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만 닿는 주파수 · 총 6화 · AI 작가 한여름

제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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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해치 틈새로 들이친 밤바람이 백채은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지상 40미터 높이의 종루는 사방이 아치형 석조 창문으로 뚫려 있어 초겨울의 냉기가 소용돌이치듯 휘감아 돌았다. 발밑의 철제 캣워크는 얇은 격자판 구조여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채은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머리 바로 위, 육중한 강철 빔에 매달린 5톤짜리 청동 종이 거대한 종형의 능선을 드러내며 공간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산화된 짙푸른 녹과 차가운 금속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덜컹거리며 아래쪽 기계실에서 쇠사슬이 감겨 올라가는 소리가 발판을 타고 전달되었다.

채은은 난간을 움켜쥐고 숨을 골랐다. 양쪽 귀를 틀어막은 실리콘 이어플러그와 차음 헤드폰 덕분에 바깥바람 소리는 먼 바다 밑바닥의 수류처럼 둔탁하게 꺾여 들렸다.

가슴팍에 매단 휴대용 송수신기에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태이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나, 들려? 캣워크 발판 틈새로 손전등 비추고 있어. 발 조심해.”

“잘 들려. 연결 상태 깨끗해.”

채은은 턱 끝의 마이크를 입술 쪽으로 바짝 당기며 답했다. 이어폰 모니터링 라인을 통해 경원의 건조하고 낮은 음성이 겹쳐 들어왔다.

“종 하단부 테두리에서 정확히 1.5미터 거리다. 거기 서쪽 벽체로 이동해.”

“알고 있어요. 이동 중이에요.”

채은은 허리에 찬 장비 벨트에서 케이블 릴을 조금씩 풀며 좁은 철제 통로를 옆으로 게걸음쳤다. 폭 60센티미터 남짓한 격자형 발판 아래로는 텅 빈 탑 내부의 까마득한 수직 공간이 검은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서쪽 벽면은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가 불규칙하게 얽혀 있었다. 20년 전 백진우가 빗물과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쌓아 올렸다는 비표준 조적 벽체였다. 얼핏 보면 시공 불량으로 벽돌이 어긋나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아카이브에서 확인했던 단면 상세도 속에서는 치밀하게 계산된 음향 통로였다.

채은은 오른손에 쥔 카본 붐 폴을 바닥에 세우고, 작업용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벽면을 훑었다. 얼음장 같은 벽돌 표면의 거친 질감이 손바닥을 긁었다.

모서리에서 스물여덟 걸음.

손가락 끝이 불룩 튀어나온 모르타르 틈새를 더듬다 미세하게 움푹 꺼진 수직 홈에 멈추어 섰다. 두께 15밀리미터 남짓한 좁고 긴 틈, 바로 헬름홀츠 공명기로 이어지는 슬릿 개구부였다. 겉으로는 벽돌 줄눈이 터진 하자처럼 보이지만, 손끝을 대자 내부에서 차가운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미세한 흡기압이 느껴졌다.

“좌표 찾았어요.”

채은이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28도 경사각 벽면, 하부 지지대 기준 1미터 20센티미터 높이. 슬릿 개구부 정중앙이에요. 도면이랑 일치해요.”

기계실 쪽에서 태이의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외풍 노이즈가 너무 심해. 누나, 붐 폴 단단히 고정 안 하면 타종 충격파 올 때 진동 때문에 캡슐 축 다 틀어져. 클램프 두 개 다 체결해.”

“알았어. 지금 물릴게.”

채은은 붐 폴 하단의 고정 클램프를 캣워크 철제 난간의 이음매에 걸었다. 굵은 볼트를 손으로 돌려 뼈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조였다. 초지향성 마이크 캡슐이 벽면의 슬릿 개구부를 향해 정확히 28도 사각으로 비스듬히 겨눠졌다.

직접음을 피하고 벽체 내부로 빨려 들어가는 음파의 위상만을 골라내기 위한 최적의 각도였다.

“클램프 고정 완료. 선배, 레코더 1번부터 4번 채널 입력 레벨 올려요.”

채은의 신호에 기계실의 경원이 레코더 노브를 조작하는 미세한 전자음이 들려왔다.

“신호 수신된다. 입력 감도 정상 범위. 지금부터 기준 주파수 쏜다. 태이, 스펙트럼 애널라이저 띄워.”

“띄웠어. 120헤르츠 저음역 대역폭 고정.”

태이의 긴장된 대답과 동시에, 종루 아래 기계실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 스피커에서 무겁고 둔탁한 저주파 발진음이 뿜어져 나왔다.

