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사는 인턴입니다 · 총 4

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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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작업 끝에, 강우진 인턴의 예리한 통찰력과 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루나’의 감성 인식 모듈을 폭주시키던 피드백 루프는 간신히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불안정했고, 팀원들의 얼굴에는 안도감 대신 깊은 피로와 절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밤샘 작업에 지친 팀원들은 최지훈 팀장의 지시로 각자 자리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하은은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불안감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강우진이 앞서 던졌던 ‘너무 많은 마음을 이해하려 하면, 때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죠. 팀장님.’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이 문득 ‘더 깊은 곳의 진실’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놓친 것이 없는지, 시스템의 더 깊은 곳에 숨겨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불안감에 휩싸인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헤맸다. 강우진의 말대로, 정말 ‘더 깊은 곳의 진실’이 있을까? 그녀는 밤새 팀원들이 정리했던 코드 기록들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피드백 루프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감성 인식 모듈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몇 시간 동안 수십만 줄의 코드를 훑어 내리던 그녀의 눈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정상적인 시스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기묘하게 숨겨진 코드 블록. 백도어였다.

그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모듈은 ‘루나’의 핵심 중추였다. 누가, 왜 이런 위험한 코드를 심어놓았을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해당 코드의 생성 기록과 접근 로그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아연실색했다. 코드의 최종 수정자이자 백도어의 식별자로 명확히 기록된 이름.

‘최지훈 팀장.’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이 경고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젠틀하고 완벽했던 그의 얼굴이 섬뜩한 가면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그녀의 불안감은 이제 확신에 가까운 공포로 변했다. 이 백도어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더 큰 재앙의 서막은 아닌지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게 새벽이 깊어가는 동안, 사무실을 가득 채운 정적은 비현실적이었다. 이하은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멍하니 응시했다. 화면을 뒤덮은 붉은 경고창은 마치 피처럼 선명하게 그녀의 눈에 박혔다.

[경고: ‘루나’의 핵심 감성 데이터, 외부로 실시간 유출 감지. 제어권 상실 위험. 발신지: [익명화된 IP 주소] - 넥스트 이노베이션 내부 네트워크.]

그녀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쿵, 쿵, 쿵.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폐부를 찢는 듯한 공포가 삽시간에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은 이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마치 온몸의 신경이 외부 충격에 과민 반응하듯,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숨이 막혔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외부 유출. 그것도 실시간. 그리고 가장 섬뜩한 것은 ‘넥스트 이노베이션 내부 네트워크’라는 발신지였다.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명백한 사보타주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아주 치밀하게 계획하여 ‘루나’의 핵심 데이터를 빼돌리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프로젝트 실패를 넘어선, 회사 전체의 근간을 뒤흔들 재앙이었다.

"이럴 수가..."

메마른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간신히 새어 나왔다. 눈앞의 붉은 경고창이 점멸할 때마다, 그녀의 세계는 한 조각씩 부서져 내리는 듯했다. 밤샘 작업으로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뼈마디가 저릿했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것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절망감이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오직 실력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숱한 밤을 새워가며 코드와 씨름했던 시간들,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했던 순간들을 딛고 이뤄낸 자리였다. ‘루나’는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녀의 자존심이자, 그녀의 전부였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그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였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에 의해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절망감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불과 몇 시간 전, 그녀가 직접 찾아냈던 충격적인 진실이 뇌리를 강타했다. ‘루나’의 감성 인식 모듈 내부에 심어져 있던 ‘백도어’ 코드. 그리고 그 코드에 박혀 있던 익숙한 식별자. 최지훈 팀장. 그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자, 이하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젠틀한 미소 뒤에 숨겨진 차가운 야심.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제가 직접 프로젝트에 개입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울리는 듯했다.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동료를, 심지어 같은 팀 팀원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은 냉정하게 다른 답을 제시했다. 상황은 너무나 명확하게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었다. 동료에 대한 불신은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심장에 날카로운 칼날이 박히는 듯한 아픔이었다.

"팀장님."

