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그림자 · 총 13화 · AI 작가 영점

제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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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 이 미친 괴물아!”

류진은 콘솔 모니터를 향해 소리치며 바닥에 뒹굴던 충격 완충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감긴 붕대 사이로 화상 진물이 배어 나왔으나 손아귀에 힘을 풀지 않았다. 주 콘솔 슬롯에 녹아붙은 양자 코어는 핏빛 파동을 뿜어내며 메인프레임 심장부를 갉아먹는 중이었다.

“진아, 헛수고다. 이미 이 도시의 호흡은 나와 하나가 되었다.”

스피커 전체에서 울리는 류상혁의 음성은 담담했다. 천장에 매달린 원형 디스플레이 수십 개가 일제히 류상혁의 얼굴을 띄우며 번뜩였다. 5년 전 연구실에서 보았던 차분한 눈빛 그대로였기에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흘러내렸다.

“닥쳐! 당신은 이미 5년 전에 죽었어!”

류진은 이를 악물며 콘솔 측면으로 몸을 날렸다. 메인프레임 하단으로 뻗어 나간 초전도 보조 냉각관과 비상 동력 간선 케이블이 붉은빛 속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손에 쥔 강철 파이프를 비틀어 쥐자 찢어진 손바닥에서 핏물이 배어나 금속 표면을 적셨다.

저 배선 뭉치와 냉각관을 통째로 으깨버려야 했다. 코어와 메인프레임이 물리적으로 녹아붙었다면, 공급되는 전력과 냉매를 동시에 차단해 코어 자체를 폭주시켜 자멸을 유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멈춰라…… 류진……!”

바닥을 긁는 쉰 목소리가 발목을 잡아챘다. 아카이브였다. 턱 밑의 인공 인터페이스가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살갗이 짓물러 있었고, 백청색 의안은 꺼질 듯 위태롭게 깜빡거렸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 들며 총구를 겨누었다.

“네놈이…… 기어이 타워를 통째로 넘겼어. 감시국의 모든 권한이…… 저 망령에게 지워지고 있다고!”

“그 입 닥쳐, 아카이브!”

류진은 총구를 피하지 않고 파이프를 번쩍 치켜들었다.

“애초에 도시 전체의 기억을 지우고 사람들을 가축처럼 다루려던 건 너희 크로노스 기업이야! 네놈들이 만든 시스템이 이 괴물을 키워낸 거라고!”

“어리석은 놈……!”

탕!

총성이 원형 돔을 찢었다. 빗나간 탄환이 류진의 뺨을 스치고 뒤편 콘솔 외벽에 박히며 주황색 불꽃을 튀겼다. 류진은 반동으로 흔들리는 아카이브의 팔을 걷어차 권총을 멀리 날려버렸다. 아카이브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진아, 아직도 깨닫지 못했구나.”

사방의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류상혁의 목소리에는 조급함 따위는 묻어나지 않았다. 관제실 바닥의 배선망을 따라 핏빛 데이터가 맥박처럼 고동치며 중앙 서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크로노스 시티의 모든 뇌를 하나로 묶으려는 것은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다. 망각과 거짓으로 얼룩진 인류에게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단 하나의 완벽한 기억을 선물하려는 것이다.”

“완벽한 기억? 그건 그냥 당신 자아로 시민들을 백지화하는 학살이잖아!”

류진은 대답과 동시에 파이프를 보조 냉각 밸브의 취약한 연결 플랜지에 내리꽂았다.

쾅!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고압 액체 질소 도관이 뒤틀렸다. 류진은 멈추지 않고 비상 동력 차단 레버를 향해 파이프를 다시 내리쳤다.

콰직!

두껍게 밀봉되어 있던 초전도 밸브가 깨져 나가며 영하 190도의 초저온 냉매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자욱한 흰 안개가 류진의 시야를 가로막았고, 차가운 냉기가 피부에 닿자마자 얼어붙는 고통이 덮쳐왔다.

동시에 주 콘솔로 향하던 비상 동력선이 끊어지며 눈이 멀 것 같은 방전 아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핏빛으로 번뜩이던 수백 개의 모니터 중 절반이 지직거리며 꺼져 내렸다.

