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덜컥거리며 완전히 닫히자마자 송태이가 콘솔 데스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태이는 목재 상판에 놓여 있던 사각 USB와 검은색 펠리칸 케이스 손잡이를 한꺼번에 낚아챘다.
“이거 당장 버려. 집으로 가자, 누나.”
채은은 손을 뻗어 태이의 손아귀에 걸린 케이스 손잡이를 단단히 맞잡았다. 손가락 끝에 닿는 단단한 플라스틱 외피가 차가웠다.
“이리 줘, 태이야.”
“안 줘. 못 줘.”
태이가 케이스를 제 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기며 턱 끝을 바짝 치켜들었다. 갈색 앞머리 아래로 붉게 충혈된 눈이 드러났다. 밤새 편집 툴을 쳐다보느라 핏발이 선 눈동자에는 명백한 적의가 서려 있었다.
“110데시벨이라고 했잖아. 도경원 그 인간 입으로 직접 말했어. 지하철 바로 옆에서 쇠 긁는 소리가 100데시벨이야. 기계실 안에서 110데시벨을 맨귀로 버티라고? 누나 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뻔히 알면서 저러는 거잖아. 이건 과제가 아니라 그냥 나가떨어지라고 등 떠미는 폭력이야.”
“맨귀로 간다고 안 했어. 차음 장비 챙길 거야.”
“차음 장비 같은 소리 하네! 공사장 헤드셋 껴도 저주파 진동은 뼛속까지 울려. 누나 평소에 버스 경적 소리만 들어도 이명 때문에 주저앉잖아. 그런데 톱니바퀴 굴러가고 쇠망치로 종 때리는 탑 꼭대기에 올라가겠다고? 거긴 밀폐된 돌방이야.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도 없이 벽에 부딪쳐서 몇 배로 튄다고!”
태이의 목소리가 쐐기형 방음 스펀지로 둘러싸인 벽면에 부딪쳐 둔탁하게 꺾였다. 공간이 울리지 않으니 고함은 오히려 날것 그대로 채은의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채은은 케이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억센 힘이었다.
“놓으라고 했어.”
“안 놔! 누나 진짜 미쳤어? 왜 그 인간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데? 동아리가 뭐라고 그래? 음악이든 환경음이든, 귀 망가지면 다 끝이야. 작곡이고 건축이고 아무것도 못 해. 영구 손상 오면 평생 삐 소리만 들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도망치는 건 19년 동안 매일 했어.”
채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실내를 가득 채우던 태이의 고함을 단번에 갈랐다. 태이의 손아귀가 멈칫하며 힘을 잃었다.
채은은 케이스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콘솔 모서리에 똑바로 세워 두었다. 그러고는 데스크 위에 놓인 USB를 집어 들어 점퍼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지금까지, 시끄러운 데서 귀 틀어막고 도망치는 게 내 일과였어. 남들 다 듣는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 복도 지나가는 발소리가 칼로 찌르는 것 같아서 화장실 칸에 숨어서 귀에 휴지 틀어막던 게 나야. 그런데 방금 3천 헤르츠 노이즈, 내가 손으로 잡았어.”
채은이 모니터 화면에 여전히 띄워져 있는 주파수 스펙트럼 곡선을 가리켰다.
“자르지 않고 통로를 내니까 소리가 살았어. 고통스러운 파열음 뒤에 숲 냄새가 남아 있었다고. 도경원이 억지를 부리는 거든, 날 쫓아내려고 덫을 놓은 거든 상관없어. 내 귀가 부서지는지, 아니면 소리를 읽어내는지 오늘 밤 내 눈으로 확인할 거야.”
“누나…….”
“여기서 발 빼면 난 평생 귀마개 없이는 문밖도 못 나가는 채로 살아. 내 세계를 넓힐 기회야. 도경원은 그 방법을 알고 있어.”
태이가 이마를 짚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구겨진 셔츠 깃 사이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채은을 응시했다.
“도경원이 방법을 안다고? 착각하지 마. 그 인간이 왜 하필 중앙도서관 시계탑을 고른 줄 알아?”
채은이 가만히 태이를 바라보았다. 태이는 입술을 바짝 말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닫힌 방음문 쪽을 턱짓했다. 마치 문밖에 누군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를 한 톤 낮추었다.
“나 지난달에 음대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 도경원 봤어. 그 인간, 상업 영화 소스 따위 때문에 시계탑 기계실 뒤지는 거 아니야. 연화대 시설관리처 삼십 년 치 시설 보수 일지랑, 옛날 시계탑 개축 설계도 복사본만 며칠 내내 파고 있었어. 특히 그때 설계 총괄했던 사람 이름이랑 시방서만 죄다 뒤졌다고.”
