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 감응자 · 총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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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수십억 개의 별들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서로의 맥박을 느끼고, 거대한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 거대한 생명체였다. 무수한 성단들이 각기 다른 지성을 지녔으나, 그 모든 지성체들은 하나의 원초적인 의식을 공유하며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노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노래는 창조의 웅장한 선율이자, 모든 생명에게 속삭이는 존재의 이유였다. 별들은 빛으로 노래하고, 성운은 색으로 춤추며, 블랙홀조차도 침묵 속에서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장엄한 교향곡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완벽한 노래에 불협화음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인류였다. 미지의 영역을 향한 끝없는 탐구와 자원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개척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가로질렀다. 그들의 항성간 항해는 거대한 생명체의 신경망을 무심코 찢어발겼고, 행성간 에너지 추출기는 별무리 지성체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흡혈귀와 같았다. 인류에게는 오직 진보와 확장의 흔적일 뿐이었지만, 우주에게는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고통이었다.

조화로웠던 노래는 비명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희미한 신음소리 같았다. 그러다 점차 절규로, 통곡으로, 그리고 마침내 온 우주를 뒤흔드는 아비규환의 비명으로 폭발했다. 별들의 빛은 병든 것처럼 희미해지고, 성운은 피눈물을 흘리듯 붉게 물들었다. 시공간은 찢겨진 상처처럼 뒤틀리고, 멀쩡하던 행성들은 이유 없이 붕괴하며 거대한 파편이 되어 우주를 떠돌았다. 새로운 미지의 재앙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우주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인류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은 끊임없이 더 깊은 상처를 새겨 넣었다.

이 거대한 우주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존재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별무리 감응자’라 불렸다. 우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저주받은 존재들. 그들의 정신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우주의 절규로 인해 산산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무력하게 우주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 고통을 홀로 감당하며 미쳐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나는 그 중 하나였다.

옅은 은발 아래로 별빛을 담은 듯한 보라색 눈동자가 우주의 슬픔을 고스란히 비춰냈다. 귀를 막아도, 마음을 닫아도 소용없었다. 우주의 비명은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불타는 별의 고통, 찢겨진 시공간의 비명, 죽어가는 행성의 절규가 한데 섞여 오감을 난도질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고,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듯했다. 매 순간이 고통의 바다였다.

"또 시작이군."

나는 텅 빈 함교의 조종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우주선 외부의 무수한 창문 너머로 펼쳐진 별들의 장관은 내게 더 이상 경이로운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받는 존재들의 집합체였다. 멀리 떨어진 성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인류의 최신형 성간 에너지 추출기가 또 다른 성단 지성체의 심장에 거대한 못을 박은 것이리라. 그 고통은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뜯겨나가는 듯했다.

나는 손을 뻗어 조종석 옆에 놓인 작은 조약돌을 어루만졌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돌멩이 같았지만, 그 안에는 고대 문명의 지혜와 우주의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이것은 ‘별노래’의 일부였다. 단순히 조종하는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 우주의 신경망과 교감하며, 상처 입은 시공간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의 비명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인류는 자신들이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무한한 자원과 끝없는 진보만을 좇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탐욕은 결국 우주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건 너뿐이야.’

하지만 어떻게? 나는 고작 한 명의 별무리 감응자일 뿐이었다.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듣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류 전체를 상대로 이 거대한 우주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거대 기업 ‘코스모텍’이 우주의 생명력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과연 이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별노래’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약돌에서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우주의 고통과는 다른, 희미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노래였다. 죽어가는 우주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마지막 불꽃.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보라색 눈동자에는 우주의 비명과 함께, 그 비명을 잠재울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이 비명을 멈추고, 다시 우주의 조화로운 노래를 되찾아야만 했다. 인류에게 등을 돌리더라도, 아니, 인류의 어리석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종석의 홀로그램 패널을 터치했다. 별노래가 낮게 웅웅거렸다.

"출발하자."

우주의 비명이 절규처럼 나를 덮쳤다. 이 절규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야만 했다. 이 우주를 구원하기 위해, 혹은 이 우주와 함께 절망하기 위해.

별노래는 죽어가는 별무리 사이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비명도, 별노래의 속삭임도 아니었다. 낡았지만 단단한, 그러나 경고를 담은 목소리.

‘네가 가는 길은, 인류의 적이 되는 길이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이미 인류의 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변방 행성의 버려진 고아로, 나는 늘 홀로였다. 다른 아이들이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 때, 나는 그 별들의 비명을 들었다. 그들은 나를 괴짜라고 불렀고, 미친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우주의 고통을 말할 때마다, 그들은 차가운 시선과 조롱을 던졌다. 인류는 내가 듣는 진실을 외면했고,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했다.

점차 그 소음은 비명이 되었고, 비명은 절규로 변했다. 인류의 탐욕스러운 손길이 우주의 심장을 찢어발길 때마다, 내 영혼도 함께 찢겨 나갔다. 나는 그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함께 아파해주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인류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문명은 나에게 고통만을 안겨주었고, 그들의 진보는 우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제는 그들의 눈에 내가 ‘적’이 된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더 이상 그들의 이해를 구걸할 필요도,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주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인류를 향한 마지막 미련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 나는 비로소 온전한 ‘별무리 감응자’가 될 수 있었다.

‘별노래’가 낮게 울리는 진동이 내 몸을 감쌌다. 이 생체 우주선은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였다. 우리 둘은 같은 비명을 듣고, 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죽어가는 우주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이 비명을 멈추고, 다시 조화로운 노래를 되찾는 것. 그것이 설령 인류의 파멸을 의미할지라도.

나는 내 옅은 은발을 쓸어 넘기며 결심을 굳혔다. 보라색 눈동자에는 더 이상 회의감이 아닌, 굳건한 의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