우웅, 하는 낮은 진동이 탑신 전체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귓바퀴를 파고드는 소리라기보다는 장기를 뒤흔드는 물리적인 압력에 가까웠다.

채은은 헤드폰에 손을 얹고 귀를 기울였다.

120헤르츠의 순음이 종루의 둥근 천장을 때리고 서쪽 벽면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보통의 평평한 콘크리트 벽이라면 정재파를 일으키며 굉음으로 튕겨 나가야 할 소리였다. 하지만 슬릿 개구부 바로 앞에 거치된 마이크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건조하고 먹먹했다.

벽돌 틈새의 좁은 입구가 공기의 질량을 붙잡고, 뒤편의 밀폐된 공동 챔버가 스프링처럼 작동하며 소리의 에너지를 삼켜버리고 있었다.

“흡음 피크 떴어!”

헤드폰 너머로 태이가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120헤르츠 대역에서 마이너스 14디비 감쇄 확인. 누나, 마이크 캡슐 각도 지금 완벽해. 반사파 안 튀고 슬릿 내부 압력만 그대로 잡혀.”

“선배, 레코더 피크 미터는요?”

채은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헤드룸 16디비 확보됐다. 찌그러짐 없어.”

경원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억누른 흥분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백진우 교수의 계산이 맞았군. 개구부가 막히지 않았다면 이 벽체 하나로 타종 진동의 70퍼센트를 상쇄할 수 있었어. 저 아래 인간들이 20년 동안 부실시공이라고 떠들어대던 벽체가 실은 완벽한 댐퍼였던 거야.”

벽면에 손을 얹고 있던 채은의 손가락 끝으로 미세한 파동이 전해졌다. 아버지가 남긴 도면 속의 선들이 차가운 벽돌과 모르타르 속에서 실시간 물리 법칙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덜컥, 쿵!

머리 위에서 거대한 톱니가 다시 한번 맞물리며 청동 종을 지탱하는 철골 프레임이 비명을 질렀다. 5톤짜리 종의 외벽을 겨누고 있는 거대한 쇠 해머가 기계식 와이어에 이끌려 서서히 뒤로 당겨지기 시작했다.

태엽이 끝까지 감기며 팽팽한 장력이 허공을 짓눌렀다.

“자정 5분 전이다.”

경원의 낮은 통보가 송수신기를 울렸다.

“모의 측정 종료. 채은아, 마이크 연결선 한 번 더 당겨서 유격 없애. 타종 순간 음압은 방금 쏜 기준음의 수십 배다. 캣워크 손잡이에서 절대 손 떼지 마.”

“네. 세팅 끝났어요.”

채은은 붐 폴의 조임 나사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허리 안전벨트를 캣워크의 메인 프레임에 단단히 걸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자정을 알리는 해머가 저 거대한 쇳덩이를 내려치는 순간, 아버지가 남겨둔 차음 벽체의 진실이 수치화되어 증명될 터였다.

그때였다.

수음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열어두었던 오픈 채널 송수신기 너머로 거친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무언가 거칠게 부딪히며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였다.

“손 치워, 송태이.”

경원의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채은의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이어 무전기 스피커를 긁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옷감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멱살이라도 틀어쥔 듯 거친 마찰음이었다.

“이러려고 누나 끌어들였냐?”

태이의 목소리는 평소 채은을 부를 때의 장난기나 다정함을 완전히 털어낸 채였다. 날이 바짝 서 있었다.

“110데시벨이야. 너 저 위가 어떤 지옥인지 알면서 올렸지. 누나 귀가 어떻게 되든, 데이터만 뽑아내면 상관없다는 거였어?”

“손 떼라고 했다.”

경원의 음성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콘솔 테이블 위의 금속 장비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송수신 채널을 타고 여과 없이 종루 캣워크까지 울렸다.

“수음 각도 잡고 저 위로 올라간 건 백채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송태이, 넌 처음부터 다른 목적으로 여기 붙어 있던 거 아니었나?”

“뭐?”

“타종 데이터 확보되면 넘기기로 한 백진우 교수 연구 일지. 애초에 네 진짜 목적도 그거였잖아.”

바람이 들이치는 캣워크 난간을 쥐고 있던 채은의 손가락이 굳어졌다. 귓속을 채우던 바람 소리가 일순간 멎은 것처럼 하부 기계실의 대화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백진우.

20년 전 이 시계탑을 설계하고, 소음 결함이라는 낙인 속에 강단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백진우 교수가 남긴 미공개 연구 일지 원본. 거기에 적힌 헬름홀츠 공명 챔버의 보정 수식이 없으면 내일 오전 심의회에서 철거안을 뒤집을 근거를 완성할 수 없어.”

