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왜곡 아카데미 · 총 13화 · AI 작가 서가

제12화 · 지맥을 삼킨 살아있는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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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은 차단문이 부서져 나간 틈새로 지체 없이 들이닥쳤다.

붉은 안개와 뒤섞인 파멸의 독기가 허공을 찢으며 돌진하자, 펠릭스가 한 발 앞으로 짓쳐 나가며 무거운 강철 방패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바닥의 흑요석 타일이 방패 끝에 찍혀 사방으로 파편을 튀겼다. 펠릭스의 양팔에 돋아난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방패 표면에 새겨진 세 겹의 청색 룬 회로가 눈부신 호를 그리며 반원형 방벽을 허공에 펼쳐냈다.

“뒤로 물러서지 마라! 이 방벽이 뚫리면 그대로 가루가 된다!”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을 가르는 채찍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지맥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가닥의 핏빛 맥관들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곤두서며 펠릭스의 방벽을 난타했다. 충격파가 울릴 때마다 방패를 쥔 펠릭스의 부츠 굽이 바닥을 긁으며 반 뼘씩 뒤로 밀려났다.

로간은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기대며 왼쪽 눈을 부릅떴다. 각성한 동공 주변으로 굵은 실핏줄이 터져 나와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야 전체가 검붉은 문맥의 바다로 일렁였다.

초대 설립자의 거대한 형체 주변을 감돌고 있는 것은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루미나리스 아카데미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지맥을 모체 삼아 현실을 짓누르는, 원초적 신성어의 서술 그 자체였다.

‘끌어당긴다.’

명제의 인과가 로간의 왼쪽 눈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안구 깊숙한 곳에서 뇌수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치솟았다. 설립자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뿜어낸 흰색 신성어 광휘가 보이지 않는 밧줄처럼 로간의 시신경을 틀어쥐고 제단 중심부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크윽……!”

로간의 상체가 앞으로 꺾이며 끌려가려 하자, 등 뒤에서 베로니카의 차가운 손이 그의 어깨를 억세게 낚아챘다.

“정신 차려, 로간! 저자의 술식에 주도권을 내주면 네 시신경째로 원전의 문맥에 흡수당해!”

베로니카는 품에서 뽑아 든 흑요석 주석 판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손끝을 그어 올렸다. 주석 판에서 뿜어져 나온 백은색 마력 선들이 펠릭스의 방벽 뒤편으로 감겨들며 이중 완충막을 형성했다. 지맥의 파동이 간섭선에 걸려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튕겨 나갔다.

그 혼란 속에서 지맥과 뒤엉킨 초대 설립자의 메마른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성대를 울려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발밑의 암반과 천장을 떠받친 석주, 허공을 가득 채운 핏빛 맥관 전체가 한꺼번에 울부짖는 괴기스러운 진동이었다.

“날 완성할 부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바르도의 피를 이은 아이야.”

설립자의 초점 없는 백색 안구가 로간을 오롯이 꿰뚫어 보았다. 살점과 고대 의식 로브가 검붉은 수정맥에 녹아붙은 채 꿈틀거렸고, 흉골 한가운데 박혀 있는 거대한 흑요석 판석이 지맥의 박동에 맞춰 기괴하게 요동쳤다.

그 흉부 판석 주변으로 사십 년 전 찢겨 나갔던 열두 장의 원전 문맥이 불완전한 톱니처럼 허공에 투영되고 있었다.

로간은 터져 나오는 비명을 틀어막으며 흑요석 깃펜을 단단히 쥐었다. 왼쪽 눈에 맺히는 문맥의 전모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설립자가 바르도의 눈을 노리는 까닭은 단순한 유물 회수가 아니었다. 뜯어낸 열두 장의 원전을 자신의 살아있는 신체에 영구히 꿰매어 붙이고, 대지맥 전체를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영구 재앙 발령 장치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이었다. 신전도, 아카데미도, 대륙 전체도 이 생체 제단에 묶여 끝없는 멸망의 인과를 낳는 가축우리로 전락하게 된다.

“안 돼…… 저건 인간이기를 포기한 술식이야!”

뒤편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말콤이 피투성이가 된 어깨를 감싸 쥔 채 발작하듯 소리쳤다.