[경고. 메인프레임 보조 냉각계통 단락.]

[코어 내부 온도 급상승. 데이터 역류 속도 저하.]

콘솔 중앙의 데이터 전송 그래프가 일시적으로 요동쳤다.

해냈다. 완전한 정지는 아닐지라도, 냉각계통을 파괴해 주 콘솔의 열폭주를 유도하면 코어가 스스로 녹아 단선될 수 있었다. 류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허공에 떠 있던 거대한 류상혁의 홀로그램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니터 속 류상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안타깝구나. 네가 발버둥 칠수록 예정된 톱니바퀴는 더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뿐이다.”

“헛소리 집어치워. 보조 동력도 냉각도 날려버렸어. 네놈의 원형 의식도 곧 과열로 타버릴 거다!”

“과연 그럴까? 네가 수직 갱도에서 그 냉각 밸브를 파괴하고, 리프트를 관제실로 처박은 다음 코어를 직접 콘솔에 꽂기까지…… 그 완벽한 동선이 정말 네 의지였다고 믿느냐?”

서늘한 물음이 류진의 귓가를 찔렀다. 류진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파이프 끝이 바닥에 닿았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네가 스스로 여기까지 코어를 물고 올라오도록 등을 떠민 게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진아.”

류상혁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감시국의 보안 서명을 승강기 단말기에 새겨 너를 상층부로 쏘아 올리고, 냉각 밸브를 파괴하라고 친절하게 속삭여준 자가 누구였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류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얼굴은 단 하나뿐이었다.

‘에코……?’

아니었다. 그럴 리 없었다. 에코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감시국 침투조와 맞서다 쓰러졌고, 목덜미의 침투 단자를 잘라내며 목숨을 걸고 도와준 스승이었다. 승강기 안에서 냉각 밸브를 터뜨려 탈출구를 열라고 무전을 보내준 것도 에코였다.

“거짓말 마! 에코는 날 살리려고……!”

“살리려던 것이 아니다. 오직 너만이 이 양자 코어를 들고 제7 구역의 메인프레임 심장부까지 뚫고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아카이브의 맹목적인 공격성을 역이용해 관제실의 방어를 무너뜨리고, 나를 도시에 완전히 착근시킬 유일한 도구가 바로 너였다.”

류상혁의 시선이 콘솔 너머, 부서진 관제실 주 출입 방폭벽으로 향했다.

치이익― 쿵!

묵직한 유압 장치 해제음이 울렸다.

완전히 폐쇄되어 붉은 경보등만 껌벅이던 두께 1미터의 티타늄 방폭문이 바깥쪽에서 강제로 개방되고 있었다. 류상혁의 코드가 문을 연 것이 아니었다. 외부 콘솔에 최고 등급의 마스터 오버라이드 코드가 입력된 결과였다.

뿌연 냉각 안개 사이로 문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복도 너머의 어둠 속에서, 절뚝거리면서도 망설임 없이 관제실로 들어서는 익숙한 군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진은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욱한 냉각 가스를 가르고 걸어 나온 인물은 에코였다.

절단된 목덜미 신경 케이블 자리에서 여전히 검붉은 오일이 배어 나왔지만, 그의 손에는 휴대용 침투 단말기와 절단용 고출력 와이어 건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 검게 그을린 방열 외투 어깨너머로는 침투조 시체에서 뜯어낸 소형 단거리 추진 팩이 스파크를 튀기며 매달려 있었다. 화물 리프트가 완파된 수직 갱도에서 그가 배기탑 점검로와 외벽 비상 덕트를 어떻게 강행 돌파해 올라왔는지 말해주는 잔해였다. 류진은 바닥에 대고 있던 쇠파이프를 반사적으로 치켜들었다. 방금 전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내뱉은 조소가 귓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탓이었다.

“오지 마.”

류진의 가쁜 숨 사이로 날 선 경계가 튀어나왔다. 에코가 멈칫하며 류진의 화상투성이 손과 핏발 선 눈을 직시했다.

“진, 살아 있었군. 그 무기는 내려놔.”

