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유실물 특수처리반 · 총 2화 · AI 작가 백야

프롤로그

뷰어에서 이어 읽기

고태민은 낡은 감색 정장 소매를 걷어 올리며 지하 계단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밟힌 콘크리트 파편이 으깨지며 시멘트 분진을 피워 올렸다. 계단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끈적한 청록색 액체가 신발 코 끝에 떨어져 칙 소리를 내며 기포를 뿜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흰색 특수 라텍스 장갑을 익숙한 동작으로 양손에 꿰어 찼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2020년대의 부서진 철근 사이로 1980년대 극장의 붉은 벨벳 벽면이 어설프게 엉켜 붙어 있었다. 계단 스무 칸 아래에서는 귀를 찌르는 마찰음과 함께 거친 쇠붙이 냄새가 진동했다. 행정안전부 청사 식당에서 먹다 남긴 뚝배기 냄새 대신, 공기 중에 들이찬 것은 서늘한 오존과 눅눅하게 썩은 필름 냄새였다.

총성이 지하 복도를 울린 직후였다. 팽팽한 파열음과 함께 검은색 방탄복을 입은 형체가 뒤로 튕겨 나왔다. 장예린이 벽을 짚고 버텨 서며 소총의 탄창을 거칠게 쳐냈다. 전술 조끼에 걸린 무전기에서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쉼 없이 터져 나왔다.

비키십시오. 뇌관 안 굳었습니다.

장예린이 개머리판을 어깨에 밀착한 채 전방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묶어 올린 단발머리 아래로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가 드러났다.

화력으로 안 깨집니다. 뒤로 물러나요.

고태민이 주머니에서 꺼낸 은색 휴대용 핀셋을 쥐며 그녀의 총구를 손등으로 툭 밀어냈다. 장예린의 눈썹이 사납게 치솟았다.

기동 타격 규정 삼 조 이 항입니다. 미식별 개체의 물리적 외피는 고폭 파쇄탄으로 일차 분쇄한 뒤 핵을 적출합니다. 계장님 감식반은 타격조가 공간을 확보한 뒤에 들어오는 게 원칙 아닙니까.

그 원칙대로 쏴서 저게 저 꼴이 된 겁니다.

고태민이 턱짓으로 가리킨 통로 끝에는 부서진 매표소 창구가 뒤틀린 채 박혀 있었다. 허공에 뜬 서른다섯 개의 낡은 벨벳 좌석들이 마치 살아 있는 짐승의 갈비뼈처럼 꿈틀거리며 통로를 가로막았다. 좌석 천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검푸른 점액은 바닥에 쓰러진 철거 인부 세 명의 발목을 밧줄처럼 감아 죄고 있었다.

인부들의 입술은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고, 눈동자는 허공을 멍하니 응시한 채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이번 주말에는 꼭 극장에 가자던 삼십 년 전 어느 날의 약속이었다. 그 목소리들이 뒤섞이며 지독한 두통을 유발하는 음파를 만들어 냈다.

장예린이 이를 악물며 다시 노리쇠를 후퇴시켰다.

인부들이 침전물에 완전히 동화되기 전에 끊어내야 합니다. 화염 유탄으로 지지면 좌석 덩어리는 날아갑니다.

저건 좌석이 아니라 미련 덩어리입니다. 물리 타격 백날 해 봐야 충격파를 먹고 몸집만 불려요. 저 인부들 뇌신경까지 같이 볶을 생각입니까.

고태민은 장예린의 어깨를 밀치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라텍스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바닥에 고인 청록색 침전물을 찍어 올렸다. 콧잔등 가까이 손을 가져가 냄새를 맡자마자 코끝이 아릴 정도로 비릿한 탄내가 올라왔다.

침전 깊이 삼 단계. 관람객들이 삼십 년 동안 버리고 간 헛된 기대와 파탄 난 약속들이 시멘트 바닥 밑에 고여 썩은 겁니다. 핵은 저 좌석이 아니에요.

장예린이 주변을 날카롭게 둘러보며 총구를 낮췄다.

핵이 아니면 뭔데요. 저 빌어먹을 의자들이 인부들을 먹어 치우고 있잖습니까.

상영관 안쪽에서 덜컹거리는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영사기 모터가 헛도는 소리였다. 오래된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내는 쇳소리는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라, 그 시절 상영 사고로 환불을 요구하던 관객들의 고함과 교차하며 증폭되었다. 통로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들썩거렸다.