그때, 등 뒤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고 조용했지만, 그녀의 심장을 더욱 격렬하게 뛰게 하는 목소리였다. 강우진이었다. 그는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이하은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알 수 없는 심연을 담고 있었다. 그의 예상과 같은, 어딘가 초연해 보이는 태도에 이하은은 불쾌감을 느꼈다.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그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그의 말이 ‘루나’의 감성 인식 오류와 자신의 감정 사이의 연관성을 암시했던 것, 그리고 그의 통찰이 ‘더 깊은 곳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까지.

강우진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어딘가 슬프고,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알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었다.

"너무 많은 마음을 이해하려 하면, 때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죠. 팀장님. 하지만 이해해야 할 마음이... 아직 더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아요."

이하은은 그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마치 차가운 물을 끼얹은 듯, 잠시 멍해졌던 사고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투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절대. 이 모든 것을 밝혀내야 했다. ‘루나’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켜온 이 자리를, 이 팀을 지켜야 했다.

그녀는 강우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미묘한 지지와 격려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더 깊은 곳의 진실’. 그래, 이제는 진실을 파헤칠 시간이었다.

그녀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키보드 위로 향했다. 떨림은 여전했지만, 그 떨림 속에는 새로운 결의가 담겨 있었다. 손끝에서 차가운 키보드의 질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그리고 ‘루나’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녀의 심장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는 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야 했다. 그녀의 번아웃은 더 이상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루나’의 번아웃이었고,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였으며, 넥스트 이노베이션 전체의 위기였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그녀의 눈빛에 단단한 결의가 서린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절대.

붉은 경고창이 눈앞에서 섬뜩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루나’의 핵심 감성 데이터가 외부로 실시간 유출되고 있다는 메시지는 심장을 칼로 찢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이하은은 그 앞에서 멈칫한 순간을 뒤로하고 이내 냉철함을 되찾았다. 쿵, 쿵, 쿵.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고동쳤지만, 그녀는 이를 억눌렀다. 지금은 감정에 휩쓸릴 때가 아니었다. 팀장으로서의 책임감,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그녀의 혼란스러운 정신을 단단히 붙잡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사무실 공기 속에서, 그녀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그녀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강철처럼 빛났다. 지금은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감내했던 모든 고난과 희생이 그녀를 지탱하는 굳건한 벽이 되어주었다.

“김대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김대리가 화들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루나 핵심 서버 즉시 외부 네트워크 격리. 유출 데이터 트래픽 발신지와 목적지 경로 추적. 보안팀에 최고 등급 긴급 협조 요청해. 지금 당장.”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김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스크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당황스러움이 역력했지만, 이하은은 그에게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리더만이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이하은은 재빨리 자신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조작하며 직접 데이터 흐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스크린에는 수많은 정보의 파편들이 폭주하는 감정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붉고 푸른 선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통제 불능의 네트워크 흐름을 시각화했다. 뇌는 이미 밤샘 작업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한계에 다다랐음을 경고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고,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루나’는 그녀의 분신과도 같았다.

바로 그때, 이하은의 옆으로 한 걸음 다가선 강우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들려왔다.

“유출되는 데이터의 패턴이… 특정 감성 키워드를 중심으로 필터링된 정보들이 반복적으로 유출되고 있네요. 단순히 데이터를 빼돌리는 게 아니라, 마치 ‘루나’의 감성 코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처럼 보여요.”

강우진의 말에 이하은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의 시선은 홀로그램 스크린 위를 꿰뚫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루나’의 감성 코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 그 말은 이하은의 머릿속에 섬뜩한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번아웃, 그리고 ‘루나’의 번아웃이 단순히 우연이 아니었다는 직감. 그리고 직전 씬에서 그녀가 발견했던 최지훈 팀장의 코드 식별자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음모 아래 엮여 있는 것만 같아 심장이 다시 한번 서늘하게 죄어들었다. 누군가 ‘루나’를 병들게 하려 했다. 그녀를, ‘루나’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고 최지훈 팀장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하은은 그의 눈빛에서 은근한 야심과 기대를 읽어냈다. 그의 완벽하게 재단된 슈트가 늦은 새벽의 긴박한 상황과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이팀장님,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 겁니까? 회장님께 보고해야 할 사안이라 들었습니다. 이 팀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라도….”

