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마력 덩어리가 낙하하며 내뿜는 파열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지상 결투장의 바닥이 꺼지며 쏟아져 내리는 화강암 덩어리들이 괴수의 등 뒤에서 우박처럼 흩뿌려졌다. 칼릭스는 망설임 없이 엘리샤의 어깨를 감싸 쥐고 자신의 품 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엎드려!"
칼릭스가 검을 거꾸로 쥐고 바닥에 꽂아 넣었다.
쿠구구궁!
그가 뿜어낸 시퍼런 한기가 바닥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솟구친 다중 빙벽이 세 겹의 반구형 돔을 이루며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단단히 덮었다. 바로 그 찰나, 허공에서 곤두박질친 괴수의 거대한 앞발이 첫 번째 빙벽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쩌저적!
엄청난 충격에 귓속이 먹먹해졌다. 가장 외곽의 얼음 장벽이 형체도 없이 바스러지며 굵직한 얼음 파편과 짓이겨진 석재가 두 번째 빙벽 표면을 사납게 두들겼다. 칼릭스의 단단한 등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고, 검을 쥔 그의 팔뚝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려 엘리샤의 옷소매를 적셨다. 세드릭의 검을 받아내고 금기 마법을 연달아 쓰며 찢어진 혈관에서 새어 나오는 피였다.
"칼릭스, 버텨요!"
엘리샤는 불에 덴 오른손을 억지로 틀어쥐며 고개를 들었다. 타버린 살갗과 짓무른 신경이 비명을 질렀지만, 지금 정신을 놓으면 둘 다 으깨진 시체로 묻힐 뿐이었다.
시야가 푸르게 물들었다. 엘리샤는 망막 뒤편으로 밀려드는 두통을 무시한 채 관찰자의 시야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투명하게 비치는 차원 너머로 괴수의 내적 구조가 선명한 마력 선으로 드러났다.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검푸른 고대 유적의 지맥. 그리고 그것을 거머쥔 채 소용돌이치는 흑마법 촉매. 그러나 엘리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이질적인 결합의 중심부에 박혀 있는 가느다란 마법진의 흔적이었다.
황금빛으로 번뜩이는 미세한 마력의 결.
황실 직속 마법사들만이 다룰 수 있는 고유의 암호화 룬이었다. 세드릭의 식별 코드가 괴수의 핵을 감싸는 뼈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순간 엘리샤의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이 하나의 결론으로 맞춰졌다.
‘도망친 게 아니야.’
세드릭은 제어반이 폭발하자 놀란 척 물러났지만, 이 참사 자체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제어반에 손을 댄 엘리샤의 마력을 미끼로 삼고, 결계를 부순 칼릭스의 금기 마력을 기폭제로 삼아 유적 지맥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지하의 봉인이 풀리고 아카데미 결투장이 무너진 참극의 책임. 그 거대한 대역죄의 멍에를 칼릭스 드 라온 한 사람에게 온전히 뒤집어씌우기 위해, 지맥의 과부하 임계점을 애초부터 결투장 붕괴에 맞춰 계산해 둔 것이었다.
"세드릭이 노린 건 단순한 도주가 아니었어요!"
엘리샤가 쏟아지는 낙석 소음을 뚫고 외쳤다.
"저 괴수 핵에 황실 통제 코드가 박혀 있어요. 세드릭은 유적 지맥을 일부러 폭주시켜서 결투장을 무너뜨린 뒤, 칼릭스 당신이 금기 마법으로 괴수를 소환해 아카데미를 파괴했다고 발표할 생각이에요!"
칼릭스의 푸른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두 번째 빙벽마저 금이 가며 쩍 갈라지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함정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저걸 베어 넘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도 없어."
칼릭스가 검을 빼내며 빙벽 틈새로 검기를 끌어올리려 했다. 푸른 마력이 칼날을 따라 맹렬하게 팽창했다. 정면에서 괴수의 흉부를 가르고 솟구쳐 오를 셈이었다.
"안 돼요, 검기를 정면으로 날리면 끝장나요!"
엘리샤가 칼릭스의 소매를 낚아채며 다급하게 가로막았다.
"저 괴수는 고대 지맥의 마력을 직접 빨아올리고 있어요. 정면에서 베어봤자 흩어진 마력이 이 좁은 석실 안에서 일시에 폭축을 일으켜요. 그러면 우리가 딛고 선 바닥 암반이 완전히 꺼져서, 지하 수백 미터의 붕괴 속으로 통째로 매몰된다고요!"
