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통로의 습한 공기는 류진의 폐부를 짓눌렀다. 차가운 벽에 기댄 채 그는 데이터 패드를 응시했다. ‘세라’라는 이름이 그의 신경망에 지직거리는 노이즈처럼 달라붙었다. 옴니코프의 보안 책임자이자 기억 관리 시스템 총괄자. 그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 희미한 잔상으로 존재했던 이름. 단순한 시스템 경고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메시지. 마치 그를 너무나 잘 아는 누군가가 던진 말처럼 들렸다. 류진은 패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들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리고 동시에, 해답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강한 확신을 주었다. 옴니코프의 핵심 인물이 직접 자신에게 경고를 보낼 정도라면, 그가 파헤친 진실은 그들의 근간을 흔들 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통로를 벗어나 다크존의 심장부로 향했다. 낡고 부서진 건물들의 그림자가 거대한 괴물처럼 늘어서 있었다. 상층부의 화려한 네온사인 빛은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오직 싸구려 홀로그램 간판과 불법 노점상들이 내뿜는 희미한 불빛만이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고 있었다. 썩은 물 냄새와 싸구려 인스턴트 식품 냄새, 그리고 인공 향신료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류진은 익숙한 듯 후드를 더욱 깊이 눌러썼다. 그의 푸른 사이버 임플란트는 주변 환경의 디지털 노이즈를 걸러내고, 필요한 정보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시야에 떠오르는 크로노스 네트워크의 잔상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그 속에서 옴니코프의 감시망이 뻗어 있는 방향과 사각지대를 정확히 읽어내며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그의 은신처는 다크존 깊숙한 곳, 버려진 공장 지대에 숨겨져 있었다. 낡은 철문과 부식된 벽돌 건물 사이, 잊힌 듯 방치된 창고의 지하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폐기물 처리장처럼 보였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낡았지만 효율적으로 개조된 공간. 수많은 모니터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복잡한 케이블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낡은 작업대 위에는 해킹 도구와 사이버웨어 부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류진은 이곳에서 ‘망각의 그림자’로 활동하며 옴니코프의 감시망을 피해 살아왔다. 이곳은 그의 요새이자,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두뇌였다.
류진은 작업대 앞에 앉아 데이터 패드를 메인 시스템에 연결했다. 그의 신경 인터페이스가 즉시 시스템과 동기화되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까 확보한 기억 조작의 잔해들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불타는 집,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흐릿한 여성의 실루엣.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린 옴니코프의 로고. 그는 이 파편들을 수십 번, 수백 번 분석했다. 패턴을 찾고, 연결 고리를 만들고, 숨겨진 의미를 파헤쳤다. 그의 푸른 사이버 임플란트가 미세하게 떨리며, 화면 속 데이터와 그의 뇌를 직접 연결하는 듯한 감각을 주었다.
"이건... 단순히 기억을 지운 게 아니야." 류진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낮았다. "재구성한 흔적이 강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왜곡하고, 재배열한 거지.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그는 데이터 파편들을 3D 모델링으로 재현했다. 불타는 집의 잔해가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녹아내린 금속, 검게 그을린 벽.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흐릿한 어린아이의 형상. 류진은 손을 뻗어 홀로그램을 만지려 했다. 마치 과거의 자신에게 닿으려는 듯. 하지만 그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그의 뇌리 속에서 잊혔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뜨거운 열기, 매캐한 연기 냄새, 그리고 귀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 그것은 기억의 파편이 아니라, 감각의 파편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홀로그램이 아닌, 실제의 장면이 그의 망막에 새겨지는 듯했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 그 울음소리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서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류진은 다시 눈을 떴다. 화면 속의 데이터는 여전히 미완의 퍼즐이었다. 그는 파편들 사이에서 ‘세라’라는 이름과 연결될 만한 단서를 찾으려 했다. 옴니코프의 기억 관리 시스템, 크로노스 아카이브의 핵심 인물. 그녀가 이 조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 그리고 왜 하필 자신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 이 모든 것이 그의 잃어버린 과거와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는 직감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더 깊은 곳에 뭔가 있어." 류진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옴니코프의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와 비공개된 하층 시스템을 오가며 세라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그녀의 공식 프로필은 깔끔했다. 옴니코프의 엘리트, 뛰어난 기술자, 냉철한 보안 책임자. 하지만 류진은 그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를 찾았다. 그녀의 과거 데이터, 가족 관계, 학창 시절 기록.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삭제되거나 조작된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의 완벽함이었다.
