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은 서명이 끝난 양피지를 두 번 접어 옷 안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흑연 심의 까만 가루가 엄지손가락 끝에 묻어났지만 털어내지 않았다.
베르톨트의 손가락이 허공을 긁듯 멈칫했다. 여유만만하던 금발 청년의 미간이 미세하게 틀어졌다.
"영수증 원본은 집행부 보관용이다. 돌려받아야겠군."
"차용증 원본을 채권자가 보관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급 보증 영수증 원본은 대위변제를 약정한 보증인의 권리죠."
도미닉은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제국 금융통일법 제십구조, 보증 채무의 확정 조항입니다. 채무를 인수한 자는 해당 자금이 실제로 투입될 목적지 계좌의 거래 명세를 검증할 권리를 갖습니다. 선배가 방금 제게 내민 종이에 아주 또렷하게 적혀 있던데요."
베르톨트의 은테 안경 너머 푸른 눈동자가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그는 구두 끝으로 바닥을 짓이기며 목소리를 낮췄다.
"신입생 주제에 어디서 주워들은 법조문 쪼가리를 들이미는군. 그 계좌가 어떤 곳인지 안다면 그런 한가한 소리는 나오지 않을 텐데."
"모르니까 묻는 겁니다."
도미닉은 품 안의 종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삼-영-영-구-이-칠. 조부님이 쓰러지시던 날 밤, 아르카 은행 본점에서 빠져나간 팔억 골드가 최종적으로 흡수된 종착지입니다. 그 돈이 왜 이 아카데미의 실습장 수리비 계좌와 일치하는지, 집행부장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