칼릭스의 시선이 엘리샤에게로 향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괴수의 몸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괴수의 마력 경로는 일반적인 마수가 아니에요. 촉매가 지맥을 흡수하는 입구가 따로 있어요. 세 군데예요."
엘리샤는 관찰자의 시야에 잡힌 세 개의 검붉은 마력 결절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타버린 손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목소리는 냉철했다.
"왼쪽 뒷다리 관절, 흉곽 아래의 역류 지점, 그리고 오른쪽 꼬리뼈가 시작되는 축선. 그 셋이 지맥을 빨아들이는 흡입 밸브예요. 중심 핵을 칠 게 아니라, 그 셋을 얼려서 마력 공급선을 끊어야 해요!"
키에에에엑!
마지막 빙벽마저 부서지며 괴수의 거대한 주둥이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날카로운 암석과 굳어진 마력 파편으로 이루어진 이빨이 허공을 집어삼켰다.
칼릭스는 엘리샤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반동으로 찢긴 오른팔의 근육을 억지로 쥐어짜며 검을 수평으로 눕혔다. 검신에 일렁이던 폭력적인 푸른 검기가 순식간에 차갑고 단단한 냉기의 바늘로 압축되었다. 드 라온 가문의 결빙 비전 마법이 세 개의 정밀한 흑철색 얼음 쐐기로 형태를 바꾸었다.
"왼쪽 뒤, 흉곽 아래, 오른쪽 꼬리뼈다."
칼릭스가 읊조리듯 내뱉음과 동시에, 그의 몸이 탄환처럼 튀어 나갔다.
괴수의 거대한 앞발이 바닥을 짓이기기 직전, 칼릭스는 엘리샤의 앞을 가로막으며 허공을 향해 세 번의 쾌속한 찌르기를 내질렀다.
파앙! 파아앙!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얼음 쐐기가 허공을 가르고 정확히 세 지점에 박혀 들었다. 괴수의 하반신 관절부를 흐르던 검붉은 지맥의 흐름 속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콰지직!
붉은 마력이 흐르던 역류 혈관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으며 탁한 백색으로 굳어졌다. 마력의 흡입이 강제로 차단당하자 괴수의 전신이 경련하듯 뒤틀렸다. 육중하게 떨어지던 수십 톤의 무게감이 허공에서 궤도를 잃고 비틀거리며 중심을 무너뜨렸다.
쿵!
괴수의 거대한 하반신이 바닥에 처박히며 충격파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면 격돌로 인한 바닥 암반의 붕괴를 간발의 차로 피해 낸 순간이었다.
그러나 괴수는 죽지 않았다. 지맥 공급이 끊긴 상반신이 붉은 안개를 뿜어내며 잔해 속에서 다시금 꿈틀거리고 있었다. 머리 위의 싱크홀에서는 여전히 무너진 결투장의 잔해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콰아앙!
동결되었던 세 지점 중 왼쪽 뒷다리의 흑철색 얼음에 균열이 번졌다. 지맥 공급이 강제로 차단되자, 괴수는 상반신에 남은 잔류 흑마법을 연소시키며 발악하고 있었다. 붉은 마력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얼음을 녹여 냈다.
칼릭스가 엘리샤의 어깨를 낚아채며 부서진 제어반 뒤편의 거대한 화강암 틈새로 몸을 던졌다.
쿠구구궁!
괴수의 꼬리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암벽을 후려쳤다. 쪼개진 바위 파편이 빗발치듯 튀어 석실 벽면을 짓이겼다. 날카로운 파편 하나가 칼릭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틈새의 그림자 안으로 엘리샤를 밀어 넣었다.
"거기 박혀 있어."
칼릭스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그의 시선이 엘리샤의 오른손에 닿았다. 룬 핵을 맨손으로 쥐어짠 대가로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손가락 마디 사이로 스며 나온 핏물이 덜덜 떨리는 손목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는 이미 마력 회로가 과부하 상태다. 더 이상의 마력 방출은 신경계를 완전히 태워 버려. 내가 놈의 시선을 싱크홀 반대편으로 끌어내겠다. 틈이 생기면 너는 암벽 단차를 딛고 위로 기어 올라가."
칼릭스는 검신에 서린 서리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엘리샤는 성한 왼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헛소리 마세요, 칼릭스."
엘리샤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놈은 지맥에 뿌리를 내린 괴수예요. 세 군데의 밸브를 얼려 뒀어도 이 바닥 전체가 고대 유적의 마력 웅덩이예요. 당신 검기로 놈의 가슴을 꿰뚫어 봤자, 십 초도 지나지 않아 지맥을 빨아올려 재생합니다. 당신 혼자 싸우면 검기가 먼저 바닥나서 짓밟힐 뿐이에요."