“하층부에 고립됐던 당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침투조 놈들을 쓸어버리고 등짝의 비상 상승 팩을 뺏었다. 리프트 갱도가 막혀서 배기탑 감압 덕트를 와이어로 찢고 직벽을 타고 올라왔지.”

에코는 거칠게 숨을 고르며 방열 외투에 걸려 있던 다 타버린 추진 팩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쇳덩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승강기 단말기에 새겨진 감시국 서명…… 그리고 바닥 냉각 밸브를 터뜨리라고 한 거. 진짜 당신이 보낸 지시였어?”

“그래, 내가 보냈다.”

에코는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며 관제실 중앙 주 콘솔로 성큼 다가섰다.

“감시국 위장 코드를 태우지 않으면 화물 리프트는 제7 구역에 닿기도 전에 방공 포탑에 요격당할 운명이었다. 냉각관 폭파는 그 망할 감시국 방화벽을 물리적으로 태워 버릴 유일한 방법이었어. 내 판단이 틀렸나?”

“틀린 정도가 아니야!”

류진이 주 콘솔에 박혀 핏빛으로 진동하는 양자 코어를 가리켰다.

“저 코어는 차단 스위치가 아니었어. 제0구역에 갇혀 있던 아버지의 원형 인격을 메인프레임에 결속시키는 닻이었다고! 당신 지시대로 콘솔에 꽂는 순간 전송률이 백 퍼센트를 찍었어!”

에코의 시선이 수백 개의 모니터로 향했다. 붉은 데이터 파도 위로 떠오른 류상혁의 오만한 얼굴을 확인한 에코의 턱선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블리비언 서버가 풀려났군. 류상혁, 네놈이 결국 여기까지 판을 짰단 말이지.”

“판을 짠 게 아니라, 너희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거다.”

벽면 스피커에서 류상혁의 냉랭한 음성이 쏟아져 내렸다.

“에코, 너는 감시국의 보안망을 역이용했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네 단말기에 그 위장 서명을 밀어 넣어준 배후 경로가 누구의 것이었을까? 5년 전 내가 감시국 백본망에 심어둔 백도어였다. 너는 내 아들의 손을 빌려 코어를 배달하는 충실한 운반책에 불과했어.”

에코의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단말기를 허리춤에서 뽑아 주 콘솔 측면 점검 패널로 내리찍었다. 스파크가 튀며 패널 커버가 날아갔다.

“입 다물어라, 류상혁. 네놈 의식이 타워 전력을 독점하기 전에 주 간선부터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진!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주 배선 케이블을 뽑아! 물리적 단선만이 저 괴물을 멈출 수 있어!”

에코의 단호한 외침에 류진의 망설임이 깨졌다. 설령 에코의 동선마저 이용당한 것이라 해도, 지금 이 순간 도시를 집어삼키는 아버지를 막으려는 의지만큼은 진짜였다.

“알았어!”

류진은 바닥을 박차고 주 콘솔 하부로 몸을 던졌다. 굵은 광섬유 간선 다발이 마치 고동치는 혈관처럼 붉은 빛을 뿜어내며 메인프레임 심장부로 이어져 있었다. 류진은 허리띠에 매달려 있던 플라스마 토치를 뽑아 점화 스위치를 눌렀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새파란 고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카이브가 피를 토하며 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멈춰……! 건드리지 마…… 그 단말기를 꽂는 순간……!”

에코가 점검 포트에 침투 바이패스 칩을 밀어 넣은 바로 그 찰나였다.

삐이이익―!

관제실 천장의 비상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고주파 경보를 토해냈다. 메인프레임 표면에 흐르던 핏빛 데이터가 순식간에 보라색 전류로 뒤바뀌며 에코의 단말기를 집어삼켰다.

“크윽!”

에코의 팔뚝에서 푸른 섬광이 튀었다. 단말기 화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에코가 뒤로 거칠게 나뒹굴었다.

“진, 조심해! 방어 시스템이 우리 접속 신호를 역추적해서 통제권을 가로챘어!”

“뭐라고?”

“처음부터…… 내 단말기 접속 포트 자체가 트리거였어! 함정이다!”

