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의 파동을 읽는 자 · 총 4

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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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방금 내뱉은 ‘알겠습니다’라는 말의 무게가 한순간에 덮쳐왔다. 징계 위원회실을 벗어나 복도로 걸어 나오는 그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징계를 피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평생 꿈꿔왔던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불안감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다른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마치 다른 세상의 소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렌은 손목의 보호 팔찌를 무의식적으로 만졌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만이 그가 아직 현실에 발붙이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자, 이쪽으로 가면 내 연구실이네.” 에이든 교수는 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장난기와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조용하고… 연구에 몰두하기엔 최적의 장소지. 물론, 자네가 그 난장판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렌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교수님을 따라 걸었다. 복도의 끝,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낡은 통로로 접어들자 아카데미 특유의 정갈하고 밝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벽은 오래된 덩굴식물처럼 복잡하게 얽힌 마나 파이프들로 가득했고, 희미한 마나 램프만이 길을 밝혔다. 이따금씩 어디선가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나, 낮게 웅웅거리는 마나 장치의 진동이 들려왔다. 이곳은 아카데미의 심장부가 아니라, 마치 숨겨진 지하 통로 같았다. 렌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주변을 감싸는 마나의 흐름이 아카데미 중앙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질서하고, 뒤섞여 있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미세하게 떨리는 불협화음마저 감지되었다.

‘여기도… 온전하지 않아.’ 렌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예민한 감각은 일반인들이 듣지 못하는 마나의 비명을 끊임없이 잡아내고 있었다.

“내 연구실은 아카데미에서 가장… 비전통적인 공간일 걸세.” 에이든 교수가 앞장서서 걸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함께 미묘한 자기 비하가 섞여 있었다. 그는 낡은 금속 문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뻗었다. 마나 식별 장치에 그의 손바닥이 닿자, 문이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열렸다.

렌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것이었다.

연구실 내부는 흡사 거대한 기계 장치의 심장 같았다. 사방에 설치된 알 수 없는 용도의 마나 증폭기들과 정화 장치들이 끊임없이 웅웅거렸고, 벽면을 따라 이어진 투명한 마나 도관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마나가 액체처럼 흘러다녔다. 천장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케이블과 와이어가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매달린 마나 램프들이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한쪽 벽에는 온갖 희귀한 마나 광물 표본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복잡한 마나 파동 그래프와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찬 칠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실험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기계와 생체 조직이 기묘하게 결합된 듯한 장치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으며, 렌의 코끝에는 오래된 먼지와 마나 오일, 그리고 미묘하게 비릿한 금속 냄새가 뒤섞여 들어왔다. 그의 마나 과민증은 이 혼란스러운 환경에 즉각 반응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손목의 보호 팔찌가 따끔하게 진동했다. 마치 수천 개의 날카로운 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마나의 모든 파동이 그에게는 격렬한 소음처럼 들려왔다.

‘이게… 연구실이라고?’ 렌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실습실에서 폭주했던 마나 스톰의 축소판 같았다. 아니, 어쩌면 더 교활하고 예측 불가능한 ‘병든 파동’들이 잠재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두려움과 함께 깊은 회의감에 휩싸였다. 자신이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통스러운 마나의 파동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라는 것일까?

“어때, 마음에 드나?” 에이든 교수는 렌의 반응을 즐기는 듯 빙긋 웃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독특한 곳이지. 그리고 이제… 자네가 머물게 될 곳이기도 하고.”

렌은 에이든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에는 피곤함과 함께 미약한 절망이 서려 있었다. “교수님… 저는 여기서…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제 감각은 그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일반적인 마나 조작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자네의 능력은 마나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잖나.” 에이든 교수는 실험대 위로 올라가 무언가 복잡한 장치를 꺼내기 시작했다. 장치 표면의 여러 개의 마나 결정이 희미하게 빛났다. “자네는 마나를 ‘읽어내는’ 자다. 마나의 파동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가는지를 다른 누구보다 선명하게 느끼는 자.”

그는 렌에게 그 장치를 건 넸다. 그것은 여러 개의 투명한 수정구와 복잡한 회로가 연결된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기구였다. 렌의 손목에 있는 보호 팔찌와 유사한 마나 감지 장치처럼 보였다.

“이건 초미세 마나 감지기네. 자네의 감각을 증폭하고, 동시에 그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걸세. 물론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에이든 교수는 렌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네가 할 일은 단 하나다. 이 연구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나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들은 감지하지 못하는 ‘균열’과 ‘병든 파동’을 찾아내는 것. 실습실에서 자네가 감지했던 바로 그 ‘틈’을 여기서도 찾아내는 거야.”

