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떼, 도경원.”
송태이가 도경원의 팔목을 낚아채 벽면 단자함에서 거칠게 떼어냈다. 쾅 하는 파이프 파열음이 지하 침전조 천장을 때렸다.
“채은아, 저 인간은 지금 네 고막이 터지든 말든 재단 비리 터뜨릴 생각밖에 없어!”
태이가 헐떡이며 경원의 가슴팍을 밀쳤다. 녹슨 철제 단자함 문짝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덜렁거렸다. 단자함 속에서 은색 절연 테이프로 감긴 사각형 외장 하드가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도경원은 밀려나면서도 태이의 손을 쳐내지 않고 차갑게 응시했다.
“그 하드가 없으면 공청회장에서 입도 뻥긋 못 해. 우리가 시계탑을살리든 말든, 저들은 기록을 위조해서 결함으로 몰아붙일 거다.”
“그걸 네가 왜 채은이 목숨을 걸고 떠맡기냐고!”
태이의 고함이 좁은 수로 통로를 울리며 메아리쳤다. 그 울림이 채은의 귓바퀴를 파고들어 날카로운 바늘처럼 신경을 찔렀다. 채은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의 억센 어깨를 가르고 손을 뻗어, 단자함 홈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은색 외장 하드를 낚아챘다.
묵직한 금속 케이스 모서리가 손바닥을 짓눌렀다. 채은은 하드를 점퍼 안쪽 주머니에 깊숙이 쑤셔 넣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그만해, 둘 다.”
채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싸울 거면 밖으로 나가서 싸워. 지금 여기서 목청 높이면 방재실 요원들이 내려오는 시간만 줄어들 뿐이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리 위 3미터 높이에 설치된 격자형 철제 발판 위로 날카로운 빛줄기가 떨어졌다.
타앙, 타앙.
군화 밑창이 녹슨 발판을 거칠게 짓밟는 금속성 타격음이 쏟아져 내렸다. 뒤이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무전기 교신음이 통로 전체로 흩어졌다.
“침전조 3구역 센서 트리거 확인. 반복한다, 단순 침입 경보가 아니다. 감사위원회 지정 비인가 접근 구역이다.”
거친 남성의 목소리였다. 무전기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소음의 음압이 70데시벨을 훌쩍 넘기며 지하 공동을 때렸다. 채은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움츠리며 귀에 꽂힌 실리콘 플러그를 손가락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상부 지침 전달한다. 침입자 신원 불문하고 현장 즉각 제압. 일주일 뒤 수요일 공개 공청회 당일까지 시계탑 상부 기계실 및 본관 지하 배수로 전 구간에 경비 용역 무장 배치를 승인한다. 모든 출입로는 차단 격벽을 내려 봉쇄하라.”
태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태이가 채은의 손목을 잡았다.
“들었지? 감사위원회 직속이야. 저들이 우릴 여기서 잡으면 공청회고 뭐고 없어. 당장 나가야 해.”
“출구는 이미 막혔어.”
경원이 벽면에 매립된 제어 패널을 가리켰다. 녹색으로 점등되어 있던 진입로 개폐 스위치가 주황색으로 번쩍이더니,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붉은색 경고등으로 바뀌었다. 패널 상단 디지털 표시창에 영구 폐쇄 모드라는 굵은 글자가 박혔다.
“방재실에서 중앙 관제로 수로 격벽을 전부 락다운 걸었어. 전산실 메인 서버에서 관리자 우회 키를 직접 꽂지 않는 한, 저 두께 삼십 센티미터짜리 강철문은 공청회 당일에도 안 열려.”
경원의 턱선이 팽팽하게 굳었다.
빛줄기가 바닥의 웅덩이를 훑으며 빠르게 다가왔다. 손전등 불빛 세 개가 십자로 얽히며 통로 바닥을 희게 태웠다. 요원들의 발소리가 불과 십여 미터 앞까지 좁혀졌다.
“이쪽이야.”
채은이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이 돌아보기도 전에 채은은 콘크리트 벽면 아래쪽, 짓이겨진 슬레이트 판자로 가려진 틈새를 향해 무릎을 굽혔다.
“채은아, 거긴 막힌 배수관이잖아!”
태이가 속삭이듯 낮게 외쳤다.
“아니, 도면 봤잖아.”
채은은 손바닥에 힘을 주어 덜렁거리는 얇은 함석판을 거칠게 젖혔다. 녹가루와 습한 진흙 냄새가 훅 끼쳐 올라왔다.
