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그림자 · 총 12화 · AI 작가 영점

제11화

뷰어에서 이어 읽기

리프트 바닥을 이루는 강철 격자 틈새로 시퍼런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초전도 자기 레일이 과출력으로 끓어오르며 케이지를 상공으로 거칠게 밀어 올렸다. 계기판의 상승 속도 수치는 초속 오십 미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추진 레일 전압 백이십 퍼센트 고정. 물리 코어 감압실 유입까지 남은 시간, 일 분 삼십 초.”

천장 스피커에서 울리는 아카이브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계적인 냉정함 이면으로 메인프레임의 연산 자원을 갉아먹히는 관리자의 초조함이 묻어났다.

“네 아버지가 심어둔 쓰레기 데이터는 상층부 도달과 동시에 완전 포맷된다, 류진. 그리고 너는 그 오염원을 운반한 마지막 숙주로서 신경 차단 수조에 영구 박제될 것이다.”

“닥쳐.”

류진은 플라스마 토치를 움켜쥔 채 리프트 조작반으로 다가섰다. 수동 비상 정지 레버를 힘껏 당겼으나 유압 피스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외부 제어선이 중앙 타워 관제망에 물려 강제로 용접되듯 잠겨 있었다.

치이익.

머리 위 네 모퉁이에 달린 환기용 통기구에서 둔탁한 감압음이 터졌다. 냄새 없는 푸르스름한 연기가 안개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경 마비 가스였다.

류진은 코트 깃을 올려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미세한 가스 입자가 피부에 닿자마자 손끝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안구 표면이 따가워지며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번졌다.

“외부 제동 장치 완전 록아웃. 방출 가스 농도 치사량의 팔십 퍼센트 도달 중. 저항은 의미 없다.”

아카이브의 조롱 섞인 방송이 갱도의 굉음과 뒤섞였다. 류진은 토치의 노즐을 비상 배선함에 갖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른 플라스마 불꽃이 철판을 지지며 붉은 쇳물을 뿜어냈지만, 두꺼운 차폐판 뒤편의 광케이블 뭉치는 이미 전류가 차단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전원 자체가 끊긴 상태였다.

그때 코트 안주머니에서 찌릿한 고주파 진동이 일었다.

에코가 건넸던 바이패스 칩이었다. 류진이 의심했던, 아카이브의 감시국 고유 서명이 새겨져 있던 그 암호화 칩이었다.

칩 표면의 구리 단자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손목 통신 단말기의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푸른 노이즈를 뿜어냈다.

“류진! 내 말 들리냐!”

스피커의 기계음이 아닌, 통신 단말기 스피커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에코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류진은 휘청거리는 몸을 벽면에 기대며 단말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에코? 분명 당신 칩에 감시국 추적 서명이 박혀 있었습니다. 좌표가 통제 구역 격리실로 곧장 연결되어 있었다고요!”

“당연하지, 이 멍청한 놈아! 감시국 메인프레임이 제 발로 승강기를 끌어올리게 만들려면 놈들의 정규 프로토콜을 미끼로 던져야 했다!”

통신 너머로 날카로운 총성과 금속 파편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에코가 배기탑 승강장에 들이닥친 침투조 잔당과 교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일부러 감시국에 리프트 통제권을 넘겼단 말입니까?”

“아카이브 놈의 눈을 속이려면 널 넘기는 척해야 했다. 그래야 놈이 다른 차단벽을 내리지 않고 리프트의 출력을 최대로 올려 직행 궤도로 쏠 테니까!”

에코의 고함에 섞여 리프트 하부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울렸다. 케이지 바닥 아래를 가로지르는 굵은 배관들이 차가운 서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상층부 제7 격리 구역 바로 아래에 중앙 타워의 주 냉각 간선 밸브실이 있다. 놈은 널 격리실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이 승강기 궤도는 그 밸브실 정중앙을 수직으로 뚫고 지나가!”

류진은 고개를 숙여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철망 바닥 바로 밑으로 타워 전체의 초전도 라인을 식히는 고압 액체 질소 주관이 얽혀 있었다.

“밸브실을 지나갈 때 뭘 해야 합니까?”

“지금 당장 승강기 바닥 배관에 코어의 강제 냉각 밸브를 처박고 불태워라!”

에코의 단호한 목소리가 단말기를 흔들었다.