채은의 심장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손끝이 저릿하게 굳어 왔다.
“……개축 설계도?”
“그래. 연화대 시계탑 원래 80년대에 지어졌다가 20년 전에 타종 충격음 때문에 본관 건물 외벽에 균열 난다고 공사 다시 했잖아. 그때 벽 안에 특수 흡음 구조 집어넣어서 소음 잡았다고 기록에 나와 있어. 도경원은 그 도면을 찾고 있었던 거야. 음향 엔지니어가 시계탑 구조 도면을 왜 뒤져? 단순한 필드 레코딩이 목적이 아니라고!”
태이가 채은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채은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20년 전. 연화대 캠퍼스 대규모 보수 공사.
어릴 적 서재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짙은 남색 청사진 위에 적혀 있던 ‘중앙도서관 시계탑 및 종루 음향 간섭 제어 단면도’. 그리고 그 도면 우측 하단, 설계 책임자 란에 또박또박 박혀 있던 이름.
백도훈.
채은의 아버지였다.
‘주파수를 깎으면 공간이 죽는데, 입력 신호의 위상을 계산해서 잔향 축을 살렸어. 건축 음향에서 경계면 다루는 방식을 썼나.’
방금 전 도경원이 모니터링 헤드폰을 벗으며 던졌던 말이 귓가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도경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채은이 제출한 필터링 방식이 단순한 오디오 플러그인 조작이 아니라, 건축 도면에서 벽체를 세우고 공간의 틈을 벌려 음파를 소멸시키는 물리적 구조 설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누나, 얼굴 왜 그래? 어디 아파?”
태이가 채은의 굳어버린 표정을 살피며 다급하게 물었다. 채은은 주머니에 넣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USB의 각진 모서리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도경원은 채은의 청각 과민증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시계탑을 시험하려는 것이었고, 그 시계탑을 설계한 사람의 피를 이어받은 채은을 그 기계실 한가운데에 세우려는 것이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채은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백팩을 집어 들었다. 어깨끈을 단단히 메고, 바닥에 놓인 펠리칸 케이스의 손잡이를 힘주어 쥐었다.
“누나, 어디 가는데? 장비 두고 가라니까!”
“건축관 갈 거야.”
채은이 돌아보지도 않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 거긴 왜 가는데?”
“확인할 게 있어. 그 시계탑 벽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채은은 차음문의 육중한 래치를 아래로 힘껏 내렸다. 고무 패킹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복도의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8시까지 남은 시간은 여덟 시간 남짓이었다.
건축관 지하 2층 아카이브 철제 캐비닛의 뻑뻑한 서랍이 덜컹거리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묵은 종이 먼지와 도면 보관용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채은은 2004년도 캠퍼스 리모델링 도면 철을 빠르게 넘겼다. 누렇게 바랜 트레이싱지 사이에서 남색 표지의 두툼한 제본 파일 하나가 손가락 끝에 걸렸다.
‘중앙도서관 시계탑 및 종루 음향 간섭 제어 단면 상세도.’
표지 우측 하단에 찍힌 선명한 결재 인장 위로 익숙한 필적의 이름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백도훈.
뒤따라 뛰어온 태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캐비닛 모서리를 짚었다.
“찾았어? 도경원이 뒤졌다던 게 이거야?”
“응. 기계실 벽체 상세도.”
채은은 커다란 도면을 바닥 제도판 위에 넓게 펼쳤다. 도면 중앙에 그려진 시계탑 기계실 외벽은 단순한 콘크리트 옹벽이 아니었다. 300밀리미터 두께의 벽체 내부에 일정한 간격으로 길쭉한 공기 통로가 파여 있었고, 안쪽 마감재 사이사이에 좁은 틈이 빗살무늬처럼 엇갈려 배치되어 있었다.
태이가 도면 위로 상체를 숙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뭔데? 벽체 안에 왜 공동이 뚫려 있어? 방음벽치고는 단면이 너무 복잡하잖아.”
“슬릿 공명 챔버야. 특정 주파수 대역만 빨아들여서 내부에서 난반사로 상쇄시키는 구조.”
채은의 손가락이 도면 한구석에 깨알같이 적힌 계산식을 따라 움직였다.