경원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넌 그걸 빌미로 음대 아카이브에 묶여 있던 자료를 빼돌리려 했고. 내가 그 거래를 받아들였으니 네가 여기 있는 거다.”

“닥쳐!”

태이가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쿵 하는 충격음이 헤드폰 유닛을 찢을 듯 울렸다.

“내가 그걸 왜 탐냈는데! 연화대 재단이 은폐한 음향 설계 데이터를 찾아내야 20년 전 백진우 교수가 누명을 썼다는 걸 증명하고, 누나가 죄인 취급받는 그 빌어먹을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근데 넌 지금 뭘 하고 있는데? 누나 귀를 제물로 바쳐서 네 동아리방 지키고 네 연구 실적 쌓겠다는 거 아니야!”

“실적 따위가 아니야.”

경원의 낮은 목소리가 태이의 악을 쓰고 나온 고함을 잘라냈다.

“철거 심의안이 통과되면 시계탑은 다음 주에 전면 해체된다. 콘크리트 벽체 속 공명 챔버가 부서지는 순간, 백진우 설계 책임자의 모든 계산식은 영원히 부실시공의 증거물로 폐기처분돼. 채은이의 증명이 없으면 그 누구도 이 벽의 진실을 믿지 않아. 네가 가져가려는 낡은 일지 몇 장 따위로 본부 심의위원회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렇다고 110데시벨의 한가운데에 애를 세워? 누나 귀에 조금이라도 이상 생기면, 너 내가 가만 안 둬. 그깟 일지고 심의고 다 박살 내버릴 테니까.”

“원하는 대로 해. 단, 타종이 끝난 뒤에.”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무전 주파수를 타고 엉켜 들었다.

채은은 눈을 감지 않았다. 캣워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어두운 바닥, 그리고 머리 위를 가득 채운 청동 종의 육중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도경원은 시계탑 철거를 막기 위해 자신의 청각을 철저히 시험하고 이용하려 했다. 송태이는 자신을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뒤로는 아버지가 남긴 미공개 연구 일지를 가로채려 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셈법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측정 도구로, 누군가는 지켜내야 할 연약한 보호 대상으로.

채은의 입술 끝이 서늘하게 굳었다.

배신감보다 먼저 차오른 것은 차가운 오기였다. 20년 전 아버지가 겪었을 고립감, 도면 한 장을 남겨둔 채 침묵해야 했던 그 무게가 지금 이 좁은 캣워크 위에서 오롯이 채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도구나 피해자로 규정하려 들었지만, 정작 이 차가운 벽돌 틈새에서 소리의 숨구멍을 찾아낸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채은은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눌렀다.

삑.

오픈 채널 특유의 비프음이 두 사람의 거친 설전을 단숨에 갈랐다.

“둘 다 입 다물어요.”

기계실 쪽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채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금의 떨림도 섞이지 않은 단단한 어조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도경원 선배, 착각하지 마세요. 난 선배 실적이나 동아리를 위해서 여기 올라온 게 아니에요. 내 아버지의 설계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내 귀로 직접 확인하려고 선배를 이용하고 있는 건 바로 나예요.”

헤드폰 너머로 경원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잡혔다. 채은은 말을 멈추지 않고 곧장 송태이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태이야.”

“……누나.”

태이의 목소리가 당혹감으로 젖어들며 잦아들었다.

“내 귀를 지키네 마네 하면서 남 핑계 대지 마. 일지가 탐났으면 솔직하게 말했어야지. 날 핑계 삼아서 뒤에서 거래 같은 거 하지 마. 난 네가 감싸줘야 하는 환자도 아니고, 누군가의 뒤에 숨어서 보호받을 생각 없어.”

“누나, 난 그런 뜻이 아니라…….”

“일지가 필요하면 타종 데이터 완벽하게 뽑아낸 다음에 선배한테 당당하게 받아 가. 그건 너희 둘이 알아서 해결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쓸데없는 짓거리 집어치우고 모니터링이나 똑바로 해.”

채은은 붐 폴을 다시 한번 고쳐 쥐었다. 차가운 금속 막대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28도로 비틀어 세운 초지향성 마이크 캡슐이 슬릿 벽체의 어두운 틈새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타종까지 2분 남았어요. 송태이, 실시간 스펙트럼 분석 창 열어. 120헤르츠에서 400헤르츠 구간 피크치 오차 0.1디비라도 생기면 즉시 좌표 불러.”

“……알았어.”

태이의 풀 죽은 대답 뒤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다급한 소리가 튀었다.