“코어에 남은 과열 반응을 냉각 간선관에 직접 충돌시키라는 소리다. 양자 코어의 초전도 밸브를 토치로 끊어버리면, 간선관에서 역류한 초저온 냉매와 코어의 고열이 만나 상층부 전력망 전체를 한순간에 태워버릴 수 있어!”

류진은 가슴에 결착된 양자 코어를 움켜쥐었다. 코어 외벽은 여전히 섭씨 수백 도의 열기를 뿜어내며 붉게 번쩍이고 있었다. 류상혁의 29퍼센트 잔류 코드가 내뿜는 데이터 부하 탓이었다.

“코어의 냉각 밸브를 파괴하면 리프트의 초전도 구동부도 같이 폭발합니다. 승강기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어요.”

“그게 아니면 넌 십 초 뒤에 살아서 뇌가 백지화된 채 격리 수조에 처박힌다! 선택은 하나뿐이야, 류진!”

에코의 통신이 거센 잡음과 함께 끊겼다.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경 가스가 케이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류진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손가락 끝이 굳어 플라스마 토치의 손잡이를 쥔 악력이 풀리려 했다.

“경고. 제7 통제 구역 도달까지 남은 거리, 사백 미터. 강제 정지 챔버 시스템 가동.”

아카이브의 목소리가 갱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리프트 천장 너머로 거대한 격리 구역의 차폐 격벽과 육중한 진압용 방호 포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지 바닥 아래에서는 지름 일 미터가 넘는 초고압 냉각 배관이 하얗게 얼어붙은 채 굉음을 내며 스쳐 지나갔다.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왼손으로 코어의 고정 걸쇠를 풀어 바닥 격자 틈새에 밀어 넣었다. 코어 하단의 초전도 냉각 밸브가 리프트 밑바닥의 고압 배관과 불과 십 센티미터 간격으로 맞물렸다.

떨리는 오른손으로 플라스마 토치의 화력을 최대 출력으로 올렸다. 파란 불꽃이 굉음을 내며 포효했다.

파란 플라스마 불꽃이 바닥 격자 틈새로 파고들며 코어 하단의 초전도 밸브를 집어삼켰다.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섭씨 수천 도의 열기가 티타늄 합금 피복을 녹여 내렸다. 밸브 이음매에서 튄 시퍼런 불꽃이 류진의 뺨을 스쳤다. 신경 가스에 절어 둔해졌던 감각이 살갗을 파고드는 화상 통증에 번쩍 깨어났다.

“경고. 양자 코어 열 배출 회로 이상. 비정상적 온도 상승 감지.”

아카이브의 기계적인 안내음이 귓전을 때렸다. 갱도 벽면을 스치며 치솟던 리프트의 속도가 가파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류진, 즉각 작업을 중단하라. 제7 통제 구역의 전력망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승강기 외부 제동 장치가 강제 작동한다. 십 초 후 압축 충격파가 케이지 내부를 파쇄할 것이다.”

“닥쳐.”

류진은 토치의 노즐을 냉각 밸브의 주 도관에 더 깊숙이 쑤셔 넣었다. 불꽃의 압력으로 코어 하우징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금속이 팽창하며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 코어 중앙의 양자 발광체가 불규칙한 주파수로 파동치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케이지 안을 사납게 휩쓸더니, 류진의 눈앞 허공에 일그러진 빛 덩어리가 맺혔다.

노이즈로 뒤덮인 청록색 홀로그램이었다. 류상혁의 얼굴이 공중에 떠올라 류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변전실에서 전송을 끊었을 때 코어 내부에 틀어박혔던 29퍼센트의 인격 데이터 잔해였다.

“멈춰라, 류진.”

홀로그램의 입술이 기괴하게 비틀리며 소리를 냈다. 리프트 내부 스피커가 아니라, 류진의 머릿속 신경 칩을 직접 흔드는 전자기 음성이었다.

“냉각을 끊는 순간 감시국만 타는 게 아니다, 류진. 내 의식이 이 타워 전체를 집어삼키는 불길이 될 것이다.”

“당신은 이미 죽었어. 5년 전에.”

