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나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안내 마법사의 뒤를 따랐다.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울렸다. 방금 그 순간, 그녀의 능력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설 속의 ‘컬러 위빙’. 타인의 감정 오라를 엮어 변화시키는 능력. 그녀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숨기고 싶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 발을 들인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안내 마법사는 리아나의 굳은 얼굴을 눈치채지 못한 듯,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리아나 양의 기숙사는 서관 3층입니다. 아르카나의 밤하늘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죠. 룸메이트는 아직 배정되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혼자 편안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혼자. 그 단어가 리아나의 귀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혼자라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타인의 오라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위험은 줄어들 테니까.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리아나는 최대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수많은 학생들의 오라가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활기찬 주황색, 진지한 파란색, 들뜬 연두색… 다양한 색채가 뒤섞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그녀는 그 속에서 자신을 지우고 싶었다. 이 아카데미의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으로, 그저 평범하게 존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은발과 금색 눈동자는 아르카나에서 흔치 않은 조합이었다. 시골 마을에서는 그저 ‘특이하다’는 정도였지만, 이곳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잠시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오라에서 호기심과 약간의 경계심이 섞인 색깔이 감지되었다. 리아나는 그 시선이 불편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싶었다.
"이곳이 리아나 양의 방입니다."
안내 마법사가 멈춰선 곳은 짙은 갈색 나무 문이 달린 방이었다. 문에는 ‘307호’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아담하지만 깔끔한 공간이 나타났다. 창문 너머로는 천공 도시 아르카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바다 위로 솟아난 황금빛 첨탑들과 푸른 에테르 마차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러나 리아나의 시선은 그 아름다움보다는, 방 한쪽에 놓인 침대와 책상에 머물렀다. 이곳이 앞으로 그녀의 세상이 될 곳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호출 마법을 사용하세요. 아카데미 생활에 대한 안내서는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내일 아침 식사는 7시에 대강당에서 시작되며, 첫 수업은 9시, 오리엔테이션은 점심 식사 후 진행될 예정입니다."
안내 마법사는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한 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정적이 찾아왔다. 리아나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푹신한 침대 시트가 그녀의 지친 몸을 감쌌다. 그녀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작은 은색 펜던트를 만졌다. 펜던트 안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띤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는 그녀에게 자신의 능력을 절대 드러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리아나, 네가 가진 힘은 너무나 특별해서, 세상이 감당하기 힘들 거야. 그러니 반드시 숨겨야 한단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이 처음 발현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마을 축제에서 울고 있던 아이의 오라가 갑자기 밝은 노란색으로 변하며 웃음을 터뜨렸을 때, 리아나는 자신이 뭔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그녀는 사람들의 오라를 읽는 것을 넘어, 아주 미세하게나마 그 색깔을 ‘엮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실을 엮어 천을 짜듯, 감정의 색깔을 엮는 능력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졌다.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그녀를 압도했다.
그녀의 능력이 더욱 강해지자, 결국 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아르카나의 에테르 아카데미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초청장을 보냈지만, 리아나는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감정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는 곳. 그녀의 능력이 가장 위험하게 발현될 수 있는 곳이었다.
리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눈앞에 펼쳐진 아르카나는 경이로웠지만, 동시에 그녀를 짓누르는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창밖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평범하게 졸업하자. 아무도 나의 능력을 알지 못하게…’
하지만 이미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거대한 존재에게 그녀의 능력이 닿아버린 것을. 그 사실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밤이 찾아오고, 아르카나의 하늘은 수많은 에테르 등불과 별빛으로 반짝였다. 리아나는 아카데미 안내서를 읽으며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했다. 마법의 역사, 오라 이론, 기초 마법 실습…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낯설었다. 그녀는 이미 오라를 읽고 조작하는 능력을 타고났지만, 그것은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의 능력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 리아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대강당은 이미 수많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다양한 색깔의 오라가 뒤섞여 거대한 무지개처럼 보였다. 리아나는 빈자리를 찾아 구석에 앉았다. 그녀의 주위 오라는 최대한 옅은 회색으로 감쌌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식사를 마친 후,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와 함께 아카데미의 역사와 규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리아나는 그 모든 것을 건성으로 들으며, 주변 학생들의 오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어제의 그 두 사람, 카이젠 황태자와 아드리안 벨모트의 오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오라는 너무나 강렬해서, 그녀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했으니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학생들은 각자 자신들의 첫 수업을 향해 흩어졌다. 리아나는 오라 이론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은 이미 많은 학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또다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수업은 오라의 종류와 그 발현 원리에 대한 것이었다. 교수는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리아나에게는 이미 아는 내용이거나, 혹은 그녀의 능력과는 동떨어진 이론들이었다. 그녀는 지루함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흠, 새로운 학생이군."
