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 감별사 · 총 2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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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마나의 병증

류진은 찢어진 유리잔 파편들을 무심하게 밟으며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이미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마법으로 밝혀지던 천장의 조명들은 대부분 꺼져 있었고, 비상등의 붉은 섬광만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벽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고, 곳곳에서 비명과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마나의 폭주가 학원 전체를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혼란의 근원이 마치 거대한 검은 안개처럼 보였다. 불안정한 마나의 흐름은 공기 중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고, 그 안에서 수많은 마나의 실타래들이 미친 듯이 뒤엉키고 끊어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혼란스러운 마나 폭주로 보이겠지만, 류진에게는 그것이 마치 병든 생명체의 고통스러운 경련처럼 느껴졌다. 마나의 흐름 속에서 썩어가는 듯한 탁한 기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어깨에 멘 가방을 고쳐 메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별의 심장은 학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가장 빠른 길은 중앙 탑의 마법 승강기를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작동할 리 없었다. 류진은 비상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학원 곳곳에서 마법 장치들이 파열하는 소리와 마법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학원 외벽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이 찢겨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푸른빛으로 빛나던 방어막은 이제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균열 사이로 불안정한 마나의 파동이 맹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던 아르카나 학원이, 지금 이 순간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자신에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진실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마침내 최상층으로 통하는 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철문은 불안정한 마나의 영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류진은 망설임 없이 문을 밀고 들어섰다.

별의 심장. 거대한 수정 마나 증폭 장치가 위치한 그곳은 이미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필사적으로 마법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마나 증폭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파동은 그들의 마법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공기는 뜨겁고 무거웠으며, 쇠가 타는 듯한 냄새가 진동했다.

중심에는 엘리시아 벨르가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땀방울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정령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푸른빛 정령들이 불안하게 맴돌았지만, 그들의 존재조차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은 흐트러져 있었고, 푸른 눈동자에는 깊은 절망감이 서려 있었다.

“버텨! 제발 버텨줘!”

엘리시아의 외침이 갈라진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녀의 정령 마법이 잠시 마나 파동을 억누르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증폭 장치의 균열이 더욱 커지며 붉은 섬광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방어막의 일부가 파열하고, 몇몇 마법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젠장! 이건 단순한 폭주가 아니야! 마나의 흐름 자체가… 내부에서부터 파괴되고 있어!”

한 교수가 절규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류진의 눈에는 마나 증폭 장치의 내부에서 거대한 검은 촉수 같은 것이 마나의 흐름을 얽어매고 뒤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생충처럼 장치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었다.

류진은 흩어진 마법사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등장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모두가 눈앞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모두 비켜!”

그때, 엘리시아의 옆에서 카이 렌 교수가 나타났다. 그는 늘 들고 다니던 낡은 고서를 펼치며 고대 문자로 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그의 은회색 머리카락이 마나의 파동에 흩날렸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희미한 녹색 마나가 증폭 장치의 균열을 잠시 덮는 듯했다. 고대 마법은 현대 마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나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역부족이었다. 녹색 마나는 붉은 파동에 밀려 서서히 사라져갔다.

“교수님! 무리예요! 고대 마법진도 이 정도의 마나 오염은…!”

엘리시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카이 교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의 얼굴에도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류진은 마침내 엘리시아와 카이 교수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엘리시아 선배님. 마나 증폭 장치의 문제는 폭주가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 너무나도 조용하고 침착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엘리시아는 그제야 류진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류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당장 대피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함께 걱정이 섞여 있었다. 마법 한 줄기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류진이 이 위험천만한 곳에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피할 때가 아닙니다. 제가 본 바로는… 이 장치는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류진은 어깨에 멘 가방에서 자신이 그린 마나 흐름도를 꺼냈다. 복잡하고 기괴한 형태의 마나 흐름이 그려진 종이를 엘리시아에게 내밀었다.

“이것 보세요. 마나의 흐름이 마치… 썩어가는 것처럼 뒤틀려 있습니다. 장치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린 ‘무언가’가 마나의 에너지를 왜곡시키고 있는 겁니다.”

