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컬러 위버 · 총 9화 · AI 작가 윤슬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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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원로원 집행대장의 흉갑 중앙에 박혀 있던 왜곡 마도석이 산산조각 났다.

보랏빛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가운데, 허공에 떠 있던 아드리안의 형체가 신기루처럼 흔들렸다. 일그러진 윤곽 너머로 붉은 머리칼을 쓸어 올린 아드리안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섬뜩한 냉소를 흘렸다.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리아나.”

깨진 결정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지며 환영이 찢겨 나가는 와중에도, 그의 서늘한 음성은 지하 공간의 바위벽을 타고 징그럽게 울려 퍼졌다.

“순순히 문을 열지 않는다면 다른 수를 써야지. 그 마도석은 단순히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야.”

바닥에 떨어진 마도석 파편들이 붉은 열기를 토해내며 검붉은 연기를 피워 올렸다. 석판 바닥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부수는 순간 격리 구역 전체의 자율 방어와 자폭 술식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해 뒀거든. 병기의 동력핵이 될 수 없다면, 전하와 함께 그 자리에서 짓눌려 죽어.”

아드리안의 웃음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지며 환영이 완전히 소멸했다.

동시에 거대한 흑철 아치 관문 외벽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던 고대 룬 문자들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톱니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맞물려 돌아가는 둔탁한 진동이 발밑을 뒤흔들었다.

천장을 떠받치던 아치형 대들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지더니, 집채만 한 화강암 덩어리들이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물러서!”

카이젠이 바닥을 박차며 리아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장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리아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붉은 마력에 정통으로 얻어맞아 두 동강 났다. 쪼개진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석벽에 처박혔다.

카이젠의 쇄골 부근에서 부서진 억제 장치의 틈을 타고 검붉은 불꽃이 다시금 사납게 일렁였다. 신경계를 짓이기는 반동에 턱 근육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내 뒤에 붙어 있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카이젠의 붉은 눈동자는 천장의 붕괴 지점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다.

리아나는 그의 뒤에 숨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가볍게 비틀어 카이젠의 쇄골에 이어진 금빛 에테르 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무리하지 마세요. 억제 장치가 깨진 상태에서 검기를 그렇게 휘두르면 혈관이 먼저 터져요.”

실을 타고 흘러드는 황태자의 거친 충동을 억누르며, 리아나는 흩어지는 마력의 줄기를 굳세게 틀어쥐었다.

카이젠의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체내 마력의 흐름이 단단히 정돈되는 감각에, 그는 이를 악물면서도 서늘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당신은 끝까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군.”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개죽음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리아나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가루를 털어내며 흑철 관문의 표면을 응시했다. 붉게 달아오른 룬 문자들이 관문 전체를 거대한 폭탄처럼 과열시키고 있었다.

“마도석을 부수는 순간 자폭 진이 맞물려 돌도록 짜 뒀더군. 넌 처음부터 우릴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어.”

카이젠이 피 묻은 입술을 짓이기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감히 벨모트의 쥐새끼가 황실을 상대로 덫을 놓아?”

“아드리안은 계산이 빠른 자예요. 우리가 협박에 굴복해 문을 열면 고대 병기의 제물로 삼고, 거부하고 마도석을 부수면 흔적도 없이 묻어버릴 셈이었던 거죠.”

쿠구구궁!

더욱 거센 충격과 함께 관문 우측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기둥 하나가 완전히 꺾여 무너졌다. 희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로막는 가운데, 날카로운 돌 조각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리아나는 망설임 없이 카이젠의 등 뒤로 다가서며 등을 맞댔다.

두꺼운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단단한 체온과 거칠게 오르내리는 황태자의 호흡이 등뼈를 타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하, 분노는 나중에 터뜨리세요. 천장이 무너지는 속도가 비정상적이에요. 이건 단순한 구조 붕괴가 아니라 결계의 마력이 공간 자체를 짓이기고 있는 거예요.”

“상층으로 이어지는 나선 계단 쪽은 어떤가.”

“저 문을 등지고 위로 올라가야 해요. 하지만 계단 쪽 기류가 심상치 않아요.”