렌은 장치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과 매끄러운 수정이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병든 파동… 틈…’

그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범함을 포기하고 택한 이 길의 시작이었다. 그의 독특한 감각이 단순한 결핍이 아닌 ‘특별함’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는 희망이 한 줄기 빛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능력 때문에 그는 평범한 학생들과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고립감도 함께 밀려왔다. 이곳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더 깊은 미지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렌의 목소리에는 막막함이 섞여 있었다. 수많은 마나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찾아야지.” 에이든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웃었다. “그게 자네의 ‘재능’이자 첫 번째 과제일세. 마나의 모든 파동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 속에서 ‘진짜’ 비명을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할 걸세. 지금부터 연구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느껴보게.”

렌은 장치를 든 채 연구실 중앙에 우두커니 섰다. 주변을 가득 채운 마나의 파동은 그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다. 평범함을 포기한 대가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아카데미의 규율과 교수들의 질책, 동급생들의 비난, 그리고 자신의 열등감까지 모든 소음이 마나의 파동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차가운 땀방울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렌은 숨을 고르며 마나 감지기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이 지독한 고통 속에서, 자신이 찾아야 할 ‘진실’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여정의 첫발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막막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이 길이 자신이 세상을 지키고 타인을 도울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은 채, 렌은 고통스러운 마나의 파동 속으로 자신의 감각을 던져 넣었다.

에이든 교수의 연구실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마나의 소용돌이였다. 아카데미의 다른 공간들이 정돈되고 깔끔한 마나 흐름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온갖 종류의 마나 증폭기와 정화 장치, 그리고 알 수 없는 목적으로 제작된 복잡한 실험 기구들이 뒤섞여 각기 다른 파장의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렌의 눈에는 그것들이 마치 제멋대로 흔들리는 수많은 빛의 실타래처럼 보였고, 그 실타래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파동은 고스란히 그의 신경을 긁어댔다. 보호 팔찌가 끊임없이 미약하게 진동하며 마나의 과부하를 막으려 애썼지만, 렌의 머릿속은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으로 가득 찼다. 마나 증폭기와 정화 장치들이 뿜어내는 수많은 파동들이 마치 혼란스러운 오케스트라처럼 그의 신경을 난폭하게 두드렸다. 일반인에게는 그저 안정적인 흐름일 연구실 내부의 마나가, 렌에게는 저마다 다른 음정으로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손에 든 감지기를 꽉 쥐었다. 이 고통 속에서, 에이든 교수가 말한 ‘병든 파동’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이 ‘병’이고 무엇이 ‘정상’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그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며칠이 흘렀다.

연구실 한켠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밤을 보내고, 렌은 해가 뜨는 순간부터 마나의 파동 속에 자신을 던져 넣었다. 에이든 교수는 렌에게 특정한 장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저 “느껴보게, 렌 군. 자네의 감각은 세상의 어떤 정밀 기계보다도 정확할 걸세. 어떤 것이 거슬리는지, 어떤 것이 본래의 흐름과 다른지… 자네의 온몸으로 마나의 속삭임을 들어보게.”라는 모호한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구토를 억눌러야 했고, 두통에 시달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보호 팔찌는 마나 과부하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였지만, 고통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온 신경을 마나 흐름에 집중했다. 연구실은 온갖 종류의 마나 장치들로 가득했고, 각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파동은 저마다의 색깔과 질감, 그리고 ‘소음’을 가지고 있었다. 렌은 그 소음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애썼지만, 그것은 마치 수천 개의 악기가 제멋대로 불협화음을 내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특정 악기의 음색을 골라내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교수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렌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듯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고통으로 창백했고, 은빛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연구실 한쪽에서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마나 측정 장치를 분해하고 있던 에이든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에는 다크서클이 짙었지만, 여전히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엇을 모른다는 건가, 렌 군?” 에이든 교수는 손에 든 스패너를 이리저리 돌리며 물었다.

“모든 마나가 저에게는 고통스럽습니다. 어떤 것은 격렬하게 비명을 지르고, 어떤 것은 삐걱거리며 거슬립니다. 실습실에서 제가 느꼈던 ‘병든’ 파동과 비슷한 것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귀가 너무 밝아서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렌은 자신의 손목에 감긴 보호 팔찌를 꽉 움켜쥐었다. “제가 여전히 ‘열등생’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예민할 뿐, 이 감각을 통제하거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괴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는 에테리움 아카데미에 입학한 순간부터 줄곧 열등생으로 낙인찍혔고, 그 낙인은 이제 자신의 존재를 잠식하는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에이든 교수는 렌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귀가 너무 밝아서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들린다… 아주 훌륭한 비유일세. 그렇다면 자네는 그 수많은 소리 중에서 ‘음악’을 찾아내야 하는 거야. 혼돈 속에서도 조화를 발견하고, 불협화음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읽어내는 거지.”

