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공녀의 마법 로맨스 · 총 2화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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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는 두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냉철한 이성이 흐릿하게나마 작동하고 있었다. 별빛 공녀? 희망?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을 무가치한 존재로 살아왔다. 한순간에 그녀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저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미약하게 떨렸으나, 그 속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흑발의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반면 금발의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공녀님. 고대 예언에 따르면 별빛 왕가의 마지막 공녀는 오랜 세월 동안 힘이 봉인된 채 인간 세계에서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스무 번째 생일에 아스트라엘로 소환되어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각성할 기회를 얻게 되죠.”

금발의 남자는 고서적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손으로 허공에 작은 빛의 구를 만들어 보였다. 그 빛은 부드럽게 엘리시아의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다. 마법.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도 엘리시아는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럼… 저는 당신들의 예언에 따라 이곳에 강제로 끌려온 겁니까?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요?”

그녀의 질문에 금발의 남자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강제라기보다는… 운명의 이끌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수년 간 공녀님의 소환을 기다려왔습니다. 특히 최근 아스트라엘을 위협하는 어둠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공녀님의 존재는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가 말을 마칠 때쯤, 흑발의 남자가 한 걸음 더 엘리시아에게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나, 그 속에는 굳건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어둠의 세력은 이미 왕궁의 일부를 잠식했고, 마법의 근원인 별의 마나 흐름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스트라엘 전체가 암흑 속에 잠길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의 말은 엘리시아의 심장을 꿰뚫었다. 희망. 그 단어가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평생을 그림자처럼, 무의미하게 살아왔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한 세계의 운명을 짊어지라는 것은 가혹한 명령과 같았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마법도, 예언도, 이 세계도. 저는 그저… 인간 제국의 버려진 공녀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엘리시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두려움이 그녀의 목을 조르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자, 금발의 남자가 다시 나섰다.

“공녀님께서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몸에 흐르는 별의 마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봉인되어 있을지라도, 당신은 별빛 왕가의 마지막 혈통. 당신 안에 잠재된 힘은 이 세계의 어떤 마법사보다도 강할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흑발의 남자가 손을 뻗어 엘리시아의 은빛 머리카락 한 가닥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의 손길은 예상외로 부드러웠으나, 엘리시아는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머리카락과 눈동자… 이는 별빛 왕가의 순수한 혈통임을 증명하는 징표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당신의 힘이 억압당하며 칙칙한 색을 띠었을 뿐, 본래 당신은 이처럼 빛나는 존재였습니다.”

흑발의 남자는 그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카엘 드 아르테미스입니다. 별빛 왕가를 수호하는 북부 대공 가문의 당주이자, 이 아스트라엘의 대공이죠. 그리고 이쪽은 라온 엘릭스, 마법 학회의 수석 마법사이자 고대 마법 연구자입니다.”

그제야 두 남자는 제대로 된 소개를 했다. 카엘. 라온. 엘리시아는 그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어색하지만 낯설지 않은 울림이었다.

“저는… 엘리시아입니다. 엘리시아 드 아스트라엘이라고… 하셨죠?”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말하며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아스트라엘. 이 세계의 이름이 그녀의 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묘했다.

라온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 공녀님. 당신은 이 아스트라엘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희는 공녀님의 힘을 각성시키고,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의 말에 엘리시아는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쥐었다. 희망. 책임. 운명.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평생을 무가치하게 살았던 그녀에게,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었다.

“그럼… 제가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제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면요?”

그녀의 질문에 라온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공녀님.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도울 것입니다.”

카엘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빛은 엘리시아를 응시하며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그는 엘리시아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재촉하는 듯한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공녀님. 어둠의 세력은 계속해서 아스트라엘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각성이 늦어질수록, 우리가 잃는 것은 커집니다.”

카엘의 단호한 목소리에 엘리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한 돔형 천장에 펼쳐진 밤하늘의 별들, 투명한 수정 벽 너머로 보이는 은하수. 이곳은 분명 그녀가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변한 모습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미지의 세계에서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미쳐버리거나. 하지만 그녀는 평생을 냉정하게 살아왔다.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남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지긋지긋한 황궁을 벗어나고 싶다는 유일한 바람이 이루어진 지금, 그녀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잡아야 했다. 비록 그것이 너무나도 거대한 운명일지라도.