리아나는 손가락 끝에서 가느다란 금빛 실 세 가닥을 허공에 흩뿌렸다. 실들은 부유하는 먼지와 낙석 사이를 매끄럽게 유영하며 지하의 공기 흐름을 읽어냈다.

붕괴의 중심은 아치 관문이었지만, 상층 계단 입구 쪽에서는 차가운 금속성 마력이 은밀하게 응축되고 있었다.

아드리안이 남겨둔 덫은 단순한 자폭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올라가는 길목을 막아섰어요.”

리아나의 금빛 눈동자가 흙먼지 너머 계단 입구를 서늘하게 응시했다.

“우리가 무너지는 잔해를 뚫고 올라오길 기다리는 사냥꾼들이 있어요.”

카이젠이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검을 고쳐 쥐었다. 그의 입꼬리에 서슬 퍼런 조소가 걸렸다.

“사냥꾼이라. 감히 누구를 사냥하겠다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황태자의 마력이 다시금 리아나의 금빛 실과 거칠게 마찰하며 붉은 불꽃을 튀겼다. 두 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지하의 암흑 속에서, 퇴로를 가로막은 어둠을 향해 동시에 시선을 던졌다.

먼지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속해서 울렸다.

상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나선 계단 아래에 설치되어 있던 마도 폭약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갔다. 거대한 화강암 디딤돌들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고, 순식간에 수십 톤의 석재 잔해가 유일한 출구를 가로막으며 산더미처럼 쌓였다.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자욱한 매연과 돌가루를 뚫고 검은 장포를 뒤집어쓴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기괴한 철제 가면으로 가린 원로원 산하의 비선 병력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에테르 파동을 억지로 옭아매고 빨아들이도록 주조된 은청색 흡수 마도구가 들려 있었다.

“목표를 확인했다. 위버의 사지를 결박하고 파동 핵을 적출하라.”

가면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감정이 거세되어 싸늘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차며 부채꼴 형태로 리아나를 포위해 들어왔다. 은청색 마도구에서 뻗어 나온 억압의 사슬들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었다.

“어딜 감히 손을 뻗는가.”

카이젠의 서슬 퍼런 일갈과 함께 검붉은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붉은 오라를 뿜어내는 검날이 날아들던 마력 사슬 두 개를 단숨에 절단하고, 선두에 서 있던 암살자의 흉벽을 깊게 베어 넘겼다. 피보라가 튀는 와중에도 카이젠은 검을 멈추지 않고 연이어 파고들며 적들의 대열을 흩어놓았다.

그러나 그 거친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큭……!”

순식간에 셋을 베어 넘긴 카이젠이 갑자기 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내렸다. 옷깃이 뜯겨 나간 쇄골 부근에서 부서진 억제 장치의 잔해가 파르르 떨리며 신경계를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었다. 억누를 방벽이 사라진 마력이 체내 혈로를 제멋대로 역류하며 장기를 찢어발기는 중이었다.

“전하!”

리아나는 쇄도해 오는 다른 암살자의 단도를 금빛 실 장벽으로 튕겨낸 뒤, 곧바로 카이젠의 곁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손가락 열 개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에테르 실들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 카이젠의 목덜미와 쇄골의 마력맥을 거칠게 감아 쥐었다. 실이 살을 파고들자 카이젠의 몸속에서 날뛰던 불길 같은 고통이 금빛 가닥을 타고 리아나에게 그대로 밀려들었다. 살점이 타들어가고 뼈마디가 바스러지는 것 같은 지독한 격통에 리아나는 턱을 악물었다.

“손 치워, 리아나.”

카이젠이 핏줄이 터진 눈으로 리아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피거품에 젖어 긁히듯 갈라져 있었다.

“이건 네가 감당할 짐이 아니다. 실을 끊고 저 무너진 잔해 틈으로 빠져나가. 계단 뒤편에 비상 배수로가 있다. 넌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어.”

황태자의 거친 손이 리아나의 손목을 밀어내려 했다. 평소의 오만하고 위압적이던 집착은 온데간데없고, 기이할 정도로 절박한 거절이었다.

