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진 변호사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아름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아름의 동그란 눈동자, 살짝 삐져나온 단발머리, 그리고 엉성한 듯 단정한 옷차림을 스캔하듯 훑었다. 아름은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서류철을 들여다보았다. 표지에는 ‘OBC 그룹 M&A 계약 파기 위기 보고서’라고 적혀 있었다. 사소한 문제라기엔 제목부터 거창했다.
"사소하지만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변호사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문제를 다루시는 분이신가요?" 아름이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함께 묘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유도진은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주로 기업 법무, 계약 분쟁, 지적 재산권 관련 소송을 담당합니다. 감정적인 문제보다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사건들을 처리하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절제되어 있었다.
"흐음,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니, 변호사님께서는 감정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다소 취약하신 편인가요?" 아름은 그의 말을 그대로 되받아쳤다. 그녀의 반달 눈이 가늘어지며 유도진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그의 완벽한 가면 뒤에 숨겨진 미묘한 동요를 읽어내려는 듯했다.
유도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살짝 굳어지는 듯했다. "취약하다기보다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와 합리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감정적인 요소로 인해 복잡해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건 원래 비효율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인 걸요." 아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효율적으로 정리하려 들면, 오히려 더 엉키는 법이죠. 마치 실타래를 칼로 자르려 하는 것처럼요."
유도진은 아름의 엉뚱한 비유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눈빛에는 ‘이 사람이 과연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역력했다. 아름은 그 의심을 읽어내고 빙긋 웃었다.
"자, 그럼 변호사님의 '사소하지만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유도진은 한숨을 쉬듯 숨을 고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OBC 그룹과의 M&A 계약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법적 검토와 재무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최종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었죠. 그런데 OBC 그룹의 김 회장님께서 갑자기 계약을 재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재고라니요? 어떤 이유로요?" 아름이 궁금한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유가… 황당합니다." 유도진의 목소리에 미묘한 짜증이 섞였다. "제가 미팅 자리에서 김 회장님의 딸에 대해 '나이가 너무 많아 결혼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는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아름은 눈을 깜빡였다. "네? 변호사님께서 직접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유도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살짝 높아졌다. "저는 그런 비상식적인 발언을 할 리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미혼이신 김 회장님의 따님이 계신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현재 시장 상황이 너무 고령화되어 투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령화된 시장'이라는 표현을 썼을 뿐인데, 김 회장님께서 제 말을 '고령화된 따님'으로 잘못 들으신 겁니다."
아름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재구성했다. ‘고령화된 시장’과 ‘고령화된 따님’. 발음의 유사성, 그리고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는 예민한 사안. 게다가 김 회장님은 외동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맥락 오해’와 ‘과잉 해석’의 문제였다.
"그래서 변호사님께서는 김 회장님께 직접 해명해보셨나요?" 아름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발언한 내용의 원문을 찾아 보여드리고, 당시 대화록도 확인시켜 드렸습니다. 하지만 김 회장님께서는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며 제 해명을 믿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제가 자신의 딸을 모욕하고도 발뺌하는 파렴치한으로 보고 계십니다." 유도진의 짙은 눈썹이 답답한 듯 살짝 찌푸려졌다.
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이건 논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요. 이미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으셨고, 그 상처가 불신으로 이어진 경우입니다. 변호사님께서 아무리 사실을 제시해도, 김 회장님 입장에서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겁니다. 이성적으로는 제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 계약은 파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는 제 명예를 회복하고 계약을 성사시켜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로펌 내에서도 제 입지가…." 유도진은 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읽혔다. 완벽주의자로서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강박이 느껴졌다.
아름은 그의 고민을 이해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번졌다. "결국 변호사님께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셨던 감정의 영역이 발목을 잡은 셈이네요."
유도진은 아름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완벽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 상황. 그것이 그를 이곳까지 이끌었다.
"그럼, 제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드릴까요?" 아름이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빛났다.
유도진은 잠시 망설였다. "김 회장님께 제가 직접 사과하고 오해를 풀 기회를 마련해주십시오. 물론, 제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따님께도 저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과요? 변호사님은 잘못한 게 없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못은 없지만… 오해로 인해 상대방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 부분에 대해 유감 표명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 발언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밝히면서요." 유도진은 자신의 논리적 모순을 최소화하려 애썼다.