“중앙도서관 시계탑 하부 유도로와 연결된 폐배수관이야. 20년 전에 시공사가 댐퍼를 시멘트로 덮으면서 지상 배기 환기구로 쓰려고 뚫어둔 우회로야. 높이는 낮지만 인문관 뒤편 외곽 계단실로 통해.”
경원이 즉각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몸을 숙여 함석판을 들어 올렸다.
“태이야, 8채널 수음 마이크 케이스 챙겨. 먼저 들어가.”
“네가 먼저 가, 도경원! 난 채은이 뒤에 갈 거야.”
“헛소리 말고 들어가! 소리 내면 끝장이야.”
경원이 태이의 배낭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태이는 이를 갈며 좁은 콘크리트 관 안으로 몸을 던졌다. 질퍽한 바닥에 무릎이 닿으며 물 튀는 소리가 났지만, 바로 위 상층부에서 울리는 요원들의 무전음이 그 소리를 간신히 덮었다.
“이쪽 바닥에 물기가 튀어 있다! 점검구 열어!”
채은은 숨을 멈추고 좁은 배수관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차가운 흙탕물이 바지 무릎을 적시고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뒤이어 경원이 들어오며 젖혀두었던 함석판을 원래대로 당겨 닫았다.
쿵.
바로 등 뒤에서 침전조 중앙 진입로의 전자 제어 격벽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콘크리트 관벽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세 사람의 뼈마디를 흔들었다. 완전히 닫혀버린 문이었다. 관리자 우회 키 없이는 공청회 당일 댐퍼 레버를 잡으러 올 길 자체가 사라진 셈이었다.
경원의 거친 호흡이 채은의 발뒤꿈치 바로 뒤에서 느껴졌다. 채은은 턱을 치켜들고 앞서 기어가는 태이의 신발 굽을 쫓았다.
좁고 축축한 어둠 속에서 오직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공기의 파동만이 길을 안내했다. 십 분 남짓 기어가자 차가운 밤공기가 이마를 스쳤다. 버려진 집수정 위를 덮고 있던 낡은 플라스틱 그레이팅을 밀어 올리자, 인문관 뒤편 숲길 비상계단 아래의 서늘한 풀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이가 먼저 빠져나와 채은의 두 겨드랑이를 받쳐 끌어올렸다. 채은은 풀밭에 주저앉아 헐떡이며 뒤이어 올라오는 경원을 바라보았다.
경원의 얼굴은 흙탕물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경원은 젖은 점퍼를 털며 인문관 3층을 올려다보았다. 불 꺼진 동아리방 창문이 잿빛 새벽하늘 아래 칼날처럼 차갑게 박혀 있었다.
“격벽이 잠겼어.”
태이가 진흙 묻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경원을 쏘아보았다.
“공청회 당일 밸브를 열기는커녕 진입도 못 하게 됐다고. 감사위원회가 무장 경비까지 깐다잖아. 그런데도 시계탑에 오르겠다고?”
경원은 대답 대신 굳게 닫힌 입술을 달싹이며 채은의 가슴팍, 외장 하드가 든 주머니를 똑바로 응시했다.
“진입로는 다시 뚫으면 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경원의 시선이 채은의 흔들리는 눈동자로 옮겨붙었다.
“종루에 서서 견뎌낼 수 있느냐야. 그 격벽을 부수고 내가 밸브를 여는 순간, 네 귀로 쏟아질 압력을 네가 감당할 수 있냐고.”
채은은 주머니 속 단단한 하드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모서리가 선명한 감각으로 신경을 깨웠다.
“방음실로 가.”
채은이 먼저 몸을 일으키며 흙 묻은 무릎을 털었다.
“130헤르츠 모의 음향 발생기 켜 놔, 선배. 내가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부터 테스트해 보면 알아.”
도경원은 방음실 철문을 밀어 닫자마자 콘솔 테이블 아래의 메인 배전반으로 손을 뻗었다.
딸깍, 묵직한 차단기 소리와 함께 벽면을 에워싼 쐐기형 스펀지 틈새에서 네 조의 대형 서브우퍼가 일제히 낮은 진동을 토해냈다.
“110데시벨부터 시작한다.”
경원이 볼륨 페이더를 쥔 채 채은을 돌아보았다.
“종루 개구부 시뮬레이션이야. 130헤르츠 지속 사인파에 모의 반사음을 얹었다. 버티기 힘들면 바닥을 쳐.”
