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은 붓을 든 채 운월을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강직한 심지가 흔들림 없이 빛나고 있었다.
묵향이 흩뿌려진 고서원 벽면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진묵의 붓 끝에서 흘러나온 먹물은 벽에 닿는 순간, 마치 생명을 얻은 듯 꿈틀거리며 글자가 아닌 기묘한 그림자로 번져나갔다. 한 획 한 획이 그릴 때마다 고서원 주변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물리적인 압력이 아니었다. 내면의 고요를 깨뜨리는 웅장한 기세였다. 운월의 푸른 도포 자락이 살짝 떨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다.
"이게… 대체 무슨 수작이냐!"
운월은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허리에 찬 명검 ‘청운’이 푸른빛을 발하며 미세하게 진동했다. 강호 제일의 검파 후계자로서, 그녀는 수많은 고수들의 기세를 겪어봤다. 그들의 검강은 날카로웠고, 장풍은 대지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묵의 붓 끝에서 피어나는 이 고요한 기세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형태 없는 늪처럼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