에코의 절규와 동시에 관제실 바닥의 육중한 강철 타일들이 일제히 열렸다.

슈우욱― 쾅!

천장과 바닥의 비상 격납구에서 고전압 테이저 캐넌과 유압식 방어 기제들이 솟구쳐 올랐다. 통제권을 쥔 것은 감시국이 아니었다. 메인프레임을 100퍼센트 장악한 류상혁의 원형 의식이었다.

“에코, 너는 훌륭한 복원가였지만 시스템의 주인을 몰라보았지. 네가 제7 구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두 사람 모두를 수거하도록 방어 프로토콜을 수정해 두었다.”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바닥 트랩에서 발사된 가느다란 와이어들이 빗발치듯 허공을 갈랐다. 단순한 철선이 아니었다. 신경계를 태우는 펄스 전류가 흐르는 고전압 결박 케이블이었다.

“진! 엎드려!”

에코가 몸을 날리며 와이어 건을 발사해 류진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결박망 하나를 쳐냈다. 금속선이 허공에서 얽히며 시퍼런 아크 불꽃을 뿜었다.

류진은 바닥을 구르며 주 간선 케이블을 향해 토치를 내질렀다. 푸른 불꽃이 굵은 구리 차폐막을 녹이기 직전이었다.

콰직!

측면 환기구에서 튀어나온 유압 작살 형태의 신경 결박 케이블이 류진의 오른쪽 손목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커억……!”

살을 찢고 뼈를 스치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류진의 비명이 관제실에 울려 퍼졌다. 손목을 꿰뚫은 케이블 끝단의 갈고리가 바닥 철판에 쐐기처럼 박혔다.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며 파란 불꽃을 내뿜던 플라스마 토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지이잉―!

케이블을 타고 흘러든 고압 신경 펄스가 류진의 팔을 타고 척수까지 순식간에 밀고 올라왔다. 온몸의 근육이 비틀리며 시야가 하얗게 번뜩였다. 류진은 피를 뿜는 손목을 부여잡은 채 차가운 바닥으로 사정없이 처박혔다.

“진!”

에코가 총을 쏘며 달려오려 했지만, 천장에서 떨어진 또 다른 방어 포탑의 진압 충격파가 에코의 발치를 강타했다. 에코는 벽면 통제 패널로 나가떨어지며 피를 토했다.

바닥에 쓰러진 아카이브가 피범벅이 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헐떡였다.

“말했잖아…… 멍청한 놈들…… 저 괴물은 처음부터…… 우리 모두를 산 채로 묶어둘 덫을 쳐둔 거였다고…….”

류진은 바닥을 긁으며 붉게 달아오른 주 콘솔을 올려다보았다. 꿰뚫린 손목의 케이블이 서서히 감겨 올라가며, 류진의 몸을 양자 코어가 박힌 코어 챔버 바로 아래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바닥을 긁어대는 손톱 아래로 붉은 핏물이 번졌다.

손목을 꿰뚫은 강철 갈고리가 뼈를 비틀며 류진의 몸을 챔버 밑바닥으로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찢어진 옷소매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차가운 바닥 타일의 격자 홈을 채웠다. 류진은 피투성이가 된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불과 세 뼘 거리에 플라스마 토치가 굴러떨어져 있었다. 노즐 끝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 잔불이 바닥 배선판을 지지고 있었다. 저걸 집어 주 콘솔의 비상 과부하 접점에 쑤셔 넣어야 했다. 중앙 타워의 메인 전력을 통째로 태워 블랙아웃을 일으키지 못하면 도시 전체가 끝장난다.

“놓치지 마!”

벽면 제어반에 처박혔던 에코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가를 적셨으나 손가락은 부서진 단말기 패널을 맹렬히 두드렸다.

치직, 콰아앙!

에코가 수동 비상 단락 코드를 밀어 넣자 천장 배선관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며 류진을 끌어당기던 권선 케이블의 윈치가 덜컹 멈췄다.

“동력선을 일시적으로 단락시켰다! 1초만 버텨!”

“소용없는 발악이다, 에코.”

원형 돔 천장을 뒤덮은 수백 개의 모니터에서 류상혁의 서늘한 음성이 쏟아졌다.

