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메아리 · 총 2화

제1화

뷰어에서 이어 읽기

지하 아카이브 시설의 모든 불빛이 꺼지자, 엘리시아는 순식간에 짙은 어둠 속에 갇혔다. 헬멧 내부의 미약한 비상등만이 희미하게 주변을 비출 뿐이었다.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포효처럼 공간을 뒤흔들었고,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엘리시아! 즉시 대피하십시오! 외부에서 강력한 물리적 충격이 감지되었습니다! 아르카의 보호막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습니다!”

제타의 다급한 목소리가 헬멧을 통해 울려 퍼졌다. 인공지능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란 감정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지하 아카이브 시설의 천장에서 먼지와 잔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때 질서정연하게 빛을 발하던 데이터 코어들도 이제는 파괴된 채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미확인 함선이 공격을 시작한 겁니까?”

엘리시아는 무너져 내리는 잔해를 피하며 물었다. 그녀의 심장은 경고등처럼 빠르게 울렸지만,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수많은 소멸 구역을 탐사하며 그녀는 죽음과 파괴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곳은 죽어가는 성계였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망각의 땅. 그런데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을 공격하고 있었다.

“정확한 정보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방해 전파가 너무 강력합니다. 다만, 공격 지점은 아르카가 착륙한 지점의 상공입니다. 함선은… 저희의 존재를 인지하고 공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존재를 인지하고 공격했다는 말에 엘리시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주 기록관 길드는 중립적인 존재였다. 어떤 세력과도 얽히지 않고 오직 지식과 문명을 보존하는 데에만 전념해왔다. 그런데 대체 누가, 왜 아르카를 공격하는가?

그녀의 아카이브 장치에 나타났던 ‘새로운 데이터 유입 감지’ 메시지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미확인 출처의 데이터. 그것이 지금의 혼란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장치를 해킹하려던 존재와 연관이 있는 걸까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탈출이 우선입니다. 엘리시아, 지하 통로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서두르십시오!”

제타의 경고와 함께, 엘리시아가 방금 지나온 통로 쪽에서 굉음이 울리며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아카이브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흔들리며 주변을 비췄다. 그녀는 망설일 틈도 없이 몸을 돌려 시설의 입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발밑에는 부서진 데이터 코어의 잔해들이 밟혔다. 이 모든 기록들이, 마지막 순간에 사라져가는 문명의 외침들이, 지금 이 순간 파괴되고 있었다. 그녀의 임무가 실패하고 있었다.

“안 돼…!”

엘리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이토록 고독한 임무를 홀로 짊어져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육중한 금속 문이 천천히 열리던 그 입구는 이제 겨우 사람 한 명이 비집고 나갈 틈만 남긴 채 닫히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마지막 순간에 몸을 던져 그 틈을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굉음과 함께 시설이 완전히 붕괴되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시아, 무사하십니까?”

“무사합니다. 제타. 탐사선으로 복귀하겠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엘리시아는 탐사선이 착륙했던 곳으로 향했다. 얼어붙은 행성의 표면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첨탑의 잔해들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지반이 갈라지며 용암처럼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행성 자체가 격렬하게 울부짖는 듯했다.

“탐사선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복귀가 불가능합니다!”

제타의 절망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시아는 눈을 들어 탐사선이 착륙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작은 탐사선은 이미 잔해에 깔려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젠장…!”

엘리시아는 드물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사방이 막혔다. 이 거대한 폐허 속에서 그녀는 고립되었다.

“대체 저 함선은… 어떤 목적으로 이곳을 공격하는 겁니까? 레미나-7 성계는 이미 죽어가는 곳인데…!”

“분석 중입니다. 함선의 에너지 패턴이… 이전에 기록된 어떤 문명의 것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매우 이질적입니다. 그리고… 목표는 이 행성의 지표면이 아닌, 특정 에너지 반응이었습니다. 아마도 지하 아카이브 시설에서 발생했던 에너지 반응을 추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타의 말에 엘리시아는 아카이브 장치를 든 손을 꽉 쥐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 기록들이었다. 그녀가 애써 찾아낸, 사라져가는 문명의 마지막 목소리들.

“그들이… 기록을 파괴하려는 목적이라고요? 왜?”

그때였다. 상공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엘리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거대한 함선의 실루엣은 마치 거대한 포식자처럼 보였다. 그 함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 빔이 주변의 잔해들을 녹여버렸다.

“엘리시아! 함선이 당신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탐사복의 비상 추진기를 사용해서 최대한 멀리 이탈하십시오!”

“어디로요? 사방이 파괴되고 있는데!”

“가장 가까운 엄폐물은… 좌표 3-7-1에 있는 거대 구조물의 잔해입니다! 그곳으로 이동하십시오!”

엘리시아는 망설일 틈도 없이 탐사복의 비상 추진기를 작동시켰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녀는 무너져 내리는 건물 잔해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제타가 지시한 좌표를 향해 날아갔다. 발아래에서는 행성의 지반이 계속해서 갈라지고 폭발했다.

