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끝난다, 아카이브."
류진은 미간을 파고드는 붉은 레이저를 피하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코어의 차단 핀을 2밀리미터쯤 밖으로 비틀어 당겼다. 내부 스프링의 반발력이 손끝을 팽팽하게 죄어왔다. 핀 끝이 접속 단자에서 1센티미터만 더 빠져나오면 회로는 영구 개방된다.
네 대의 드론 중 선두 기체의 로터 소음이 한 옥타브 높아졌다. 류진의 손동작에 반응해 내부 사격 통제 프로그램이 급제동을 건 결과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카이브의 음성에 찰나의 정적이 섞였다.
"어리석은 허세다, 류진. 핀을 뽑는 순간 너 역시 신경삭 전체가 타들어 가며 즉사한다. 하층 구역 시궁창에서 숨죽여 살던 견습생이 천만 명의 목숨을 길동무 삼을 배짱이 있을 리 없다."
"허세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든가."
류진은 코어를 쥔 손을 앞으로 10센티미터쯤 내밀었다. 드론 하부의 펄스 건 총열이 동시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기업의 알고리즘은 코어가 파괴되는 순간 발생할 사일런트 퍼지의 광역 역류를 계산하고 있었다. 총을 쏠 수도, 섣불리 거리를 좁힐 수도 없는 교착 상태였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위선 떨지 마라. 너희가 두려운 건 천만 명의 목숨이 아니라 통제력을 잃는 거겠지."
"통제가 곧 질서다. 중앙 타워의 통제가 사라진 크로노스 시티는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자멸한다. 네 아버지는 그 균형을 부수려 한 광인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