엘리시아는 류진의 말과 그가 내민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명백한 경멸이 떠올랐다.

“병들었다고? ‘무언가’가 뿌리내렸다고? 류진,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건 명백한 마나 폭주 현상이야! 마법을 쓰지도 못하는 네가 뭘 안다고 이런 위험한 곳에서 방해를 해? 당장 물러서!”

그녀는 류진의 말을 일축했다. 그녀의 눈에는 류진이 그저 무능력한 비마법사가 위험한 상황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학원의 수석이자 마법 명문가의 후계자인 그녀에게, 마법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류진의 주장은 그저 불쾌한 잡음에 불과했다.

“엘리시아, 진정해.”

카이 교수가 나른한 듯한 목소리로 엘리시아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류진의 손에 들린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반쯤 감긴 눈동자에 미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자네가 본 마나의 흐름인가?”

카이 교수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흥미가 섞여 있었다. 그는 류진의 능력을 직감하고 있었다.

“네, 교수님. 다른 마법사들은 마나의 표면적인 증상만을 치료하려 하지만, 이 장치의 병증은 훨씬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마나의 근원적인 에너지가 오염되고 있어요. 마치… 혈관에 독이 퍼진 것처럼요.”

류진은 그림 속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닿은 곳에는 유독 검고 탁한 마나의 흐름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저 부분입니다. 마나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병변’이 시작되는 지점이죠. 기존의 마법으로는 저 곳에 접근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습니다. 마나의 흐름 자체를 읽고, 그 왜곡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엘리시아는 류진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마나의 흐름을 읽어? 왜곡을 바로잡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마법 한 줄기 못 쓰는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마법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다루는 거야! 너 같은 비마법사가 감히 마나의 본질을 논하려 들어?”

그녀는 류진의 주장이 마법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의 정령들이 류진을 향해 적대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엘리시아, 잠시 그의 말을 들어봐.”

카이 교수가 류진의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진지했다. 류진의 그림은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고대 문헌 속의 어떤 기록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고대에 존재했다는 ‘마나 감별사’의 기록과.

그 순간, 마나 증폭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섬광이 더욱 강렬해졌다. ‘쿠과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증폭 장치의 수정 외벽에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붉은 마나의 파동이 학원 천장을 뚫고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학원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안 돼! 장치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어!”

학원장의 절규가 마법 통신망을 통해 울려 퍼졌다. 마법사들의 방어막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엘리시아의 정령들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갔다.

“이대로는… 아르카나 학원 전체가 소멸할 거야!”

엘리시아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지만, 거대한 마나의 파동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

류진은 마나 흐름도를 든 채, 폭주하는 장치를 응시했다. 그의 회색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본 마나의 병증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병증을 치료할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류진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엘리시아를 지나, 불길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마나 증폭 장치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했다.

“제가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말에 엘리시아와 카이 교수, 그리고 주변의 모든 마법사들이 일제히 류진을 돌아보았다. 마법 폭주가 임박한 저 곳에, 마법 한 줄기 쓰지 못하는 비마법사가 직접 들어가겠다고?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무슨 소리야, 류진! 정신 차려! 저 안에 들어갔다간 넌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엘리시아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류진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류진은 그녀의 손길을 피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제가 마나의 흐름을 읽고, 그 병변을 직접 감별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 장치를 치유할 수 없어요.”

류진의 목소리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죽어가는 마나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카이 교수는 류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의 반쯤 감긴 눈이 완전히 뜨였다. 그는 류진의 눈빛에서 고대 마나 감별사들의 기록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결의를 읽어냈다.

“자네… 정말로 할 수 있겠나?”

카이 교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학원에 온 이유일 테니까요.”

류진은 엘리시아의 만류를 뿌리치고, 폭주하는 마나 증폭 장치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의 마른 몸이 거대한 마나의 파동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담긴 아르카나 학원의 심장으로,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한 소년이 걸어 들어가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회색 눈동자에는 오직, 쇠락하는 마나의 진실만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