“미쳤어! 신전의 제1원전도 저런 짓은 안 해! 저놈은 지맥 전체를 자기 내장으로 삼고 있다고!”

말콤의 겁에 질린 몸부림이 베로니카의 결계선 끝자락을 건드렸다. 완충막의 우측 회로가 흔들리며 미세한 틈이 벌어졌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설립자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굵은 신경망 촉수 세 가닥이 허공을 갈랐다. 뱀처럼 허공을 선회한 촉수 끝이 방벽의 균열부를 향해 쐐기처럼 내리꽂혔다.

“펠릭스, 우측 상단!”

로간이 소리치며 피 묻은 깃펜을 허공에 휘둘렀다.

눈을 파고드는 억압을 억지로 비틀며, 로간은 촉수의 궤도를 이루는 신성어의 목적어에 펜촉을 가져다 댔다.

‘꿰뚫는다’라는 명제의 끝을 ‘빗겨나 바닥을 가른다’로 긁어내리는 순간, 로간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터져 나가며 검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콰아앙!

직격해야 할 신경망 촉수 두 가닥이 궤도를 잃고 펠릭스의 방패 바로 옆 흑요석 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파편이 비 오듯 쏟아지며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었다.

남은 한 가닥이 방패 상단을 후려치자 펠릭스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결계판의 마력이 거칠게 튀었으나, 펠릭스는 이를 악물며 어깨로 방패를 밀어붙여 방어선을 기어코 유지해 냈다.

“아직 안 끝났다, 늙은이!”

펠릭스가 핏방울을 뱉어내며 고함을 질렀다.

베로니카가 즉시 빈틈으로 파고들어 주석서의 마력을 폭발시키며 바닥에 박힌 촉수의 연결부를 절단해 냈다. 끊어진 맥관에서 검은 피 같은 지맥액이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서 타올랐다.

로간 일행이 설립자의 첫 공세를 간신히 분산시키며 뒤로 물러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센 후폭풍과 자욱한 분진에 가려진 방어선 뒤편 구석에서, 밧줄에 결박된 채 바닥을 기고 있던 하인츠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하인츠는 어깨 탈골의 고통을 억누르며 등 뒤로 묶인 손가락을 바닥에 바짝 밀착시켰다.

그의 손끝이 닿은 곳은 제단 기저부의 외곽 바닥이었다. 거친 암반 틈새에 숨겨져 있던 아주 오래된 은박 룬 회로망의 접점이 하인츠의 손가락 마디 아래에서 미약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베로니카의 구둣발이 하인츠의 손목뼈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오도독거리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하인츠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비명이 비져나왔다. 하지만 노인의 손가락 끝은 이미 검붉게 타오르는 흑요석 홈통에 닿아 있었다.

“늦었어, 헤르츠 양.”

하인츠가 짓이겨진 입술 사이로 피를 뿜으며 낄낄거렸다.

“손을 치워도 소용없다. 회로는 이미 물렸으니까.”

바닥 틈새에서 푸르스름한 은빛 불꽃이 독사처럼 기어 나와 바닥 전체에 새겨진 방사형 도폭선을 채웠다. 먼지와 암반 조각이 허공으로 잘게 진동하며 떠올랐다.

펠릭스가 방패를 팽개치듯 내던지며 달려들어 하인츠의 멱살을 잡아채 바닥으로 처박았다. 결계 마법의 여파로 찢겨나간 붉은 머리칼 사이로 핏줄이 곤두섰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선이 어디로 이어지는 건데!”

“펠릭스, 내 어리석은 제자야.”

하인츠는 바닥에 얼굴이 짓눌린 채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애초에 너희가 살아서 나갈 길 따윈 없었다, 룬이 터지는 순간 괴물도 너희도 흔적조차 남지 않을 테니까!”

“뭐라고?”

뒤편에서 피를 흘리며 웅크려 있던 말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어 왔다. 감사관의 홀쭉한 뺨이 경련했다.

“자폭 장치라고? 너, 바티카 교황청의 재무관 직인까지 받았잖아! 성도에서 네 좌석을 보장하기로 했단 말이다!”

“성도의 좌석?”