“지금 나더러 도망치라고요? 당신을 이 꼴로 버려두고?”

“내 쇄골에 박혀 있던 억제 장치는 황실의 보호구가 아니야. 날 괴물로 규정한 황제가 채워 둔 목줄이었지.”

카이젠이 자조 섞인 조소를 흘렸다. 입술을 타고 흐른 피가 턱 끝을 적셨다.

“선천적으로 감정이 폭주하면 마력이 신경계를 태워버리는 저주를 타고났다. 아바마마는 그런 나를 황실의 오점으로 여겨 이 쇠붙이를 박아 넣었지. 이게 깨진 이상 난 어차피 미쳐서 죽는다. 그러니 넌 날 두고 가.”

자신을 가두었던 족쇄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면서도, 카이젠은 끝내 리아나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남에게 틈을 보이지 않던 황태자가 내보인 유약한 밑바닥이었다.

리아나는 카이젠의 멱살을 거칠게 낚아챘다.

금빛 눈동자에 서슬 퍼런 불꽃이 일었다. 그녀는 카이젠의 나약한 배려를 비웃듯, 에테르 실을 한층 더 강하게 비틀어 쥐었다.

“웃기지 마세요. 누구더러 도망치라는 거예요?”

“리아나……!”

“괴물이든 저주받은 몸이든 내 알 바 아니에요. 그 억제 장치를 부순 것도 나고, 당신의 마력맥을 틀어쥔 것도 나예요. 목줄이든 뭐든, 당신을 살리고 쓰는 건 이제 나라고요.”

리아나의 서슬 퍼런 선언과 함께 금빛 실이 카이젠의 붉은 오라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통증을 흡수하는 동시에 제멋대로 날뛰던 마력의 물길을 강제로 재배열해 억눌렀다.

단순히 상대를 지배하거나 통제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의 숨통을 맞쥐고 진흙탕 속으로 함께 뛰어드는 자들만의 결속이었다. 카이젠의 붉은 눈동자가 리아나를 담아내며 번뜩였다. 그의 입가에 묻은 피가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호선을 그렸다.

“날 완전히 부려먹을 셈이군.”

“그러니까 죽지 말고 버텨요.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살아나갈 거니까.”

그 순간, 비선 병력의 지휘관이 마도구를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잔해 더미 주변으로 거대한 은청색 마법진이 펼쳐지며 리아나의 에테르 파동을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은청색 빛무리가 뱀의 혓바닥처럼 허공을 가르며 리아나의 손끝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잡아채라! 위버의 파동을 단 한 가닥도 남기지 말고 흡수구에 밀어 넣어!”

지휘관의 서슬 퍼런 호령과 함께 바닥에 깔린 결계가 사납게 회전했다. 리아나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던 금빛 에테르 실이 거센 물살에 휘말린 것처럼 허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실을 타고 체내의 마력이 강제로 뜯겨 나가는 서늘한 감각이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카이젠이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리아나의 앞을 막아섰다. 억제 장치가 부서진 쇄골 부근에서 솟구친 검붉은 불꽃이 검날을 뒤덮었다. 신경계를 태우는 극심한 고통 탓에 그의 턱 끝덜미가 거칠게 떨렸다.

“내 뒤로 물러서라. 저들이 노리는 건 네 파동이다.”

황태자는 다시금 리아나를 등 뒤로 숨기려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와중에도 검을 쥔 손에는 지독한 완력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리아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카이젠의 곁으로 바짝 다가붙으며, 검자루를 쥐고 있는 그의 거친 손등을 단단히 덮쳐 잡았다.

“숨을 생각 없어요. 언제까지 당신 등 뒤에서 숨죽이고 있으라는 건데요?”

“리아나!”

“저자들이 원하는 대로 에테르를 내어줄 테니까, 당신은 그걸 베어 넘겨요.”

리아나의 금빛 눈동자가 결연하게 타올랐다. 그녀는 흡수진의 인력에 저항하며 실을 거두어들이는 대신, 은색 펜던트의 핵과 연결된 에테르 파동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손가락을 얽어매고 있던 금빛 실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 카이젠의 검날을 휘감기 시작했다.

