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미는 오늘도 문제 해결 사무소의 문을 활짝 열며 심호흡을 했다. 아침 햇살이 낡았지만 정겨운 사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빈티지 소품들로 가득 찬 공간은 언뜻 보면 잡동사니 창고 같았지만, 다미의 눈에는 세상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문제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미의 호기심 가득한 눈이 반짝였다.
"소장님, 오늘 첫 의뢰인 오실 시간이에요. 준비는 다 되셨죠?"
사무실 한쪽에서 커피를 내리던 최은우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은우는 다미의 오랜 친구이자 문제 해결 사무소의 유일한 직원으로, 다미의 엉뚱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유능한 조력자였다. 그의 차분한 성격은 다미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들을 상쇄하며 사무소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당연하지! 강다미가 누군데. 세상 모든 문제,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거든. 그 사람에게는 온 우주가 무너지는 일일 수도 있다고!"
다미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활기차게 외쳤다. 은우는 그런 다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언제나 저렇게 과장된 리액션이지만, 그 진심만큼은 누구보다 순수하다는 것을 알기에 은우는 그녀를 믿고 따랐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한 여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품에는 털이 복슬복슬한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강아지는 축 늘어진 채 아무런 기력도 없어 보였다.
"저, 인터넷에서 소장님 사무소를 보고 찾아왔는데요… 제 강아지, 로키가 밥을 먹지 않아요. 벌써 사흘째예요.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미치겠어요!"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사정했다. 다미는 여자를 안심시키고 로키를 조심스럽게 받아 안았다. 로키의 눈은 초점을 잃은 듯 흐릿했다.
"음… 로키가 밥을 안 먹는다고요? 이거 심각한데요. 밥은 생존의 기본이자 행복의 시작인데!"
다미는 진지하게 로키의 털을 쓰다듬었다. 은우는 옆에서 차분하게 질문했다.
"혹시 로키가 먹던 사료나 간식에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면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을까요?"
"아뇨, 늘 먹던 최고급 유기농 사료고요, 간식도 그대로예요.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딱 하나, 얼마 전부터 아랫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올라오긴 해요. 시큼한 냄새랄까? 그게 로키한테 안 좋았을까요?"
여자의 말에 다미의 눈이 번뜩였다.
"시큼한 냄새? 그거군요! 로키는 후각이 예민한 아이인데, 낯선 냄새 때문에 식욕을 잃은 거예요. 이건 단순한 식욕 부진이 아니라, 로키의 '환경 문제 해결'이 필요하네요!"
다미는 마치 엄청난 비밀을 풀어낸 탐정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은우는 내심 황당했지만, 다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늘 상상을 초월했기에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자, 은우 씨! 1단계, 로키의 후각을 자극할 '행복 향기 테라피' 준비! 2단계, 아랫집 냄새를 중화시킬 '향기 방패 프로젝트' 실행! 그리고 3단계, 로키가 거부할 수 없는 '맞춤형 행복 만찬' 제작!"
다미는 거침없이 지시를 내렸다.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어느새 다미가 시키는 대로 아로마 오일을 꺼내고, 환기 장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다미는 로키를 품에 안고 사무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행복 향기 테라피’에 사용할 허브들을 직접 고르고, 로키에게 맞는 특별 만찬 레시피를 구상했다.
그녀의 레시피는 상상을 초월했다. 닭가슴살을 으깨고, 유기농 채소를 다져 넣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여기에 로키가 좋아하는 장난감 모양으로 성형하고, 심지어는 로키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 지도를 그려 넣는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사무실 주방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밀가루가 날리고, 채소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다미의 얼굴에도 닭가슴살 양념이 묻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기찬 미소를 지었다.
"후각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감각이라고요! 로키에게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와 맛을 선사하는 거예요!"
다미의 열정은 사무실을 뜨겁게 달구었다. 은우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아랫집으로 내려가 냄새의 근원을 파악하려 했지만, 1층 카페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커피 향 외에는 특별한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저 다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다미의 진심을 알기에 묵묵히 그녀의 해결 방식을 따랐다.
한편, 1층 ‘이한 카페’의 통유리창 너머로 이 모든 소란을 지켜보던 서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깔끔하고 모던한 카페는 언제나 정돈되고 조용했다. 하지만 2층 ‘문제 해결 사무소’가 들어선 이후, 그의 평화로운 일상은 종종 깨지곤 했다. 오늘은 또 무슨 소동인지,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허브 향과 닭가슴살 냄새가 환풍구를 타고 희미하게 내려오는 것 같았다.
"또 저 여자군."
서이한은 얇은 금속 테 안경 너머로 2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너머로 밀가루 범벅이 된 채 강아지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강다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묻은 닭가슴살 양념조차도 그녀의 활기찬 에너지와 어우러져 이상하게 생기 넘쳐 보였다. 서이한은 저런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용하고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에게, 강다미의 존재는 그야말로 ‘문제’ 그 자체였다. 그는 혀를 차며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다미가 로키를 품에 안고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우연히 서이한과 눈이 마주쳤다. 서이한의 차가운 눈빛과 찌푸려진 미간은 다미의 눈에는 ‘까칠하지만 잘생긴 건물주님’의 ‘묘한 관심’으로 비쳤다.
‘어머, 건물주님도 로키가 궁금하신가 봐! 역시 귀여운 건 모두에게 통하는구나!’
다미는 해맑게 웃으며 서이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서이한은 순간 당황한 듯 시선을 피했지만, 다미는 그마저도 자신의 인사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해석했다.
"자, 로키! 이제 너의 행복 만찬이야!"
다미는 정성스럽게 만든 ‘맞춤형 행복 만찬’을 로키 앞에 내려놓았다. 로키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조심스럽게 한 입 맛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로키는 이내 허겁지겁 만찬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여자는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로키가… 로키가 밥을 먹어요! 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다미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녀의 방식은 늘 엉뚱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해피엔딩이었다. 로키의 문제가 해결되자, 여자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번졌다.
"별말씀을요! 로키의 행복, 그리고 의뢰인님의 행복이 바로 저희 사무소의 존재 이유인걸요!"
그때, 사무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은우가 전화를 받더니 다미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장님, 큰일 났어요. 다음 의뢰인인데… 건물주님이 직접 의뢰를 하셨대요."
다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물주님? 서이한 건물주님요? 어머, 드디어 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가? 어떤 문제일까? 혹시 제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생긴 문제…?"
다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활짝 웃었지만, 은우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
"그게… 건물 외벽에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서 지워달라는 의뢰인데… 그 그림이… 소장님이 어제 로키의 후각 테라피를 위해 건물 외벽에 붙여놓은 '향기 나는 로키 그림'이랑 똑같대요."
다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뭐… 뭐라고요? 그게… 건물주님의 의뢰라고요?"
강다미의 문제 해결 사무소, 오늘도 새로운 문제가 찾아왔다. 그것도 가장 까칠하고 완벽주의적인 건물주, 서이한으로부터. 과연 다미는 이 가장 거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