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바람에 눈가루가 매섭게 흩날렸다. 협곡 바닥을 가득 메운 오십여 기의 기마병들은 검날을 비스듬히 세운 채 퇴로를 옥죄고 섰다. 선두에 선 바론 발도는 말고삐를 가볍게 털며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사내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주군을 향한 일말의 경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로젤리아는 절벽 가장자리에 선 채 발밑의 진형을 차분히 훑었다. 기병들은 단순한 방어 태세가 아니었다. 좁은 길목 양옆으로 쐐기형 방진을 펼쳐, 위에서 뛰어내리는 자를 한 번에 꿰뚫으려는 전형적인 포위 섬멸 대형이었다.
발렌틴은 잡고 있던 로젤리아의 손목을 천천히 놓았다. 칼집에서 미끄러져 나온 대검의 은빛 날이 새벽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번뜩였다.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턱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원로원의 개가 주인을 물려고 이 먼 곳까지 기어 나왔군. 바론 발도, 대공의 명도 없이 사병을 이끌고 영지 경계선을 넘은 죄는 즉결 처형이다."
바론 발도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안장 옆에 달린 마도 통신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즉결 처형이라니, 가당치도 않으십니다. 수도에서 황실의 근위대를 도륙하고 도망쳐 온 패잔병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지요. 대공 전하의 그 잘난 빙핵이 이미 밑바닥까지 갈라져 숨만 겨우 붙어 있다는 건 온 성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