흡수진의 지휘관이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리석은 계집이 제 발로 힘을 쏟아붓는구나! 모조리 삼켜라!”

지휘관이 손에 든 구형 마도구가 눈이 멀 듯한 청백색 빛을 뿜어내며 리아나의 에테르를 게걸스럽게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아나가 노린 것은 순순한 헌납이 아니었다. 그녀는 위버의 본능을 발휘해 카이젠의 날뛰는 붉은 오라를 금빛 실의 마디마다 촘촘하게 엮어 넣었다. 카이젠의 검붉은 마력이 금빛 에테르의 통로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압축되었다. 파괴와 조율이라는 상반된 두 힘이 하나로 꼬여 들어가며 칼날 위에서 끔찍할 만큼 순도 높은 파괴력을 빚어냈다.

카이젠의 눈동자가 경악과 희열로 물들었다. 제어되지 않던 체내의 폭주 마력이 리아나의 손길을 거쳐 하나의 날카로운 칼날로 벼려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감한 탓이었다.

“이걸 전부 내 검에 싣겠다고?”

“감당할 수 있죠? 황태자 전하.”

리아나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쏘아붙이자, 카이젠이 핏빛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내 숨통을 쥐고 흔드는 주인이 명령하는데, 거역할 도리가 없지.”

두 사람의 호흡이 맞물리는 찰나, 카이젠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금빛과 붉은빛이 맹렬하게 뒤섞인 복합 검기가 거대한 쐐기 형태로 벼려졌다. 그 압도적인 질량감에 지휘관의 얼굴에서 비열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뭣들 하느냐! 막아라! 결계 출력을 최대로……!”

명령은 끝을 맺지 못했다. 카이젠이 땅을 박차며 허공을 가르고 내려친 일격이 회랑 전체를 찢어발겼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뿜어져 나간 검기는 비선 병력의 흡수 결계를 종잇장처럼 두 동강 냈다. 마도구의 핵이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마법진을 유지하던 병력들이 피를 뿜으며 사방의 암벽으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짓누르던 은청색 결계가 흔적도 없이 증발하며 지하 광장이 거대한 분진 구름에 뒤덮였다.

그러나 참격의 여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비선 병력을 쓸어버리고 남은 막대한 금빛과 붉은빛의 마력 파동이 정면의 거대한 흑철 아치 관문에 정면으로 격돌했다.

쿠구구구궁!

지하 3층의 지반 전체가 요동치며 천장에서 굵직한 암석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회색빛으로 잠들어 있던 관문 외벽의 고대 룬 문자들이 핏빛으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철컥, 치이익.

천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기계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아치 관문 중앙의 육중한 격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뿜어져 나온 고열의 증기가 두 사람의 피부를 뜨겁게 달궜다.

갈라진 문틈 너머, 칠흑 같은 심연 속에서 거대한 강철의 윤곽이 드러났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흉벽 중앙에서, 깊은 잠에서 깨어난 고대 마도 병기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아드리안이 그토록 깨우길 갈망했던 괴물의 심장이 위버와 황태자의 복합 마력에 반응해 기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카이젠이 숨을 몰아쉬며 리아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 손을 뻗었다. 마력 소모로 인해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리아나는 카이젠의 손을 쳐내는 대신, 거칠어진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얽어 쥐었다. 손바닥이 맞물리며 서로의 맥박과 뜨거운 온기가 피부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는 도망칠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리아나는 관문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안광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물러서지 마, 카이젠. 우리가 함께 저 문을 부수고 나가는 거야.”

처음으로 황실의 직함이 아닌 이름을 똑똑히 부른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카이젠의 붉은 눈동자가 리아나의 단호한 얼굴을 오롯이 담아내며 깊게 가라앉았다. 잡힌 손에 거센 힘이 들어가며 맞잡은 손을 단단히 옭아맸다.

두 사람은 마도 병기가 붉은 숨을 토해내는 열린 관문 안으로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