"그럼 이대로 둘 다 깔려 죽자는 건가?"
"아뇨. 죽일 수 있어요. 딱 한 번의 기회로."
엘리샤는 고개를 돌려 흙먼지가 자욱한 제어반 잔해 바닥을 훑었다. 관찰자의 감각을 끌어올리자 흩어진 돌무더기 사이에서 유독 짙은 보랏빛 마력을 머금은 파편이 시야에 걸렸다.
그녀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파편 더미 속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화상 입은 오른손에 뼛속을 파고드는 격통이 번졌지만, 입술을 짓누르며 흙더미를 헤집었다.
손끝에 차갑고 단단한 금속 질감이 걸렸다.
세드릭 폰 아스타르의 황실 문장이 선명하게 각인된, 폭발한 황실 통제 석판의 중심 파편이었다.
"이걸 봐요."
엘리샤가 흙먼지 묻은 석판 조각을 칼릭스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세드릭이 촉매를 기동할 때 쓴 황실 고유 암호식이 그대로 타박혀 있어요. 지상으로 나가서 저 작자가 당신을 반역죄로 몰아세울 때, 이 판을 들이밀지 못하면 라온 가문은 그 자리에서 역적으로 효수돼요.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죄를 벗겨 낼 증거를 쥐고 올라가야 합니다."
칼릭스의 푸른 눈동자가 석판 파편에 새겨진 황실 문양을 응시했다. 차가운 분노가 그의 턱선을 단단하게 굳혔다.
"저걸 챙겼다고 해서 괴수를 넘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넘길 수 있어요. 제가 지맥의 접지선을 단락시킬 겁니다."
엘리샤가 부서진 기둥 밑동을 가리켰다. 중앙 유리 기둥이 깨져 나간 자리, 지하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짙푸른 고대 지맥의 원류가 여전히 붉은 촉매 잔해와 엉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괴수가 얼음을 깨고 완전히 일어서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삼십 초예요. 제가 남은 마력으로 제어반 접지 회로를 역류시켜서, 유적 지맥의 분출 방향을 수직 싱크홀 통로로 비틀어 놓겠어요."
"네 신경계가 버티지 못해."
칼릭스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단락 충격을 맨몸으로 받아내면 오른팔의 마력로는 영구적으로 닫힌다. 마법사로서 끝장이야."
"저는 마법사가 아니라 살고 싶은 관찰자예요."
엘리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쳤다.
전직 편집자로서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다듬어 왔다. 희생 없는 승리는 없으며, 모든 결단에는 계산된 대가가 따른다. 팔 하나의 마력로가 망가지는 것과, 여기서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중 어느 쪽이 이득인지는 계산할 가치조차 없었다.
"제가 지맥의 상승 기류를 만들어 내면, 당신은 그 위에 얼음 길을 깔아요. 나선형으로, 저 싱크홀 상공의 무너진 결투장 바닥까지."
엘리샤가 칼릭스의 푸른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괴수의 상반신을 박살 내고 그 상승 기류를 타고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는 겁니다. 당신의 검기와 제 길잡이가 맞물려야만 가능해요. 할 수 있겠어요?"
칼릭스는 잠시 엘리샤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서늘할 정도의 실리적인 계산과 단단한 의지만이 박혀 있었다. 더 이상의 만류는 모욕에 불과했다.
"……길을 열어라."
칼릭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부러진 칼날 끝에서 날카로운 냉기가 푸르게 피어올랐다.
"네가 깐 궤적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겠다."
"좋아요."
엘리샤는 석판 조각을 품속에 깊숙이 쑤셔 넣고, 부서진 제어반의 동력 축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오른손의 화상 부위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녀는 통증을 억누르며, 손바닥을 그대로 노출된 구리선 접지 단자에 내리찍었다.
치이익!
살점이 타는 냄새와 함께 파란 불꽃이 튀었다. 관찰자의 감각이 비명을 지르며 뇌수를 찔러 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점멸하는 고통 속에서도, 엘리샤는 시야에 얽힌 고대 유적의 푸른 마력 선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강제로 비틀었다.
그녀의 몸을 매개체로 삼아, 지하 깊은 곳에 갇혀 있던 원초적인 마력의 흐름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꺾였다.
콰아아앙!
바닥 암반이 요동치며, 부서진 중앙 기둥 자리에서 거대한 푸른빛의 마력 돌풍이 솟구쳐 올랐다.
마침내 하반신의 얼음을 깨부수고 포효하던 괴수의 몸체가, 바닥에서 솟구친 막대한 지맥의 압력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뜨기 시작했다.
