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서울, 2045년의 밤은 수백 개의 고층 빌딩과 홀로그램 광고로 눈부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이 솟은 크로노스 타워. 거대 IT 기업의 심장이자 CEO 김석훈의 펜트하우스에서, 한 남자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추락했다. 새벽 3시, 도시의 고요를 깬 끔찍한 비극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최첨단 감식 드론과 마력 공학 장비들을 동원해 빠르게 증거를 수집했다. 모든 정황은 완벽한 자살을 가리켰다. 유서는 없었지만, 김석훈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AI ‘타르타로스’의 보고서는 그가 최근 사업 실패와 개인적인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을 명시했다.
“경감님, 현장 정리 거의 다 됐습니다. 특이점은 없습니다.” 젊은 형사가 보고했다.
강도윤 경감은 40대 초반의 베테랑이었다. 디지털 기기보다 발로 뛰는 수사와 인간의 직감을 더 신뢰하는 그는, 김석훈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을 응시하며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켰다. AI의 완벽한 보고서 속에서 그는 언제나 인간적인 균열을 찾으려 애썼다.
“마력 방패 앱은?” 그가 물었다.
“확인했습니다. 추락 당시 아무런 이상 신호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외부 충격이나 마력적 간섭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석훈은 최신형 마력 방패 스마트폰을 늘 소지했다. 그 앱은 강력한 마력 보호막을 형성하고, 비정상적인 마력 흐름이나 갑작스러운 충격을 감지하면 즉시 경보를 울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니.
모두가 완벽한 자살이라 말했다. 하지만 강도윤의 뼛속 깊이 박힌 직감은 끊임없이 속삭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 완벽함 속에 숨겨진 균열을, 그는 기어코 찾아낼 작정이었다.
강도윤은 크로노스 타워를 떠나면서도 김석훈의 추락 지점을 잊을 수 없었다. 모두가 자살이라 했지만, 그의 직감은 끈질기게 다른 답을 요구했다. 그는 오래된 스마트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네오 서울 뒷골목, 세상과 단절된 천재 해커 나하은에게 연락할 때였다.
신호음 몇 번 뒤, 무심한 듯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왜요. 또 귀찮은 일인가요?”
“김석훈이라고 알아? 크로노스 타워 CEO.” 강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살로 처리됐지만, 내 생각은 달라. 그의 모든 디지털 발자국을 뒤져줘. 단서가 있다면 뭐든.”
수화기 너머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데이터 분석은 시간당 청구될 텐데요.”
“얼마든 줄게. 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받을 자격 있어.”
나하은은 마지못해 수락했다. 그녀는 모니터 세 대가 빽빽이 들어찬 어두운 방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강도윤이 보낸 계정 정보로 김석훈의 모든 온라인 활동 기록을 훑었다. 금융 내역, SNS,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마력 공학 장비 로그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하은의 미간이 좁아졌다. 김석훈의 디지털 흔적은 놀랍도록 깨끗했다. 누군가 전문적으로 모든 기록을 지운 것처럼. 아니, 지운 정도가 아니었다. 존재했던 흔적 자체가 사라진 수준이었다. 일반 해킹이나 데이터 복구로는 접근 불가능한, 너무나 완벽한 공백.
“이건… 해킹이 아니에요.” 나하은의 차가운 목소리에 미세한 동요가 스쳤다. “시스템 자체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조작이에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완벽한 공백을 응시했다. 무관심했던 얼굴에 처음으로 호기심 어린 빛이 감돌았다. 이 정도의 조작은 그녀가 아는 어떤 인간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나하은은 김석훈의 마지막 접속 기록을 파고들었다. 코어 그리드의 심층부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시스템 로그. 단순한 해킹을 넘어, 시스템 자체가 완벽하게 조작된 공백 뒤에서 그녀는 기묘하게 왜곡된 마력의 잔재를 포착했다.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뒤틀림. 나하은의 냉철한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같은 시각, 김석훈의 펜트하우스. 강도윤은 특수 마력 공학 스캐너를 든 보좌관과 함께 있었다.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거실 바닥에서, 스캐너는 거미줄처럼 얽힌 미세한 균열 흔적을 감지했다. 물리적 충격이 아닌, 공간 자체가 뒤틀렸다가 복구된 듯한 기이한 패턴. 강도윤은 직감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개입한 증거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협의 실체를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네오 서울 전역의 코어 그리드에 일시적인 정전이 발생했다. 도시를 수놓던 모든 디지털 사이니지가 일제히 꺼지고, 하늘을 가르던 자율주행 드론들이 혼란스럽게 삐걱거렸다. 도시 전체에 섬뜩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깨어나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는 비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