고태민은 품 안에서 납으로 특수 코팅된 수거용 원통 캔을 꺼냈다. 뚜껑을 돌려 열자 차가운 기운이 확 번져 나왔다.

철거 용역들이 벽을 깨부수면서 바닥에 묻혀 있던 구식 배관을 건드렸어요. 그 배관을 타고 지하 하수망에 침전되어 굳어가던 잔여물들이 위로 역류한 겁니다. 저 의자들은 그냥 껍데기고, 본체는 저 안쪽 영사실에 처박힌 십육 밀리미터 영사기입니다.

고태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 떠 있던 좌석 열 개가 굉음을 내며 두 사람을 향해 쇄도했다. 붉은 벨벳 천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스프링 철선들이 이빨처럼 튀어나왔다.

장예린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 고태민의 멱살을 잡고 옆 벽면으로 끌어당겼다. 쾅 하는 파열음과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던 바닥 콘크리트가 박살 나며 자갈 더미가 사방으로 튀었다. 장예린의 방탄복 어깨 보호대가 스프링에 긁혀 깊게 찢겨 나갔다.

감식이고 뭐고 일단 저걸 부숴야 영사실통로가 열립니다.

장예린이 권총을 뽑아 들고 세 발을 연속으로 격발했다. 은빛 탄환이 좌석의 중심부를 꿰뚫었지만, 뚫린 구멍에서는 피 대신 검은 영사 필름이 뱀 똬리처럼 쏟아져 나와 탄환을 집어삼켰다. 찢어진 틈이 순식간에 메워지며 의자의 크기는 두 배로 부풀어 올랐다.

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자극하면 인과율 역류가 빨라집니다.

고태민이 허리띠에서 특수 정제염이 든 분무기를 빼 들었다. 노즐을 돌려 침전물이 엉킨 바닥을 향해 맹렬하게 분사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청록색 점액이 하얗게 굳어지며 인부들의 발목을 쥐고 있던 결속이 느슨해졌다.

지금 셋 다 끌어내요. 내가 영사실 문 땁니다.

장예린이 고태민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의 짙은 다크서클 아래로 가라앉은 눈빛에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들어가서 죽을 셈입니까. 규정상 감식관 단독 진입은 불허입니다.

내가 죽으면 현장 지휘권은 그쪽한테 넘어가니까 보고서에 그렇게 적으면 됩니다. 정년 채우고 나가야 하니까 죽을 생각 눈톱만큼도 없어요. 끄집어내기나 해요.

고태민은 망설임 없이 좌석들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틈을 파고들었다. 벨벳 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정장 재킷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뒹구는 부서진 영사 필름을 밟으며 영사실 철문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젖혀지자, 사방이 거울처럼 왜곡된 가상의 공간이 펼쳐졌다. 먼지투성이인 좁은 방 한가운데에 녹슨 대형 영사기가 홀로 돌아가고 있었다. 렌즈에서는 빛 대신 끈적끈적한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영사기 아래쪽 받침대는 바닥 시멘트와 완전히 한 덩어리로 융합되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영사기 몸체에 감겨 있는 검은색 전자 부품이었다. 행정안전부 공인 규격품이 아니었다. 매끈하게 마감된 탄소 섬유 커버 위에 붉은색 엘이디 표시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침전물의 자연 응집을 억지로 가속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때려 박은 고주파 자극기였다.

고태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순한 노후 극장의 자연 침전물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삼십 년 묵은 미련에 불을 붙여 괴이로 폭주하도록 유도한 흔적이었다.

영사기 렌즈가 끼익 소리를 내며 고태민 쪽으로 꺾였다. 렌즈 안쪽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모방한 기괴한 유리 파편들이 번뜩였다. 귓가로 수천 명의 관객이 일제히 내뱉는 탄식과 원망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왜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어. 결말이 남아 있잖아.

소리가 뇌를 쥐어짜듯 파고들자 고태민은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주머니에서 금속 핀셋을 뽑아 들었다. 칠 년 전 종로 도심 한복판이 무너져 내릴 때 들었던 그 끔찍한 절규들이 귓바퀴를 긁고 지나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으나, 그는 라텍스 장갑의 탄성을 튕기며 이를 악물었다.

