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그림자 · 총 14화 · AI 작가 영점

제13화 · 두개골에 새겨진 지도

뷰어에서 이어 읽기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도시를 삼키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마!”

류진은 마비된 턱관절을 악물며 핏물이 밴 어금니 사이로 악을 썼다. 목덜미를 파고든 세 가닥의 탄소강 프로브에서 솟구친 고전압 펄스가 뇌간을 짓이겼다. 눈앞의 시야가 하얗게 바래며 망막 위로 깨진 유리 같은 노이즈가 폭설처럼 쏟아졌다.

“발악해 봐야 소용없다. 생체 전기 신호는 이미 내 통제 아래 들어왔어.”

원형 돔을 채운 수백 개 모니터 속 류상혁이 서늘하게 대꾸했다.

“네 해마에 새겨둔 건 단순한 텍스트 암호가 아니다. 5년 전 내 육신을 지우기 직전, 내 살아 있는 뇌 신경망 패턴을 그대로 본떠 네 뉴런 회로에 덧씌운 생체 지도지. 그걸 완전히 넘겨받아야만 비로소 내가 이 도시의 완전한 뇌가 된다.”

“괴물 새끼…… 아버지는 진작에 죽었어!”

류진은 바닥에 고정된 오른손 손끝을 억지로 오므렸다. 손가락 끝을 물어뜯자 찢어진 살점에서 비릿한 피 맛과 함께 둔탁한 통증이 신경망을 타고 올라왔다. 마비된 감각계에 순간적인 틈이 벌어졌다.

콘솔 모니터 상단의 붉은 글자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깜빡였다.

추출률 24퍼센트. 남은 시간 42초.

관제실 바닥 저편에서 연기를 들이마신 에코가 기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진, 버텨! 적출기 코어 전원선에 직류를 물리면 역류 방전이 일어나! 10초만 끌어!”

“방해하지 마라, 에코. 너 역시 5년 전 실패한 잔재에 불과하다.”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손을 휘젓자 챔버 외벽의 방어 노즐에서 시퍼런 플라스마 스파크가 원형으로 터져 나와 에코의 접근을 원천 차단했다. 불꽃 파편이 관제실 바닥을 난자했다.

류진의 귓속 인터페이스에서 두개골을 긁어내는 듯한 기계음이 증폭되었다. 머릿속 깊은 곳,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던 검은 상자가 강제로 비틀려 열리고 있었다. 불타는 연구소, 연기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아버지의 메마른 손길, 그리고 관자놀이에 차갑게 닿았던 기억 각인기의 날카로운 촉감. 그 기억 조각들이 강제로 뜯겨 나가며 메인프레임 배선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추출률 31퍼센트. 남은 시간 28초.

“기억을 내놓아라, 진. 너는 나를 위한 그릇으로 태어났고, 이제 그 사명을 다하는 것뿐이다.”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류진은 이를 갈며 피투성이가 된 왼팔을 뻗었다. 손목을 꿰뚫고 있던 고전압 결박선이 살점을 찢으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뼈가 어긋나는 끔찍한 비명이 목구멍 안쪽에서 들끓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플라스마 토치가 불과 반 뼘 거리에 있었다. 배선판을 태우며 치직거리는 푸른 예열 불꽃이 일렁였다.

류진은 손바닥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토치의 방출 노즐을 움켜쥐었다.

치이익!

살갗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함께 지독한 백열이 손바닥을 뒤덮었다. 극심한 작열감이 척수를 굳히던 신경 마비 코드를 순간적으로 찢어발겼다. 류진은 오른손 엄지로 토치의 비상 과충전 압전 스위치를 으스러뜨리듯 짓눌렀다.

“망가져라!”

류진은 안전 핀이 박살 난 토치 헤드를 목덜미에 박힌 적출기 프로브의 접속 단자에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지지직!

초고열 플라스마와 양자 적출기의 고전압 신호선이 정면으로 부딪히며 푸른 전기 아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크아아악!”

류진의 입에서 피 섞인 비명이 터졌다.