"완벽하게 지워진다는 건, 지워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지." 그는 픽 웃었다.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그는 세라의 데이터를 옴니코프의 기억 조작 패턴과 비교했다. 미세한 불일치, 삭제된 흔적, 그리고 의도적인 공백.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왜곡이었다. 하지만 류진의 눈은 달랐다. 그는 디지털 세상의 가장 작은 균열까지도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임플란트는 수많은 데이터 포인트 속에서 미묘한 에너지 흐름의 변화를 감지해냈다.
"이건... 재구성된 기억이 아니야. 아예 새롭게 창조된 기억에 가까워. 마치 그녀의 삶 자체가 옴니코프의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세라의 과거는 마치 조작된 기억의 표본처럼 보였다. 그녀의 모든 것이 옴니코프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완벽함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균열은 그녀 역시 옴니코프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혹은, 완벽하게 통제된 꼭두각시이거나. 류진은 답답함을 느꼈다. 옴니코프의 기억 조작 기술이 이토록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류진은 자신의 작업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낡은 세계 지도에 시선을 던졌다. 뉴 아르카디아의 복잡한 지하 네트워크와 다크존의 숨겨진 통로들이 표시된 지도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훑었다. 옴니코프의 크로노스 네트워크는 도시의 모든 곳에 뻗어 있었지만, 다크존에는 여전히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그곳에는 정보상들이 있었다. 옴니코프가 지우고 싶어 하는 정보를 거래하는 자들. 일반적인 해킹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 혹은 물리적으로 숨겨진 정보들을 캐내는 자들.
"카이."
그의 머릿속에 한 이름이 떠올랐다. 카이. 다크존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상이자 사이버웨어 개조 전문가. 류진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그에게 중요한 정보와 기술적 지원을 제공해왔다. 카이는 유쾌하고 능글맞으며 위험을 즐기지만, 류진에게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유일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라면 이 복잡한 퍼즐의 다른 조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정보망은 옴니코프의 디지털 네트워크가 아닌, 다크존의 어둡고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흐르는 정보에 특화되어 있었다. 지금 류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정보였다.
류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드를 다시 깊게 눌러쓰고, 장비들을 챙겼다. 그의 푸른 사이버 임플란트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그는 작업실을 나서며 문을 잠갔다. 이제는 직접 움직일 때였다. 옴니코프의 감시망을 뚫고, 다크존의 그림자 속으로.
다크존의 밤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네온사인으로 번뜩이는 상층부와 달리, 이곳은 어둠과 혼돈의 지배를 받았다. 류진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이동했다. 낡은 건물들의 그림자 사이로 희미한 불빛들이 깜빡였다. 불법 노점상들은 싸구려 사이버웨어 부품과 불법 소프트웨어를 팔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싸늘한 시선들이 오갔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싸구려 전자 음악이 밤공기를 갈랐다. 그는 이 모든 풍경에 익숙했다. 이곳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옴니코프의 통제에서 벗어난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그림자 속을 유령처럼 미끄러져 지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빠르고 민첩했다. 한쪽 눈의 임플란트가 끊임없이 주변 환경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며 잠재적인 위협을 경고했다. 옴니코프의 추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카이의 상점은 다크존의 가장 번화한 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카이의 작업실’이라는 낡은 홀로그램 간판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간판 아래에는 번개 모양의 사이버웨어 심볼이 그려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끄러운 전자 음악과 함께 낡은 기계 부품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화학 약품 냄새가 뒤섞여 풍겨왔다. 상점 내부는 온갖 사이버웨어 부품과 개조된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벽면에는 화려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낡은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최신형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번쩍이며 수많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띄우고 있었다. 카이의 작업실은 다크존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거대한 신경망의 한 지점 같았다.
"어이, 망각의 그림자 씨. 오랜만이네."
카이는 작업대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최신형 증강 현실 글라스가 걸려 있었고, 양팔에는 화려한 기계 문신과 사이버웨어들이 번쩍였다. 그의 복장은 언제나처럼 화려하고 독특했다.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류진을 맞았다. 그의 손에는 방금 개조를 마친 듯한 드론의 부품이 들려 있었다.
"바쁜데 찾아와서 미안하다." 류진은 간결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카이의 작업대를 훑었다. 변함없이 어수선하지만, 그 속에는 완벽한 질서가 숨겨져 있었다.
"미안할 것까지야. 너 같은 전설적인 해커가 내 가게에 발을 들이는 건 영광이지. 게다가 너 덕분에 옴니코프의 보안 시스템이 한 번씩 마비될 때마다, 덕분에 우리 같은 정보상들은 짭짤한 재미를 보거든." 카이는 능글맞게 웃으며 류진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싸구려 합성 주스였다. 류진은 말없이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 캔이 그의 손에 닿았다.