“하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모든 것이 저에게는 그저 고통일 뿐입니다. 균열이 느껴진다고 해도, 그것이 단순한 장치 결함인지, 아니면 제가 실습실에서 본 것과 같은… 거대한 파괴의 전조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자네는 폭풍을 막으려 할 때, 폭풍 그 자체에 온몸을 던져 넣었지. 그 행위 자체는 용감했으나… 폭풍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네. 폭풍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야. 그것은 수많은 미세한 흐름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방향성을 띠는 현상이지. 중요한 것은… 그 방향성일세.” 에이든 교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자네가 실습실에서 느꼈던 ‘틈새’는 단순히 물리적인 틈새가 아니었을 걸세. 그것은 마나 흐름의 ‘결함’이자, 동시에 ‘핵심’이었겠지. 그렇다면 지금, 이 연구실 안의 수많은 파동들 속에서… 그 ‘핵심’을 찾아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떤가?”

핵심. 렌의 뇌리에 그 단어가 박혔다. 폭풍의 핵심, 흐름의 핵심. 그는 에이든 교수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그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했다. 비명처럼 들리는 마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렌은 자신의 감각을 더욱 미세하게 쪼개어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장치들이 각기 다른 파장으로 진동했다. 어떤 마나 흐름은 날카롭게 찢어지는 듯했고, 어떤 흐름은 둔탁하게 울렸다. 렌은 그 강렬한 파동들 사이에서, 이전에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아주 희미한 ‘불협화음’을 포착했다. 그것은 마치 수천 명이 웅성거리는 시장 한복판에서, 아주 작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같았다. 마나 스톰의 격렬한 비명과는 확연히 다른, 그러나 분명히 ‘다른’ 흐름이었다. 마치 완벽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가, 아주 미세하게 음정을 벗어난 것처럼.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악기들의 연주에 섞여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침묵’과 같은 것이었다.

렌은 온몸의 신경을 그 희미한 속삭임에 집중했다. 그의 손목에 감긴 보호 팔찌가 순간 미약하게 진동했지만, 그 진동은 평소처럼 마나 과부하를 알리는 고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속삭임’에 반응하는 듯한, 미묘한 떨림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균열이었다. 실습실의 마나 스톰처럼 거대한 파괴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유기체의 미세한 혈관이 막히는 것처럼, 아주 은밀하게 흐름을 방해하는 작은 ‘얼룩’이었다. 렌은 이전에는 그저 또 다른 소음으로 치부했을 이 미세한 불협화음이, 어쩌면 자신이 찾아야 할 ‘병든 파동’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었다.

"교수님… 저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렌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이전의 절망감 대신 미약한 확신이 섞여 있었다. "마나 스톰의 비명과는 다릅니다. 훨씬… 작고, 은밀한… 불협화음입니다. 마치 숨죽인 속삭임처럼… 이 연구실 안의 마나 흐름 어딘가에… 작은 얼룩이 있습니다."

에이든 교수는 렌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래, 렌 군. 드디어 자네의 감각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군. 그렇다면 그 '얼룩'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속삭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제 우리가 파헤쳐 볼 차례일세."

렌은 고통 속에서도 눈을 뜨고 연구실 안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장치들, 복잡한 마나 흐름.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자신만이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얼룩’. 그 감각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희망인 동시에, 여전히 홀로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고독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는 자신의 보호 팔찌를 만졌다. 팔찌는 여전히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얼룩’은 분명히 그곳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연구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렌은 에이든 교수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마나의 파동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그 고통의 벽 너머에 있는 미세한 불협화음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흐릿해지며,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마나의 흐름으로 재구성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는 마치 거대한 생체 기관의 복잡한 혈관망을 들여다보는 외과의사처럼, 아카데미 전체의 마나 시스템을 자신의 감각으로 더듬어나갔다.

연구실 안에 비치된 몇몇 마나 측정 장치들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에이든 교수는 렌에게 그 장치들에서 나오는 파동과 아카데미의 전체 마나 흐름을 비교 분석하도록 요구했었다. 렌은 처음에는 막연하게 그저 ‘느끼는’ 것에 집중했지만, 에이든 교수의 난해한 질문들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마나는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하고, 때로는 병들기도 한다는 것.