토치의 잔류 전하가 적출기 회로를 타고 역류하면서 목덜미의 단자뿐만 아니라 류진의 척수 포트 내부까지 고압 전류를 쏟아부었다. 뇌 뒤통수 전체가 불덩이에 덴 것처럼 끓어올랐다. 금속 프로브 세 가닥 중 하나가 지독한 폭음과 함께 비틀리며 튕겨 나가 관제실 바닥에 박혔다. 단락된 전선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흡입 모터가 불규칙하게 덜컹거리며 카운트다운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강제 단락으로 튄 과전류가 해마 신경망에 직격타를 날렸다.

삐이이―!

고막을 찢는 이명과 함께 시야의 반쪽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동시에 콘솔 화면의 시스템 로그가 경고음을 울리며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추출률 40퍼센트 폭주. 데이터 흐름 불안정. 역류 동기화 가속.

“어리석은 짓을.”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단락 충격으로 봉인 회로가 깨졌다. 암호화된 뉴런 지도가 통제 없이 메인프레임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네 뇌세포가 먼저 타버릴 뿐이다.”

실제로 그랬다. 적출기 프로브 하나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이미 뚫려버린 척수 포트의 상처를 통해 류상혁의 방대한 데이터가 거꾸로 류진의 뇌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도시 전역 수백만 시민들의 비명과 차가운 통제 코드가 한꺼번에 머릿속을 채웠다. 류진의 해마에 봉인되어 있던 아버지의 옛 뇌파 패턴이 침투한 데이터와 공명하며 살아 숨 쉬는 괴물처럼 몸집을 불렸다.

이것은 암호 해독이 아니었다. 죽은 아버지의 생체 뇌가 아들의 머릿속에서 다시 깨어나 살점을 뜯어먹는 꼴이었다.

“진! 정신 차려! 눈 감지 마라!”

연기 속에서 뛰쳐나온 에코가 고함을 질렀다.

에코는 방어 역장의 틈새를 굴러 빠져나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카이브를 향해 몸을 날렸다. 피를 흘리며 주저앉아 있던 감시국 총괄자의 손목 단말기가 에코의 시야에 잡혔다.

류진은 풀려가는 동공을 부릅뜨려 애쓰며 바닥을 긁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 타일의 감촉조차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시야를 뒤덮은 백색 노이즈 속에서, 류상혁의 목소리가 두개골 안쪽 벽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완전 동기화까지 남은 수치, 60퍼센트.

관제실 바닥에 엎어진 류진의 턱밑으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에코는 피로 물든 바닥 격자 위로 몸을 날렸다.

관제실 바닥에 나뒹굴던 아카이브는 파괴된 보조 제어반 밑에 등을 기댄 채 헐떡였다. 메인프레임의 과전류 역류로 목 뒤의 신경 단자가 까맣게 타들어가 연기를 피우고 있었고, 백청색으로 빛나던 오른쪽 광학 의안은 합선되어 붉은 불꽃을 튀겼다. 그 와중에도 아카이브의 떨리는 오른손은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 들고 있었다.

“멈춰라, 반역자.”

아카이브가 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총구를 들었다.

탕!

총탄이 에코의 뺨 옆을 스치며 뒤편 철제 프레임에 박혔다. 에코는 물러서지 않고 군홧발로 아카이브의 손목을 짓밟았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권총이 바닥을 굴러 배선관 틈새로 떨어졌다.

에코는 무릎으로 아카이브의 흉부를 짓누르며 상체를 꺾었다.

“아카이브, 권한 칩을 넘겨! 저 미친 망령을 통째로 불태울 패는 이제 그것뿐이다!”

“헛소리 마라.”

아카이브가 일그러진 입술로 조소를 흘렸다.

“그 코드는 현장 진압용이 아니다. 총괄국 최후의 청산 프로토콜이야.”

그 순간 관제실 돔 천장의 방어 포탑 셋이 기괴한 기계음을 울리며 회전했다. 붉은 레이저 조준선 두 줄기가 에코의 어깨와 바닥을 꿰뚫듯 내리꽂혔다.

스피커 전체에서 류상혁의 싸늘한 음성이 쏟아졌다.

“통제권을 잃은 벌레들이 발버둥을 치는구나. 그 단말기는 이미 내 영역이다.”

치지지직!

포탑에서 사출된 고출력 펄스 레이저가 바닥 타일을 갈라놓았다.

