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 불감증 · 총 2화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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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죽어가고 있었다.

한때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노래였던 에테르는, 이제 그 빛을 잃고 서서히 침묵해갔다. 푸르던 대지는 회색빛으로 변했고, 맑았던 강물은 탁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공기 중에는 쇠락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통스러운 변이를 겪었다.

변이.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다. 끔찍한 왜곡이자 파괴였다. 숲의 나무들은 뒤틀린 가지를 하늘로 뻗으며 비명을 질렀고, 짐승들은 기괴한 형태로 변형되어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심지어 공간마저 뒤틀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제의 세상이 오늘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다. 변이는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나갔고,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세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에테르 능력자들이었다. 에테르의 힘을 다루고, 변이를 억제하며, 때로는 뒤틀린 생명을 정화할 수 있는 이들만이 절망에 빠진 인류를 이끌었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변이와 싸웠고, 미래를 위한 아이들을 양성했다. 그 중심에는 아르카나 에테르 아카데미가 있었다.

아르카나 에테르 아카데미는 단순한 학술 기관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에테르 샘 위에 세워진 거대한 요새이자, 살아 숨 쉬는 유기체였다. 아카데미의 벽면은 에테르의 흐름에 따라 맥동했고, 건물들은 마치 뿌리를 내린 고대 생명체처럼 유려하고 기이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은 변이 현상에 맞서는 인류의 최전선이었고, 에테르 능력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아카데미 내부에는 고대 에테르 문명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비밀과 금지된 지식들이 잠들어 있었고, 학생들은 에테르의 본질을 이해하고 변이를 제어하는 법을 배웠다. 이곳의 모든 것은 에테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에테르가 곧 생명이고, 힘이며,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데, 그 아카데미에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이가 있었다.

엘리온.

은빛 머리카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 그는 에테르에 반응하지 않았다. 에테르의 흐름을 느끼지도, 에테르의 힘을 빌리지도 못했다. 에테르가 만물의 근원인 세계에서, 그는 마치 에테르에 투명한 존재 같았다. 에테르 능력자들이 모여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는 아카데미에, 에테르를 전혀 다룰 수 없는 소년이 특별 입학했다는 소문은 들불처럼 번졌다. 사람들은 그를 ‘에테르 불감증’이라 불렀다.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에테르의 부재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에테르 불감증은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아르카나 에테르 아카데미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것도 ‘특별 입학’이라는 명목으로.

모두가 의아해했다. 조롱과 의심의 시선이 그를 꿰뚫었다. 에테르에 반응하지 못하는 소년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그는 세계의 종말을 재촉하는 불길한 징조일지도 모른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엘리온의 내면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겉으로는 무심하고 냉철해 보였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깊은 연민이 숨어 있었다. 그는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려 애썼지만, 동시에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욕구 또한 품고 있었다. 그의 마른 체형은 단단한 의지를 감추고 있었다.

그는 왜 이곳에 왔을까?

정말로 에테르에 불감한 것일까?

아니면, 그 불감증이야말로 죽어가는 에테르가 만들어낸 새로운 희망의 형태일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에테르의 흐름이 끊어진 고요한 심연 속에서, 에테르 불감증 소년 엘리온은 이제 막 뒤틀린 세계의 가장 깊은 미스터리로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죽어가는 에테르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를 주시했다.

과연 그는 죽어가는 에테르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에테르 불감증이라는 그의 존재 자체가, 세계를 영원한 침묵으로 이끌 새로운 변이일까?

아르카나 에테르 아카데미의 거대한 정문이 열리고, 은빛 머리카락의 소년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한때 활기 넘치던 세계 에테르의 심장이,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엘리온의 눈에는, 아카데미의 거대한 정문이 단지 육중한 금속과 조각된 돌덩이로 이루어진 통로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느꼈을 에테르의 생생한 맥동, 그 고동치는 생명력은 그에게는 그저 차갑고 무거운 물질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아카데미를 둘러싼 공기는 다른 학생들에게는 에테르의 미세한 입자로 가득 차 있었겠지만, 엘리온에게는 그저 희미한 먼지와 낡은 돌의 냄새가 섞인,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공기였다.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어떤 에테르의 속삭임도, 흐름도, 존재감도. 이 거대한 아카데미의 모든 것이 에테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그저 거대한 건축물일 뿐이었다.

시선이 쏟아졌다.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하고, 그들의 눈빛이 엘리온에게로 향했다. 호기심, 경멸, 의심, 그리고 간혹 보이는 동정. 그 모든 시선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그의 피부를 꿰뚫는 듯했다. 그들은 속삭였다. ‘에테르 불감증’, ‘아무것도 못하는 자’, ‘왜 저런 자가 여기에?’ 그들의 말은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듯했다. 엘리온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시선은 그가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결국 이곳에 왔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카데미 입학은 단순한 학업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이유이자, 가문의 몰락과 얽힌 미스터리의 실마리였다. 에테르 불감증. 그 병명은 그에게 낙인이자 숙명이었다. 세상은 에테르가 죽어가고 있다고 아우성치지만, 정작 에테르가 무엇인지, 왜 죽어가는지, 그리고 자신의 불감증이 그 변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에테르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만이 명확했다.

엘리온은 자신의 손바닥을 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에테르 능력자들이라면 손끝에서 푸른빛이든, 붉은빛이든, 에테르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그저 맨살일 뿐이었다. 그는 이 불감증이 단순한 결함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 ‘불감’이야말로 가장 깊은 ‘감’일지도 모른다고, 죽어가는 에테르가 그에게만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추측했다. 그의 가문이 과거 에테르 연구로 명성이 높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연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중단되고 가문이 몰락했다는 배경은, 그의 불감증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아카데미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에테르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이곳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였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거대한 미지의 감옥과도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이곳에서 에테르 불감증의 진실을, 그리고 변이하는 세계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남들의 조롱과 의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는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들끓고 있었다. 이 고립감 속에서, 그는 홀로 싸워야 할 것임을 예감했다. 그 싸움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나, 그는 결코 멈추지 않을 터였다. 그의 회색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