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는 필연 · 총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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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제 남편이, 제 남편이 제 취미를 '쓰레기 줍기'라고 오해하고 있다고요!"

한 여인이 활짝 열린 ‘관계 재정비 사무소’ 문을 통해 폭풍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름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로 의뢰인의 격정을 받아냈다. 동그란 눈이 반짝이며 상황을 빠르게 스캔했다. 밝은 갈색 단발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엉성한 듯 단정한 그녀의 옷차림은 이 공간과 묘하게 어울렸다. 서울의 번화가 이면에 자리 잡은 허름하지만 아기자기한 5층 건물, 그 2층에 위치한 이곳은 언제나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아늑한 섬 같았다. 알록달록한 메모지와 기발한 심리 도구들이 가득한 책상, 따뜻한 차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 아름은 의뢰인의 말을 끊지 않고 경청했다. 그녀는 그 어떤 복잡한 수학 공식보다 인간의 감정이 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일이었다.

"쓰레기 줍기라니요? 사모님, 정확히 어떤 취미를 말씀하시는지요?" 아름이 부드럽게 물었다.

"빈티지 피규어 수집이요! 한정판 피규어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해외 사이트를 뒤지는 건 열정이지, 왜 그걸 '쓰레기 줍기'로 오해하냐고요!"

의뢰인은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은 아내가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뒤적이고, 주말마다 정체 모를 상자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내가 이상한 취미에 빠져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는구나’라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정보 부족과 잘못된 추측으로 인한 오해’였다.

"남편분께 피규어를 직접 보여주셨나요? 그 가치에 대해 설명해보셨고요?"

"말도 마세요! '이딴 플라스틱 쪼가리가 몇십만 원이라고?' 하면서 기겁을 하더라고요! 제가 돈 낭비하는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나 봐요!"

아름은 빙긋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반달 눈을 만들었다. "그럼 남편분께 피규어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기상천외한 해결책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의뢰인이 수집한 피규어들을 전시하고, 각 피규어에 얽힌 스토리와 한정판으로서의 희귀성을 프레젠테이션하는 계획을 세웠다. 남편이 평소 존경하던 유명 피규어 컬렉터를 섭외해 증언을 얻는 것은 보너스였다. 이런 식이었다. 아름의 방식은 논리보다는 감정에, 설명보다는 경험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정으로 움직일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점심시간, 아름은 1층 카페 ‘언더스탠딩’으로 내려갔다. 고소한 커피 향이 그녀를 반겼다. 카운터에 기댄 강민준은 그녀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인상에 살짝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긴 그의 모습은 언제나 편안했다. 편안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캐주얼 복장이 그에게 잘 어울렸다.

"오늘도 대박 사건 해결 중이신가, 소장님?" 민준이 능글맞게 물었다.

"대박은 아니고, 피규어를 쓰레기로 오해하는 남편분 구제 중." 아름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를 오해할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될 것을."

민준은 아름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말했다. "그게 소장님이 필요한 이유 아니겠어? 다들 바쁘고, 자기 생각만 하느라 남의 마음 들여다볼 여유가 없으니까."

그의 말에 아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민준은 언제나 그녀의 엉뚱한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따뜻한 눈빛 속에는 그녀를 향한 굳건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아름은 그가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한 커피가 그녀의 복잡한 머리를 식혀주는 듯했다. 민준은 아름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녀의 사무소 바로 아래에서 ‘이해’라는 이름을 건 카페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그는 아름의 엉뚱함마저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아름은 그 미묘한 시선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름은 다시 사무소로 돌아와 다음 의뢰를 준비했다. 사람들의 관계는 마치 거대한 퍼즐 같았다. 조각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그림이 완성되지만, 사소한 오해로 인해 조각이 뒤틀리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그녀는 그 뒤틀린 조각을 찾아내고, 잃어버린 조각을 채워 넣는 일을 기꺼이 해왔다. 수많은 커플이 헤어질 위기를 넘기고, 가족 간의 오랜 앙금이 해소되고, 직장 동료들의 불화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아름은 자신의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달았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진정한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 그것이 아름이 꿈꾸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문득, 아름은 자신의 퍼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다. 타인의 관계는 그토록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연애는 늘 오해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의 미묘한 관계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해결사 역할을 자처해왔지만, 그녀의 감정선은 유독 둔했다. 누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그녀의 엉뚱함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아줄 진정한 파트너. 그런 존재가 과연 나타날까? 아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는 어쩌면 ‘자신’을 재정비해 줄 누군가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때, 사무소 문이 조용히 열렸다. 키가 크고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남자가 냉철한 눈빛으로 들어섰다. 완벽하게 재단된 고급스러운 수트 차림, 지적인 안경 너머의 깊은 눈매. 이마를 드러낸 올백 헤어스타일은 그의 냉철한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다. 그의 존재감은 아기자기한 사무소 분위기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남자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아름을 응시했다.

"관계 재정비 사무소, 한아름 소장님이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낮고 이성적이었다. 마치 감정이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아름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금껏 그녀가 만났던 의뢰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오해 덩어리’가 그녀의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오해는, 필연적으로 그녀의 삶을 뒤흔들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묘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남자는 손에 든 서류철을 아름의 책상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저는 유도진 변호사입니다. 제게… 아주 사소하지만,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름은 남자의 차가운 눈빛과 서류철을 번갈아 보았다. 사소하지만 이성적이지 않은 문제라니.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진짜 게임이 시작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