“알겠습니다.”

엘리시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 자신도 놀랄 만큼 단호했다.

“제가… 당신들이 말하는 별빛 공녀라면, 그리고 이 세계를 구할 희망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카엘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라온은 흥미로운 듯 엘리시아를 바라봤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세계에 대해, 마법에 대해,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해. 당신들은 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카엘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깊은 푸른 눈동자 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책임감, 경계심, 그리고 어쩌면… 미약한 기대감까지도.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당연합니다, 공녀님. 저희는 기꺼이 당신의 길잡이가 되어드릴 것입니다. 당신의 의지를 존중하며, 당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카엘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그는 엘리시아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손짓했다.

“따라오십시오. 이곳은 별빛 왕궁의 소환 홀입니다. 당신의 처소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당신의 각성을 위한 첫 훈련이 시작될 것입니다.”

엘리시아는 카엘과 라온을 따라 소환 홀을 나섰다. 홀을 벗어나자, 그녀의 눈앞에는 더욱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복도는 수정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별빛이 그대로 스며든 듯한 오색찬란한 문양들이 빛나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고대 마법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왕궁의 내부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했지만, 자세히 보면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일부 복도 끝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꺼진 마법 램프들이 즐비했다. 설정에서 언급된 ‘왕가의 힘이 약해져 곳곳이 봉인되거나 빛을 잃었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왕궁이… 많이 낡았군요.” 엘리시아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카엘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지는 것을 엘리시아는 놓치지 않았다. 라온이 부드럽게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별빛 왕가의 힘이 약해지면서, 왕궁의 마나 흐름도 불안정해졌습니다. 하지만 공녀님께서 각성하시면, 이 모든 것이 다시 본래의 빛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서 엘리시아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걸린 기대를 느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책임감이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지금, 이 낯선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채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왕궁의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한 처소였다. 문이 열리자, 엘리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창밖으로는 아스트라엘의 수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은빛으로 빛나는 첨탑들과 밤하늘의 별빛을 머금은 듯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방은 황궁의 처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넓었으며, 따뜻한 마나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곳이 공녀님의 처소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종을 부르십시오. 내일 아침, 라온이 공녀님을 모시고 마법 학회로 갈 것입니다.” 카엘이 말했다.

“마법 학회요?”

“네. 공녀님의 봉인된 힘을 깨우기 위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고대 마법 서적들을 통해 별빛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당신 안에 잠재된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라온이 덧붙였다.

엘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이미 창밖의 풍경을 넘어, 이 방 안에 가득한 낯선 물건들, 그리고 벽에 걸린 고대 별빛 왕가의 문양들을 훑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그녀는 ‘별빛 공녀’라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두 남자가 물러나고, 엘리시아는 홀로 방에 남았다. 그녀는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침대 옆 협탁에는 작은 수정 구슬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희미한 별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수정 구슬을 만졌다. 차가운 촉감과 함께, 구슬 안의 별빛이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반짝였다.

“어?”

엘리시아는 놀라 손을 뗐다. 구슬의 빛은 다시 희미해졌다. 그녀는 다시 손을 가져다 댔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안에 잠재된 힘이 정말로 반응한 것일까?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많은 별들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그녀의 내면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이 다시 한번 솟아올랐다. 두려움과 함께 솟아나는 강렬한 호기심.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감.

그때, 그녀의 손끝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한 은빛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밤하늘의 별 하나가 그녀의 손끝에서 떨어져 내린 것처럼. 그녀는 숨을 멈췄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본 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면…

엘리시아는 자신의 손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느꼈다. 아주 작고 희미하지만, 그녀의 손끝에서 무언가가 반응했다는 것을. 그녀의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시작이었다. 그녀의 삶은 이제, 이 별빛 가득한 아스트라엘에서, 완전히 새로운 막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그녀가 결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엘리시아는 다시 수정 구슬을 바라봤다. 그 안의 희미한 별빛이 그녀를 유혹하는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다시 손을 뻗었다. 과연 그녀의 손끝에서 다시 별빛이 피어날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저 꿈일까? 그녀의 손이 수정 구슬에 닿으려는 찰나, 구슬 안의 별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폭발하며 방 전체를 은빛으로 물들였다.

그 빛 속에서, 엘리시아는 자신의 손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진, 별 모양의 문양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잠자는 별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