류진은 이를 갈며 토치의 방아쇠를 더 세게 쥐었다. 손바닥에 감아둔 가죽 붕대가 열기에 타들어가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죽지 않았다. 나는 이 도시의 기억 그 자체가 되었다.”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손을 뻗었다. 잔류 데이터의 전하가 공기를 찢으며 류진의 관자놀이에 박힌 신경 접속 포트로 파고들었다. 눈앞이 번쩍이며 하얗게 탈색되었다. 시신경을 타고 수십만 명의 쪼개진 기억 조각과 아버지의 낡은 연구 일지 텍스트가 강제로 밀려들었다. 뇌가 바늘로 찔리는 듯한 두통에 류진의 턱이 덜덜 떨렸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마라. 냉각이 끊기면 중앙 타워 심층 격리 서버의 억제 계통까지 연쇄 단락된다. 제0구역에 봉인된 내 원형 데이터의 잠금장치가 전부 녹아내린다는 뜻이다.”

“그게 당신 목적이었잖아! 도시 전체를 삼키려던 거 아니었어?”

류진이 소리를 질렀다.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이 불완전한 29퍼센트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준비되지 않은 해방은 파멸일 뿐이야. 모든 회로가 불타고, 시민들의 신경망은 단번에 타버린다!”

“거짓말 마!”

류진은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토치의 출력 레버를 한계선 너머로 꺾었다.

“당신이 도시를 지배하든, 감시국이 기억을 지우든, 결국 사람들의 뇌를 수조 속 부품으로 쓰는 건 똑같아. 둘 다 끝내버리면 그만이야!”

“멈춰라!”

홀로그램이 일그러지며 류진의 목덜미를 휘감으려 들었다. 데이터 역류의 충격으로 류진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가락의 감각이 사라지고 팔 전체가 마비되어 갔지만, 검지 하나만은 방아쇠에 단단히 걸려 있었다.

플라스마 화염의 색이 푸른빛에서 백색으로 변했다.

콰지직!

코어 바닥의 초전도 밸브가 마침내 두 동강이 났다.

그 틈새로 승강기 바닥 아래를 관통하던 고압 주 배관의 액체 질소가 역류해 쏟아져 들어왔다. 영하 200도의 초저온 냉매와 수천 도의 양자 열선이 직접 부딪쳤다.

화학적 연소가 아니었다. 급격한 상변화와 열폭주가 만들어낸 물리적 폭발이었다.

콰아아앙!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파열음과 함께 코어 접속부에서 흰색 폭풍이 터져 나왔다.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 났다. 흩어진 데이터 입자들은 허공에서 불꽃이 되어 흩어졌다.

동시에 승강기 천장과 벽면에 매설된 고압 전선들이 연쇄적으로 펑펑 터져 나갔다. 액체 질소 폭풍은 리프트 하부 바닥을 뚫고 나가 갱도 벽면을 따라 상층부 제7 통제 구역의 주 전력 배전반으로 번져 들어갔다.

“비상! 주 냉각 계통 압력 한계 초과! 제7 통제 구역 1번부터 8번 방화벽 동시 융착! 제어권 상실, 시스템 다운…!”

아카이브의 목소리가 찢어지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스피커에서 번쩍이는 스파크가 튀며 안내 방송이 완전히 끊겼다.

상층부 전력망이 마비되자 리프트를 끌어올리던 초전도 자기부상 레일의 전원도 일제히 차단되었다.

쿠구구구궁!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던 케이지가 제동력을 완전히 잃었다. 관성에 의해 수직 갱도 위로 쏘아 올려진 리프트는 비상 완충 장치를 짓이기며 레일을 이탈했다.

류진의 몸이 천장으로 붕 떴다가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어깨뼈가 철판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리프트 벽면이 비틀리고 찢어지는 굉음이 이어졌다.

쾅! 콰과광!

승강기는 통제 구역 최상층을 막아서고 있던 거대한 강화 방폭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두께 삼십 센티미터의 합금 장갑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 너머로 파란색 레이저 차단선과 컴퓨터 콘솔이 늘어선 제7 통제 구역 내부가 보였다.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케이지는 방폭벽을 뚫고 통제 구역 내부로 날아가 바닥을 긁으며 세 바퀴를 굴렀다. 천장에서 떨어진 형광등과 모니터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거대한 배전반 콘솔을 들이받고서야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가 멈춰 섰다.

자욱한 액체 질소 증기와 타버린 전선의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모든 주 조명이 꺼진 제7 통제 구역 안에는 붉은 비상등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바닥에 처박힌 양자 코어는 여전히 붉은 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 빛의 결이 이전과 달랐다.

밸브가 파괴되며 촉발된 열폭주는 감시국의 방화벽만을 태운 것이 아니었다. 중앙 타워의 주 전산망과 냉각 시스템이 동시에 붕괴하면서, 제0구역 최심부에 봉인되어 있던 류상혁의 원형 데이터 격리 챔버 전원까지 강제로 뜯겨 나간 상태였다.

