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 강 하류의 폐쇄된 산업 단지는 마치 거대한 금속 뼈대만 남은 채 영원히 잠든 괴물 같았다.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와 녹슨 철골 구조물들이 런던 특유의 우중충한 하늘 아래 음울하게 솟아 있었다. 바람이 찢어진 벽면을 스치며 휘파람처럼 스산한 소리를 냈고, 먼지와 낡은 기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아서는 단지 외곽의 무성한 잡초 사이를 헤치며 조용히 접근했다. 클로이의 열감지 스캔은 건물 내부에서 미약한 전력 사용 흔적과 미세한 열원을 감지해냈지만, 겉보기엔 폐쇄된 지 수십 년은 족히 넘은 듯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아서, 건물 지하에서 불규칙한 열원이 감지돼. 누군가 최근까지 사용한 흔적이야. 그리고 외부 감시 카메라가 모두 꺼져 있어. 이건 고의적인 은폐야.”
클로이의 경고가 귓속말처럼 인이어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아서는 낡은 철문 앞에 멈춰 섰다. 굳게 닫힌 문은 굵은 쇠사슬과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는 묵직한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자물쇠를 만져보았다. 이미 오래전에 무력화된 흔적이 역력했다. 누군가 이곳에 들어왔고, 또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 낡은 단지가 여전히 폐쇄된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아서는 조용히 철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쇳소리가 황량한 공간에 울려 퍼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내부에는 먼지가 자욱했고, 그의 발걸음마다 흙먼지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의 예리한 시야는 어둠 속에서도 진입로 바닥에 찍힌 희미한 발자국들과 최근에 이동된 듯한 장비들의 흔적을 포착했다. 발자국은 여러 개였고, 모두 신중하게 움직인 흔적이었다. 공장 내부를 가로지르는 낡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끈적한 기름때와 함께 낯선 금속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프로젝트 나이트폴’의 특수 합금탄이 이곳에서 비공식적으로 생산되거나 유통되었을 가능성. 클로이의 추적은 정확했다.
그는 과거 ‘하운드’로서 수많은 적진에 침투했던 경험을 살려, 미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녹물 소리, 바람이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내는 웅웅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본능은 이 고요함이 기만적임을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곳은 죽은 공간이 아니었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낡은 복도를 지나자, 지하실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의 손잡이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계단 폭은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를 채웠다. 쾨쾨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희미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웅웅거리는 낮은 진동은 그의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버려진 줄 알았던 공장이 다시금 숨 쉬고 있었다.
통로는 더욱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낡은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천장을 가로질렀고, 벽면에는 이끼가 푸르게 피어 있었다. 아서는 휴대용 전등을 켰지만, 그 불빛조차 어둠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이내 금속으로 된 견고한 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철문은 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닫혀 있었고, 겉보기에는 단순한 잠금장치만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서의 눈에는 그 아래 숨겨진 정교한 보안 시스템이 보였다.
그는 배낭에서 특수 제작된 멀티툴을 꺼냈다. 그 끝에서 가느다란 텐션 렌치와 픽을 꺼내 들어 능숙하게 자물쇠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으로 미세한 핀의 움직임을 느끼며, 그는 기계적인 소리를 최소화했다. 찰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리고, 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그의 눈앞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숨겨진 공간은 런던 외곽의 허름한 폐공장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거대한 서버 랙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최신 장비들이 가동 중인 비밀 연구실이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컴퓨터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모니터들에서는 복잡한 데이터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 ‘프로젝트 나이트폴’을 주도하는 세력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다.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이라면,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니었다. 이곳은 정보의 허브이자, 작전의 심장부였다.
아서는 가장 중앙에 위치한 메인 터미널로 다가갔다. 검은색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터미널은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했고, 주변의 모든 장비들이 이 터미널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스치자, 클로이가 원격으로 시스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접근 중… 방화벽이 강력해. 쿼드러플 레이어 암호화에, AI 감지 시스템까지. 하지만 뚫을 수 있어. 시간 문제일 뿐이야.”
수십 초간의 긴장감 넘치는 침묵이 흘렀다. 클로이의 타건 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고, 연구실 내부의 기계음은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 아서는 주변을 경계하며 혹시 모를 함정이나 인원의 존재를 살폈다. 그의 감각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공기 중의 미세한 움직임, 기계음 속의 불협화음,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인기척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완벽하게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불길했다.
그때, 클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감 속에서도 미묘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성공했어, 아서! 메인 서버에 접속했어. 수많은 파일들이 있어… 암호화되어 있지만, 해독 중이야. 프로젝트 나이트폴 관련 문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특수 합금탄 생산 기록, 유통 경로, 심지어는 시험 발사 데이터까지… 그런데… 아서, 여기 이상한 파일이 하나 있어. 다른 파일들과 달리, 강력한 보안으로 보호되어 있어. 일반적인 암호화 방식이 아니야. 마치… 누군가에게만 보여주려고 만든 파일 같아.”
아서는 즉시 그 파일의 해독을 지시했다. 그의 직감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정보일 것이라고 속삭였다.
“그것부터 해독해. 가장 중요한 정보일 거야.”
클로이의 해독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서의 시선은 연구실 한쪽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으로 향했다. 스크린에는 런던 시내의 여러 지점이 실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 중 몇몇 지점에는 붉은색 표식이 깜빡이고 있었다. 단순한 감시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추적하는 지도 같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자신의 탐정 사무실이었다.
아서는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런던에 돌아온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모든 움직임이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는 이 거대한 그림자 조직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것인가.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클로이의 해독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해독 완료. 메시지야… 아서, 이건….”
클로이의 목소리에는 당황과 경악이 섞여 있었다. 메인 터미널 화면에 나타난 것은 짧지만 섬뜩한 문구였다.
『어서 와, 하운드. 네가 올 줄 알았어.』
그리고 그 아래, 아서의 심장을 얼어붙게 할 만한 상징이 떠올랐다. 스타일화된 늑대의 머리,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포효하는 모습. 그것은 '팬텀-7'의 가장 치명적인 숙적이었던, 오래전에 해체된 줄 알았던 그림자 조직, '울프팩(Wolfpack)'의 문양이었다. 아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제임스의 죽음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울프팩'이 '하운드'를 끌어내기 위해 던진 미끼였던 것이다. 아서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사냥은 이제 런던 전체를 집어삼킬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의 눈빛은 분노와 함께 차가운 결의로 불타올랐다. '울프팩'… 그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는 순간, 진정한 사냥이 시작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