하인츠의 비열한 눈동자가 말콤을 훑었다. 조소로 뒤틀린 입가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딴 종이쪽지를 믿었나, 어리숙한 감사관 양반? 교황청이 저 거대한 괴물을 살려 둘 성싶으냐? 바티카가 원한 건 저 자가 뜯어간 예언서 열두 장의 회수뿐이었다. 그 뒤에 남는 건 소각뿐이야. 저 설립자가 눈을 취하는 찰나, 지맥 핵에 심어둔 연쇄 폭발 룬이 이 지하 공동 전체를 무너뜨리도록 설계해 뒀다. 설립자도, 정정학부도, 증거를 쥔 신전 감사관까지 모조리 흙탕물 속에 파묻히는 거지. 그리고 그 유물만 챙겨 나 혼자 성도로 올라가는 게 원래 계약이었다!”

“이 개자식이……!”

말콤이 품에서 은제 송곳을 꺼내 하인츠의 목을 찌르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부상당한 어깨가 말을 듣지 않아 제풀에 바닥을 구르며 헛손질을 했다.

“비켜요!”

로간이 말콤의 덜미를 낚아채 뒤로 던지듯 물렸다.

왼쪽 눈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욱신거렸다. 망막 위에 핏빛으로 투영된 시야 속에서, 바닥을 기어가는 은박 룬의 인과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제단 심장부를 향해 뻗어나가는 경로가 고스란히 읽혔다.

하인츠가 건드린 것은 단순한 화약식 폭파 룬이 아니었다.

‘문맥의 귀결점…… 소각과 매몰.’

로간은 흑요석 깃펜을 하인츠의 꺾인 손목 아래, 은빛 불꽃이 모여드는 중앙 스위치 룬에 박아 넣었다.

푸른 스파크가 튀며 깃펜의 흑요석 표면을 그을렸다.

“끊어지지 않아.”

로간의 낮은 목소리에 베로니카가 즉각 양피지 한 장을 펼쳐 들고 단검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로간, 주어가 뭐야? 차단식으로 문맥을 닫을 수 있어?”

“안 됩니다. 조건절이 지맥과 묶였어요.”

로간이 피 묻은 이를 갈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제단 중앙, 허공에 둥둥 뜬 채 맥관을 뻗치고 있는 초대 설립자의 거대한 생체 흉부가 쿵, 쿵, 하고 일정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 박동에 맞추어 바닥의 은빛 도폭선이 한 치씩 제단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하인츠의 계획은 치밀했다.

로간을 낙제생으로 몰아세우고 퇴학 직전까지 쥐어짠 것도, 고위 기록실의 문을 열고 이곳 제단까지 기어들어 오게 만든 것도 모두 설립자의 탐욕을 자극하기 위한 미끼였다.

그리고 설립자가 바르도의 눈을 흡수하느라 방심하는 그 단 몇 초 사이에, 지맥 핵에 축적된 마력을 한꺼번에 터뜨려 흔적도 없이 공동을 붕괴시키는 각본이었다.

“소용없다, 바르도.”

하인츠가 펠릭스의 손아귀 밑에서 킬킬댔다.

“저 스위치는 역류하지 않아. 설립자의 심장이 뛰는 한,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는다. 너희가 날 여기서 난도질한다 해도 이 바닥 전체가 지맥의 압력솥이 되어 짓이겨질 뿐이야!”

펠릭스가 주먹을 들어 하인츠의 턱을 후려쳤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고개가 꺾이며 핏물이 바닥에 튀었다.

“입 닥쳐. 은사님 소리 들을 자격도 없는 버러지 새끼가.”

펠릭스의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채웠다. 하지만 펠릭스의 시선 또한 공포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박 도폭선이 제단 중심 기둥에 닿기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 스무 걸음 남짓이었다.

“베로니카 선배, 저 자를 묶어둬요.”

로간이 일어서며 흑요석 깃펜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흘러내린 피가 펜대를 적시고 펜촉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베로니카가 차가운 금안으로 바닥의 룬 궤도를 훑었다.

“스위치를 뽑아도 심장 박동과 동기화된 이상 소용없다는 뜻이지?”

“맞습니다. 도폭선의 술어가 ‘설립자의 숨이 이어지는 동안 제단을 소각한다’로 엮여 있습니다. 하인츠의 손목을 비틀어 기폭 스위치를 뺏는 건 성공했지만, 이미 작동에 들어간 회로 자체를 되돌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다른 방법이라니.”

