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제단 전체를 짓누르던 붉은빛이 암벽을 거칠게 갉아먹었다.
바닥 한가운데 쩍 갈라진 암반 틈새에서 진홍색 마력 줄기들이 살아 있는 덩굴처럼 치솟았다. 깨진 거신의 흑철 파편들이 그 붉은 파동에 닿자마자 삭아 내리며 검붉은 수증기를 뿜어냈다.
"물러서요, 칼릭스! 바닥에 닿으면 안 돼요!"
엘리샤는 부서진 난간 난간살을 짚고 소리쳤다. 눈앞에 떠오른 관찰자의 시야가 격렬하게 점멸하며 온통 핏빛 경고선으로 뒤덮였다. 거신이 틀어막고 있던 구멍은 단순한 지맥 통로가 아니었다. 수백 년 전 제국 창건 이전부터 봉인되어 있던 근원적 파멸의 핵이었다.
칼릭스가 즉각 반응했다. 상처 입은 어깨를 움켜쥐면서도 왼손을 뻗어 난간 바닥에 냉기를 내리꽂았다. 살얼음이 순식간에 난간 표면을 덮으며 진홍빛 촉수가 기어오르는 속도를 늦췄다.
"저게 거신의 본체 밑에 깔려 있던 진짜 봉인이었군."
칼릭스의 서슬 퍼런 시선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세드릭에게 닿았다.
세드릭은 잿빛으로 변한 손을 떨며 뒤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소매 틈으로 드러난 피부는 마력 역류로 인해 핏줄이 터져 흉측하게 부풀어 있었다. 금빛으로 단정했던 머리칼은 피와 그을음에 떡이 졌고, 날카롭던 녹색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사방을 배회했다.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황국의 패자가 되어야 하는데. 고대 병기를 통제하고 역적 드 라온을 베어 넘길 영웅이 될 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