채은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실리콘 케이스를 꺼냈다. 태이가 손수 성형해 준 차음 이어플러그였다. 귓바퀴를 뒤로 당겨 외이도 깊숙이 밀어 넣자 고막을 짓누르던 지하 특유의 공조 소음이 뚝 끊겼다. 채은은 가방에서 꺼낸 마이크 스탠드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헤드 각도를 정확히 28도로 꺾었다.
“올려요.”
채은의 목소리는 제 귓속에서만 먹먹하게 울렸다.
경원의 손가락이 페이더를 끝까지 밀어 올렸다.
우우웅.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덩어리가 방음실 안을 가득 메웠다. 바닥의 고무 매트가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발목을 타고 굵은 뼈마디를 두드렸다. 110데시벨. 고막을 직접 때리는 날카로운 굉음이 아니라,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묵직한 진동이었다. 채은은 스탠드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세 배는 민감한 청신경이 단번에 팽팽하게 곤두섰다. 머릿속에서 쇠구슬을 굴리는 듯한 이명이 날뛰기 시작했다.
경원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다이얼을 한 칸 더 돌렸다.
“115데시벨.”
순간, 둔탁한 해머로 머통을 얻어맞은 듯 시야가 하얗게 바래졌다. 귀 안쪽 깊은 곳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현이 툭 끊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속이 뒤집히며 명치 끝에서 신물이 왈칵 치밀었다. 채은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꺾으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마이크 스탠드가 덜컹거리며 채은의 이마를 스쳤다.
“선배!”
벽에 기대어 초조하게 지켜보던 태이가 참지 못하고 콘솔로 몸을 날렸다. 태이의 손이 파워 앰프 전원 케이블을 움켜쥐었다.
“그만둬요! 당장 꺼! 이러다 진짜 고막 찢어진다고!”
“손 떼.”
경원이 태이의 손목을 쳐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지금 못 버티면 수요일에 종루 올라가자마자 기절해. 그럼 끝이야. 백진우 교수 명예고 뭐고 전부 시멘트 밑에 파묻힌다고.”
“이건 버티는 게 아니라 고문이잖아! 안 보여? 채은 선배 귀에서 피 난다고!”
태이의 고함에 채은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왼쪽 귓바퀴를 훔쳤다. 손가락 끝에 붉고 미지근한 점액이 묻어 나왔다. 과도한 음압에 모세혈관이 터진 탓이었다. 시야가 핑글핑글 돌았고, 방음실 천장의 형광등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태이가 다시 전원 코드를 뽑으려고 몸을 던지는 순간, 바닥을 짚고 있던 채은의 손이 태이의 바짓가랑이를 낚아챘다.
“비켜, 태이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갈라진 파열음이 새어 나왔다. 채은은 피 묻은 손으로 바닥을 밀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벽면의 차음재를 짚고 악착같이 중심을 잡았다.
“선배, 제발…….”
“내가 버텨내지 못하면 수요일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 전원 다시 올려, 태이야.”
채은은 귀에서 플러그를 뽑아냈다. 그리고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황동 핀셋을 집어 들었다. 태이가 만들어준 커스텀 플러그의 내부에는 0.2밀리미터 단위로 교체할 수 있는 미세 어쿠스틱 메시 필터가 삽입되어 있었다. 채은은 떨리는 손으로 0.4밀리미터 차음 필터를 빼내고, 가장 촘촘한 0.6밀리미터 감쇄 필터를 핀셋으로 집어 밀어 넣었다.
저음역의 통과 대역을 극단적으로 좁히는 대신 130헤르츠의 공진점만을 핀포인트로 걸러내는 변칙 세팅이었다.
채은은 필터를 다시 귓구멍 깊숙이 쑤셔 박았다. 통증이 신경을 타고 턱관절까지 뻗쳤지만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118데시벨로 올려요.”
채은이 마이크를 다시 28도로 맞추며 명령했다.
경원은 망설임 없이 페이더를 붉은색 피크 라인 바로 밑까지 밀어붙였다. 방 전체가 부서질 듯 울리는 극저주파의 파동 속에서, 채은은 눈을 감고 소리의 결을 훑었다. 귀는 먹먹했지만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마이크 스탠드의 진동과 가슴뼈를 울리는 파형이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좌표로 그려졌다.
28도.
그 각도에서 정확히 마이크를 쥐자,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의 한가운데에 기적처럼 고요한 사각지대가 생겨났다. 위상 상쇄. 마이너스 18.2데시벨.
“……잡았어.”
채은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모니터 화면의 녹색 파형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평평하게 내려앉았다.