"필요한 게 있어서 왔다." 류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알고 있었지. 네가 그냥 놀러 올 리는 없으니까.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나는데." 카이는 팔짱을 끼고 류진을 쳐다봤다. 그의 증강 현실 글라스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얼굴에 '옴니코프가 내 과거를 건드렸다'고 쓰여 있네. 게다가 붉은색 경고 메시지까지 받았을 것 같고. 세라라는 이름도 들었겠지?"
류진은 아무 말 없이 데이터 패드를 꺼내 카이에게 건넸다. 카이는 글라스를 조정하며 패드 안의 데이터를 훑어봤다.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 어린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허공을 스캔하며 데이터 파편들을 확대하고 분석했다.
"이건... 꽤 위험한 건데." 카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지함이 묻어났다. "기억 조작의 흔적.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재구성된 파편들이잖아. 누구 거야? 설마..."
"내 과거와 관련된 단서다. 옴니코프의 크로노스 아카이브에서 빼냈다." 류진은 짧게 설명했다. "그리고 세라라는 이름이 언급됐다."
카이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세라? 옴니코프의 기억 관리 시스템 총괄자? 그 차가운 여자가 왜 네 과거에 엮여 있는 건데? 설마 너희 둘이... 읍읍!" 카이는 류진의 차가운 시선에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농담이야, 농담. 하지만 세라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 여자는 옴니코프의 기억 관리 시스템의 핵심 중의 핵심이야. 그녀가 직접 움직였다면, 네가 건드린 건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는 뜻이지."
"이 조작된 기억의 파편들, 그리고 세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줘. 비공식적인 경로로." 류진은 말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기억이 조작되었는지, 그리고 세라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고 싶다. 옴니코프의 공식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카이는 데이터 패드를 류진에게 돌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이미 놀이에서 진지한 업무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다. "알았어. 쉽진 않을 거야. 옴니코프가 너를 주시하고 있다는 건, 네가 건드린 게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세라가 직접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건 더더욱 그렇고. 하지만... 재미있겠네."
"그래서 너를 찾아온 거다." 류진은 카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트워크 깊숙한 곳, 옴니코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파고들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칭찬 고맙다. 보수는 두둑하게 챙겨줘." 카이는 다시 능글맞게 웃으며 작업대 뒤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메인 시스템에 류진에게 받은 데이터 파편들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고, 수십 개의 홀로그램 화면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네가 찾은 게 네 과거라면, 이건 단순한 해킹이 아니게 되겠네. 개인적인 전쟁이군. 옴니코프와의."
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푸른 사이버 임플란트가 희미하게 빛났다. 카이가 전력을 다해 정보를 파헤치는 동안, 류진은 상점의 한쪽 구석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점 내부의 모든 움직임과 외부의 변화를 감지했다. 옴니코프가 언제든 자신을 덮칠 수 있다는 긴장감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의 신경망은 크로노스 네트워크의 미세한 흐름까지도 감지하며 잠재적인 위협을 경고했다.
시간이 흘렀다. 카이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쉴 새 없이 움직였고, 그의 증강 현실 글라스에는 수많은 데이터 스트림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다크존의 모든 정보원과 비공식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류진이 요청한 정보를 찾고 있었다. 류진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카이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찾았다!"
갑자기 카이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함께 미세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류진은 즉시 카이에게 다가갔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빠르고 조용했다.
"이게 뭔데?" 류진이 물었다. 그의 눈은 이미 카이의 메인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카이는 화면을 가리켰다. 수많은 데이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카이는 핵심적인 부분만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네가 가져온 기억 파편들, 그리고 세라의 비공식 데이터. 이것들을 교차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됐어. 특정 시기에 대규모 기억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흔적이야. 대상은 주로... 옴니코프의 연구원들과 그 가족들."
류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차가운 금속처럼 울렸다. 연구원과 가족들. 그의 뇌리 속에서 불타는 집과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그가 찾던 진실이 바로 이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말이야." 카이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외감마저 섞여 있었다. "이 대규모 기억 조작 사건의 중심에, 세라가 있었어. 그녀는 단순한 총괄자가 아니었어. 이 프로젝트의 핵심 실행자이자... 동시에 희생자였을 가능성도 있어. 그녀의 진짜 과거는 옴니코프에 의해 완전히 지워지고 재구성된 것 같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크로노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기억 조작 기술을 완성시킨 장본인이 된 거지." 카이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네 과거의 기억과 관련된 그 사건, 아마도 '크로노스 프로젝트'의 초기 실험 단계에서 발생한 일일 거야. 네 가족과 관련된 기억들, 그게 바로 이 프로젝트의 희생양이었던 거지."
