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대공성 집무실은 짙은 새벽 공기로 가득했다. 밖에서는 희미하게나마 동이 터오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실내의 공기는 여전히 밤의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레오니스는 밤새도록 책상에 앉아 지난 밤의 지시들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은회색 비늘 조각이 쥐여 있었고, 새벽의 희미한 빛 속에서 섬뜩하게 반짝였다. 차갑고 매끄러운 비늘의 감촉은 그의 감각 없는 손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했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그의 의식을 꿰뚫는 듯했다.
감각 상실 저주 덕분에 육체적인 피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정신적인 긴장감은 칼날처럼 그의 의식을 짓눌렀다. 그의 뇌리 속에는 밤새도록 이어진 생각의 파편들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침입자의 흔적, 서재의 비문, 그리고 이 비늘 조각. 단순한 침입자의 흔적이 아니라, 대공가를 갉아먹은 거대한 음모의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는 손안의 비늘 조각을 엄지로 살짝 쓸어내렸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지만, 이 차가운 물질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가 그의 차가운 심장을 더욱 격렬하게 뛰게 만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미르나 시녀장이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밤샘 근무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긴장감과 함께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미르나의 눈동자는 레오니스의 붉은 눈과 마주치자 순간 흔들렸으나, 이내 단단하게 결의를 다진 듯 보였다. 그녀는 레오니스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시작했다.
“대공 전하, 전하의 명령에 따라 경비대와 법무관들이 카밀라 상단의 주요 창고와 유통 경로를 봉쇄하고 관련 장부들을 압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상보다 저항은 미미했습니다만… 압수된 장부의 내용이 심상치 않습니다.”
미르나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 충격적인 사실을 목도했음을 암시했다. 레오니스의 붉은 눈동자가 미르나를 향했지만, 그의 표정은 돌처럼 차가웠다. 그의 얼굴 근육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서는 이미 미르나가 보고할 내용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지만, 외부로는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보고하라.”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차분하고 위압적인 그 목소리에 미르나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종이 뭉치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 속에서 유독 크게 울렸다.
“압수된 장부들을 통해 카밀라 상단이 지난 수년간 대공가의 재정을 조직적으로 유출해왔음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특히, 전 대공 카이젠 전하의 무리한 광산 개발 투자와 북부 영지 사업을 조장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를 발생시켜 대공가의 자산을 상단으로 이전시킨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단순한 채무 관계를 넘어선 명백한 사기성 거래와 횡령입니다.”
미르나의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집무실의 차가운 공기는 더욱 얼어붙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수록 비장해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대공성 내부의 일부 고위 인사들과 카밀라 상단 간의 은밀한 금전 거래 내역이 담긴 비밀 장부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장부는 대공가의 재정 비리가 외부 세력의 조작뿐 아니라 내부의 배신자들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상단은 이들을 통해 대공가의 기밀 정보를 빼돌리고, 전 대공의 판단을 흐리게 하며, 재정 파탄을 계획적으로 유도했습니다.”
미르나의 마지막 말은 집무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레오니스는 감각이 없는 손으로 비늘 조각을 쥐었다 폈다. 그의 이성은 미르나의 보고를 들으며 모든 정보들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나가고 있었다. 비늘 조각, 침입자, 그리고 대공성 내부의 배신자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하나의 음모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냉철한 사고는 이 상황을 단순히 재정 문제를 넘어선 생존을 위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 속에는 희미하지만 강렬한 결의가 타올랐다.
“내부의 배신자들… 예상했던 바다.”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희미한 여명 너머, 아직 어둠에 잠긴 대공성을 꿰뚫는 듯했다.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즉시 감시를 강화하라. 어떠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도록. 특히, 이 비밀 장부에 언급된 인물들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비늘 조각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레오니스의 지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졌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미르나는 레오니스의 냉철함과 치밀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의 지시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구체적이라, 어떠한 반론의 여지도 없었다. 미르나는 그의 지시를 꼼꼼히 받아 적으며,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바로 그때, 집무실 문밖에서 다급한 전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박함이 역력했다.