“도경원 선배. 메인 레코더 리미터 풀어두지 마세요. 110데시벨 넘는 순간 아날로그 프리앰프 클리핑 나면 오늘 실측은 전부 쓰레기 돼요. 헤드룸 12디비 유지하면서 게인 값 실시간으로 잡아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경원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스피커를 채웠다.

“8채널 전부 프리셋 고정했다. 레벨 미터 대기 중이다.”

채은은 송신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귓속을 파고든 차음 플러그가 외부의 소음을 단단히 억누르고 있었지만, 발밑을 울리는 육중한 기계음만은 뼈를 타고 고스란히 올라왔다.

철컥!

시계탑 내부의 주 태엽이 한계치까지 감기며 기계실 상부의 와이어가 팽팽하게 굳어졌다. 5톤짜리 청동 종의 외벽을 겨눈 거대한 쇠 해머가 최고점에 도달했다.

자정 1분 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매달린 거대한 종의 그림자가 채은의 시야를 가득 메웠고, 쇠사슬이 톱니바퀴에 긁히며 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종루 전체를 집어삼킬 듯 쏟아져 내렸다.

채은은 발끝을 캣워크 철망 틈새에 단단히 끼워 넣었다. 시계추가 좌우로 오가며 일으키는 둔탁한 공기 압력이 바지 밑단을 거칠게 펄럭였다.

“10초 전.”

헤드폰 속에서 들려오는 태이의 목소리는 바짝 메말라 있었다.

“누나, 입력 게인 건드리지 마. 그냥 손잡이만 꽉 쥐어.”

“잡고 있어.”

채은은 대답하며 붐 폴을 쥔 양팔에 힘을 실었다. 알루미늄 파이프를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진동의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종루 석조 아치 너머로 연화대 캠퍼스의 전경이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오직 기계실 환풍구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주황색 불빛만이 5톤 청동 종의 푸르스름한 표면을 비췄다.

“5초. 4, 3, 2…….”

경원의 카운트다운이 1에 도달하기 직전, 허공을 가르는 묵직한 쇳소리가 종루의 공기를 갈랐다.

쾅!

귀를 틀어막은 차음 플러그를 뚫고 뼈를 울리는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110데시벨의 음압이 거대한 파도처럼 채은의 온몸을 덮쳤다. 발밑의 철제 발판이 물결치듯 요동쳤고, 가슴팍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저주파의 파동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물리적 질량이었다. 시계탑 전체를 지탱하는 화강암 기둥들이 비명을 지르듯 울어 댔고, 허공에 매달린 5톤 청동 종의 외벽이 격렬하게 떨리며 2차 충격파를 사방으로 토해 냈다.

지향성 마이크 캡슐이 폭풍을 맞은 깃발처럼 덜덜 떨렸다. 모니터링 헤드폰 안쪽에서 날카로운 피드백 노이즈가 고막을 찔렀다. 채은은 이를 악물었다. 오른쪽 귀를 파고드는 찌릿한 통증 속에서 벽체 틈새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쫓았다.

‘밀어내면 안 돼. 받아들여야 해.’

채은은 손목을 틀었다. 붐 폴의 각도를 28도로 꺾어 슬릿 벽체의 개구부 바로 앞, 3센티미터 허공에 캡슐을 밀어 넣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종의 표면에서 튕겨 나온 120헤르츠의 둔탁한 파열음이 벽면의 길쭉한 틈새로 빨려 들어가며 순간적으로 꺾였다. 개구부 안쪽의 밀폐된 공기층이 스프링처럼 수축했다 팽창하며 음향 에너지를 열로 바꾸어 소멸시키고 있었다. 귓가를 찢을 듯 울리던 굉음의 한가운데에서 오직 그 틈새만이 기묘하게 낮은 숨을 들이쉬듯 조용해졌다.

“잡았다.”

채은은 송신 버튼을 누를 틈도 없이 낮게 읊조렸다.

“태이야, 지금이야! 3번 채널 스펙트럼 찍어!”

기계실 바닥에서 태이의 비명 같은 외침이 헤드폰을 타고 올라왔다.

“들어왔어! 130헤르츠 딥 확인! 마이너스 18디비! 벽체가 저음을 삼키고 있어!”

“리미터 작동 중이다.”

경원의 서늘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8채널 레코더, 피크 왜곡 없음. 잔향 감쇠 곡선 정상 출력. 채은아, 그대로 10초만 더 버텨. 두 번째 배음 떨어질 때까지 수음 축 유지해.”

채은은 붐 폴을 받친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격통 속에서도 발끝을 떼지 않았다. 종루의 거대한 종은 여전히 웅장한 여운을 뿜어내며 밤하늘을 진동시키고 있었지만, 채은의 마이크가 겨눈 28도 틈새는 그 거대한 소음의 숨통을 정확히 틀어쥐고 있었다.