화면에는 세라의 공식 프로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데이터 조각들이 떠올랐다. 흐릿한 영상 기록, 암호화된 통신 내역, 그리고 삭제된 프로젝트 파일의 잔해. 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충격적인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세라는 옴니코프의 기억 관리 시스템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곳에 갇힌 존재였다.
"그리고 이 데이터 조각들 중에서, 네가 찾던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어." 카이가 화면의 특정 부분을 확대했다. "이건... 옴니코프의 최고 기밀 연구 시설의 위치를 암시하는 좌표값이야. 그리고 그 옆에는, 암호화된 파일 하나가 더 있어. 제목은 '프로젝트: 에코'."
류진의 눈이 화면 속 좌표값과 ‘프로젝트: 에코’라는 단어에 고정되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찾던 진실이, 그의 가족을 앗아간 비밀이, 바로 저곳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프로젝트: 에코’. 그 이름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 좌표값은 다크존 외곽에 있는 버려진 옴니코프 연구소로 연결돼. 공식적으로는 폐쇄된 곳이지만, 내 정보망에 따르면 아직도 미세한 에너지 시그널이 감지돼." 카이가 말했다. "아마도 옴니코프가 아주 은밀하게 뭔가를 진행하고 있는 곳일 거야. 크로노스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이 숨겨진 곳일 수도 있어."
류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었다.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세라의 조작된 과거, 그리고 옴니코프의 거대한 음모.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상점의 문이 갑자기 요란하게 열렸다. 번쩍이는 탐조등이 상점 내부를 비췄다. 옴니코프의 순찰 드론들이 문 앞에 멈춰 서 있었고, 뒤이어 검은색 강화복을 입은 옴니코프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강력한 에너지 라이플이 들려 있었다. 상점 안의 모든 소리가 정지했다. 싸구려 전자 음악마저 끊겼다.
"망각의 그림자, 류진! 즉시 투항하라!" 한 요원이 차가운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강화복 헬멧에 달린 스피커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류진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들이 이렇게 빨리 자신을 찾아낼 줄은 몰랐다. 카이의 정보망을 뚫고 들어왔다는 뜻인가? 아니면… 세라가 이미 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인가?
카이는 재빨리 메인 시스템의 백업 버튼을 눌렀다. "젠장!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류진, 저 좌표값과 '프로젝트: 에코' 데이터는 내 시스템에 백업했어! 도망쳐!" 그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중요한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다크존의 비공식 서버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보안 요원들이 상점 안으로 진입했다. 에너지 라이플의 조준점이 류진의 심장을 향했다. 류진은 카이를 쳐다봤다.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가! 내가 시간을 벌게! 다음에 보수는 두둑하게 챙겨야 할 거야!"
류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작업대 위를 박차고 뛰어올라 상점 안쪽의 낡은 환풍구로 몸을 던졌다. 환풍구 덮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보안 요원들의 에너지 라이플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굉음과 함께 상점의 벽면이 파괴되었다. 유리 파편과 금속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환풍구 속을 기어가는 류진의 귀에 총성과 폭발음이 멀어져 갔다. 그는 카이가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하지만 동시에, 옴니코프의 추격이 이렇게 집요하고 빠르다는 것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은 그가 무엇을 찾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할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마치 그의 모든 움직임을 읽고 있는 것처럼.
류진은 환풍구 끝에서 몸을 굴려 다크존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내려섰다. 그의 푸른 사이버 임플란트가 격렬하게 깜빡였다. 옴니코프의 추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의 손에 쥔 것은 없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카이가 찾아낸 충격적인 단서와, 옴니코프의 은밀한 연구 시설 좌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실은 저곳에 있었다. 그의 잃어버린 과거와 세라의 비밀, 그리고 옴니코프의 거대한 음모가 모두 ‘프로젝트: 에코’라는 이름 아래 숨겨져 있었다. 류진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은 복수심과 진실에 대한 갈망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그는 그림자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뉴 아르카디아의 네온 불빛이 그를 조롱하는 듯 번뜩였다. 하지만 류진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그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잃어버린 과거가, 바로 저 네온 불빛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 과거를 되찾기 위해, 옴니코프의 심장부를 향해 달려야 했다.
그의 등 뒤에서 옴니코프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붉은색 레이저 조준점이 그의 발밑을 스쳐 지나갔다. 드론의 탐조등이 어둠을 찢으며 그를 추적했다.
"세라..." 류진은 낮게 읊조렸다. 그 이름은 이제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진실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끈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몰랐다.
그는 달렸다. 네온 불빛이 춤추는 도시의 어둠 속으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이내 어둠에 흡수되었다. 그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는, 뉴 아르카디아의 모든 비밀이 드러날 것이었다. 그는 옴니코프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