑은 하늘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네? 데, 데이터요? 제 연애 감정 데이터를요?”
한별은 당황스러움에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큰 눈망울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이도현 선배는 안경을 고쳐 쓰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네. 우리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연애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합니다. 당신은 저희 연구회에서 선정한 ‘표준 신입생 감성 유형’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점이, 일반적인 연애 감정의 발현과 전개 과정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설명은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정확해서, 한별은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가슴속 로망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첫사랑은 운명적인 만남과 우연한 설렘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무슨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란 말인가!
“저, 저기 선배님… 저는 그런 연구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데요.”
한별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이도현은 한별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깊은 눈빛에 아주 미세한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사라졌다. 그는 한별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이미 당신의 캠퍼스 내 동선, SNS 활동 패턴, 심지어 오리엔테이션 중 표정 변화까지 기본적인 데이터 수집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방적인 거부는 연구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뿐입니다.”
그의 말에 한별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벌써부터? 대체 언제부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선배,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등골이 오싹했다.
“게다가, 한별 씨. 당신의 목표는 ‘꿈꾸던 대학 생활과 설레는 캠퍼스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파악되었습니다. 저희의 ‘첫사랑 알고리즘’은 당신의 그 목표 달성에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보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최적의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이도현의 말은 비수처럼 한별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의 ‘목표’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그의 분석력에 한별은 할 말을 잃었다. 꿈꾸던 로맨스를 경험하게 해준다고? 그것도 데이터로?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우연한 만남과 설렘을 꿈꿨지만, 이 선배의 말은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설득력보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대로 그의 손에 이끌려가는 것이 더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별은 손에 들린 ‘첫사랑 알고리즘 연구 계획서’를 멍하니 바라봤다. 맑은 하늘 아래,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그녀의 첫사랑은 가장 비과학적이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가장 이성적이고 데이터적인 방식으로, 그것도 강제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꿈꾸던 캠퍼스 로맨스는 시작부터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도현 선배는 한별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잠시 지켜보더니, 이내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좋습니다. 한별 씨의 현재 심박수는 분당 98회, 피부 전도도는 4.5μS로 측정됩니다. 이는 전형적인 당황과 혼란, 그리고 미미한 호기심이 혼재된 감정 상태로 분석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최적의 조건입니다.”
그의 말에 한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감정마저 숫자로 재단당하는 기분은 꽤나 불쾌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 ‘다음 단계’라는 단어가 그녀의 귀에 맴돌았다. 다음 단계? 대체 무슨 다음 단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녀의 첫사랑 알고리즘은 이제 막 복잡한 계산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별은, 그 계산의 첫 번째 변수로 지정된 채,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녀의 대학 생활은, 평범함을 벗어나 이제 막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
이도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깔끔하게 태블릿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무심한 뒷모습을 보며 한별은 멍하니 남아 있었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조차 지금 그녀의 눈에는 기묘하게 뒤틀려 보였다.
‘미지의 세계’.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지의 세계는 보통 신비롭고 설레는 법인데, 왜 이렇게 등골이 서늘할까. 그녀는 손에 들린 연구 계획서를 다시 내려다봤다. 종이 위 빼곡한 글자들이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도현 선배의 눈빛처럼 느껴졌다.
설레는 첫사랑을 꿈꿨다. 우연한 만남, 심장이 두근거리는 시선,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로맨스 소설에서 늘 읽어왔던 그런 이야기들을 상상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비합리적이라고 했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최적의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정말 그럴까? 내 심박수, 피부 전도도까지 측정해서 얻어낸 감정이 과연 진짜 ‘설렘’일 수 있을까?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사랑은 숫자나 데이터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데…
그의 말 중 ‘당신의 목표는 꿈꾸던 대학 생활과 설레는 캠퍼스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어떻게 내 속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가 말하는 ‘최적의 경로’라는 것이 정말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캠퍼스 안의 모든 것이 이도현 선배의 눈처럼 느껴지는 착각에 빠졌다. 저기 지나가는 학생들의 대화도, SNS에 올라오는 사진 한 장도, 심지어 그녀가 걷는 동선 하나까지도 누군가에게는 데이터가 되어 분석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 불쾌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다음 단계’라는 말에 아주 미약한 호기심이 피어났다. 과연 ‘첫사랑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로맨스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꿈꾸던 로맨스와는 얼마나 다를까? 그리고… 정말로, 그 알고리즘이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별은 복잡한 심경을 안은 채, 느릿느릿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곳에서 이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모든 감정은 누군가의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기묘한 연구가 앞으로 그녀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지, 그리고 그녀의 진짜 첫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찾아줄지. 그녀의 평범했던 대학 생활은, 이제 예측 불가능한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캠퍼스 안쪽으로 향했다. 이도현 선배와의 기묘한 만남이 남긴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맑은 봄 햇살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캠퍼스조차 이제는 어딘가 감시당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생각을 정리할 조용한 곳을 찾던 그때였다.
"저기, 혹시 신입생이신가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요. 혹시 길이라도 잃으셨나?"
갑자기 들려온 밝고 활기찬 목소리에 한별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훤칠한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듯 탄탄한 몸매, 그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고, 이도현 선배와는 정반대로 친근하고 다정한 기운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한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다행이다! 저는 경영학과 3학년, 사진 동아리 '빛그림' 회장 강민준이라고 해요. 혹시 사진에 관심 있으세요? 지금 동아리 신입 부원 모집 중인데, 캠퍼스 풍경이 너무 좋아서 혹시 한 컷 찍어드릴까 해서요!"
강민준은 손에 든 카메라를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그의 미소는 꾸밈없이 따뜻했고, 이도현 선배의 날카로운 지성미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녀의 심박수를 측정하려던 이도현과는 달리, 그는 그저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려 했다.
"사진… 동아리요?"
한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동아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데이터 수집'보다는 훨씬 평범하고 즐거워 보였다.
"네! 저희 동아리는 주로 캠퍼스 풍경이나 학생들 일상 같은 걸 찍으면서 추억을 남겨요. 딱딱한 분위기 아니고, 다들 친구처럼 지내요. 오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끝나고 다들 지쳐 보이던데, 잠깐 바람 쐴 겸 구경이라도 올래요? 혹시 몰라서 그런데, 제 번호예요. 나중에라도 연락 줘요!"
강민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번호를 휘갈겨 적어 한별에게 건넸다. 그의 눈빛은 이도현 선배처럼 파고드는 듯한 시선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과 다정함으로 가득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한별은 얼떨결에 메모지를 받아 들었다.
"그럼 나중에 봐요! 너무 고민하지 말구요!"
강민준은 유쾌하게 손을 흔들며 다른 학생들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한별은 다시 홀로 남겨졌지만, 방금 전과는 다른 감정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이도현 선배는 그녀에게 '알고리즘'이라는 강제된 길을 제시했지만, 강민준은 '카메라'와 '추억', 그리고 '친구'라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극명하게 다른 두 가지 첫인상. 한별은 손에 들린 메모지를 내려다봤다. 어쩌면 그녀의 대학 생활은 데이터와 알고리즘만으로 채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기대감이 아주 작게나마 일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