아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그건 변호사님의 방식이고, 제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유도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소장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변호사님." 아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김 회장님은 이미 변호사님을 '딸을 모욕하고 발뺌하는 파렴치한'으로 낙인찍었습니다. 아무리 변호사님께서 논리적으로 해명하고 유감 표명을 한들, 그분께는 변호사님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더 뻔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도진의 목소리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아름은 책상 위 알록달록한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입니다. 특히 이미 부정적인 감정이 쌓인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죠. 김 회장님의 마음을 돌리려면, 변호사님께서 얼마나 '딸을 아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보여드려야 합니다."
유도진은 아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 제 오해를 푸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주 깊은 상관이 있죠!" 아름이 활짝 웃었다. 그녀의 반달 눈이 매력적으로 휘었다. "김 회장님은 변호사님께서 '딸을 모욕했다'고 오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변호사님께서 '딸을 모욕할 리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김 회장님께 '경험'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분이 직접 변호사님의 진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경험이라니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유도진의 이성적인 사고는 아름의 추상적인 설명에 혼란을 느끼는 듯했다.
"음…." 아름은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잠시 고민했다. "변호사님은 혹시 '고령화된 시장'이라는 표현을 쓸 때, 그 시장에 속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셨나요? 그분들의 입장과 감정을요?"
유도진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저는 법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발언했습니다. 시장의 트렌드와 투자 가치에 대한 분석이었죠. 개인의 감정을 고려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아름이 손뼉을 쳤다. "변호사님은 언제나 논리와 이성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시니, 김 회장님의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우신 겁니다. 제가 보기에 변호사님의 문제는 '고령화된 시장' 발언 자체보다는, 그 발언을 한 변호사님의 '태도'에서 비롯된 오해일 가능성이 큽니다."
유도진은 아름의 직설적인 평가에 살짝 기분이 상한 듯했다. "제 태도라니요? 저는 언제나 정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화에 임합니다."
"정중함과 예의는 중요하죠. 하지만 거기에 '공감'이 빠지면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대에게는요. 변호사님은 아마 김 회장님께 '내 말을 오해한 당신이 문제'라는 식의 태도로 비춰졌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변호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겠지만요." 아름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유도진은 아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김 회장이 자신의 논리적인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내심 답답함을 넘어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장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유도진은 아름의 비상식적인 접근 방식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묘한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그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아름은 책상에 두 손을 짚고 유도진에게 바싹 다가섰다. 그녀의 동그란 눈이 그의 깊은 눈매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저는 변호사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님의 '관계 재정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유도진은 어리둥절했다. "제 관계 재정비요? 그게 무슨…."
"네. 변호사님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십니다. 이성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인간적인 면에서는 엉성한 부분이 많으세요. 그래서 저는 변호사님을 '관계 재정비'할 겁니다." 아름은 마치 고장 난 기계를 고치듯 진지하게 말했다. "김 회장님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변호사님께서 먼저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관점을 통해 김 회장님께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새로운 관점…?" 유도진은 아름의 말을 곱씹었다. 그는 평생을 논리와 이성으로만 살아왔다. ‘관계 재정비’라는 말은 그의 견고한 세계관을 뒤흔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네! 그래서 제가 변호사님을 '관찰'할 겁니다." 아름이 천진난만하게 선언했다.
유도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관찰이요? 저를요?"
"네! 변호사님의 일상생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방식, 그리고 변호사님만의 감정 표현 방식까지. 모든 것을요! 변호사님께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말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진심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지 제가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김 회장님의 오해를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아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유도진은 눈을 크게 떴다. 완벽하게 통제된 자신의 일상에, 엉뚱하고 발랄한 이 여인이 침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의 흐트러짐 없는 삶에 난생 처음으로 ‘변수’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는 아름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이 비상식적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 갈등했다. 하지만 그의 냉철한 이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른 어떤 방법도 이 ‘감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관찰이라…." 유도진은 아름의 예측 불가능한 눈빛을 마주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계약은 그의 커리어에 너무나 중요했다. 그리고 이 여인은, 비록 엉뚱하지만, 그에게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다.
아름은 그의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변호사님. 제가 변호사님의 '오해'를 '필연적인 사랑'으로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유도진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사랑’이라니. 그는 단지 계약을 성사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이 여인은 첫 만남부터 그에게 거대한 오해를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심장이 아주 미세하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완벽한 일상은, 이제 이 엉뚱한 관계 재정비 소장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릴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