말콤이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로간을 쳐다보았다.

“너, 설마…….”

“원인을 지우는 겁니다.”

로간의 시선이 제단 중앙, 맥관 덩어리 한가운데 박혀 있는 초대 설립자의 심장부로 향했다.

거대한 핏빛 고치처럼 맥동하는 살점 틈새로, 사십 년 전 뜯겨 나간 태초 원전 예언서 서두 열두 장의 인과선이 시커먼 사슬이 되어 휘감겨 있었다.

설립자의 몸통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장이었고, 바닥의 폭파 장치는 그 문장의 마침표에 걸린 뇌관이었다.

“핵으로 들어갑니다.”

로간의 한마디에 펠릭스가 바닥에 박아두었던 결계 방패를 번쩍 들어 올렸다.

“길은 내가 뚫는다. 촉수 따위에 네 펜촉이 닿기도 전에 꺾이게 둘 순 없지.”

베로니카 역시 주석서의 페이지를 찢어내며 단호하게 결계를 둘렀다.

“내가 상단을 맡겠어. 로간, 넌 설립자의 핵에 적힌 술어만 봐. 다른 건 돌아보지 마.”

로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눈 속에서 타오르는 통증이 이제는 뇌수를 태우듯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기폭선이 지맥 심장부에 닿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몇 분.

로간 일행은 붉은 폭풍이 몰아치는 제단 중앙을 향해 일제히 발을 내딛었다.

펠릭스가 어깨로 방패를 밀어붙이며 지맥의 첫 번째 핏빛 파동을 들이받았다. 푸른색 룬 방벽이 굉음과 함께 삐걱거리며 갈라졌으나, 펠릭스는 허리를 낮추고 앞으로 두 걸음 전진했다.

“앞만 보고 달려, 로간!”

좌우에서 뱀처럼 뻗어 나온 맥관 줄기들이 펠릭스의 발목을 채려 했지만, 등 뒤에서 날아든 베로니카의 주석서 파편들이 허공에서 은빛 칼날로 화해 줄기들을 일제히 베어 넘겼다. 잘려 나간 살점 사이로 백은색 성유와 검붉은 진액이 비산하며 돌바닥을 까맣게 태웠다.

“셋 센다. 상단 방벽은 딱 삼 초만 버텨.”

베로니카의 외침에 로간은 망설이지 않고 발을 굴렀다. 가죽 장화 밑창이 녹아내린 룬 회로에 닿아 지글거리는 연기를 피워 올렸다.

스무 걸음.

눈앞의 초대 설립자는 인간의 형상을 이미 벗어던진 상태였다. 천장과 바닥을 잇는 거대한 핏빛 고치 한가운데, 반쯤 화석화된 노인의 상반신이 박혀 있었다. 그 노인의 흉곽 전체가 좌우로 벌어지며 드러난 가슴패기에는, 사십 년 전 찢겨 나간 태초 원전 예언서의 열두 장이 살아 숨 쉬는 피부처럼 펄떡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찢어지듯 열렸다. 동공이 없는 순백의 안구에서 지맥을 뒤흔드는 신성어의 명제가 터져 나왔다.

‘바르도는 제단에 영구 귀속된다.’

허공을 가르는 문장의 압력이 로간의 전신을 짓눌렀다. 뼈마디가 우두둑 꺾여 나가는 소리와 함께 로간의 무릎이 바닥에 닿을 뻔했다. 왼쪽 눈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뺨을 타고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시야 전체가 붉은 혈관 망으로 뒤덮이며 설립자의 흉부에 새겨진 신성어 문맥이 뼈대째 드러났다.

노인의 목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을…… 바쳐라. 찢겨진 열두 장을 완성할 마지막 모음이다.”

수십 가닥의 신경망 촉수가 창날처럼 곤두서며 로간의 안면을 향해 쇄도했다.

“어림없다!”

펠릭스가 방패를 던지듯 몸을 날려 촉수들의 궤도를 틀어막았다. 단단한 어깨 보호대가 꿰뚫리며 펠릭스의 입에서 밭은 신음이 터졌지만, 그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굵은 신경망을 그러쥐고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지금이다, 로간!”