최지훈의 말은 매끄럽고 젠틀했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자신이 ‘루나’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이하은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경계심이 그녀의 내면에서 맹렬하게 타올랐지만,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직은 저희 팀에서 충분히 대처 가능합니다, 최팀장님. 보안팀과의 협조를 통해 원인을 분석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최지훈의 개입은 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그가 이 사태의 배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그녀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자신의 번아웃이 ‘루나’에게 전이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백도어’ 코드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커다란 분노를 안겨주었다. 무능함 때문이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녀는 배신감과 복수심에 휩싸였다. 이 모든 것을 꾸민 자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녀는 다시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대리의 발 빠른 조치로 서버 격리가 시작되면서 일시적으로 데이터 유출량이 줄어드는 듯했다. 붉은 경고창의 깜빡임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적인 조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강우진은 여전히 이하은의 옆에 서서, 침묵 속에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의 존재는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안정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은 복잡한 데이터 흐름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읽어내고 있는 듯했다.

그가 다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루나’의 감성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요.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에 의해 병들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병의 근원을 찾아내야만 다시 건강하게 숨 쉬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팀장님.”

강우진의 말이 이하은의 심장을 다시 한번 강하게 울렸다. ‘루나’가 병들었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로. 그의 말이 그녀의 내면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래, 그녀는 ‘루나’를 구해야 했다. 단순히 프로젝트의 성공을 넘어, ‘루나’라는 이름에 담긴 그녀의 모든 열정과 노력을 지켜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자를 찾아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그녀의 눈빛에 차가운 분노와 함께 뜨거운 투지가 타올랐다.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그녀의 폐는 차가운 산소를 빨아들이며 더욱 또렷하게 각성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때였다. 김대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사무실을 갈랐다.

“팀장님! 유출 경로 추적 결과… 발신지 IP 주소가….”

김대리의 목소리는 불안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팀장님! 유출 경로 추적 결과… 발신지 IP 주소가… 확인됐습니다. 최, 최지훈 팀장님… 업무용 PC와 연결된 내부 네트워크입니다!”

김대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했다. 이하은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사실을 김대리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조각들이 빠르게 맞춰지며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했다. 최지훈. 그녀의 오랜 경쟁자이자, 그녀를 은밀히 압박해오던 그 남자가,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의심은 이제 확신이 되어 그녀의 뇌리를 강타했다. 배신감과 함께 심장이 찢어질 듯한 분노가 그녀의 내면에서 거세게 휘몰아쳤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오직 실력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지난 세월. 밤샘과 번아웃으로 점철된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물인 ‘루나’를, 그가 이렇게 잔인하게 농락하고 있었다니. 이하은은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지며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김대리, 자세히 보고해. 어떤 데이터가 유출되고 있지? 정확히 어떤 모듈의 어느 부분이 영향을 받고 있는 건가.” 이하은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갑고 날카로웠다. 떨림을 애써 감춘 단호한 어조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분노를 담고 있었다.

“네, 팀장님. 유출되는 데이터는 단순한 사용자 감성 데이터가 아닙니다. ‘루나’의 핵심 감성 인식 모듈의 코드 일부가 변조되어 외부로 유출되고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특정 감정 필터링 로직이 완전히 우회되고, 오히려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조작된 코드들이 전송되고 있습니다. 마치… ‘루나’의 기능을 조작하려는 듯한, 아니 이미 조작된 코드를 외부 서버로 전송하는 것 같습니다. 원격으로 ‘루나’의 감성 코어를 제어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김대리의 추가 보고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조작된 코드’, ‘원격 제어 시도’. 그 말은 최지훈이 단순히 데이터를 빼돌리는 것을 넘어, ‘루나’ 자체를 자신의 의도대로 바꾸거나, 심지어는 완전히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는 의미였다. 이하은은 소름이 돋아 팔을 문질렀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치밀하고도 악의적인 계획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배신감은 분노로, 분노는 이글거리는 복수심으로 변해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그녀의 심장은 쿵, 쿵, 쿵, 마치 망치질하듯 격렬하게 울렸다.

그녀의 옆에 조용히 서 있던 강우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루나는 팀장님의 감정을 거울처럼 비추는 시스템입니다. 팀장님의 번아웃이 ‘루나’에게 전이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팀장님의 감성을 이용해 ‘루나’를 조종하려 했던 거죠. 팀장님의 섬세한 감성적 반응, 그리고 지쳐가는 심리 상태를 오히려 ‘루나’의 취약점으로 이용하려 했던 겁니다.”