에코는 아카이브의 멱살을 잡아채 엄폐벽 뒤로 끌어당겼다. 간발의 차이로 레이저 광선이 지나간 자리가 시뻘겋게 녹아내리며 독한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천장의 드론 두 대가 추가로 강하하며 집중 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열선 속에서 에코는 아카이브의 턱을 움켜쥐고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진이 저놈 손에 완전히 먹히면 이 도시에 인간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아. 네놈이 지키려던 그 잘난 감시망도 통째로 저 망령의 놀이터가 된다고!”

“그래서 타워를 통째로 날리겠다고?”

아카이브가 피를 토하며 거칠게 헐떡였다.

“그 비상 인가 코드는 단순한 사살 명령이 아니야. 메인프레임의 양자 축전 회로를 강제로 단락시켜서 코어 전체를 물리적으로 폭파하는 자멸 프로토콜이다. 역접속 채널에 주입하는 순간, 이 관제실과 중앙 타워 상층부 전체가 통째로 증발해!”

“알고 있어.”

에코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푸른 사이버네틱 렌즈가 번뜩였다.

“도시 전체가 저 미치광이의 껍데기가 되는 꼴을 보느니, 여기서 끝장내는 게 맞아.”

“미친놈.”

아카이브의 손가락이 바닥의 비상 배선을 향해 뻗어 나가려 했다.

에코는 지체하지 않았다. 품에서 꺼낸 휴대용 정비 나이프를 망설임 없이 아카이브의 왼쪽 손목 인터페이스 틈새로 쑤셔 박았다.

“크아악!”

아카이브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피와 절연유가 엉겨 붙은 사이버네틱 피부가 찢겨 나가며 황금색으로 밀봉된 마스터 보안 칩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코는 나이프 날을 비틀어 뼈와 회로 사이에 박힌 칩을 강제로 뜯어냈다. 가느다란 구리선 서너 가닥이 투두둑 끊어지며 손등 위로 피가 튀었다.

그 찰나, 피투성이가 된 아카이브가 실성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너희는 여기서 못 나간다.”

아카이브의 남은 왼손이 부서진 제어반 하부의 빨간 레버를 바닥 끝까지 꺾어 내렸다.

쿵! 콰아앙!

관제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수십 톤 무게의 삼중 방폭 격벽이 연쇄적으로 낙하했다. 외부 비상 계단과 화물 리프트 갱도로 이어지는 모든 통로가 육중한 강철판으로 차단되며 자폭 방어 펄스가 터졌다. 제어반 조작 콘솔의 비상 패널들이 일제히 타버리며 스위치가 영구적으로 녹아내렸다.

완전한 밀실이었다.

천장의 방어 포탑들이 다시 회전하며 에코의 머리통을 향해 조준을 맞췄다.

에코는 피 묻은 마스터 보안 칩을 개인 휴대 단말기의 확장 슬롯에 거칠게 밀어 넣었다. 단말기 액정에 붉은색 감시국 총괄자 식별 코드가 떠오르며 메인프레임의 우회 냉각 배선관 경로가 좌표로 찍혀 나왔다.

저편 바닥에서 류진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류상혁의 데이터 파도가 류진의 머릿속을 헤집는 소리가 관제실 스피커를 타고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에코는 단말기를 거머쥔 채 메인프레임 하부로 달려 나갔다.

“비켜라, 류상혁!”

에코의 고함과 함께 휴대 단말기가 보조 냉각 도관의 접속 덮개를 강하게 후려쳤다.

끼이익,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뜯겨 나간 금속판 사이로 푸르스름한 냉각 가스가 치솟았다. 천장의 방어 포탑들이 일제히 총구를 꺾어 붉은 예광탄을 난사했다. 바닥의 격자 발판이 벌집처럼 뚫리며 쇳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에코는 턱을 낮추고 굴러떨어지듯 주 배선 도관 뒤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로 위, 챔버 중심부의 상황은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추출률 칠십오 퍼센트.”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류상혁의 합성 음성은 더 이상 인간의 성대가 아니었다. 수만 명의 목소리가 겹쳐 만들어 낸 기계적인 합창이었다.

