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군요, 전하."
시릴의 얇은 금테 안경 너머로 지독한 서늘함이 번졌다. 늘 정중한 궁정 예법의 가면 뒤에 감춰져 있던 대마법사의 서슬 퍼런 오만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은빛 반묶음 머리칼 사이로 흐트러진 은색 마력이 그의 소매 끝을 거칠게 흔들었다.
"이건 황실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자, 전하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는 자멸입니다."
시릴이 품속에서 짙은 감청색 금속으로 벼려진 팔찌 한 쌍을 꺼내 들었다. 온실 안의 잔류 마력을 무겁게 빨아들이는 황실의 마력 봉인구였다. 금속 표면에 새겨진 억제 룬 문자가 파랗게 점멸하며 로젤리아의 발치로 뻗어나갔다.
"손을 떼십시오. 지금 당장 코어의 연결을 끊고 봉인구를 차신다면, 폐하께는 북부의 무도한 침입자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시적 교란이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제가 손을 쓰면 아직 끊어낼 수 있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는 찰나였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발렌틴의 장검이 바닥을 짓이기며 솟구쳤다. 검날을 타고 뿜어져 나온 시퍼런 서리가 시릴의 발끝 바로 앞 타일을 일직선으로 갈라놓았다.
"내 목을 노릴 때보다 혓바닥이 더 길어졌군, 마법사."
발렌틴이 핏발 선 흑청색 눈동자로 시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에 로젤리아의 핏자국을 달고 선 남자의 온몸에서 살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