“대공 전하! 카밀라 상단의 수장, 카밀라가 대공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소환장을 받자마자 즉시 움직였다고 합니다!”
미르나는 놀란 표정으로 레오니스를 바라보았다. 카밀라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당혹감과 함께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레오니스의 붉은 눈동자에는 희미한 섬광이 스쳤을 뿐,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했다. 창문 밖으로는 이미 붉은 햇살이 대공성 지붕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기 전, 첫 번째 대면이 시작될 참이었다.
레오니스는 이 대결이 단순한 심문이 아니라, 대공가의 재건을 위한 거대한 서막임을 직감했다. 그의 심장은 뛰지 않았지만, 그의 이성은 더욱 격렬하게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감각이 없는 몸이 오히려 그에게 흔들림 없는 냉철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의 뇌리 속에는 이미 카밀라와의 대화를 예측하고, 그녀의 반응에 따른 최적의 대응 시나리오들이 빠르게 그려지고 있었다. 창밖의 태양은 점차 밝아지고 있었으나, 그의 앞에는 더욱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이성은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대공성 접견실은 새벽의 싸늘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묵직한 오크나무 문이 열리고, 화려한 비단 드레스를 입은 카밀라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드레스는 붉은색과 금색 실로 정교하게 수놓여 있었고, 깊게 파인 가슴골은 시선을 붙들었다. 짙은 장미 향수가 접견실을 채웠지만, 레오니스의 코에는 아무런 자극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앞의 인물이 뿜어내는 기운과, 그녀의 도도한 걸음걸이에서 묻어나는 자신감을 분석할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노련한 상인의 교활함과 함께, 레오오니스를 유혹하려는 듯한 끈적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감각을 잃은 레오니스에게 그것은 무의미한 시도였다. 그는 접견실 중앙의 의자에 앉아, 돌처럼 차가운 얼굴로 카밀라를 응시했다. 그의 옆에는 미르나 시녀장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서서,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눈빛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카밀라는 레오니스 앞에 다가와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입술에는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대공 전하의 건강이 염려되어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부디 몸조리 잘하시어 대공가의 영광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지만, 레오니스의 이성은 그 속에 숨겨진 비웃음과 경멸을 정확히 읽어냈다. 그는 카밀라의 형식적인 인사를 무시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카밀라.”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당신의 상단이 대공가의 자산을 조직적으로 유출하고, 전 대공 카이젠의 무리한 투자를 조장하여 막대한 부채를 발생시킨 정황이 포착되었다. 어젯밤 압수된 장부들이 그 증거다.”
그는 미르나가 미리 준비해둔 장부 사본 중 일부를 그녀의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두툼한 종이 뭉치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부딪혔다. 그 소리는 접견실의 팽팽한 긴장감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카밀라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장부 사본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에는 다시금 교활한 미소가 피어났다.
“오호라, 이런 사소한 장부 조각들로 저의 상단을 압박하려 하시는군요. 대공 전하, 저희 카밀라 상단은 그저 대공가의 요청에 따라 정당한 사업을 진행했을 뿐입니다. 전 대공 카이젠 전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사업에 대한 열정이 넘치셨고, 저희는 그저 그 열정을 지원했을 뿐이지요. 대공가의 재정 파탄은 전적으로 전 대공의 방탕함과 무능함 때문이지, 저희 상단의 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대공가의 가장 큰 채권자로서, 이 위태로운 가문을 지탱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레오니스를 역공했다. 대공가의 몰락을 전 대공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들은 피해자이자 조력자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녀의 논리는 뻔뻔했지만, 그 속에는 교묘한 진실의 조각들이 섞여 있었다. 전 대공 카이젠의 무능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카밀라 상단이 대공가의 주요 채권자인 것 또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레오니스의 붉은 눈동자가 더욱 차갑게 빛났다. 그의 이성은 카밀라의 말 속에 숨겨진 궤변과 진실을 분리해냈다. 그는 그녀의 논리적 허점을 정확히 짚었다.