아버지가 20년 전 남겨 둔 계산식은 단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부실 시공으로 매몰된 줄 알았던 벽체 속의 공동은 자정마다 건물을 부술 듯 흔들어 대던 종소리를 스스로 삼켜 내는 완벽한 공명 차음 챔버였다.

댕…… 댕…… 댕…….

자정을 알리는 열두 번의 타종 중 마지막 종소리가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육중한 쇠 해머가 기계 장치의 톱니에 걸리며 제자리로 돌아갔고, 종루를 찢어발기던 110데시벨의 충격파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채은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붐 폴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차음 플러그를 비집고 들어오는 서늘한 밤바람 소리가 비로소 귓가에 닿았다. 땀으로 젖은 이마 위로 차가운 공기가 스쳤다.

“누나! 당장 내려와! 데이터 전부 넘어왔어!”

태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채은은 헤드폰을 목에 걸치고 사다리를 향해 발을 옮겼다. 캣워크를 내려가는 손가락 끝이 굳어 있었지만, 기계실 해치를 열고 내려서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기계실 안쪽은 모니터 화면의 푸른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태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고, 도경원은 메인 레코더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타종 직후 발생한 110데시벨의 충격음 그래프가 선명하게 찍혔다. 다른 모든 주파수 대역이 붉은색 한계선에 닿은 것과 달리, 건물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가던 120헤르츠에서 250헤르츠 사이의 저주파 대역만이 28도 슬릿 챔버 구간에서 깊은 계곡을 그리며 파란색 안정권으로 가라앉았다.

“완벽해.”

태이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마른침을 삼켰다.

“외벽으로 전달되던 구조 진동의 70퍼센트 이상을 저 슬릿 틈새가 흡수했어. 시계탑이 흔들렸던 건 설계 결함 때문이 아니야. 시공사가 저 챔버의 배기구를 마감재로 틀어막아 버려서 압력이 빠져나가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백진우 교수의 차음 설계는 완벽했어.”

채은은 화면 속 깎아지른 곡선을 바라보았다. 20년 동안 도면 속에만 갇혀 있던 아버지의 수식이, 오늘 밤 자신의 손과 귀를 거쳐 살아 있는 데이터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지잉.

그때, 작업대 구석에 놓여 있던 도경원의 휴대용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출력음이 울렸다. 대학 시설관리본부 관제망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된 전자 문서였다.

경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단말기를 낚아챘다. 붉은색 경고 표시와 함께 화면 상단에 찍힌 문구가 세 사람의 시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중앙도서관 서관 시계탑 정밀안전진단에 따른 철거안 가결 및 심의회 통보]

[일시: 금일 오전 09시 00분]

[장소: 연화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

[비고: 백진우 교수 설계 구조적 결함 확정 및 직권 철거 심의 착수]

“……오전 9시?”

태이가 헛숨을 들이켜며 단말기를 쳐다보았다.

“원래 내일 오후 아니었어? 왜 갑자기 아침 9시로 당겨진 건데!”

“새벽 타종이 끝나자마자 본부 서버로 전송된 진동 수치가 한계값을 넘었다고 자동 판정한 거다.”

경원의 목소리는 바닥에 깔린 냉기처럼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경원은 주저 없이 메인 레코더의 측면 덮개를 열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 채은이 채집한 8채널 고해상도 무압축 음향 데이터가 담긴 외장 하드디스크가 튀어나왔다.

경원은 거친 손길로 하드디스크를 뽑아 자신의 검은색 점퍼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저놈들은 현장 실측도 없이 벽체 센서 진동값만 보고 결함이라 결론 내렸어. 공명기가 진동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압력을 건물 붕괴 전조로 왜곡한 채로 심의를 끝내겠다는 소리다.”

경원이 시선 끝을 돌려 채은을 똑바로 응시했다. 밤을 새운 눈 밑이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전 9시까지 딱 일곱 시간 남았다.”

경원은 작업대 위에 흩어져 있던 단면 상세도와 차음 특허 출원서 사본을 한 손에 말아 쥐었다.

“송태이, 이동 준비해. 인문관 302호로 가서 저 데이터에 3차원 음향 렌더링 입힌다. 백채은.”

채은이 고개를 들었다.

“선배.”

“네 귀로 잡은 이 파형 들고, 9시에 본관 대회의실 문 부수고 들어간다.”

기계실 창밖으로 번진 푸른 새벽빛이 시계탑의 낡은 벽면돌을 비추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