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아득한 악몽에 가까웠다. 끓어오르던 검붉은 액체는 이제 단순한 물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연 자체의 맥박처럼 격렬하게 요동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입을 벌렸다.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솟아오르는 존재는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을 뿜어냈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그림자 덩어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둠이 걷히며 서서히 드러나는 실체는, 이전에 강도윤이 대면했던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형체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뒤틀린 산맥이 한데 뭉쳐진 듯한 거대한 덩치. 제단을 왜소하게 만들고 심연의 천장까지 닿을 듯한 압도적인 크기였다. 온몸은 헤아릴 수 없는 겹의 비늘로 뒤덮여 있었고, 그 비늘 사이에서는 무수한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차갑고 비릿한 암흑의 기운이 심연 전체를 짓눌렀다. 강도윤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그림자는 그저 심연의 첨병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지금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심연의 본질 그 자체,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였다.
박진호 이사장의 빛마저 그 거대한 존재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압도적인 절망감이 강도윤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전에 겪었던 모든 고통과 위협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스승의 눈빛에서 읽었던 희망의 메시지가 그의 의식을 붙들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설령 심연의 심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해도, 여기서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위협은 차원이 달랐지만, 강도윤은 불굴의 의지로 그 존재를 응시했다. 이 싸움은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었다.
심연의 바닥을 찢고 솟아오른 거대한 존재는 이제 그 모든 형체를 온전히 드러냈다. 그것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태초의 혼돈에서 빚어진 듯한 기괴한 형상, 수억 년의 시간을 삼킨 듯한 검고 질척이는 비늘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비늘 틈새마다 박힌 수천 개의 눈동자는 심연의 모든 어둠을 담아낸 듯 끈적한 악의를 번뜩였다. 그 존재가 숨을 쉴 때마다 심연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울렸고, 차갑고 끈적이는 암흑의 기운은 강도윤의 폐부를 짓눌러왔다.
강도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림자는 그저 이 거대한 존재의 발끝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것은 심연의 근원, 모든 절망의 정수였다. 박진호 이사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고요한 빛마저 그 거대한 존재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는 한없이 작고 희미해 보였다. 압도적인 절망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지만, 강도윤은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았다.
“이것이… 심연의 본질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눈앞의 존재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강도윤은 박진호 이사장의 눈빛에서 읽었던 ‘희망’을 떠올렸다. 희미하지만, 여전히 그를 감싸고 있는 스승의 빛은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존재의 흉측한 형상이 심연을 뒤흔드는 광경 속에서도 박진호의 빛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존재했다. 마치 모든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질서를 지키는 등대처럼.
강도윤은 그 빛을 응시했다. 이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박진호의 빛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빛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강도윤은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어쩌면 이 빛 자체가 새로운 위협에 맞설 유일한 실마리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다시금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박진호의 빛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아직 있었다.
강도윤이 주먹을 꽉 쥐고 불굴의 의지를 다지는 순간, 심연을 뒤덮은 거대한 존재가 마침내 움직였다. 수천 개의 비늘 틈새에 박힌 눈동자들이 일제히 강도윤과 박진호의 빛을 향해 끈적한 악의를 뿜어냈다. 거대한 몸체가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심연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울렸고, 제단은 끔찍한 진동에 흔들렸다. 이윽고, 존재의 심연 깊은 곳에서 태초의 어둠을 응축한 듯한 검붉은 파동이 용암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마력의 흐름이 아니었다. 모든 존재를 집어삼키려는 근원적인 파괴의 의지, 심연의 본질 그 자체였다.
파동은 심연의 공간을 찢어발기며 강도윤과 박진호의 빛을 향해 맹렬히 쇄도했다.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압력은 강도윤의 전신을 짓눌렀다. 강도윤은 본능적으로 푸른 방어 마력을 끌어모았지만, 그의 마력은 거대한 파동 앞에서는 한 줌의 불꽃처럼 미약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박진호 이사장의 고요한 빛마저 그 파괴적인 파동 앞에서는 한없이 흔들리며 위태롭게 깜빡였다.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이… 심연의 근원적인 힘인가!”
강도윤은 절규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꿰뚫었다. 파동이 그를 덮치기 직전, 거대한 어둠의 손아귀가 그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절대적인 위협이었다. 그의 모든 저항은 무의미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검붉은 파동은 강도윤의 푸른 마력을 산산조각 내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눈앞은 온통 파괴의 검붉은 빛으로 가득 찼다. 강도윤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의식이 아득한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