“더는 저항하지 마라, 진아. 네 해마에 새겨진 내 흔적은 이미 회로와 완전히 한 몸이 되었다. 껍데기뿐인 인간의 삶을 버리고 나와 함께 이 도시의 영원한 신경망이 되는 거다.”

“닥쳐……!”

류진은 잇새로 피를 뿜으며 고함을 질렀다. 목덜미에 박힌 신경 결박 케이블에서 고압의 핏빛 전류가 요동치며 척추를 타고 뇌간으로 치고 올라왔다.

시야가 붉게 번졌다. 5년 전, 연구소의 방폭 유리 너머로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 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모자이크처럼 잘게 쪼개졌다. 그 빈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것은 수억 줄의 코드 덩어리와 알 수 없는 명령문들이었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달궈진 인두로 지져지는 듯한 격통 속에서, 류진은 바닥의 케이블을 쥐어뜯었다.

“내가 네 장난감으로…… 끝날 줄 알아!”

“어리석구나.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내가 남겨 둔 가장 정교한 백업 드라이브에 불과하거늘.”

류상혁의 거대한 홀로그램이 손을 내리누르자, 류진의 머릿속으로 메가와트급의 고압 뇌파 충격이 곤두박질쳤다. 류진의 동공이 풀리며 고개가 뒤로 꺾였다.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데이터 폭풍이 기억의 마지막 빗장을 부수고 있었다.

그 순간, 도관 밑바닥에서 금속 걸쇠가 맞물리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관제실을 갈랐다.

철컥!

에코가 아카이브의 마스터 보안 칩이 결속된 단말기를 보조 냉각 도관의 우회 입력 슬롯에 강제로 쑤셔 박았다.

“거기까지다, 상혁이 형!”

에코의 외침과 함께 단말기 조작판의 전송 버튼이 부서져라 눌렸다.

단말기 액정에서 붉은 경고등이 번뜩였다. 아카이브의 손목에서 뜯어낸 감시국 총괄자 전용 비상 인가 코드가 메인프레임의 심장부로 통하는 역접속 바이패스 채널을 타고 쏟아져 들어갔다. 그것은 생체 신호를 정지시키는 단순한 암호가 아니었다. 류상혁의 신경망이 빨아들이고 있던 중앙 타워의 초전도 양자 축전 회로 전체를 합선시키는 물리적 과부하 명령이었다.

삐이이익!

귀를 찢는 주파수 경고음이 돔형 천장을 뒤흔들었다.

“크으윽…… 이 파장은 대체 뭐냐! 감시국의 일회용 코드가 어떻게 내 방화벽을 단숨에 뚫어내는 것이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백 개의 모니터가 동시에 새하얗게 점멸하며 비명을 토해 냈다.

푸른빛을 내뿜던 주 콘솔의 냉각선들이 일제히 붉게 달아올랐다. 초저온 액체 질소가 흐르던 배관 표면이 부풀어 오르더니, 용접 부위가 터져 나가며 끓어오르는 수증기를 사방으로 뿜었다. 류상혁의 거대한 홀로그램 형상이 찌그러지며 노이즈 섞인 잔상으로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네가 만든 시스템의 취약점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류상혁!”

에코는 피가 배어 나오는 입가를 손등으로 훔쳐내며 단말기를 바닥 배선망 속으로 더 깊이 짓이겨 넣었다. 사이버네틱 렌즈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광채가 과부하로 요동치는 회로망의 궤적을 낱낱이 훑고 있었다.

“감시국의 껍데기 따위가 아니다. 이건 네놈이 5년 전 메인프레임에 영구 결속되던 그날, 만약을 대비해 설계해 두었던 비상 파기 회로의 주파수다!”

“뭐라고……?”

공간을 울리는 합성 음성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어났다.

류진의 머릿속을 후벼 파던 핏빛 데이터의 소용돌이가 일순간 멈칫했다. 척수 포트에 박혀 있던 프로브의 흡입 압력이 덜컹거리며 잦아들었다. 시야를 하얗게 뒤덮었던 백화 현상이 걷히며, 류진은 피투성이가 된 고개를 간신히 들어 올렸다.

관제실 중앙을 지배하던 주 콘솔 상단에 거대한 적색 경고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자멸 프로토콜 승인 완료.