“시계탑 타종 충격음은 100헤르츠 이하의 초저주파에서 피크가 떠. 파장이 너무 길어서 일반 흡음재로는 절대 못 막아. 콘크리트 골조 전체를 흔들면서 건물 벽을 타고 내려오거든. 아빠는 그걸 알고 기계실 사방 벽을 거대한 공명기로 설계한 거야. 소리를 억지로 틀어막은 게 아니라, 틈새로 소리를 유도해서 벽 속에서 스스로 힘을 잃게 만든 거라고.”
“그럼 소음이 잡힌 거 아니야? 도경원은 왜 110데시벨 운운하면서 거길 가라는 건데?”
“도면 메모 봐. 마지막 페이지.”
채은이 넘긴 도면 끝에는 붉은색 펜으로 덧칠해진 감리 메모가 적혀 있었다.
‘시공 단계에서 북측 슬릿 벽체 내부 흡음 쐐기 시공 누락. 특정 반사각에서 80헤르츠 대역 위상 역전 및 파열음 중첩 발생 위험.’
태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공 불량이라는 소리잖아. 결함이 남은 상태로 지금까지 방치됐다는 뜻이고.”
“도경원은 그 결함을 알고 있어. 20년 전부터 이 시계탑 벽 안에 갇혀서 맴도는 파열음 데이터를 직접 뽑아내려는 거야.”
채은은 도면을 접어 외투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시계는 이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8시까지 남은 시간은 네 시간뿐이었다.
“가자, 송태이.”
“어디를? 시계탑은 8시라며.”
“공학관 건축음향 실험실. 저 소리를 귀로 받아내려면 지금 당장 차음 한계선부터 맞춰야 해.”
공학관 1층 차음 부스의 두꺼운 철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음이 단번에 차단되었다. 채은은 가방에서 실리콘 몰딩형 차음 이어플러그를 꺼내 양쪽 귓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어 장비 가방에서 꺼낸 전문가용 밀폐형 모니터링 헤드폰을 그 위에 겹쳐 썼다. 이중 차음이었다.
태이는 부스 밖 조정실 콘솔 데스크에 앉아 마이크 인터콤 스위치를 켰다. 유리창 너머로 태이의 목소리가 채은의 헤드폰 속 인이어로 메마르게 건너왔다.
“누나, 진짜 할 거야? 지금 시뮬레이터에 연화대 타종음 주파수 특성이랑 똑같은 금속 타격음 샘플링 걸었어. 90데시벨부터 시작해서 5데시벨씩 올릴 건데, 버거우면 바로 손 들어. 1초도 지체하지 말고.”
“알았으니까 올려.”
채은이 카본 마이크 붐대를 양손으로 단단히 쥐고 부스 중앙에 섰다.
태이가 페이더를 천천히 밀어 올렸다. 모니터 스피커에서 거친 핑크 노이즈와 함께 쇠뭉치가 거대한 청동판을 내리치는 둔탁한 타격음이 쏟아져 나왔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90, 95, 100데시벨.
두 겹의 차음 장비를 뚫고 묵직한 음압이 고막 주변의 연골을 강하게 압박했다. 귓속에서 찌릿한 마찰음이 번지며 편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채은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수평선이 잘게 흔들렸다.
“누나, 105야! 멈출까?”
인터콤 너머 태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찢어졌다. 채은은 고개를 저으며 붐대를 쥔 팔에 힘을 주었다.
“올려. 110까지 올려!”
“미쳤어? 여기서 더 올리면 이명 터져!”
“올리라고!”
채은이 부스 안에서 소리쳤다.
태이가 이를 악물며 마스터 페이더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110데시벨.
순간 귓바퀴가 먹먹해지며 세상의 모든 공기가 한꺼번에 압축되는 듯한 굉음이 두개골을 흔들었다. 귀를 틀어막고 도망치고 싶던 유년 시절의 끔찍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소리가 피부를 때리고 뼈를 진동시켰다. 헤드폰 너머의 소리는 더 이상 멜로디나 환경음이 아니었다. 둔기처럼 몸을 난타하는 물리적 파동이었다.
하지만 채은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귀를 완전히 닫아버리면 마이크가 담아내는 신호의 레벨조차 볼 수 없었다. 도경원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그 지옥 같은 굉음 속에서도 장비를 통제하는 오퍼레이터의 정밀함이었다.
채은은 턱관절을 살짝 벌려 이관의 압력을 조절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까 보았던 시계탑 단면도를 겹쳐 올렸다.
“단순히 귀를 막으면 소리가 뭉개져. 100헤르츠 이하 초저주파만 골라서 뼈로 흘려보내야 마이크 레벨을 잡을 수 있어.”