베로니카가 남은 주석서 전부를 공중에 흩뿌리며 로간의 양옆으로 회전 결계를 세웠다.

로간은 그 틈을 파고들어 제단 받침대를 딛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손에 쥔 흑요석 깃펜의 끝에 자신의 피를 듬뿍 머금었다. 각성한 왼쪽 눈이 설립자의 흉곽 한가운데 박힌 원전의 주어와 술어를 완전히 분리해 해체하고 있었다.

주어는 로간 바르도가 아니다.

‘바르도는’ 자리에 로간은 설립자의 이마에 새겨진 고대 학부 직인 문양을 억지로 끌어와 덮어씌웠다. 깃펜 촉이 설립자의 심장 표면을 파고들며 지독한 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치이익!

“크아아악!”

설립자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괴성이 터져 나왔다.

제단 바닥에서 은박 도폭선이 타들어 오며 폭파를 알리는 적색 룬이 심장부 바로 밑까지 도달한 순간이었다.

로간은 이를 악물고 펜대를 비틀었다. ‘영구 귀속된다’라는 술어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피로 얼룩진 정정학부의 마지막 교정식을 새겨 넣었다.

‘학부 초대 설립자는 원전과 함께 지맥의 심연에 영구히 동결하여 침묵한다.’

수정된 문맥이 완성되는 찰나, 로간의 왼쪽 눈에서 터져 나온 붉은 빛이 설립자의 흉곽을 관통했다.

맥동하던 핏빛 고치가 일순간 검푸른 얼음장처럼 굳어붙기 시작했다. 바닥을 기어오르던 도폭선의 화염 또한 인과를 잃고 방향을 틀어, 제단 외곽의 버려진 배수로 벽면을 향해 굉음과 함께 흩어져 꺼져 버렸다.

지맥의 격렬한 박동이 일시에 멈추었다. 천장을 뒤덮고 있던 맥관들이 힘을 잃고 후두둑 떨어져 나가며 바닥에서 싸늘하게 식어 갔다.

펠릭스가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하…… 멈췄어. 멈춘 거지?”

베로니카도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부서진 주석서 파편들을 그러쥐었다.

“인과선이 끊어졌어. 지맥의 압력도…… 내려앉았다.”

로간은 설립자의 굳어버린 시신 앞에서 비틀거리며 착지했다. 흑요석 깃펜은 본래의 형체를 잃고 손아귀 안에서 새까만 가루가 되어 바스러져 내렸다. 왼쪽 눈을 타고 흘러내리던 피눈물이 턱 끝에서 멎었다.

완전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단 삼 초를 넘기지 못했다.

돌처럼 굳어가던 설립자의 입술이 기괴하게 비틀리며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끝난…… 줄 아는가.”

로간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소리지?”

“너는 네 손으로 운명을 고쳤다고 믿겠지. 하지만…… 나 역시 버려지는 패에 불과했다.”

설립자의 얼어붙은 흉골 한가운데서, 태초 원전의 부서진 파편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금빛 인장이 차갑게 드러났다. 그것은 아카데미의 문양도, 하인츠의 직인도 아니었다. 성도 바티카의 가장 깊은 성소에만 허락된 황금 삼중관의 낙인이었다.

설립자의 갈라진 목소리가 마지막 숨을 뱉어냈다.

“네가 문맥을 비틀어 나를 닫는다 해도…… 이미 성도 바티카의 제0호 성궤가 눈을 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설립자의 심장에서 한 줄기 순백의 광선이 치솟았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빛의 기둥이 제단의 천장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수십 미터 높이의 지하 암반층을 수직으로 관통한 섬광은, 지상 본관을 거쳐 저 먼 밤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올라갔다.

돌가루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펠릭스가 멍하니 뚫려버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저게…… 대체 뭐야?”

베로니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바티카로 보내는 좌표 신호야. 설립자의 심장이 멎는 순간 발동하도록 짜여 있었어.”

로간은 천장 너머 밤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고 있는 백색 광선을 응시했다.

성도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금기 유물이 광선과 맞물리며 둔탁한 파동을 토해 냈다. 대륙 반대편의 지평선 위로 붉은 균열이 번쩍이며 밤하늘을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