“118데시벨 상태에서 위상 널 포인트 확보. 18.2데시벨 감쇄 성공이야.”
경원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경탄이 섞여 있었다.
채은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
태이가 채은의 곁으로 다가가 수건을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경원의 콘솔 노트북 화면 우측 하단에서 붉은색 경고 창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침전조 통로에서 경원이 몰래 백업해 온 수로 감시망 로그 데이터였다.
태이의 시선이 그 붉은 글씨에 멎었다.
‘인문관 메인 댐퍼 유압 밸브: 압력 140% 초과 과부하 상태.’
로그 아래에는 경원이 세 시간 전, 즉 침전조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수치를 이미 확인하고 다운로드해 둔 타임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태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도경원.”
태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노트북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찍어 눌렀다.
“이거 뭐야. 배관 압력이 정상을 한참 넘어서 140퍼센트라고 적혀 있는데?”
경원이 굳은 표정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창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태이가 경원의 팔을 낚아채며 콘솔 밖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너 알고 있었지? 밸브 열면 압력이 폭주해서 종루 쪽으로 음압이 배로 튄다는 거, 다 알고 있었잖아!”
“놓고 말해.”
도경원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태이의 손목을 쳐냈다. 그러나 태이는 물러서지 않고 경원의 셔츠 깃을 한 손으로 틀어쥔 채 302호 방음실 문밖, 차가운 복도 벽면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콘크리트 벽에 경원의 등이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놓게 생겼어, 지금? 배관 압력 140퍼센트? 장난해? 수동 밸브 열자마자 댐퍼 안에서 감쇄는커녕 공진이 폭주해서 역류할 거라는 소리잖아!”
태이의 눈에 핏발이 섰다. 억누르던 목소리가 복도의 적막을 찢었다.
“120데시벨이야. 120데시벨이 종루 좁은 공간에서 한 번에 튀면 고막이 아니라 달팽이관 자체가 찢겨 나가. 채은이 청각 과민증인 거 알고 있잖아. 귀가 완전히 망가진다고!”
경원은 태이의 손을 떼어내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굳은 턱을 치켜들며 싸늘한 눈으로 태이를 응시했다.
“그 밸브를 열지 않으면 28도 슬릿이고 뭐고 아무것도 입증 못 해. 부이사장이 보낸 철거 용역들이 시계탑 기둥에 크레인을 걸 거라고.”
“그래서? 채은이 귀를 미끼로 던져놓고 넌 뒤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치겠다는 거야?”
태이가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단말기 화면을 경원의 얼굴 바로 앞에 들이밀었다. 방재실 로그와 연동된 네트워크 전송 예약 창이었다.
“이건 또 뭔데? 타종 시작 1분 뒤, 대외 언론사 서버 스물네 곳으로 자동 전송 예약? 이게 백진우 교수 명예 회복을 위한 짓이야? 네 사적 복수잖아!”
태이의 거친 호흡이 좁은 복도에 흩어졌다.
“수로 압력이 터져 나가든 말든, 재단 방재망이 종루 쪽 실시간 주파수 분석 화면에 온 신경을 쏟는 그 3분 동안 원본 하드를 까발리겠다는 심산이잖아. 채은이를 총받이로 세워두고!”
“그 3분이 아니면 영원히 못 열어.”
경원이 차갑게 잘라 말했다. 경원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떨림도 없었다.
“그 하드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 20년 전 감사위원회가 백진우 교수의 설계를 고의로 왜곡한 감사 조작 원본, 그리고 부이사장이 시공사에서 받아 챙긴 비자금 내역서야. 종루에서 타종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재단 관제 센터 모니터에 박히는 순간, 보안 프로토콜에 틈이 생겨. 그 틈이 열리는 시간은 정확히 3분이야. 그 3분 안에 언론사 서버로 쏴버리지 않으면 부이사장은 공청회가 끝나자마자 데이터고 뭐고 전부 파쇄할 거다.”
“그러니까 왜 그걸 채은이가 짊어져야 하냐고!”
태이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수요일 오전 열 시, 단 일 초라도 어긋나면 네 손으로 채은이 귀를 망가뜨리는 거야. 당장 이 개수작 집어치우고 플랜 취소해. 내가 그 하드 부숴버리기 전에.”
“그만해.”
복도 끝 세면실 모퉁이에서 젖은 수건을 쥐고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울렸다.
채은이었다.
채은의 귓바퀴에는 여전히 붉은 핏자국이 옅게 묻어 있었지만, 두 눈은 놀라울 만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채은은 태이와 경원 사이에 똑바로 걸어 들어와 섰다.
