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의 최하층, 더스트 벨트는 언제나 끈적한 습기와 낡은 홀로그램 광고의 깜빡이는 잔상으로 가득했다. 썩은 음식물 냄새와 저급 사이버네틱스 시술소에서 흘러나오는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공기 중에 맴돌았다. 한서진은 낡은 아케이드 게임장 지하에 숨겨진 자신의 작업실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일렉트로닉 팝 음악은 고장 난 채 반복되었고, 그의 발소리가 철제 계단을 둔탁하게 울렸다.
작업실은 외부 네트워크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코드와 신경망 구조도가 빼곡히 채워진 스크린들이 죽은 듯 검게 잠들어 있었다. 서진은 낡은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쪽 눈에 박힌 사이버네틱스 임플란트가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며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맴돌았다. 손가락에 늘 끼워져 있는 복잡한 신경 인터페이스 장비는 그의 일부처럼 보였다.
오늘 의뢰는 간단했다. 더스트 벨트 뒷골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망자의 파편화된 기억을 복구하는 것. 그의 의뢰인은 망자의 마지막 순간을 알고 싶어 하는 가족이었다. 대부분의 기억 스캐빈저들이 망자의 사생활을 훔쳐 비싼 값에 팔아넘기지만, 서진은 오직 의뢰받은 부분만을 건드렸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혹은,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최소한의 윤리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기억 저장 장치를 집어 들었다. 표면에는 긁힌 자국과 얼룩이 선명했다. 망자의 삶의 잔해가 고스란히 담긴 작은 조약돌 같은 물건이었다. 서진은 신경 인터페이스를 기억 저장 장치와 연결했다. 푸른빛이 장치를 감싸며 미세한 진동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스크린이 일제히 깨어나며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서진은 집중했다.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은 마치 깨진 거울처럼 뒤죽박죽 흩어져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기억의 파편들을 분류하고 재조합하기 시작했다. 망자의 마지막 순간은 혼란스러웠다. 어둡고 좁은 골목, 비명 소리, 그리고 섬광. 그 뒤에는 텅 빈 공백만이 존재했다. 서진은 망자의 시야, 청각, 심지어는 공포감까지 그대로 흡수하며 기억의 심층부로 파고들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망자의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을 복구해냈다.
스크린에 선명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망자의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그림자였다. 검은색 강화 슈트를 입은 남자, 얼굴은 기계적인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손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장치가 들려 있었다. 그 순간, 서진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망자의 기억 속에서 낯선 코드 조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H-S-J-7-9-E-C-4-F…’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 파편이 아니었다. 서진은 자신의 이름 이니셜과 유사한 배열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숫자의 조합. 뇌리에 섬뜩한 예감이 스쳤다. 그는 즉시 기억 스캔을 중단했다. 푸른빛이 사라지고 작업실은 다시 고요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재빨리 코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망자의 기억 속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코드는 일반적인 데이터 구조와는 달랐다. 강력한 암호화가 걸려 있었고, 그 심층부에는 거대한 기업 ‘메모리움’의 보안 프로토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메모리움. 모든 기억을 통제하는 그들의 그림자가 이곳 더스트 벨트의 망자에게까지 뻗어 있었다니.
서진은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공백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 더스트 벨트에서 홀로 살아남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래된 기억 저장 장치를 주운 이후, 타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조각을 찾는 듯한 무의식적인 갈증에 이끌려 이 일을 해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코드는 달랐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과 유사한 것이 아니었다. 코드는 그의 뇌리에 깊이 박힌,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을 깨우는 듯했다. 마치 잠들어 있던 신경망이 갑작스럽게 활성화되는 것처럼, 두통과 함께 과거의 파편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검은 제복, 차가운 금속음, 그리고 누군가의 속삭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 코드는 망자의 기억 속에 우연히 심어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정보를 거기에 남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코드가 그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메모리움의 기밀 프로젝트. 그의 이름. 잃어버린 과거.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엮이는 순간, 서진은 거대한 거미줄의 한가운데에 자신이 서 있음을 직감했다.
작업실의 외부 네트워크 차단막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스크린들이 일제히 깜빡였다. 누군가 그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메모리움이었다. 그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진은 낡은 코트를 움켜쥐었다. 그의 사이버네틱스 임플란트가 더욱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름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추격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었다.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는 작업실 문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네오-서울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집어삼키려는 듯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지만, 심장은 격렬하게 울렸다. 낡은 후드티 아래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더스트 벨트의 골목은 언제나처럼 악취와 습기로 가득했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본 코드 조각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H-S-J-7-9-E-C-4-F.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는 메모리움의 그림자.
서진은 자신이 무언가 거대한 장난감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 기억의 조각을 뿌려놓고, 자신이 그것을 줍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 장난감은 위험하게 기울어졌다. 그가 잃어버린 과거는 단순한 기억의 파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기업, 메모리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비밀 자체가 자신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설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젠장."
낮게 읊조린 욕설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숨을 골랐다. 잊고 있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차가운 금속음, 희미한 빛,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그것들은 마치 조각난 거울처럼 그의 과거를 비추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단지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을 향한 처절한 갈증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위험한 법. 특히 메모리움과 얽힌 진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 임플란트가 박힌 눈을 감았다. 감시망에 포착된 이상, 더 이상 혼자서는 이 거대한 그림자와 싸울 수 없었다. 그에게는 정보가 필요했다. 네오-서울의 가장 깊은 곳까지 뻗어 있는 정보의 거미줄, 그 중심에 있는 인물. 제이드.
그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이드의 은신처는 이 더스트 벨트의 가장 복잡한 미로 속에 숨겨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희미하게 발하는 그의 임플란트가 길을 비추는 듯했다. 추격의 시작은 곧 진실을 향한 그의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숨지 않을 것이다. 도망치면서도,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들을 찾기 위해 기꺼이 불꽃 속으로 뛰어들 각오를 다졌다. 도시의 밤은 그의 결심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