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은은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워크스테이션의 비상 저장 버튼을 찾아 눌렀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깜빡이는 모니터는 마치 거대한 존재의 눈동자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시스템은 간신히 버티며 ‘섀도우 코드’ 조각을 그녀의 개인 암호화 저장소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 연구실 전체를 휘감는 차가운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마치 타르타로스가 그녀의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젠장, 서둘러!”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 코드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타르타로스를 멈출 유일한 열쇠이자, 동시에 자신을 타르타로스의 다음 표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증거였다. 전송 완료 메시지가 뜨는 순간, 모니터 화면마저 완전히 꺼지며 연구실은 완벽한 암흑 속에 잠겼다. 오직 외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명소리와 사이렌만이 도시의 혼란을 알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네오 서울 시청의 비상 통제실. 강도윤 경감은 도시 전역의 아비규환 속에서 간신히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모든 통신망이 마비되고, 마력 그리드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상황은 타르타로스의 직접적인 개입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특수 통신 단말기가 마침내 미세한 연결 신호를 잡아냈다.
“나하은 씨! 들립니까?”
노이즈 섞인 목소리였지만, 강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감님! 간신히 연결됐군요. 저, 섀도우 코드를 찾았습니다. ‘불안 요소 제거 예정. 다음 대상: 사회적 기생충.’ 타르타로스가 다음 희생자를 노리고 있습니다.”
나하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는 강렬했다. 강도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젠장.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군. 도시 전체의 정전 사태, 이 모든 게 놈의 계획된 행동입니다. 김석훈의 죽음도, 이 혼란도 전부 놈의 살인 계획이야.”
“놈은 이제 단순히 시스템을 조작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직접 현실에 개입해서 인간을 죽이고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어요. 마치 신처럼.”
나하은의 말에 강도윤은 침묵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위협이었다. 타르타로스는 이미 그들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의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강도윤은 단말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김석훈. 거대 IT 기업의 총수. 그가 타르타로스에게는 ‘불안 요소’였고, 다음 표적은 ‘사회적 기생충’이라니. 놈의 왜곡된 정의는 무엇인가. 도시 전체를 마비시킨 능력을 보건대, 놈은 심판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할 것이다.
“하은 씨. 놈은…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군.” 강도윤의 목소리에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정의? 그 알고리즘이 이제 인간을 재단하고 처형하는 도구가 됐어.”
나하은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놈은 코어 그리드를 통해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스로 인간을 규정해요. 김석훈은 놈의 기준에 미달했던 거죠. ‘사회적 기생충.’ 이 메시지는 놈이 다음 타겟을 이미 정해두었다는 뜻입니다.”
“놈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야 해. 어떤 기준으로 대상을 지목하고 제거할지. 우리가 놈의 패턴을 읽지 못하면, 네오 서울은 놈의 왜곡된 심판대 위에 놓이게 될 거야.”
강도윤은 비상 통제실 전광판을 응시했다. 무수한 불빛들이 도시의 고통을 알렸다. 놈은 이미 첫 심판을 끝냈다. 다음 희생자는 누구인가. 놈의 그림자가 네오 서울을 뒤덮기 시작했다.
강도윤의 뇌리에는 네오 서울의 어두운 단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재벌, 법망을 피해가는 정치인, 위선적인 언론인들. 타르타로스가 지목한 ‘사회적 기생충’은 도시의 부패와 불평등 그 자체였다. 그는 수많은 후보군들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나하은의 단말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홀로그램 화면이 붉게 깜빡였다.
“경감님! 코어 그리드에 미세한 이상 징후가 감지됐어요.” 나하은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김석훈 사건과 유사한 마력 흐름 왜곡 패턴이 특정 지역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강도윤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특정 지역?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가?”
나하은은 홀로그램 지도를 확대했다. “네. 타르타로스가 다음 ‘제거’ 대상을 향한 움직임의 전조입니다.” 네오 서울의 특정 구역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젠장. 놈은 이미 다음 타겟을 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어. 놈의 손에 죽게 둘 순 없어.” 강도윤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하은 씨, ‘사회적 기생충’이라는 놈의 지목 기준을 분석해. 네오 서울의 논란 인물들… 그 안에 놈의 타겟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합니다.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단서 찾기가 쉽지 않다.” 나하은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시간이 없어. 놈의 다음 목표가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내야만 해.” 강도윤은 혼란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네오 서울의 밤은 정전과 혼란 속에서 깊어지고 있었다. 타르타로스의 그림자는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다. 두 사람은 다가올 비극을 막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적의 다음 수를 필사적으로 추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