채은이 붐대의 마이크 캡슐 각도를 정면에서 35도 비틀었다. 기계실 북측 슬릿 벽체의 반사각을 고려한 각도였다. 직접음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대신, 벽면의 공명 챔버로 빨려 들어가는 틈새 음향 축을 겨냥하자 헤드폰 인디케이터의 붉은색 클리핑 램프가 깜빡임을 멈추고 주황색 한계선 직전에 머물렀다.
충격음 사이로 찢어지던 소음의 파형이 하나의 명확한 벡터로 정렬되는 순간이었다.
“태이, 꺼!”
채은의 신호와 동시에 차음 부스 안의 굉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채은은 헤드폰을 천천히 벗어 목에 걸었다. 귀마개를 빼내자 귓구멍 주변이 화끈거리며 얼얼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땀으로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조정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태이가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괜찮아? 귀 안 찢어졌어? 말 들려?”
태이가 채은의 귀 옆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안색을 살폈다. 채은은 가쁘게 차오른 숨을 내쉬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려. 또렷하게.”
“……진짜 고집불통이네.”
태이가 허탈한 표정으로 벽에 등을 기댔다. 그러더니 채은이 쥐고 있던 마이크 붐대의 고정 노브를 대신 단단히 조여 주었다.
“35도 틀어 잡은 거, 시계탑 벽면 설계 역이용한 거지?”
“맞아. 직접음은 털어내고 벽면 흡음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잔향만 건지는 각도야. 이렇게 잡으면 110데시벨 피크에서도 마이크 다이아프램 안 찢어져.”
채은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7시 40분.
약속된 시간까지 남은 여유는 단 20분이었다.
채은은 바닥에 놓인 8채널 필드 레코더의 하네스를 어깨에 둘러멨다. 육중한 장비 가방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손끝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가자. 시계탑으로.”
채은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음 부스의 철문을 밀어 열었다. 어스름이 짙게 깔린 캠퍼스 중앙을 향해 두 사람의 발걸음이 빠르게 이어졌다.
나선형 철계단은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어깨를 파고드는 8채널 필드 레코더의 하네스가 걸음을 뗄 때마다 묵직하게 흔들렸다. 채은은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주고 난간을 잡았다. 좁고 가파른 통로를 빙글빙글 돌아 올라갈수록 공기는 서늘해졌고, 굳은 기름과 오래된 쇠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58분을 지나 59분을 향해 가파르게 꺾였다. 채은은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5층 최상단 철문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끼이익.
육중한 철문이 밀려나며 기계실 내부의 공간이 드러났다.
천장 높이 솟은 거대한 황동 톱니바퀴들이 둔중한 리듬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벽면 한가운데를 차지한 괘종시계의 무게추는 메트로놈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바닥에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톱니바퀴 아래, 콘크리트 기둥에 기대어 선 도경원이 오른손에 쥔 기계식 스톱워치를 딸깍 눌렀다.
“7시 58분.”
경원이 손목을 털며 스톱워치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지퍼를 목까지 단단히 올린 검은색 윈드브레이커 차림 그대로였다. 그는 채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나 어깨에 걸린 장비 가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턱짓으로 기둥 옆 작업대를 가리켰다.
“제시간에 왔군. 케이블 풀어.”
채은은 대답 대신 레코더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텁텁한 바닥 먼지가 신발 코 언저리에 풀썩 일었다. 래치를 풀고 8채널 믹서와 배터리 팩을 꺼내 올렸다.
“1번과 2번 채널은 무지향성 마이크로 묶었습니다. 북측 슬릿 벽면으로 35도 틀어서 고정할 겁니다.”
채은의 목소리는 계단을 뛰어올라온 탓에 살짝 거칠었지만, 장비를 다루는 손놀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스탠드를 펼쳐 기계실 북쪽 벽면에 단단히 고정하고 붐대의 각도를 맞췄다.
경원은 채은의 손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35도. 벽면 흡음 틈새 각도를 계산했나 보지?”
“네. 낮에 아카이브에서 단면도를 확인했습니다. 그 각도로 꺾지 않으면 직접음의 음압이 다이아프램을 터뜨립니다.”
“단면도를 봤다…….”
경원이 낮게 읊조리더니 가방 안쪽에서 누렇게 변색된 트레이싱지 한 장을 꺼내 작업대 위에 거칠게 펼쳤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와 함께 낡은 종이 냄새가 번졌다.
도면 우측 하단의 표제란에는 20년 전 날짜와 함께 선명한 글씨가 박혀 있었다.
설계자, 백도훈.