“당신 상단이 조장한 부채 규모는 대공가의 자산을 원금 이상으로 초과한다. 단순한 사업적 관계가 아니다. 이는 제국의 법률에 따라 명백한 사기이자 횡령이다. 대공의 권위와 제국의 법으로 당신 상단의 모든 자산을 몰수하고, 당신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레오니스의 단호한 선언에 카밀라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다시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고와 함께 은밀한 제안이 담겨 있었다.
“대공 전하께서 너무 순진하신 것 같군요. 이 대공가의 재정 비리가 단순히 저의 상단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대공성 내부의 고위층 인사들, 심지어 황실과 연관된 일부 세력까지 이 거대한 그림자에 얽혀 있습니다. 대공께서 저를 심판하려 한다면, 이 대공성 전체가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대공께서 현명한 선택을 하신다면, 저 카밀라가 이 모든 과거를 묻고, 대공가의 재건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겠지만요.”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레오니스에게 협박과 유혹을 동시에 던졌다. 그녀의 시선은 레오니스의 붉은 눈동자를 꿰뚫으려는 듯 강렬했다.
레오니스는 카밀라의 제안에 잠시 멈칫했다. 그의 이성은 카밀라의 말 속에 담긴 진실의 파편과 위험성을 분석했다. 그녀가 암시하는 내부 세력은 어젯밤 압수된 장부에서 발견된 내용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은 대공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대공가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미끼였다. 대공가의 존엄을 지키고 재건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했다. 감각이 없는 몸 덕분에 그는 카밀라의 유혹적인 시선과 달콤한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직 이성적인 판단만을 내렸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비웃음이 스쳤다.
“당신의 제안은 대공가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으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나는 대공가의 존엄을 당신 같은 자들의 손에 더 이상 맡기지 않을 것이다.”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처럼 단호했다. 그의 결의는 어떤 유혹이나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철 같았다. 접견실을 가득 채웠던 카밀라의 향수 냄새마저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는 듯했다. 미르나는 레오니스의 단호함에 감탄하며, 그의 옆에서 더욱 굳건히 서 있었다. 카밀라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미소마저 지워졌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 노골적인 분노와 함께 경멸로 가득 찼다.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처럼 단호했다. 그의 결의는 어떤 유혹이나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철 같았다. 접견실을 가득 채웠던 카밀라의 향수 냄새마저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는 듯했다. 미르나는 레오니스의 단호함에 감탄하며, 그의 옆에서 더욱 굳건히 서 있었다. 카밀라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미소마저 지워졌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 노골적인 분노와 함께 경멸로 가득 찼다.
“대공께서 감당할 수 없는 불꽃을 지피셨군요.”
카밀라의 목소리는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접견실의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붉은 입술은 경련하듯 떨렸고, 고혹적이던 눈매는 탐욕스러운 맹수의 그것으로 변모했다. 그녀는 테이블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화려한 비단 드레스가 스치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대공가는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이 가문은 한 줌의 재로 변할 겁니다. 곧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협박이자 저주와도 같았다. 맹렬한 기세로 쏘아붙이는 카밀라의 말에도 레오니스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불타는 얼음처럼 차갑게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감각 없는 몸은 그녀의 위협적인 기세나 분노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직 이성만이 모든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접견실의 묵직한 문이 조용히 열렸다. 카밀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순백의 성의를 입은 성녀 세레나가 그림자처럼 발소리 없이 들어섰다. 그녀의 등장은 마치 잘 짜인 연극의 한 장면처럼 절묘했다. 흐트러짐 없는 은발은 어깨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청초한 외모는 주변의 모든 격렬한 감정들을 정화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묘한 호기심과 함께,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계산적인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이 무슨 소란인가요? 대공 전하의 저주를 걱정하여 찾아왔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군요.”
