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라이트 웹툰앤노블 본사 27층, 웹소설 기획팀 오픈 오피스는 늘 활기로 가득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전화벨 소리, 누군가의 낮은 탄성, 그리고 커피 머신이 원두를 갈아내는 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창작의 엔진처럼 쉼 없이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한서아 대리의 책상은 유독 반짝였다. 그녀의 모니터에는 다음 주에 오픈할 신작 웹소설의 시놉시스가 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빼곡히 꽂힌 작은 책꽂이가 놓여 있었다.
한서아는 웹소설을 사랑했다. 단순히 직업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웹소설은 지친 일상 속 한 줄기 빛이었고, 때로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였다. 특히 ‘밤의 작가’의 작품은 그녀에게 언제나 특별했다. 그의 글은 마치 깊은 밤하늘의 별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며,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언젠가 ‘밤의 작가’의 신작을 직접 담당하고 싶다는 꿈은 그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별과 같았다.
"한서아 대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아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유지혁 팀장이었다. 젠틀하고 유머러스하며 사내 인기남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그는 서아에게 언제나 다정하고 든든한 선배였다.
"팀장님, 부르셨어요?"
"응,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지혁 팀장은 서아를 팀장실로 불렀다. 왠지 모르게 그의 표정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서아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설마, 또 이상한 작품을 맡기려는 건 아니겠지?
"서아 대리, 드디어 대박 프로젝트가 하나 떨어졌어." 유지혁 팀장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로 영입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아마 서아 대리라면 깜짝 놀랄 거야."
서아의 심장이 발작하듯 뛰기 시작했다. 대박 프로젝트? 설마…
"밤의 작가님, 아세요?"
그의 말에 서아는 숨을 들이켰다. ‘밤의 작가’라는 필명이 귀에 꽂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그 단어만이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밤의 작가님요? 제가 맡는다고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지혁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밤의 작가님이 이번에 우리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었어. 그리고 신작 기획을 서아 대리한테 맡기겠다고 직접 지목했어."
지목? 서아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가 자신을 직접 지목했다고? 뺨을 꼬집어보니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주체할 수 없는 환희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그녀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요? 정말 제가 밤의 작가님 신작을 맡는 거예요? 어떡해, 팀장님! 저 너무 좋아요!" 서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방방 뛰었다.
유지혁 팀장은 그런 서아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축하해, 서아 대리. 하지만…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야."
그의 말에 서아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또 다른 소식?
"오늘부로 우리 웹소설 사업부 총괄 대표님이 새로 부임하셨어. 강태준 대표님이라고." 유지혁 팀장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를 싸늘함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서아 대리는 오늘부터 그분 직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신작 기획과 동시에 대표님 비서 업무도 겸하게 될 거야."
서아의 얼굴에서 방금 전의 환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태준 대표? 악명 높은 ‘스타라이트’의 신임 대표, 젊은 나이에 IT 기반의 웹소설 플랫폼을 창업해 성공시킨 천재적인 사업가이자, 동시에 냉철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소문이 자자한 그 강태준 대표 말인가? 게다가 비서 업무까지?
"네? 제가… 대표님 비서요?" 서아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응. 대표님이 직접 서아 대리를 지목했어. 아무래도 서아 대리의 꼼꼼함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신 것 같아." 유지혁 팀장은 서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잘 해낼 거라고 믿어."
기쁨과 동시에 찾아온 불안감에 서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꿈에 그리던 ‘밤의 작가’의 담당자가 된 것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악명 높은 신임 대표의 직속 부하가 되어 비서 업무까지 겸해야 한다니. 이건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그날 오후, 서아는 강태준 대표의 집무실로 향했다. 27층 오피스와는 확연히 다른, 펜트하우스처럼 꾸며진 30층 대표이사 집무실은 최첨단 시설과 미니멀리즘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었다. 넓은 창밖으로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그 풍경조차 이 공간의 차가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한서아 대리입니다."
서아는 잔뜩 긴장한 채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강태준 대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들어와요."
낮고 묵직한 목소리.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서아는 조심스럽게 그의 앞까지 걸어갔다. 흠잡을 데 없는 슈트 핏, 잘 정돈된 흑발, 날카로운 눈빛, 높은 콧대. 그는 냉미남의 정석이었다. 그의 얼굴은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오늘부터 내 직속으로 들어오는 한서아 대리 맞죠?" 그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서아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서아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네, 강태준 대표님." 서아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하려 애썼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앞으로 당신이 맡을 업무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내 비서 업무. 둘째, '밤의 작가' 신작 기획." 강태준 대표는 서류를 탁,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두 가지 모두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가차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서아는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밤의 작가’ 신작 기획이라는 꿈같은 업무가 그의 차가운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현실의 무게로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나는 너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퇴근 후, 서아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강태준 대표의 얼음장 같은 표정과 ‘밤의 작가’의 섬세한 문체가 계속해서 교차했다.
그때, 노트북에서 ‘띵동’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서아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함에 새로운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는 ‘밤의 작가’.
[제목: 안녕하세요, 한서아 에디터님. 밤의 작가입니다.]
서아는 홀린 듯 메일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한서아 에디터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밤의 작가입니다.
앞으로 에디터님과 함께 만들어갈 이야기가 정말 기대됩니다.
에디터님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의 다음 작품이 에디터님의 손길을 통해 더욱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메일은 짧았지만,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따뜻하고 정중한 문장이었다. 낮에 강태준 대표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밤의 작가’의 메일은 마치 지친 서아의 마음을 다독이는 다정한 손길 같았다.
서아는 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꿈결 같은 현실이었다. 존경하는 작가에게서 직접 받은 첫 메일. 그녀의 심장은 다시금 두근거렸다.
"밤의 작가님…."
그의 섬세한 문장과 차가운 강태준 대표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낮에는 얼음장 같은 대표님 아래에서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밤에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작가님과 꿈같은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니.
서아는 노트북을 닫았다.
앞으로 그녀의 이중생활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사실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과연 언제쯤 알아챌 수 있을까.
서아는 알 수 없는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인 채,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아슬아슬한 비밀 연애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