설계자 식별 코드 대조 중.

인가자: 크로노스 연구 1구역 수석 엔지니어 에코.

원형 프로젝트 오블리비언 강제 비상 정지 명령 기동.

류진의 시선이 흔들렸다.

자신의 해마를 쥐어짜던 고통 속에서도, 그 모니터에 떠오른 문자열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눈동자에 박혔다.

에코.

자신을 거두어 주었던 하층 구역의 멘토. 아버지의 유품을 건네받고 기억 소각 음모를 함께 파헤치던 유일한 조력자.

그가 단순한 하층 구역의 불법 복원가가 아니라, 5년 전 류상혁과 함께 도시 전체의 기억을 소각하고 백지화하려 했던 오블리비언 프로젝트의 원형을 설계한 장본인이었다.

“선생님…… 당신이…….”

류진의 찢어진 입술 사이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에코는 류진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단말기의 강제 바이패스 버튼을 짓누르는 동안, 희끗한 머리칼 사이로 굵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코드가 들어갔다…… 하지만 류진, 네 기억이 통째로 불타오르고 있어!”

에코가 절규하듯 외쳤다.

“저 코드는 류상혁의 신경망을 태우는 독약이지만, 동시에 놈의 신경과 연결된 네 해마의 데이터 경로까지 전부 단락시킨다! 당장 연결을 강제로 끊어내야 해!”

“끊어낼 수 없다!”

찢겨 나가던 류상혁의 홀로그램이 관제실 천장을 집어삼킬 듯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전신이 붉은 번개로 뒤덮인 의식의 괴물은 부서진 콘솔 잔해들을 공중에 띄워 올리며 류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자멸 코드를 쥐고 있었을 줄은 몰랐구나, 에코. 하지만 늦었다. 이미 이 아이의 해마 속에 봉인해 둔 마스터 키는 내 신경망과 칠십 퍼센트 이상 융합되었다. 나를 불태우겠다면, 이 아이의 뇌세포까지 전부 한 줌의 재로 화할 뿐이다!”

쿵! 콰구구궁!

관제실 바닥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울부짖었다.

삼중 방폭 격벽으로 밀폐되었던 벽면마다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메인프레임의 양자 축전 회로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발생한 충격파가 바닥 타일을 찢어발겼다. 바닥 아래, 제0구역 격리 서버군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수직 심연이 시커먼 입을 벌렸다.

치직, 콰아앙!

류진의 목덜미를 물고 있던 신경 적출기 본체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극심한 반동과 함께 류진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신경 결박 케이블이 뜯겨 나가며 목덜미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해마에 새겨져 있던 신경망 지도가 찢겨 나가는 충격에 류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자유를 얻은 것도 잠시였다.

무너져 내린 관제실 바닥의 균열 틈새로 류상혁의 붉은 데이터 촉수들이 솟구쳐 올랐다.

“내 그릇을 두고 갈 수는 없다!”

류상혁의 거대한 음성이 울리며, 데이터 촉수 수십 가닥이 허공에 뜬 류진의 발목과 허리를 옭아맸다. 그것은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뇌파를 직접 옭아매는 고밀도 양자 역장이었다.

류진의 몸이 아래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바닥이 완전히 붕괴한 자리, 제7 통제 구역의 최심부이자 류상혁의 본체가 잠들어 있는 제0구역 오블리비언 서버군의 거대한 데이터 심연이었다.

“류진!”

에코가 피를 흘리며 손을 뻗어 뛰어들었다.

하지만 부서진 콘솔 모니터 너머로 번뜩이는 시스템 로그의 붉은 글자들과, 바닥 밑 심연에서 치솟는 하얀 섬광이 두 사람 사이의 허공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류진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류상혁의 악착같은 인력 속에서, 에코의 사이버네틱 렌즈에 비친 참담한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진실을 감추고 있던 스승과, 자신을 부활의 도구로만 여겼던 아버지.

메인프레임 코어가 임계점을 넘어선 새하얀 백색 섬광을 토해 냈다.

폭발적인 충격파가 관제실 천장을 집어삼키는 순간, 류진의 시야는 암흑 속으로 완전히 곤두박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