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문이 닫히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마자 닫히는 문을 보며 이진우는 멍하니 서 있었다. 손끝에 남아있는 잔류 감각이 불쾌할 정도로 선명했다. 마치 손바닥으로 낡은 라디오의 지지직거림을 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라디오가 아니라, 도시의 심장이 삐걱대는 소리를 직접 만진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지연이 해소된 것에 안도하거나, 다시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릿하게 빛나던 균열도, 그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협화음도. 오직 자신만이 그것을 인지하고, 심지어 고쳐버리기까지 했다.
‘착각일 거야.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지.’
이진우는 애써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는 서울시 도시인프라관리국 소속 7급 공무원이었다. 그의 일은 도시의 인프라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시스템 오류라면 전산 기록이나 물리적 고장 흔적이 명확해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가 경험한 것은 어떤 데이터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현상이었다.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평온을 잃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분명 피곤함에 졸고 있었는데, 지금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듯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손끝의 감각은 사라졌지만, 그 불쾌한 삐걱거림은 여전히 그의 귓가에, 아니,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듯했다.
‘설마, 내가 미쳐버린 건가?’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 창밖을 내다봤다. 어둠 속을 질주하는 지하철 창문에는 그의 불안한 얼굴이 비쳤다. 평범함 그 자체인 얼굴.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얇은 금테 안경, 넥타이까지 완벽하게 매어진 셔츠 차림. 누가 봐도 안정적인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날 리 없었다.
하지만 몸은 솔직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바닥은 축축했고, 심장은 여전히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애써 심호흡을 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야. 지하철 고장이 우연히 내가 손을 댔을 때 해결된 것뿐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눈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오는 듯했다. 지하철 객실의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다른 승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었지만, 이진우의 눈에는 그 깜빡임이 단순한 전기적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빛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 미묘하게 어긋나는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깜빡임 속에서, 아까 지하철 문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아주 희미한 균열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 아니야. 분명 피곤해서 그래. 잠이 부족해서.’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그 불쾌한 삐걱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감각이었다. 도시 전체가 내는 비명 같은, 혹은 고장 난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는 굉음 같은 감각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지하철은 한 정거장을 더 지나 그의 목적지인 신림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진우는 멍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고,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역사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퇴근 시간의 활기찬 소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이진우에게는 그 모든 소음이 하나의 거대한 삐걱거림으로 들리는 듯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그는 난간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그의 눈에,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이 포착되었다.
손잡이 벨트가 움직이는 리듬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주 사소한 차이였지만, 그의 예민해진 감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손잡이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아주 짧은 순간, 시간이 멈췄다가 다시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아까 지하철 문에서 본 것보다 훨씬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투명한 막의 균열 같은 것이 일렁였다.
이진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차가운 고무 벨트에 닿으려는 찰나, 그는 스스로를 제지했다.
‘안 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두려웠다. 방금 전 지하철 문에서 경험했던 그 기이한 현상이 다시 반복될까 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휩쓸릴까 봐. 그는 황급히 손을 거두고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
역사를 빠져나와 거리로 나왔다. 신림역 앞 번화가는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전광판들이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익숙하고 활기찬 풍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진우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눈에는 그 불빛이 마치 불안정한 에너지 덩어리처럼 보였다. 길거리 음식점의 간판에 달린 LED 전구들이 불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심지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스마트폰 화면에서도 아주 짧은 순간, 노이즈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아주 미세하고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진우의 감각은 이미 깨어나 버린 듯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이라면, 지금 그의 눈에는 그 시스템의 모든 버그가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것 같았다. 그는 공포에 질렸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익숙한 풍경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눈은 또 다른 ‘오류’를 감지했다.
아파트 현관문 자동 잠금장치가 순간적으로 ‘삐빅’ 소리를 내며 오작동하는 것이 보였다. 잠금장치 위에 희미한 균열이 일렁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곳을 만졌다. 차가운 금속과 플라스틱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아까 지하철 문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정상’의 흐름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잠금장치의 균열이 사라졌다. ‘삐빅’ 소리도 멈췄다.
그는 손을 황급히 떼었다.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의 손이 닿자마자 고장 난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심장은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을 틀어 얼굴을 세차게 씻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중얼거렸다. 샤워기를 틀어 몸을 씻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방금 겪은 일들로 가득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그의 눈에는 마치 흐트러진 에너지의 흐름처럼 보였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씻고 나와 저녁을 준비하려 했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안의 음식들이 마치 흐릿한 잔상처럼 보이는 듯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우려던 즉석밥은 그의 손에 닿는 순간, 짧은 ‘틱’ 소리와 함께 꺼져버렸다. 전자레인지의 전원 버튼 위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가, 그가 손을 떼자마자 다시 켜지며 사라졌다.
이진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자신의 능력이 단순히 지하철 문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도시의 모든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개입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식탁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었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꿈꿨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원했다. 비효율과 불합리를 싫어했지만, 지금 자신이 겪는 이 상황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현실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밤은 화려했다.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차량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도시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달랐다.
고층 빌딩의 불빛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의 조명도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헤드라이트와 테일라이트에서도 불규칙한 빛의 파동이 느껴졌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생물처럼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숨결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불안정해지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오류’였다. 도시의 마법적 시스템이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는, 그 오류를 감지하고 수정할 수 있는 극소수의 ‘각성자’ 중 한 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마법사도, 영웅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공무원 이진우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손은, 도시의 숨겨진 균열을 만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메시지였다. 발신자는 ‘도시인프라관리국 비상대응팀’.
[긴급 공지: 서울시 전역 통신망 및 교통 시스템 불안정 심화. 원인 불명. 비상근무 대기. 추가 공지 예정.]
이진우는 스마트폰을 든 손을 떨었다. 그가 감지했던 오류들이, 이제는 공식적인 ‘문제’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이 서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의 평범한 일상은, 이제 완전히 박살 나버린 유리잔처럼 회복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어둠이 깔린 도시를 응시했다. 도시의 심장이 삐걱대는 소리가, 이제는 그의 심장 박동처럼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폰이 그의 떨리는 손에서 미끄러져 부드러운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액정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산산조각 난 유리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창밖의 도시를 다시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시선이었다. 불빛 하나하나가, 차량 한 대 한 대가,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무심한 배경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러나 어딘가 뒤틀리고 어긋난 ‘시스템’의 일부였다.
‘나는… 고작 7급 공무원일 뿐인데.’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안정적인 삶. 예측 가능한 미래.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슈퍼히어로를 꿈꾼 적도, 세상을 구원할 영웅이 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그저 맡은 바 업무를 꼼꼼히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평범한 저녁을 먹고, 주말에는 조용히 쉬는, 그런 일상이 진우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일상은 완전히 전복되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오류’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확신이 온몸을 휘감았다.
책임감. 비효율과 불합리를 싫어하는 성격. 그동안 그를 지탱해왔던 가치들이 이제는 거대한 족쇄가 되어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오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손을 대면, 그것이 일시적일지라도 ‘수정’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이 도시가 무너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가? 그의 성격상, 그럴 수는 없었다.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그에게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들었다. ‘비상근무 대기. 추가 공지 예정.’ 메시지의 글자들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박혔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평범한 삶은 이미 끝나버렸다. 그의 손이 도시의 숨겨진 균열을 만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는 이제 ‘오류 수정자’였다. 마법사도, 영웅도 아닌, 그저 도시의 삐걱거리는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하는 존재.
깊은 한숨과 함께 그는 결심했다. 두려웠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도시를 지켜야만 했다. 그가 사랑했던, 그리고 이제는 그의 눈에만 보이는 이 불안정한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