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베이커 가의 외곽.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겨울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낡은 사설탐정 사무소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 아내가 최근 들어 밤늦게 누군가와 통화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그것을 좀 뒷조사해 주셨으면 하는데……."
아서 블랙우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다즐링 홍차를 천천히 한 모금 삼켰다. 그의 시선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불안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는 허름한 차림의 중년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사내는 어설픈 연기력으로 불륜을 의심하는 가련한 남편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아서의 눈에 비친 그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양손 검지와 중지 첫 번째 마디에 두꺼운 굳은살. 최근 이틀 이내에 권총을 50발 이상 사격한 흔적. 옷깃에서 미세하게 풍겨오는 클로로포름과 화약 냄새의 잔향.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심장을 향해 미세하게 틀어진 오른쪽 어깨의 각도.’
그의 머릿속에서 수천 번의 전장에서 체득한 전술적 분석(OODA Loop)이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완료되었다. 사내는 불륜을 의심하는 남편이 아니었다. 이 허름한 낡은 건물에 틀어박혀 죽은 듯 숨어 지내던 자신, 아니 '팬텀-7의 하운드'를 확인사살하러 온 암살자였다.
"수임료는 선불입니다. 아, 그리고 사진 한 장 정도는 주셔야 조사가 수월할 텐데요."
아서는 부드러운 억양으로 말하며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 사진은 제 품속에……."
사내가 말끝을 흐리며 재킷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갑이 아닌 차가운 금속성의 권총 손잡이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퍼억-!
아서의 손을 떠난 뜨거운 홍차 잔이 사내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했다. 뜨거운 찻물이 눈에 튀어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얼굴을 감싸려는 순간, 아서는 어느새 책상을 넘어 사내의 품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커억-!"
우드득. 뼈가 어긋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오른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아서의 무자비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CQC(근접격투)였다. 사내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를 새도 없이, 아서의 손날이 사내의 목동맥을 정확히 가격했다.
단 3초. 허름한 불륜 남편 행세를 하던 암살자는 거품을 물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자세가 너무 엉성해. 총을 뽑기 전에는 어깨부터 굳는 버릇을 고치라고. 지옥에 가서라도 말이야."
아서는 구두끈을 고쳐 매며 바닥에 널브러진 암살자의 재킷을 뒤져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 한 자루와 검은색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자를 보낸 놈이 누구인지, 자신의 위장 신분이 어떻게 들통난 것인지 캐내려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