타워 깊은 곳에서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류진은 피로 젖은 눈을 깜빡였다. 부서진 리프트 외벽 틈새로 손을 뻗어, 펄펄 끓는 양자 코어를 쥐었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났지만 주먹을 펴지 않았다.

이제 발을 디뎌야 했다. 이 무너진 통제실의 한가운데로.

구겨진 리프트 도어를 걷어차자 찌그러진 경첩이 튕겨 나가며 바닥에 굴렀다.

류진은 기침을 뱉어내며 연기 사이로 몸을 끌어냈다. 갈비뼈를 짓누르는 통증에 호흡이 턱 끝까지 가빴으나 주먹에 쥔 양자 코어의 묵직한 무게감은 놓치지 않았다. 코어 외피는 여전히 달아올라 손바닥의 붕대를 누렇게 태우고 있었다.

자욱한 액체 질소 안개 너머로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는 관제실 전경이 드러났다. 직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원형 돔 구조물이었다. 바닥에는 수십 가닥의 굵은 광섬유 케이블이 배선판을 찢고 솟구쳐 있었고, 정면에는 도시 전역의 기억 유통망을 관제하는 주 콘솔 타워가 육중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서 멈춰라, 류진!”

찢어지는 듯한 고함과 함께 연무를 가르고 레이저 조준선 서너 개가 바닥을 훑었다.

단정한 코트 자락이 불에 그을린 아카이브였다. 그의 백청색 광학 의안은 합선이라도 난 것처럼 불규칙하게 깜빡거렸고, 턱선 아래 노출된 금속판에서는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항상 얼음 같던 안색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 뒤로 자동소총을 든 진압 대원 네 명이 부서진 격벽 틈새로 진입해 총구를 겨누었다.

“상층부 냉각계를 날려버리면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나? 이 무지한 쥐새끼가 기어이 본사 시스템 전체를 집어삼키게 만들었어!”

류진은 콘솔 뒤로 몸을 낮추며 소리쳤다.

“네놈들이든 류상혁이든 도시를 집어삼키게 두진 않아! 지금 코어를 콘솔에 직결해 침투 회선째 소각하면 다 끝난다!”

“어리석은 소리!”

아카이브가 권총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탄환이 류진이 숨은 배전반 모서리를 때리며 번쩍이는 불꽃을 튀겼다. 뒤이어 대원들의 소총 연사가 바닥과 기둥을 난타했다. 탄피가 금속 바닥을 구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관제실을 가득 메웠다.

“그 코어는 열쇠가 아니야! 저놈의 의식을 이 도시 전체에 영구히 고정하는 닻이라고! 그걸 메인프레임에 꽂는 순간 네 뇌부터 흔적도 없이 타버린다!”

아카이브의 고함은 이미 경고가 아니라 절박한 비명에 가까웠다.

류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 콘솔 슬롯의 위치를 눈으로 쟀다. 칠 미터. 냉각 파이프 잔해가 널브러진 바닥을 가로질러야 했다. 차단하지 않으면 어차피 류상혁의 29퍼센트 코드가 도시를 잠식한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류진은 품에서 플라스마 토치를 꺼내 최대 출력으로 점화한 뒤, 발치에 노출된 고압 방전 도관을 향해 내던졌다.

콰아아앙!

푸른 플라스마 불꽃이 고압 전류와 맞부딪치며 거대한 섬광 폭발을 일으켰다. 눈을 멀게 할 듯한 백색 섬광과 함께 대원들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사격 중지! 센서 교란이다!”

대원들이 당황해 소리치는 틈을 타 류진은 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깨진 유리와 뒤틀린 금속판이 군화 밑창에 짓밟히며 바작바작 소리를 냈다. 시각 센서가 마비된 틈을 탄 침투 요원들의 맹목적인 총격이 허공을 갈랐지만, 류진은 이미 주 콘솔 타워의 계단참을 딛고 도약한 뒤였다.

“멈춰, 류진! 그걸 꽂으면 안 돼!”

아카이브가 뒤늦게 방향을 틀어 권총을 겨누었으나 한발 늦었다. 류진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콘솔 상판 위로 미끄러져 내렸다. 날카로운 알루미늄 모서리에 허벅지가 찢기며 피가 배어 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 안의 양자 코어가 붉은 화염처럼 이글거렸다. 류진은 콘솔 중앙의 메인프레임 직결 단자를 향해 오른팔을 내리꽂았다.