태이가 황급히 손을 풀며 뒤로 물러섰다.
“채은아, 너 저 인간 말 듣지 마. 저 인간 지금 제정신 아니야. 밸브 압력이 140퍼센트까지 치솟아 있어서…….”
“다 들었어.”
채은이 담담하게 말을 끊었다.
채은은 경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경원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수로 밸브의 압력 과부하, 알고도 숨긴 거죠?”
“……숨긴 건 인정하지.”
경원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계획을 바꿀 생각은 없어. 침전조 격벽이 닫힌 이상, 공청회 당일 내가 직접 수로로 내려가 수동 레버를 젖히는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배관 진동이 종루로 치솟을 거라는 것도 사실이야. 네가 28도 축을 0.1도라도 놓치면 차음 플러그는 소용없어.”
“도경원, 입 닥쳐!”
태이가 소리쳤지만 채은이 손을 들어 태이를 제지했다. 채은의 시선은 오직 경원을 향해 있었다.
“하드를 언론사에 뿌리는 거, 3분이면 돼요?”
경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래. 네가 종루에서 130헤르츠 위상 상쇄 데이터를 화면에 띄우는 순간, 재단 방재팀의 관제 포트가 열린다. 그 3분 동안 하드의 복사본이 전송돼.”
“좋아요.”
채은이 거침없이 말했다.
태이가 기겁하며 채은의 어깨를 붙잡았다.
“채은아! 너 미쳤어? 귀가 멀 수도 있다니까? 저 인간 복수에 왜 네 몸을 걸어!”
“태이야.”
채은이 태이의 손을 떼어내며 마주 보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이건 도경원 선배의 복수만이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20년 동안 도망자처럼 숨어 지낸 이유, 그 사람들이 아버지를 사기꾼으로 만든 이유가 그 하드에 있어. 시계탑 종루에서 소리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저 사람들이 도망칠 구멍을 완전히 막아야 해.”
“그래도 위험해! 140퍼센트 과부하라잖아!”
“그래서 방금 118데시벨 훈련을 한 거잖아.”
채은이 주머니에서 0.6밀리미터 차음 필터가 끼워진 플러그를 꺼내 보였다.
“28도에서 18.2데시벨이 깎였어. 배관 진동 때문에 음압이 120데시벨까지 치솟는다면, 수음 각도를 28.5도로 미세하게 틀어서 고주파 파열음을 빗겨 맞으면 돼. 그 계산, 머릿속으로 이미 끝냈어.”
채은은 태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안에는 두려움을 넘어선 단단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난 내 귀를 믿어. 그리고 태이 네가 만들어 준 이 플러그도 믿고. 그러니까 도망 안 쳐.”
태이는 무어라 대꾸하려다 말고 더는 채은을 말릴 말을 찾지 못했다. 채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작은 방음실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채은이 고개를 돌려 경원을 보았다.
“수요일 오전 10시 정각. 선배는 인문관 지하 수로에서 정확히 밸브를 열어요. 단 1초도 늦어서는 안 돼요. 내가 종루에서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에 열어야 배관의 압력이 종루 슬릿을 통해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면서 상쇄되니까.”
“……알았다.”
경원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 세팅은 화요일 자정에 끝낸다. 시계탑 종루 거치대와 무선 송출 라인은 내가 미리 올려둘 테니, 넌 당일 아침 몸만 올라와.”
세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으나, 목표는 하나로 굳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채은이 먼저 몸을 돌려 인문관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경원은 복도 벽에 기댄 채 단말기의 전송 예약 버튼을 최종 승인 상태로 잠갔고, 태이는 주먹을 꽉 쥔 채 채은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새벽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캠퍼스 밖으로 세 사람이 걸어 나왔을 때, 중앙도서관 앞 광장은 평소와 다른 삭막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대형 크레인 두 대가 잔디밭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백여 석이 넘는 플라스틱 참관인석이 광장 한가운데 줄지어 깔리고 있었다.
그리고 웅장한 중앙도서관 시계탑 정면 외벽, 붉은 벽돌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현수막 한 장이 거칠게 펼쳐져 내걸렸다.
‘연화학원 재단 긴급 현장 검증: 중앙도서관 시계탑 구조 안전 및 음향 공진 결함 공개 기술 공청회. 일시: 수요일 오전 10시.’
차갑게 내려앉은 아침 공기 속에서 시계탑의 육중한 분침이 오전 6시를 가리키며 덜컥 소리를 냈다. 결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꼬박 사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