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 연가 · 총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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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모니터가 지독한 빛을 뿜어냈다.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시스템 오류. 치명적인 버그. 개발자 리아나, 이대로는 안 돼. 나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 만든 이 게임, ‘별빛 속 연가’가 고작 이런 결말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코드 한 줄, 대사 한 토막에 영혼을 불어넣었지만, 결국 내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별빛 속 연가’는 단순한 데이팅 시뮬레이션이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꿈꾸는 로맨스를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는 혁신적인 가상현실 게임. 최첨단 AI 기술로 구현된 등장인물들은 놀랍도록 섬세한 감정과 자율적인 사고 능력을 지녔다.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내가 창조한 세상, 세레니티 아카데미의 학생들, 교수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세 명의 공략 대상 남주들. 황태자 카이덴, 천재 마법사 이안, 학생회장 아서.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베타 테스트 버전. 곳곳에 숨어 있는 시스템 오류와 미구현된 설정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원작 여주인공 엘리시아가 끝내 그 누구와도 이어지지 못하고 파멸적인 ‘배드 엔딩’을 맞이할 확률이 너무나 높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결말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이 게임은 나의 자식과 같았다. 내 모든 꿈과 열정이 담겨 있었다. 이대로 망하게 둘 수는 없었다. 내 손으로 만든 세계가 끔찍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옥죄어 왔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고통받는 엔딩을 맞이하게 둘 수는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이대로 잠들면 안 되는데. 엘리시아를, 내 아이들을, 이 세레니티 아카데미를 지켜야 하는데. 과연 내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본 것은, 모니터 속에서 붉게 깜빡이던 ‘종료’ 버튼이었다. 그리고 나의 의식은 한없이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찔한 감각. 몸의 모든 세포가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생생한, 존재의 소멸과 재탄생의 순간 같았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뺨을 스쳤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천장이 아닌 낯선 공간에 있었다.

푹신한 침대, 새하얀 시트.

창밖으로 쏟아지는 별빛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풍경을 그렸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세레니티 아카데미.

내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설마. 내가 만든 게임 속으로 들어왔다고? 말도 안 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낯선 감각이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부드러운 피부, 가늘어진 손목. 거울을 찾았다.

거울 속에는 낯선 소녀가 서 있었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 평균적인 키와 체형.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

이건… 내가 설정했던 ‘테스트용 NPC’의 외형이었다.

리아나. 나의 이름이기도 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저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내가 만든 게임의 세계로 빙의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큰 충격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테스트용 NPC’라는 점이었다.

시스템은 나에게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았다. 개발자로서의 특권? 버그 수정 능력?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세계의 한낱 부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스템 오류: 캐릭터 권한 없음. 목표: 원작 여주인공 엘리시아의 해피 엔딩을 지원할 것."

귓가에 울리는 기계적인 목소리. 내가 설정해두었던 시스템 알림이었다.

이제 나는 개발자가 아니라, 내 게임 속에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플레이어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가장 하찮은 존재로.

창밖으로 보이는 세레니티 아카데미의 전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고풍스러운 건축물들, 신비로운 마법 장치들, 광활한 숲과 호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치명적인 버그와 파멸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빙의한 시점은 게임의 초반부였다.

원작 여주인공 엘리시아는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주들과의 로맨스 라인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할 때였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내가 이곳에 존재함으로써,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스토리가 흘러갈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빠르게 돌아갔다. 개발자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이 상황을 분석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엘리시아를 돕고,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엘리시아를 찾는 것이었다.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가 남주들과 원활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내가 만든 게임의 ‘정상적인’ 흐름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의 존재 자체가 이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버그’였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평생을 컴퓨터 화면 앞에서 보낸 개발자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비명보다도 솔직한 감정 표현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든 지옥에 갇힌 꼴이었다.

그때였다.

방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리아나, 아직도 자고 있어? 오늘 중요한 실습이 있는 날이라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이곳에서의 첫 번째 사건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버그 투성이 로맨스.

나는 과연 이 게임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을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내가 설계한 완벽한 로맨스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버그와 오류로 점철된, 미완성 게임의 끔찍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현실 속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로 던져졌다.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