교수의 시선이 리아나에게 닿았다. 리아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리아나 에르메스 양 맞습니까? 어제 전학 온 학생이죠?"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의 오라가 순간적으로 짙은 회색에서 불안한 푸른색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네, 맞습니다." 리아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에르메스 양은 오라 이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라도?"
교수의 질문은 평범했지만,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꽂히는 순간, 리아나는 자신이 마치 벌거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능력은 이론과는 달랐다. 그녀는 그저 본능적으로 오라를 읽고, 때로는 엮을 뿐이었다.
"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몇몇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의 오라에서는 의아함과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색깔이 감지되었다. 리아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첫 수업부터 이런 식으로 주목받다니.
"괜찮습니다. 이곳 아카데미에서 충분히 배우게 될 겁니다."
교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리아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그녀의 존재는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소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녀는 그들의 오라에서 자신을 이질적으로 여기는 호기심과, 아는 것이 없는 듯 보이는 그녀를 향한 조롱 섞인 비웃음, 그리고 오라 이론에 대한 무지를 비웃는 경멸의 색채가 뒤섞여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의 교과서를 응시했다.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기 위해 애썼지만, 주변의 모든 감정들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 아카데미에서, 그녀는 과연 평범하게 지낼 수 있을까?
수업이 끝나고, 리아나는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는 여전히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녀는 최대한 벽에 붙어 걸으며,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은발머리 전학생!"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리아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제 아카데미 입구에서 보았던 붉은색 머리카락의 남자, 아드리안 벨모트였다. 그의 오라는 여전히 밝고 장난기 넘치는 주황색과 예리한 녹색이 어우러져 있었지만, 어제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짙은 호기심의 색깔이 그녀를 향해 뻗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듯 빛났다.
아드리안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그를 따르는 듯한 몇몇 학생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오라는 아드리안을 향한 선망과 리아나를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정말 찾기 힘들었네. 어제는 그렇게 꽁꽁 숨더니, 오늘은 쥐 죽은 듯 조용히 수업만 듣고 있더라고?"
그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즐거움과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리아나는 당황했다. 그가 왜 자신을 찾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를… 왜 찾으시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글쎄? 그냥… 흥미로워서. 네 오라가 좀 특이하거든."
아드리안은 씨익 웃었다. 그의 말에 리아나는 얼어붙었다. 그녀의 오라가 특이하다니. 그가 그녀의 능력을 눈치챈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녀의 감정 변화를 읽은 것일까?
"나는 아드리안 벨모트. 넌… 리아나 에르메스였지?"
그는 그녀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리아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녀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오라는 공포와 불안으로 물들어갔다.
그 순간, 또 다른 존재감이 그녀의 감각을 강타했다. 차갑고도 고귀한 푸른색과 금색, 그리고 깊은 검은색이 뒤섞인 오라. 어제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 오라였다. 리아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복도 저편에서, 흑단 같은 머리카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를 지닌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르카나 제국의 황태자, 카이젠 루베르트. 그의 주변 공기는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시선은 아드리안과 리아나에게 잠시 머물렀다. 그의 오라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제처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존재가 그의 감정의 호수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카이젠은 아무 말 없이 그들 옆을 지나쳐갔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리아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오라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리아나는 자신의 몸에서 아주 미세한, 하지만 분명한 감정의 실이 뻗어 나와 카이젠의 오라와 엮이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능력.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다시 그의 오라를 건드린 것이었다.
카이젠은 아무 말 없이 멀어져 갔다. 그러나 리아나는 그의 오라가 그녀에게서 멀어질수록,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듯한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그의 차가운 푸른 오라 속에, 아주 희미하게 붉은색 실이 엮여 들어가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것은 분노의 색깔이 아니었다. 혼란과… 알 수 없는 열망의 색이었다.
아드리안은 카이젠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너에게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 흔치 않은 일인데."
그의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다시 리아나에게 향했다. 그의 오라에서는 여전히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거기에 묘한 흥미와 소유욕 같은 색깔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내일 점심시간에 학생회실로 와. 궁금한 게 많거든."
아드리안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의 뒤를 따르던 학생들도 리아나에게 마지막 시선을 던진 후 그를 따라갔다.
리아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의 은밀한 능력이, 이제는 두 명의 가장 강력한 존재들에게 노출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내일 점심, 학생회실. 그녀는 그곳에 가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도망쳐야 할까?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의 오라는, 이제 완전히 불안과 공포로 물든 짙은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그 푸른색 오라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붉은색과 검은색의 실들이 얽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녀의 능력이 그녀 자신의 감정마저 흔드는 것처럼.
그녀는 아카데미 생활의 첫날부터, 이미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평범한 삶은, 아르카나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