"지금이에요, 칼릭스!"
엘리샤의 외침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칼릭스가 허공을 향해 도약했다.
챙!
칼릭스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극한의 냉기가, 솟구치는 지맥의 상승 기류를 휘감으며 굵고 거대한 나선형 얼음 경사로를 싱크홀 허공에 빚어냈다. 지상 대결투장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서슬 퍼런 빙로였다.
칼릭스의 신형이 얼어붙은 나선 경사면을 딛고 번개처럼 치솟았다.
엘리샤는 접지 단자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관찰자의 시야로 괴수의 내부 회로를 꿰뚫어 보았다. 수직으로 꺾인 지맥의 푸른 격류가 허공에 뜬 괴수의 복부를 밀어 올리며 중심부의 핵을 강제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검붉은 흑마법 촉매가 불규칙하게 팽창하며 박동하는 급소였다.
"가슴 정중앙, 흑마법 촉매가 얽힌 룬의 회전축이에요! 세 번째 결절 바로 아래!"
엘리샤의 날 선 외침이 폭음 속을 뚫고 칼릭스의 귓가에 꽂혔다.
칼릭스는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도약의 각도를 수정했다.
얼음 경사로의 모서리를 박찬 그의 은빛 잔상이 허공에 날카로운 호를 그렸다. 마력 괴수가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내지르며 거대한 검붉은 발톱을 내리찍었으나, 이미 칼릭스의 칼끝은 목표를 향해 짓쳐 든 뒤였다.
쿠웅!
푸른 서리가 서린 검신이 괴수의 흉골 사이를 파고들었다. 엘리샤가 지목한 세 번째 결절 바로 아래, 흑마법 촉매가 똬리를 틀고 있던 마력의 핵이었다. 칼릭스는 양손으로 칼자루를 틀어쥐며 가문의 비전 결빙 마력을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쩌저적!
핵을 중심으로 맹렬한 냉기가 방사형으로 번져 나갔다. 검붉은 핏빛으로 요동치던 촉매가 순식간에 새파란 얼음 결정으로 굳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지맥의 마력을 게걸스럽게 탐식하던 연결선이 끊어지자, 괴수의 거대한 몸체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괴수는 형체를 잃고 거대한 푸른 불꽃의 파편으로 폭산했다. 지하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고대 유적의 마력이 한순간에 지상으로 솟구치는 거대한 상승 기류를 형성했다.
칼릭스가 허공에서 몸을 돌려 낙하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엘리샤의 허리를 단단히 낚아챘다.
"꽉 잡아라!"
칼릭스의 서늘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기 무섭게, 폭풍 같은 마력의 격류가 두 사람의 몸을 밀어 올렸다.
붕괴된 중앙 기둥 자리를 뚫고 치솟는 기류를 타고, 두 사람은 나선형 빙로의 궤적을 거슬러 수직으로 솟구쳤다.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는 지하 석실의 잔해가 아득히 멀어졌다. 머리 위로 갈라진 대결투장의 바닥 틈새에서 차가운 바깥 공기와 붉은 경종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콰아아앙!
두 사람은 싱크홀의 가장자리를 박차고 결투장 지상으로 튕겨져 나오듯 착지했다.
칼릭스가 검을 지면에 박아 넣으며 미끄러지는 충격을 줄였다. 엘리샤는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부서진 화강암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회색 분진이 폐부를 찔렀다. 오른손 손바닥은 마력 화상으로 짓물러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엘리샤는 떨리는 왼손으로 품속의 차가운 돌조각을 먼저 확인했다.
부서진 황실 통제 석판의 파편. 세드릭의 마법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증거는 품안에 온전히 남아 있었다.
"괜찮나."
칼릭스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의 뺨에도 파편에 긁힌 핏자국이 길게 나 있었고, 금기 마법을 억지로 끌어올렸던 오른팔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숨은 붙어 있어요."
엘리샤가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자욱한 먼지가 바람에 흩어지며 드러난 결투장의 광경은 처참했다. 관중석의 서쪽 회랑은 지반 침하로 반쯤 무너져 내려 있었고, 결투장 중앙에는 지하 고대 유적으로 이어지는 십여 미터 너비의 거대한 구멍이 흉측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카데미 상공에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붉은 신호탄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은 결투장 내부뿐이었다.
챙, 채챙!
규칙적인 갑주 소리와 함께 차가운 쇠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엘리샤의 눈동자가 서서히 굳어졌다.
