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붉게 내려앉은 에테르 아카데미 서편 정원의 회랑은 인적이 끊겨 서늘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돌바닥을 디디는 리아나의 구둣발 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렸다. 학생회실 문을 박차고 나온 뒤로 단 한 번도 걸음을 늦추지 못했다. 옷자락 아래 숨겨진 은색 펜던트가 여전히 미열을 뿜어내며 쇄골 부근을 찌르고 있었다. 카이젠의 억제 장치와 격돌했던 금빛 에테르의 잔향이 아직 손가락 끝마디에 아릿하게 남아 있는 탓이었다.
지금 리아나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기숙사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이 위험천만한 도시에 제 존재가 발각되지 않도록 잿빛 장막을 다시금 두껍게 덧씌우는 것.
그러나 본관의 웅장한 그림자가 걷히고 서편 기숙사로 이어지는 붉은 장미 덤불 모퉁이에 도달했을 때, 길게 늘어진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발끝을 가로막았다.
"걸음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전학생?"
장미 덤불의 굵은 줄기 뒤편에서 익숙한 주황색 불꽃이 피어오르듯 인영이 걸어 나왔다. 불그스름한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쓸어 넘긴 아드리안 벨모트였다.
그는 양손을 느슨하게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회랑 기둥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었다. 여유롭게 휘어진 입꼬리와는 달리, 그늘 속에 박힌 에메랄드색 눈동자는 조금 전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보다 훨씬 집요하게 번뜩이고 있었다.