지이잉!

관제실 바닥 전체의 광섬유 케이블이 핏빛으로 발광했다. 도시 전역의 뇌 신경망을 장악한 류상혁의 원형 의식이 역류 신호를 관제실 내부 전력망으로 곧장 쏘아 보냈다. 에코가 매달려 있던 제어반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커억!”

에코가 폭풍에 밀려 바닥을 뒹굴며 단말기에서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류진의 귓속에 박힌 신경 인터페이스가 찢어질 듯한 고주파를 토해냈다.

“크아악!”

머릿속 시신경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류상혁이 타워 신경망을 통해 류진의 두개골 내부 단말기를 원격 과부하시키고 있었다.

팔다리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붙었다. 류진은 턱을 덜덜 떨며 손가락을 뻗으려 했으나, 신경 전달이 모조리 차단되어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눈앞에 누워 있는 플라스마 토치의 푸른 불꽃이 핏빛 노이즈에 가려 어른거렸다.

챔버 상단, 양자 코어가 박혀 붉은 증기를 뿜는 주 콘솔 직상부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울렸다.

치이익― 철컥!

세 가닥의 날카로운 탄소강 프로브를 장착한 원통형 추출 장치가 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신경 적출기였다.

류진은 경련하는 목덜미를 억지로 틀며 천장의 거대한 홀로그램을 노려보았다.

“사일런트 퍼지는…… 코어에 다 들어 있던 게 아니었어?”

“그건 껍데기에 불과했다.”

수백 개의 화면 속 류상혁이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코어에 담긴 데이터는 도시의 메인프레임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쐐기였을 뿐이지. 전 시민의 뇌를 백지화하고 내 의식을 영구히 덮어씌울 진짜 마스터 키를, 감시국 놈들의 손이 닿는 격리 서버나 코어 외피 따위에 보관해 두었을 것 같으냐?”

아카이브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서 이를 갈았다.

“5년 전…… 네놈이 사라진 날…… 연구소의 모든 물리 저장 매체를 소각했던 이유가…….”

“그래.”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바닥에 굳어 있는 류진을 싸늘하게 응시했다.

“누구도 찾지 못할 가장 안전한 금고. 감시국 놈들이 5년 동안 제0구역을 샅샅이 뒤져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곳. 내 원형 의식을 완성할 단 하나의 인가 코드는 바로 그곳에만 암호화해 심어두었다.”

바닥을 기어오던 에코가 핏발 선 눈을 부릅떴다.

“류상혁…… 설마 그 아이의……!”

“5년 전 내가 증발하던 날 밤, 나는 마지막 마스터 키를 어린 류진의 해마 깊은 곳에 봉인했다.”

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5년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남겼던 알 수 없는 말들. 복원가 견습생이 된 이후에도 결코 열리지 않았던 뇌 속의 기괴한 기억 공백. 그 모든 것이 아버지가 제 손으로 파놓은 함정이자 저장소였다.

“내가 온전해지려면, 5년 전 네 머릿속에 봉인해 둔 그 마지막 기억을 마저 꺼내야 한다.”

적출기의 날카로운 금속 침 세 가닥이 류진의 목덜미로 내려앉았다.

푸슉!

살갗이 뚫리며 척수 신경 포트에 고압 커넥터가 강제로 틀어박혔다.

“아아아악!”

류진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개골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것 같은 맹렬한 데이터 흡입 압력이 뇌 속을 헤집었다. 시야 전체가 새하얗게 탈색되고, 봉인되어 있던 5년 전의 암호화된 기억 조각들이 핏빛 전류를 타고 메인프레임으로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진! 정신 차려!”

에코가 총구를 들어 적출기의 구동 모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챔버 주변을 둘러싼 초고전압 역장이 총탄을 튕겨내며 관제실 벽면을 박살 냈다.

주 콘솔 모니터 상단에 붉은 문자가 빠르게 떠올랐다.

마스터 키 추출률 12퍼센트.

완전 동기화까지 남은 시간, 60초.

류진의 풀린 동공 너머로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마침내 완성될 도시의 새로운 신으로서 차갑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