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만 닿는 주파수 · 총 2화 · AI 작가 한여름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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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의 중앙광장은 끔찍했다.

스피커에서는 축제 예선전 음악이 터져 나왔다.

공과대학 방향에서는 굴착기가 아스팔트를 깼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뒤엉켜 파편처럼 귓바퀴를 때렸다.

백채은은 양손으로 헤드폰을 바짝 눌렀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도 소용없었다.

고주파의 쇳소리는 기계의 필터를 뚫고 파고들었다.

선천적으로 예민한 청각이었다.

남들에게는 일상의 백색소음이었다.

채은에게는 신경을 긁는 톱날에 불과했다.

"저기, 채은아! 같이 밥 먹으러……!"

동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찢어지듯 울렸다.

채은은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대로 10분만 더 노출되면 이명이 시작될 터였다.

캠퍼스 안내 지도에서 보았던 구역을 떠올렸다.

연화대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인문관 지하 끝자락이었다.

붉은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소음이 한풀 꺾였다.

채은은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갔다.

발소리가 눅눅한 복도 벽을 타고 공명했다.

복도 끝자락에 낡은 철문이 하나 있었다.

문패에는 작은 황동 글씨가 박혀 있었다.

환경음 채집 동아리, 포노그래프.

문틈으로 어떤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채은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두꺼운 방음 고무 패킹이 뜯어지며 문이 열렸다.

순간, 세상의 볼륨 다이얼이 영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사방 벽면이 쐐기형 방음 스펀지로 덮여 있었다.

외부의 진동과 반사음이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귓속을 가득 채우던 이명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채은은 비로소 헤드폰을 목덜미로 내렸다.

막힌 숨이 가늘게 터져 나왔다.

"누구지."

등 뒤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날아왔다.

벽에 부딪혀 튕기지 않고 귀에 꽂히는 음성이었다.

채은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콘솔 데스크 뒤편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차림이었다.

도경원이었다.

음향공학과 3학년이자, 이 방의 관리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선배로 통했다.

그는 릴테이프 레코더의 스위치를 내리지 않은 채였다.

갈색 테이프가 바퀴 사이를 미끄러지듯 돌고 있었다.

채은의 시선이 그의 굵은 손가락 끝으로 향했다.

"신입생인가."

경원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보통 사람의 음성과는 파장이 달랐다.

고막을 찌르지 않고 묵직한 공진으로 가라앉았다.

채은은 마른침을 삼켰다.

귓가를 파고드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곤두섰던 신경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감각이었다.

"건축학과 1학년, 백채은입니다."

"여긴 청강실이 아닌데."

경원이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라는 뜻이 명백했다.

"동아리 모집 공고를 보고 왔습니다."

"우리 동아리는 폐부 직전이야. 신입 안 받아."

"마이크와 방음 부스가 필요합니다."

채은은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완벽한 정적을 눈앞에 두고 나갈 수는 없었다.

경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소음 피해서 도망 온 거라면 다른 곳을 찾아."

"도망친 게 아니에요."

채은은 가방끈을 단단히 쥐었다.

"세상 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가 없는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싶어서요."

경원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나른한 시선이 채은의 목에 걸린 헤드폰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비틀렸다.

"소리가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아."

그가 콘솔 위로 손을 뻗었다.

초지향성 샷건 마이크의 입력 감도를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모니터 헤드폰 하나를 채은 쪽으로 밀었다.

"써 봐."

짧고 단호한 명령이었다.

채은은 망설이다가 가죽 패드를 양 귀에 얹었다.

밀폐형 헤드폰이 주변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치익, 하는 미세한 프리앰프의 잡음이 흘렀다.

경원이 마이크 앞으로 상체를 천천히 기울였다.

그의 숨이 마이크 윈드스크린을 스치는 소리가 귓전으로 쏟아졌다.

"네가 방금 말한 건 고요가 아니라 결핍이야."

경원의 음성이 헤드폰 내부를 꽉 채웠다.

왼쪽과 오른쪽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채은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너무나 생생했다.

바로 귓바퀴 뒤에서 입술을 달싹이는 것 같았다.

채은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들려?"

경원이 손가락으로 마이크 스탠드를 톡 두드렸다.

단단한 금속 마찰음이 뇌관을 건드리듯 명확했다.

"지금 이 방 안에도 수만 개의 주파수가 떠돌아다녀."

그의 시선이 채은의 맑은 눈동자에 닿았다.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쳐 오는 눈빛이었다.

"네 심장 소리까지, 전부 다."

채은은 헤드폰을 귀에 바짝 눌렀다.

헤드폰 케이블을 타고 그의 호흡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시끄럽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오직 경원의 주파수만이 채은의 머릿속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때, 육중한 방음문이 거칠게 벌컥 열렸다.

"채은아!"

정적을 깨고 청량한 목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땀에 젖은 갈색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송태이가 들어섰다.

피아노 악보가 잔뜩 든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였다.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태이가 성큼성큼 다가와 채은의 앞을 막아섰다.

채은은 황급히 헤드폰을 벗었다.

귀가 다시 현실의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다.

태이의 시선이 콘솔 앞에 앉은 경원에게로 꽂혔다.

소년 같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선배가 도경원이죠."

태이가 채은의 소매 끝을 살짝 쥐어당겼다.

경원은 미동도 없이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공기가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신입 안 받는다면서요."

태이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채은이한테는 뭘 들려주고 계셨던 겁니까?"

경원은 대답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186센티미터의 큰 체구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셔츠 소매의 단추를 채우며 태이를 지나쳐 채은을 보았다.

"너, 청력 테스트 통과야."

경원이 주머니에서 스튜디오 열쇠 하나를 꺼냈다.

짤랑거리는 금속음이 정적 속에 선명하게 울렸다.

"내일부터 7시까지 와. 장비 챙겨서 필드 녹음 나간다."

태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채은의 앞을 완전히 가로막으며 경원을 쏘아보았다.

"저도 신청서 냈습니다, 선배."

경원의 걸음이 문전에서 멈췄다.

그가 고개만 살짝 돌려 태이를 응시했다.

"클래식작곡과는 다른 데 가서 놀지."

"내가 채은이 파트너인데요."

태이가 채은의 어깨를 감싸 쥐듯 물러서지 않았다.

두 남자의 시선이 공중에서 사납게 맞부딪쳤다.

지하 동아리방 안에는 오직 회전하는 릴테이프의 바스락거림만이 남았다.

경원의 무심한 눈동자가 채은에게 닿았다.

그 낮은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일 늦지 마, 백채은."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남겨진 방음실 안에서, 채은의 심장이 제멋대로 박자를 쪼개기 시작했다.

소음 때문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기이한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