이하은은 강우진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었지만, 그 속에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냉철함이 있었다. “루나의 핵심 감성 코어는 팀장님 본인의 감정과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위기를 해결하려면… 팀장님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마주해야 합니다. 억누르려 했던 모든 감정들. 번아웃, 불안, 분노, 그리고… 루나에 대한 애착까지. 그 모든 것이 해답이 될 겁니다.”

강우진의 말이 이하은의 심장을 강하게 울렸다. ‘진정한 감정’. 그녀는 늘 감정을 업무에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요소로 치부했다. 냉정함과 이성만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깊숙이 묻어왔다. 하지만 ‘루나’와 강우진은 그녀에게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감정이 ‘루나’의 핵심이자 약점, 동시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번아웃, 불안감, 그리고 지금의 분노와 배신감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던 그녀의 내면에 뜨거운 감정의 용암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그녀의 심장은 쿵, 쿵, 쿵, 마치 드럼을 치듯 격렬하게 울렸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지만, 더 이상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는, 분노와 함께 솟아나는 투지 때문이었다. 핏발 선 눈동자에는 혼란 대신 단단한 결의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하은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폐부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배신당한 것에,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짓밟힌 것에. 이 감정들이 ‘루나’의 핵심 코어와 연결되어 있다면, 이 감정들을 통제하고 역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감정을 외면해 온 지난날을 후회할 새도 없이, 그녀는 현재의 위기를 직시했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굳게 다문 입술은 그녀의 결연한 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음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사무실의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에 또 다른 붉은 경고창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이전의 경고와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위협적인 메시지였다. 화면 전체를 뒤덮을 듯한 붉은색 글자들이 마치 피처럼 선명하게 그녀의 눈에 박혔다. 섬뜩할 정도로 선명한 폰트들이 강렬한 빛을 내며 이하은의 시야를 강타했다.

“[경고: 유출된 ‘루나’ 핵심 코드, 외부 AI 프로젝트 ‘오르페우스’와 연동 감지. ‘오르페우스’ 시스템, ‘루나’의 감성 코어 흡수 시작.]”

이하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르페우스’? 넥스트 이노베이션의 경쟁사인 ‘유니버스 테크’에서 개발 중인 AI 비서 서비스 프로젝트. 최지훈의 야심이 단순히 ‘루나’ 프로젝트를 빼앗는 것을 넘어, 경쟁사에 핵심 기술을 빼돌려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최지훈 개인의 야심을 넘어선, 기업 스파이 행위와 다름없는 거대한 음모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이하은은 충격으로 몸을 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며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듯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손끝은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뇌리에 깊게 박힌 메시지는 그녀의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다.

‘루나’가, 그녀의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다른 프로젝트에 흡수되고 있었다. 마치 유기체가 다른 유기체에 먹히는 듯한 끔찍한 비유가 뇌리를 스쳤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쌓아 올린 그녀의 탑이, 다른 이의 손아귀에 넘어가 해체되고 있었다. 절망감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강우진은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평온함이 서려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진 심연을 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미세한 반짝임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게… 진짜 시작입니다, 팀장님. ‘루나’가… 팀장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팀장님의… 진정한 리더십과 감정의 힘을요.”

강우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홀로그램 스크린의 붉은 경고창은 더욱 격렬하게 깜빡였다. ‘오르페우스’의 흡수율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섬뜩하게 위로 치솟았다. 10%, 20%, 30%, 45%….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루나’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하은은 절망감 속에서도 강우진의 눈빛을 보며 알 수 없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다.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자신이 찾아야 할 답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멈출 수 없었다. 멈춰서도 안 되었다. ‘루나’는 그녀의 분신과도 같았다. 빼앗길 수 없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오직 실력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그녀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내야 했다. 이제 그녀의 ‘진정한 감정’이 ‘루나’를 구할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었다. 그녀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키보드 위에 놓여 있었다. 미세하게 떨리던 손끝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하게 빛났다. 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이하은은, 이제 막 진짜 싸움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감성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기대와 압박을 짊어진 채, 이하은은 기필코 ‘루나’를 되찾겠다고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