그녀의 뒤를 쫓아 거대한 함선이 굉음을 내며 따라왔다. 함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빔이 그녀의 뒤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엘리시아는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위기 상황에서도 그녀의 이성은 냉철하게 주변 상황을 분석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아르카로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아르카는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간신히 거대 구조물의 잔해 뒤에 몸을 숨겼다. 구조물은 한때 거대한 돔 형태의 건축물이었던 것으로 보였으나, 이제는 절반 이상이 무너져 있었다. 그녀는 잔해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제타, 아르카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복귀할 방법은 없습니까?”

“아르카의 보호막이 3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외부 공격으로 인해 메아리 점프 시스템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탈이 불가능합니다. 통신도 불안정합니다. 이대로라면… 아르카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제타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르카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자 동반자였다. 수천 년간 우주의 지식을 품어온 살아있는 도서관. 그런 아르카가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엘리시아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그녀의 아카이브 장치에서 갑자기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프로로그 끝에서 감지되었던 ‘새로운 데이터 유입 감지’ 메시지가 다시 한번 섬광처럼 나타났다. 이번에는 단순히 감지를 넘어, 그녀의 장치 내부로 데이터가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타! 이게… 무슨 일이죠? 아카이브 장치에 뭔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분석… 중입니다. 데이터 패턴이 매우 복잡하고… 비정상적입니다. 강력한 암호화가 되어 있습니다. 마치… 해킹을 시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킹. 엘리시아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죽어가는 성계에서, 아르카를 공격하는 미지의 함선과 동시에, 누가 감히 그녀의 아카이브 장치를 해킹하려 드는가?

그때, 그녀가 숨어 있는 구조물 잔해의 바로 옆에서, 갑자기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빛이었다. 마치 고물상에서나 볼 법한, 낡고 부서진 통신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빛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빛 옆에는, 거대한 함선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망진창이 된 잔해 더미 속에서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엘리시아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그림자에게 다가갔다. 그 그림자는 헝클어진 머리에 낡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장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거대한 함선이 뿜어내는 에너지 폭풍 속에서도, 마치 주변의 모든 혼란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오직 자신의 손에 들린 장치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죠?”

엘리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그림자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헬멧 너머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예상보다 훨씬 젊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그녀를 향해 있었다.

“어? 누구세요? 여기가 원래 제 작업 공간인데… 갑자기 하늘에서 뭐가 떨어져서… 망했네.”

그의 목소리는 경박했다. 엘리시아는 어이가 없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파괴된 행성에서, 이 미지의 공격 속에서, 자신의 작업 공간이 망가졌다는 말을 하다니.

“당신이… 내 아카이브 장치를 해킹한 겁니까? 이 데이터 유입… 당신 짓입니까?”

엘리시아는 그에게 아카이브 장치를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에 호기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

“오, 이거 봐라? 내 신호가 잡혔네? 대단하네. 이거 물건이네. 어디서 구했어요? 이걸로 뭘 하려는 건데? 우주 기록관? 그런 게 아직도 있었나?”

그는 엘리시아의 아카이브 장치를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처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순수하게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엘리시아는 당황했다. 그녀의 아카이브 장치를 해킹하려던 존재가, 이렇게 무방비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상공의 미지의 함선이 다시 한번 거대한 에너지 빔을 뿜어냈다. 이번에는 엘리시아와 그 젊은이가 숨어 있는 구조물 잔해를 정확히 노렸다.

“엘리시아! 위험합니다! 회피하십시오!”

제타의 다급한 경고가 헬멧을 찢을 듯 울렸다. 엘리시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전히 자신의 장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빔이 날아오는 방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비켜요!”

엘리시아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거대한 에너지 빔이 구조물 잔해를 강타했다. 폭발의 섬광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엘리시아는 폭풍에 휩쓸려 멀리 날아갔다. 그녀의 몸이 차가운 바닥에 나뒹굴었다. 헬멧 내부의 스크린이 깜빡이며 오류 경고를 띄웠다.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구조물 잔해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 젊은이가 있던 자리도 거대한 구덩이로 변해 있었다. 그는… 사라졌다.

“제타… 그 젊은이는…?”

“생체 신호… 감지되지 않습니다. 소멸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엘리시아의 가슴에 먹먹한 슬픔이 밀려왔다. 이름도 모르는, 방금 만난 경박한 젊은이였지만, 그녀의 눈앞에서 한 생명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 죽어가는 우주에서, 또 한 명의 생명이 대정적 현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라졌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그녀의 아카이브 장치에서 다시 한번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헬멧 내부의 스크린에,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카이브 데이터 다운로드 완료: 100%]

[미확인 출처의 데이터, 성공적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엘리시아는 눈을 비볐다. 데이터 다운로드 완료? 소멸한 줄 알았던 그 젊은이가,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아카이브 장치에 무엇을 한 것인가?

그녀는 아카이브 장치를 든 손을 꽉 쥐었다. 그 젊은이가 남긴 데이터. 그리고 그녀를 노리는 미지의 함선. 이 모든 것이 마치 거대한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엘리시아! 또 다른 미확인 함선이 이 성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르카의 식별 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르카의 통신 주파수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제타의 다급한 목고리가 들렸다. 엘리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함선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 함선은 아르카의 것과 너무나도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죽은 성계가 아니었다. 이제 이곳은, 우주의 모든 비밀이 뒤엉킨 거대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아카이브 장치를 든 채, 미지의 위협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그녀는 반드시 대정적 현상의 진실을 밝혀내야만 했다. 설령 그 진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