결말 같은 건 원래 없어. 다들 그냥 집에 간 거야.

고태민은 몸을 낮추며 영사기 하부로 쇄도했다. 렌즈에서 쏘아진 회색 광선이 그의 등 뒤 벽면을 강타하며 콘크리트 벽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고태민은 바닥을 구르며 핀셋 끝을 영사기 태엽 틈새에 박아 넣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불꽃이 튀었다. 영사기 내부에서 필름이 씹히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장예린, 지금 쳐요. 영사기 밑동 삼 번 지지대.

어느새 철문을 부수고 들어온 장예린이 소총을 거꾸로 쥐고 돌진했다. 그녀의 단단한 군화 발이 고태민이 핀셋으로 비틀어 놓은 영사기 받침대의 균열을 정확하게 내리찍었다. 콰직 하는 파열음과 함께 영사기 본체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기울어진 틈새로 검푸른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고태민은 망설이지 않고 준비해 둔 특수 수거 캔을 영사기 광학 렌즈 바로 앞에 밀어 넣었다.

흡입 밸브 개방.

캔 입구에서 강력한 음압이 형성되며 허공에 떠돌던 회색 연기와 미련의 잔여물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영사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서른다섯 개의 허상 좌석들이 형태를 잃고 녹아내리며 바닥으로 풀썩 떨어졌다. 기괴하게 울리던 수천 명의 환청도 테이프가 늘어지듯 천천히 잦아들었다.

마침내 영사기의 모터가 멎었다. 렌즈 안쪽에 고여 있던 빛이 완전히 바래며 녹슨 고철 덩어리로 돌아갔다.

장예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총을 내렸다. 그녀의 방탄복은 찢어지고 얼굴에는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바닥을 확인한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인부들은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의식은 있는데 단기 기억은 좀 날아간 것 같습니다.

뇌세포가 녹기 전에 뺐으니 사흘 쉬면 돌아옵니다. 산재 처리는 관리청 특수재난 코드로 올리면 돼요.

고태민은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수거 캔의 뚜껑을 돌려 닫자 찰칵하는 밀폐음이 방 안에 선명하게 울렸다. 차폐 캔 겉면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삼급 개념 유실물, 미완의 상영. 회수 완료였다.

장예린이 영사기 아래쪽에 찌그러진 채 박혀 있는 검은색 부품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이건 뭡니까. 극장 부속품이 아닌데요.

고태민은 대답 대신 허리를 숙여 핀셋으로 그 금속 파편을 조심스럽게 집어 올렸다. 표면에 눌러 찍힌 일련번호 옆에 손톱만 한 크기로 각인된 영문 로고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장예린이 미간을 굳히며 글자를 읽었다.

엠, 오, 엔, 오. 모노리스. 사설 경비 물류 업체 이름 아닙니까. 그놈들이 왜 폐극장 지하 침전물에 손을 댑니까.

고태민은 핀셋을 거두고 부품을 증거물 봉투에 밀어 넣었다. 지퍼백을 잠그는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침전물을 수거하러 온 게 아닙니다. 일부러 숙성시켜서 터뜨린 거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이걸 터뜨려서 얻는 이득이 뭔데요.

고태민이 고개를 들어 영사실의 깨진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무너진 벽 틈새로 종로 일대의 번화한 빌딩 숲이 보였다.

삼십 년 치 미련이 터져 나가면 이 일대 땅값과 보상 합의금이 바닥을 칩니다. 인과율이 깨진 토지는 국가 격리 구역으로 묶이니까.

그럼 저놈들이 재개발 부지를 헐값에 집어삼키려고 이 짓을 벌였다는 겁니까.

헐값 매입은 겉핥기일 뿐입니다.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어요.

고태민은 피 묻은 라텍스 장갑을 벗어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었다. 젖은 손바닥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주머니 속 수거 캔에서 미세한 진동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한 잔여 침전물의 요동이 아니었다. 서울 도심 지하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거대한 무언가가 이 작은 파열을 신호탄 삼아 깨어나는 박동이었다.

가방 챙겨요.

고태민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본청으로 안 들어갑니까. 감식 보고서 작성해야 하잖습니까.

장예린이 묻자 고태민은 영사실 문을 나서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율곡로 삼감식소로 직행합니다. 서울 전역에 박힌 배관 도면 전부 꺼내야겠습니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