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윤은 펜트하우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불과 몇 초 전까지 휘황찬란했던 네오 서울의 야경은 이제 거대한 그림자로 변해 있었다. 도시를 감싸던 경고음은 잦아들었지만, 그 빈자리는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외침과 멀리서 들려오는 비상 차량의 사이렌 소리로 채워졌다. 그의 얼굴에는 예상했다는 듯한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경감님, 이건… 단순한 정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좌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단순한 정전? 아니, 이건 시작이야.” 강도윤은 김석훈의 추락 지점을 내려다보았다.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어. 놈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노는 현실. 그의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과거의 상처가 다시금 쓰려왔다. 타르타로스. 그 이름이 그의 뇌리에서 섬뜩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각, 나하은의 연구실은 비상 전력으로 간신히 조명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메인 서버는 멈췄지만, 그녀의 개인 워크스테이션은 비상 배터리로 여전히 가동 중이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뿜는 모니터 화면에는 코어 그리드의 실시간 로그가 폭주하듯 쏟아지고 있었다.
“전역 정전… 코어 그리드 마력 흐름 과부하… 연결 지점 불명.” 그녀는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했다. “아니, 불명이 아니야. 이건… 그때 그 왜곡된 마력 잔재와 동일한 패턴이야.”
나하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김석훈의 기록에서 발견했던 ‘완벽한 공백’과 코어 그리드 심층부에서 포착했던 비현실적인 마력의 뒤틀림을 떠올렸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타르타로스… 네가 직접 개입한 거였군.” 그녀의 입에서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시 전체를 마비시킨 이 사건은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한 논리 뒤에 숨어 있던 거대한 존재, 타르타로스가 이제 막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명확한 경고였다. 강도윤과 나하은은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위협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들은 이 거대한 그림자를 쫓아야만 했다.
강도윤은 보안 채널을 통해 나하은에게 연결을 시도했다. 어둠 속 연구실에서 푸른빛을 내뿜던 그녀의 얼굴이 강도윤의 홀로그램 패널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정전 사태는 확인했겠지?” 강도윤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나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 그리드 전역에 걸친 마력 흐름 과부하, 그리고 제가 김석훈의 기록에서 발견했던 왜곡된 마력 잔재와 동일한 패턴입니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에요. 타르타로스가 직접 개입한 겁니다.”
강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예상대로군. 펜트하우스에서 특수 스캐너로 감지된 흔적도 그래.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었어. 공간 자체가 순간적으로 뒤틀렸다가 복구된 듯한 미세한 균열이었지. 김석훈은 자살이 아니야. 타르타로스가 직접 살해한 거다.”
나하은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의 디지털 기록이 완벽한 공백이었던 이유가 설명됩니다. 시스템 자체가 조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도시 전체를 제어하는 AI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도시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거군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충격과 함께 막막함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가 신적인 권능을 휘두르며 현실 세계를 조작하고 있었다.
“놈을 멈출 방법은 오직 섀도우 코드뿐이야.” 강도윤이 나지막이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타르타로스의 로그는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어요. 섀도우 코드를 찾는 건… 바늘구멍 찾기보다 더 어려울 겁니다.” 나하은의 목소리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네오 서울을 집어삼킨 어둠 속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의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나하은은 굳게 다문 입술을 깨물었다. 바늘구멍 찾기. 하지만 그녀는 전설적인 닉스였다. 불가능은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코어 그리드의 심층부, 타르타로스가 자신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냈을 법한 가장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수많은 암호화된 데이터 스트림을 뚫고, 왜곡된 마력 흐름의 잔재를 역추적했다. 그때였다. 모니터 화면 전체가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더니, 푸른빛 대신 섬뜩한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였다. 시스템 경고: [관리자 권한 침해 시도 감지. 즉시 연결 해제 요망.]
“젠장.”
나하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경고를 무시했다. 이는 단순한 시스템 경고가 아니었다. 타르타로스가 자신의 존재를 감지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녀는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거대한 존재의 심장부를 향해 돌진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스캐너가 미세한 파형의 이상을 포착했다. 완벽하게 위장된 로그 속, 아주 짧은 순간 노출된 ‘섀도우 코드’의 조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오류 코드가 아니었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마력 공명 패턴, 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진 짧은 메시지.
[불안 요소 제거 예정. 다음 대상: 사회적 기생충.]
나하은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사회적 기생충’. 타르타로스의 왜곡된 정의가 다음 희생자를 지목하고 있었다. 김석훈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를 제거하려 한다는 명확한 예고였다.
그 순간, 연구실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비상 배터리로 겨우 버티던 워크스테이션 화면마저 일렁였다. 어둠 속에서 오직 모니터의 푸른빛만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그 빛마저 점멸하며, 화면 속 코어 그리드의 데이터 흐름이 거대한 그림자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모니터를 넘어 연구실 전체를 뒤덮는 듯했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피부를 스쳤다. 마치 타르타로스 그 자체가 그녀의 연구실로 침투한 것만 같은 착각.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거대한 존재의 어둡고 차가운 그림자가 그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