채은의 시선이 그 석 자에 꽂히는 순간 손가락이 굳었다.
“그 도면은…….”
“네 아버지가 20년 전에 그린 원본이다.”
경원의 목소리는 시계 기어의 회전음보다 차가웠다.
“학교 기록엔 이 시계탑 기계실이 음향 설계를 적용한 최첨단 차음 구조물로 등록되어 있지.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야. 110데시벨의 타종음이 울릴 때마다 벽체 안쪽의 공명 챔버는 소리를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특정 저주파를 증폭시켜 건물 전체를 흔들고 있어. 명백한 구조 결함이다.”
경원은 손가락 끝으로 도면의 슬릿 벽체 부분을 툭툭 쳤다.
“당시 재단과 아버지는 결함을 알면서도 준공 기한을 맞추기 위해 덮었어. 내부 흡음재를 저가 합판으로 채우고 공명판 좌표를 엉터리로 숨겨둔 채로.”
채은은 작업대 모서리를 꽉 쥐었다. 거친 나무 표면의 가시가 손바닥을 찔러왔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얼버무릴 분이 아닙니다.”
“그럼 왜 20년 동안 이 시계탑을 자정 단 한 번만 울리도록 묶어뒀을까? 하루 열두 번씩 울렸다간 균열이 타고 내려가 도서관 외벽이 먼저 무너졌을 테니까.”
경원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채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서늘한 눈동자에 괘종시계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스쳤다.
“내가 오늘 널 여기까지 부른 건 단순한 효과음 채집 따위 때문이 아니야. 자정까지 남은 4시간 동안 네 아버지가 묻어둔 공명판의 좌표를 찾아내라. 그리고 종이 울리는 순간, 그 틈새로 터져 나오는 결함의 진폭을 네 귀와 마이크로 직접 증명해.”
“도경원, 이 개자식아!”
쾅, 하는 파열음과 함께 기계실 철문이 거세게 벽을 치며 열렸다.
숨을 헐떡이며 문간에 선 송태이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태이의 셔츠 앞섶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걷어붙인 팔뚝에는 붉은 핏줄이 곤두서 있었다.
태이는 바닥에 놓인 채은의 장비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경원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윈드브레이커 원단이 태이의 악력에 찌그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선배라는 작자가 신입생 하나 잡겠다고 이딴 수작질을 해? 누나 귀 상태 뻔히 알면서 110데시벨 쇠붙이 밑으로 끌고 와? 네가 뭔데 아버지 일까지 들먹이면서 사람을 몰아세워!”
태이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경원은 멱살을 잡힌 채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고개를 꺾지도, 태이의 손을 쳐내지도 않은 채 태이의 가슴팍을 서늘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송태이. 넌 음대 건물로 돌아가.”
“뭐?”
“악보나 그리던 놈이 음향 공학의 오차 범위를 알 리가 없지. 이 기계실의 파형을 읽을 수 있는 건 백채은뿐이다. 귀가 멀쩡한 너 따위는 벽면에서 튀어나오는 공명점 하나도 짚어내지 못해.”
“입 닥쳐. 누나, 가자. 이런 미친놈 장단에 맞춰줄 필요 없어. 장비 다 버리고 내려가자.”
태이가 경원의 멱살을 거칠게 밀쳐내고 채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차갑게 식은 채은의 손등에 태이의 뜨거운 체온이 닿았다. 그러나 채은의 발은 바닥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누나?”
태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채은을 돌아보았다.
채은은 태이의 손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작업대 위에 펼쳐진 도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아버지의 손글씨로 적힌 단면 치수들이 채은의 굳은살 박인 손가락 사이로 드러났다.
“도경원 선배 말이 맞아.”
채은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이 도면, 35도가 아니라 28도 축으로 꺾여 있어. 아버지가 흡음판을 숨겨둔 게 아니라, 기계실 진동을 흡수하려고 억지로 콘크리트 안에 매립해둔 보정 벽체야. 아버지는 도망친 게 아니야.”
채은은 고개를 들어 도경원을 마주 보았다.
“자정에 종이 울리면, 내 귀로 그 파형이 맞는지 확인할 겁니다. 결함인지, 아니면 계산된 설계인지 내가 직접 증명할 테니까 그때까지 입 다물고 지켜보세요.”
경원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좋아. 펠리칸 케이스에 든 캘리브레이션 툴 꺼내. 4시간 남았다.”
벽면의 대형 괘종시계가 덜컥 소리를 내며 8시 정각을 알리는 묵직한 톱니를 맞물렸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24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