경기장 외곽을 둘러싼 일곱 개의 결계석 주변으로, 짙은 금색 장막이 삼중으로 펼쳐져 있었다. 지상의 학생들과 관중들을 대피시킨 것이 아니었다. 침입자를 가두기 위한 완벽한 차단 결계였다.
그리고 그 금빛 결계선 최전선에 한 무리의 인영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황실 원로원 소속의 심판관 로브를 걸친 열두 명의 고위 마법사들. 그들의 지팡이 끝에는 시퍼런 살상용 룬이 빈틈없이 영창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 단정하게 정리된 금발을 휘날리며 선 인물이 있었다.
세드릭 폰 아스타르였다.
지하에서 석판이 폭발할 당시 튄 파편에 긁혔던 뺨에는 얇은 응급 치료용 마법 붕대가 붙어 있었으나, 그의 옷차림은 황태자의 위엄을 과시하듯 티끌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세드릭은 쓰러진 결투장 바닥과, 피투성이가 된 채 검을 쥐고 있는 칼릭스를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역시 살아 올라왔군, 칼릭스."
세드릭의 목소리가 결계 내부를 울리며 울려 퍼졌다. 경멸과 확신에 찬 어조였다.
칼릭스는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황태자를 쏘아보았다.
"도망친 줄 알았더니, 쥐새끼처럼 지상에 덫을 쳐 두고 기다리고 있었나."
"도망이라니, 말을 삼가라. 나는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제국의 안위를 위해 지상으로 올라와 즉각적인 방어선을 구축했을 뿐이다."
세드릭이 천천히 손을 들어 결투장 한가운데 뚫린 싱크홀을 가리켰다. 그의 녹색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드 라온 가문의 후계자 칼릭스가 경연 결선 직전, 결투장 지하 차폐 결계를 무단 파괴했다. 그 여파로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 유적의 지맥이 파열되었고, 금지된 흑마법 괴수를 결투장으로 끌어들여 경기장 전체를 파괴했다."
원로원 마법사들의 지팡이가 일제히 칼릭스를 향해 겨눠졌다. 공기가 짓눌릴 듯 무거워졌다.
"거짓말 마!"
엘리샤가 참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쏘아붙였다.
"지하 결계석을 조작하고 흑마법 촉매를 심어 지맥을 폭주시킨 건 황태자 전하, 바로 당신입니다! 통제 석판으로 괴수를 조종하려다 실패하자 지하에 사람들을 가둬 두고 혼자 도망쳐 놓고, 이제 와서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겁니까?"
세드릭의 시선이 엘리샤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에 노골적인 멸시가 스쳤다.
"관리 보조로 차출되었던 신원 불명의 엑스트라 학생이로군. 배후가 없다더니 결국 드 라온 가문의 사주를 받고 결계석을 훼손한 공범이었나."
세드릭은 엘리샤의 말을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턱짓으로 말을 잘랐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결계 파괴에 사용된 것은 드 라온 가문의 비전인 결빙 쐐기 마법이다. 결투장 지하 격벽에 박힌 파편들이 그 증거지. 게다가 칼릭스의 검에 묻은 저 흑마법의 흔적은 무엇으로 해명할 텐가?"
칼릭스의 검날에는 괴수의 핵을 꿰뚫으며 묻어난 검붉은 마력 잔여물이 얼어붙은 채 엉겨 있었다. 세드릭은 그 모든 정황을 철저하게 자신의 각본에 맞춰 비틀어 두고 있었다.
원로원 수석 심판관이 앞으로 나서며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쳤다.
"원로원 비상 포고령에 따라 명한다. 대역죄 및 금기 마법 사용 혐의로 칼릭스 드 라온과 그 공범 엘리샤를 현장에서 즉각 체포한다. 저항할 시 반역으로 간주하여 즉결 처형을 집행하겠다."
열두 명의 원로원 마법사들이 쥔 지팡이에서 거대한 화염과 번개의 룬이 일제히 결합하며, 머리 위 허공에 거대한 진압 마법진을 띄웠다. 피할 곳 없는 결투장 한복판을 완전히 짓누르는 살기였다.
칼릭스가 검을 비껴들며 엘리샤의 앞을 막아섰다. 부상당한 그의 팔에서 다시금 짙푸른 서리가 피어올랐다.
"증거를 댈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뜻이군."
"반역자에게 변명의 여유 따윈 없다."
세드릭이 차갑게 손을 내렸다.
"포격 개시."
머리 위의 마법진이 붉게 타오르며 쏟아져 내리기 직전, 엘리샤는 품속의 석판 파편을 꺼내 쥐며 세드릭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결투장 바닥에 날 선 대치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