렌은 팔찌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연구실 벽면에 내장된 마나 전송 라인을 따라 감각을 확장했다. 그의 마나 과민증은 마치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가에 서 있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 속에서 렌은 더욱 예민하게 미세한 소리들을 골라냈다. 이전에는 무작위적인 소음으로 들렸던 수많은 마나의 비명들 사이에서, 어떤 ‘규칙성’을 가진 흐름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방식과 흡사했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작은 균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의 건강한 마나를 오염시키며 자신과 같은 형태의 균열을 만들어냈다. 연구실 내부의 특정 마나 장치들이 내는 파동과, 아카데미 복도를 가로지르는 주요 마나 라인에서 감지되는 흐름, 그리고 심지어 교내 중앙 정원의 대형 마나 수정탑에서 나오는 파동까지, 이 모든 곳에서 동일한 ‘병든 패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오작동이 아니었다. 어떤 의도를 가진, 혹은 자연적인 치유력을 상실한 질병처럼 확산되고 있었다.

렌은 눈을 크게 떴다. 피로에 절어 충혈된 그의 눈동자에 확신이 서렸다.

"교수님… 찾았습니다." 렌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안에는 미약한 흥분이 담겨 있었다. "이건… 단순한 불협화음이 아닙니다. 이 연구실의 마나 장치들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전체의 마나 흐름 곳곳에서… 동일한 패턴의 '균열'이 감지됩니다. 마치… 병이 퍼져나가는 것처럼요."

에이든 교수는 손에 들고 있던 낡은 마나 측정 장치를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 호기심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병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병인가, 렌 군?"

"마치… 조직이 괴사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해서 눈치채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마나의 활력을 앗아가고, 그 자신은 텅 비어가는 듯한… 하지만 동시에 그 균열 자체가 다른 건강한 마나를 감염시켜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내는 식입니다. 특히, 마나 흐름의 '관절'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분배 장치들에서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에이든 교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렌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낡은 필기구가 들려 있었다. "관절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흥미롭군. 자네는 마나 스톰의 근원을 밝혀낼 핵심 단서를 찾아낸 것일세, 렌 군. 마나 스톰은 단순히 마나가 폭주하는 현상이 아니라, 어쩌면 아카데미의 마나 시스템 전체에 퍼진 '병'의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내 가설이… 자네의 감각으로 입증되는 순간이군."

렌은 에이든 교수의 칭찬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자괴감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그의 가슴 한편에서 고개를 들었다. 마나의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콰앙!’

연구실 문이 활짝 열리며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렌! 에이든 교수님! 정말 여기에 계셨군요!"

금발의 웨이브 머리를 한 세레나가 문턱에 선 채로 렌과 에이든 교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걱정과 함께, 미묘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연구실 안에 고조되었던 긴장감과 렌의 내면에서 피어났던 작은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세레나 양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에이든 교수는 예상치 못한 손님에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세레나는 렌을 똑바로 응시했다. "징계 위원회에 가지 않으시고, 교수님 연구실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렌, 정말 이게 맞는 선택이에요? 당신은 아카데미의 수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런… 곳에?" 그녀의 시선은 렌을 지나 연구실 안의 기괴한 장치들을 훑었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경멸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렌은 세레나의 직설적인 말에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제 막 자신의 감각이 ‘특별함’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보았을 뿐인데, 세레나의 말은 그 희망을 다시 ‘재능 낭비’라는 이름으로 깎아내렸다.

"세레나… 이건 재능 낭비가 아니야. 나는 여기서… 내 능력을 이해하고 있어." 렌은 차분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내가 감지하는 마나의 '병'은 아카데미 전체에 퍼져있을지도 모르는 심각한 문제의 전조일 수도 있어."

세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렌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마나의 병이라뇨? 아카데미의 마나 시스템은 완벽해요. 혹시 실습실에서의 충격 때문에 과민 반응하시는 건 아닌가요? 렌, 제 말은… 평범하게 마나 조작 실력을 키워서 정식 마법사가 되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거예요. 교수님은 특이 마나 현상만 연구하시는 분이잖아요."

‘평범하게’. 그 단어가 렌의 가슴을 꿰뚫었다. 평생을 평범해지고 싶어 했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평범함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레나의 모습에서, 아카데미의 일반적인 시선을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를 더욱 깊은 고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자신의 독특한 감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렌의 손목에 채워진 보호 팔찌가 미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진동은 더욱 강렬해졌고, 렌의 온몸을 파고드는 불길한 마나의 비명이 귓가를 때렸다. 그것은 방금 전 그가 감지했던 ‘숨죽인 속삭임’이나 ‘작은 얼룩’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선명하고 격렬한 파동이었다.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듯한, 맹렬한 고통의 외침이었다.

렌의 회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실습실에서 경험했던 마나 스톰의 전조와 흡사한 파동임을 직감했다. 아니, 그때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확장되고 있었다. 아카데미 어딘가에서, 또 다른 위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격통과 함께, 렌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세레나는 갑자기 굳어버린 렌의 표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응시했다. "렌?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그녀의 목소리는 걱정스러웠지만, 렌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모든 감각은 아카데미의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듯한 불길한 마나의 비명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비명은 빠르게 아카데미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