세레나의 목소리는 걱정스러운 듯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레오니스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이내 카밀라를 향해 짧고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카밀라 역시 세레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 둘 사이에 오가는 눈빛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교감은 미르나 시녀장의 매서운 시선을 피해가지 못했다. 미르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 예상치 못한 변수를 경계했다. 세레나의 등장은 레오니스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그녀의 개입은 이 복잡한 상황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넣는 듯했다.
레오니스는 세레나의 등장에도 흔들림 없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카밀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이성은 세레나의 개입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그림자의 일부일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내면을 채웠다. 그는 카밀라를 향해 다시금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의 목소리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했다.
“대공가는 당신의 상단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재정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묻고, 상단 전체를 조사할 것이다. 당신은 제국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레오니스의 최종 선언에 카밀라는 잠시 충격을 받은 듯 몸을 굳혔다. 그녀의 눈빛은 동요로 흔들렸지만, 이내 경멸스러운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레오니스를 비웃었다.
“어리석은 대공이시군요. 이 대공가에 얽힌 그림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아직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이 싸움은 단순한 상단과의 싸움이 아닐 겁니다. 당신의 목을 조여올 진정한 적은… 바로 당신의 등 뒤에 있을지도 모르죠.”
카밀라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기고, 세레나에게 다시 한번 가벼운 눈인사를 보낸 뒤 접견실 문을 열고 급히 사라졌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레오니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등 뒤의 적’. 어젯밤 서재에 침입했던 자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은회색 비늘 조각.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음모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카밀라의 경고는 그의 비늘 조각에 대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카밀라가 떠나자 접견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세레나는 천천히 레오니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고 나긋했지만, 레오니스의 이성은 그녀의 모든 움직임에서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려 했다. 그녀는 레오니스 앞에 멈춰 서더니, 그의 손을 잡으려는 듯 가늘고 흰 손을 뻗었다.
“대공 전하, 이렇게 위험한 일은 저에게 맡기시고….”
세레나의 손끝이 레오니스의 손등에 닿으려 했지만, 레오니스는 그녀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피하며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는 감각이 없었기에 그녀의 부드러움이나 온기를 느낄 수 없었지만, 과거 그녀가 비늘 조각에 보였던 반응과 지금의 이중적인 태도를 연결하며 그녀의 본심을 탐색했다. 미르나는 세레나의 행동에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시녀장의 눈에는 그녀의 위선이 역력하게 보였다.
레오니스는 세레나의 손길을 피한 채, 미르나에게 지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미르나 시녀장. 대공성 내부의 모든 수상한 인물들을 감시하고, 특히 재정 관련 부서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라. 카밀라가 말한 ‘등 뒤의 적’이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레오니스의 손에는 여전히 은회색 비늘 조각이 쥐여 있었다. 그는 그 조각을 꺼내 응시하며, 이 모든 재정 비리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의 감각 없는 손가락이 비늘 조각의 차가운 표면을 쓸어내리는 순간, 조각에서 섬뜩한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깜빡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존재의 눈처럼, 그 빛은 레오니스의 붉은 눈동자에 섬뜩하게 반사되었다.
레오니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침 햇살은 이미 높이 떠올라 대공성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그의 앞에는 더욱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이제 막 거대한 존재의 발톱을 건드린 것임을 예감했다. 단순한 상단의 비리나 재정 문제가 아니었다. 대공가의 심장에 박힌 거대한 음모, 그리고 그 배후에 숨겨진 진정한 적.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지독한 결의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카밀라의 마지막 경고와 비늘 조각의 섬뜩한 빛은 그의 이성을 더욱 날카롭게 자극했다. 그는 이제 단순한 재정 재건을 넘어, 대공가의 심장에 박힌 거대한 음모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싸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위험한 심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