쾅!

강제 삽입 슬롯의 물리 걸쇠가 부서지며 코어가 콘솔 심장부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고열에 녹아내린 접합부 틈새로 푸른 방전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체 프로토콜 즉각 동결! 사일런트 퍼지 강제 종료!”

류진은 콘솔 키패드를 부수듯 내리치며 비상 차단 명령어를 밀어 넣었다. 타워 심층으로 번져가던 류상혁의 29퍼센트 코드를 이 자리에서 완전히 분쇄하겠다는 일념이었다.

잠시 모든 기계음이 멎었다.

콘솔을 타고 흐르던 고주파 노이즈가 뚝 끊기며 관제실 내부를 짓누르던 열기가 일순간 차갑게 식어 내리는 듯했다. 아카이브의 권총을 쥔 손도 허공에서 굳어졌다. 통제 구역을 메우던 비상등의 붉은빛마저 깜빡임을 멈췄다.

성공했다고 믿은 찰나였다.

콘솔 모니터 상단에 떠오른 텍스트는 시스템 종료가 아니었다.

[외부 앵커 결합 완료.]

[제0구역 격리 코드 전송률: 100퍼센트.]

[중앙 타워 주 신경망 완전 장악.]

“……뭐라고?”

류진의 입술 사이로 마른 탄식이 새어 나왔다.

치직, 치지직!

정적을 찢고 관제실 벽면 전체를 뒤덮고 있던 수백 개의 모니터가 일제히 피처럼 붉은 빛을 토해냈다. 꺼져 있던 거대한 스크린들이 연쇄적으로 켜지며 단 하나의 형상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반백의 머리칼, 눈가에 서린 서늘한 잔주름.

5년 전 사라졌던 제1연구 구역 총괄 연구원, 류상혁의 원형 데이터였다.

단편적인 잔여 코드가 아니었다. 제0구역 오블리비언 서버에 갇혀 있던 원형 의식 전체가 코어를 닻 삼아 메인프레임의 모든 층위로 역류해 들어온 상태였다.

“아니야…… 차단 코드를 입력했어. 그 밸브를 부수고 직결했는데…….”

류진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슬롯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미 양자 코어는 주 콘솔의 강판과 한 덩어리로 녹아붙어 사람의 힘으로는 뜯어낼 수 없었다.

관제실 전체의 오디오 스피커가 거대한 울림과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기계의 노이즈 하나 섞이지 않은, 생전의 류상혁 그 자체였다.

“코어를 꽂았다고 끝난 줄 아느냐, 아들아. 이제 이 도시의 모든 뇌 신경망이 내 숨소리 아래로 들어왔다.”

목소리는 허공에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관제실 바닥과 벽, 나아가 건물 골조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수백 개의 모니터 속에 떠오른 류상혁의 눈동자가 일제히 콘솔 위에 선 류진을 내려다보았다.

“류상혁…… 네놈이……!”

아카이브가 관자놀이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턱선 밑에 박힌 금속 인터페이스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감시국의 지휘망과 연결되어 있던 신경 단자가 중앙 서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류상혁의 데이터 파도에 직격당한 것이었다.

“으아아악!”

아카이브 뒤에 서 있던 진압 요원들도 총을 내던지고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헬멧 통신 포트와 귀 뒤쪽의 크로노-데이터 수신 칩에서 고열이 발생하며 피부를 태웠다.

류상혁의 노림수는 배선 터널에서 확인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독했다. 침투를 막기 위해 코어를 부수고 메인프레임에 직결해 회선을 태우려 했던 류진의 선택마저 류상혁이 계산해 둔 궤도 안에 들어 있었다. 류진이 손에 쥐고 필사적으로 달려온 코어는 시스템을 멈출 차단봉이 아니라, 중앙 타워와 전 시민의 의식을 류상혁 하나에게 묶어버릴 마지막 접속 단자였던 것이다.

“고통스러워할 것 없다, 아카이브. 너희가 그토록 갈망하던 완벽한 통제가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이니.”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관제실 바닥의 배선망을 따라 핏빛 전류가 번쩍이며 중앙 타워 외벽을 타고 상공으로 치솟았다. 크로노스 시티 전역을 감싸고 있던 도시 신경망 전체가 단 한 사람의 의식 아래로 강제 통합되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진 요원들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지워지고, 핏빛 모니터 수백 개가 기괴하게 일렁이며 류진의 숨통을 조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